#7. 강화석.
“엔트라 스토어!”
현실 속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랭커들의 필수품처럼 알려진 물건을 구입했다.
“정화제.”
존슨은 이를 전신 가득 뿌리고, 입 안 가득 담고 삼키며 주변을 살폈다.
‘어마어마하네.’
사방 가득 넘실거리는 불길한 기운들이 그의 전신을 옥죄는 게 느껴졌다. 그저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내부 깊숙이 원념들이 스며들며, 사념폐해의 악몽을 부추기고 있었다.
‘이건, 못 막겠는데.’
이레귤러의 발생 지점까진 도착하지도 못했건만, 벌써부터 이리 숨이 막힌다는 건, 이미 충분한 진행이 되었다는 의미이리라.
굳이 무리를 해 본다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를 위해선 그의 생사를 걸어야 했다.
남다른 감각이 경고를 보내오고 있는 만큼, 이쯤에서 발을 빼는 게 맞았다. 게다가 ‘그녀’가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반드시 멀쩡히 살아서 돌아올 것!
이반나가 내건 조건으로써, 그건 마치 언령처럼 그를 속박하며, 다른 어느 때보다 몸을 사리고 싶게 만들었다.
평소라면 감각의 경고로 위험한 걸 알면서도, 일단 이레귤러의 형태라도 눈에 담고자, 한 걸음 더 내딛는 과감성을 보였겠지만, 오늘은 경고 신호가 퍼지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이 정도가 적정선이지.’
그렇게 생각했다.
오싹!
감각의 경고가 단숨에 노란불에서 빨간불 수준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급히 몸을 숙였고,
스아아악...
아슬아슬하게 목덜미 위를 스쳐가는 한기를 느꼈다.
한 바퀴 바닥을 구르며 습격자를 살피는데, 등허리로 전율이 스치는 걸 느껴야만 했다.
‘어떻게, 벌써?’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레귤러를 마주해 봤고, 그만큼 관련 정보에 관해서는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눈앞의 존재는 벌써 나올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마치 악마를 연상시키는 뿔과 시커먼 피부 그리고 익룡계의 날개까지, 존슨은 그 정체를 입에 담았다.
“마족...꿀꺽!”
대격변의 상징이라 불리는 몬스터였다.
‘한 놈 정도라면...’
존슨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전력을 끌어올릴 때였다.
킥킥킥킥킥킥...
놈이 불길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의 남다른 감각이 재차 신호를 보내왔다.
사악...
또 다시 바닥을 굴러야 했다. 이번에도 뒷목을 스쳐가는 섬뜩한 예기 한 줄기를 느꼈다.
‘둘?’
존슨은 새로운 마족이 뒤편에 자리 잡는 걸 봤다. 긴장감이 배가되는 가운데, 놀랍게도 하늘을 펄럭이며 떨어지는 검은 그림자들이 있었다.
‘셋, 넷...다섯?’
무려 다섯의 마족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 위치가 절묘하게 퇴로를 차단하고 있기도 했다.
‘이건, 대체?’
뭔가가 크게 비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존슨의 눈빛이 크게 바뀌며, 마치 각오를 굳힌 듯 기세가 일변했다. 마족들도 긴장감을 내비치는 가운데, 존슨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퇴로를 차단하고 있던 마족들의 눈가에 당혹감이 드러났다.
이유인 즉,
‘그래, 어차피 튀는 건 글렀고.’
존슨은 자신의 감각마저 속이는 이변의 정체를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때문에 깊이 더 깊이, 이레귤러의 발생 지점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무가 막고 바위가 막으며 각종 몬스터들이 전방을 가로막아도 상관없었다.
콰콰콰콰콰콰...
오직 일직선으로, 최단 거리로 모든 것들을 박살내고 짓이기며 내달릴 뿐이었다.
이레귤러!
대격변의 전조라 불리는 현상으로써, 그 등급에 대해 정의하는 건 간단했다.
S급 던전 웨이브!
지금껏 발생했던 최소 규모의 대격변이 그 수준이었다.
‘거기서 나온 마족도 겨우 한 놈.’
최근 발생한 최악의 대격변도 넷이 전부였다. 하지만 거기서 하나가 더 추가된 다섯이라면?
존슨은 이 순간만큼은 이반나와의 약속도 뒤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레귤러를 확인하고 차이점을 눈에 담은 뒤, 이를 세상에 알려야 했다.
어떻게?
통신 장비도 작동하지 않는 장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 가능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엔트라 데스크!
정보 등급에 따라 자체적인 분류가 될 터, 짐작건대 열람에도 포인트 소모가 많은 최상위 게시판에 올라갈 확률이 높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고 보는 이들이 상당했기에, 일단 올리고 볼 일이었다.
‘제대로 올릴 시간이 있을지가 문제인데.’
빠르게 뒤를 쫓는 다섯의 마족들이 느껴졌다. 각종 장애물들을 박살내며 일직선으로 내달리고 있지만, 역시나 하늘을 날아서 쫓아오는 이들을 따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의 전력을 따라잡기도 쉽지 않았던 듯, 기어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해야만 했다.
‘이건...’
맨 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
‘당했다!’
이레귤러는 여전히 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균열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언뜻 게이트의 초기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로 완전 오픈의 경우에도 게이트의 형상을 취하고 있기도 했다.
‘이레귤러는 달라진 게 없었어.’
그렇다면 무엇이 상황을 달리하게 만든 것일까?
존슨은 그 답을 알았고, 데스크에 올릴 부분도 정리할 수 있었다.
‘마족 놈들의 대응법이 달라졌군.’
어느새 그를 포위하고 있는 다섯 마족들을 살폈다. 그러며 오감을 한껏 개방하며 정보를 읽어 들였다.
‘하...당했네!’
새삼 저들에게 낚여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같은 가짜라는 건가.’
기세나 분위기 등, 전부 진짜라는 느낌이 왔지만, 미묘한 비틀림에서 저들이 일종의 분신체라는 걸 직감했다.
킥킥킥킥킥킥...
킬킬킬킬...
그의 표정변화에서 생각을 읽어낸 듯, 마족들이 일제히 기괴한 웃음을 흘려댔다. 괜히 발끈하려는 감정을 다스리며 평정을 유지하는 한편, 머릿속으로는 빠르게 상황정리에 들어갔다.
‘알아서 호랑이 굴로 들어온 건가. 쯧!’
그간 자신이 저들의 계획을 얼마나 많이 방해했던가. 슬슬 패턴이 바뀔 때도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성급했나.’
거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마족의 등장에 당황한 것도 있었다. 게다가 그 숫자가 무려 다섯이었으니, 평정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잘 됐어!’
목표로 하던 이레귤러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크게 오픈되어 있는 터라,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는 결심도 굳혀졌다.
‘여기까지 오는데 포스 소모가 꽤 있었지만.’
그의 일생에 만전으로 전투에 임했던 게 몇이나 되던가. 이 정도는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이 정도로 큰 이레귤러라면...’
짐작건대 브라질을 지워버리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초기 대응이 잘 이뤄진다 하더라도, 절반가량은 충분히 씹어 먹을 거라 여겼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견적을 뽑아갔다.
‘분신체들의 완성도가 저 정도라면, 거의 본체에 가깝다는 뜻이겠지만.’
그래도 결국 가짜였다.
게다가 분신체를 보내는 패턴이 지금껏 없었다는 걸 생각해 봤을 때, 저 방법이 결코 쉬운 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할 수 있다!’
존슨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상대는 무려 마족이라 불리는 재앙의 그림자들이었다. 분신체건 뭐건 지금부터는 매 일격 일격에 전심전력을 쏟아 부어야 할 터였다.
푸후우우...
호흡이 바뀌고 공기가 달라지며 분위기가 돌변했다. 마족들도 미소를 지우며 신중히 간격 조절을 했다.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는 찰나, 존슨이 먼저 움직였다.
쿠르르르르르...
* * *
많은 랭커들이 그런 말들을 한다.
-스토어 물품을 굳이 쓸 필요 있나?
-현실에도 비슷한 물품 많다.
-어차피 1회용이잖아.
-괜히 손맛만 버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맞는 이야기라 할 수도 없었다.
‘비슷한 물건이 있는 거지, 더 뛰어난 물건이 있는 건 아니니까.’
견줄 수 있는 것일 뿐, 스토어의 상품을 압도할 만한 물건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장인들이 수련을 거듭하며, 스토어에 비견될 물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넘어서는 물건이 나오지는 못했다.
랭커들의 장비 역시 마차가지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S-급과 S+급의 격차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스토어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건, 1회용이기 때문이었다.
어설피 그 뛰어난 장비에 손을 댔다간, 괜히 손맛과 감각만 버릴 수 있는 까닭에, 차라리 만지지 않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만약, 스토어의 장비를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1회용의 소모품이지만, 계속 구입해서 사용 가능하다면?’
마루는 자신에게 그 답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푸하하하하하!”
뜬금없는 루미의 등장이 이런 반가운 결론으로 이어질 줄이야.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강하나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명장 소리를 듣는 그녀의 걸작 역시도 스토어의 물건과 비교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여느 장인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견줄’만한 수준은 만들 수 있지만, 넘어서는 물건을 제작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물건을 처분할 건 아니었다.
환전 시스템이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그 환전이란 것도 돈 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였기에, 적절히 분배해가며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남들보다 여유가 생긴 만큼, 다른 랭커들은 할 수 없는 미친 짓 역시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강화석!”
스토어의 물건 중 유일하게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물품이었다.
이 역시 직접적인 공유는 불가능했다.
‘이걸로 드래고니안을 강화하고.’
그걸 강하나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를 통해서 그녀는 장비의 부족했던 점을 상기하며 보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장인으로써 답보상태인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을 터였다.
몇몇 이런 방식으로 성장 가능성을 높인 장인들이 있긴 하나,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강화석 효과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선?
‘최소 3강 이상은 해야지.’
게다가 이 강화석이라는 게 원체 포인트 소모가 많은 탓에, 랭커들이 쉬이 손대려 하질 않았다.
1만 포인트!
강화석 한 개의 가격이었다. 그의 경우는 골드로 환산이 가능하다 보니, 좀 더 여유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 봐도 2천만원이었다.
‘1골드에 천원이었지.’
2배 환전 시스템에 의한 결과였다.
게다가 강화는 1강이 더해질 때마다 강화석의 숫자도 추가되는데,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였다.
‘2강에 2개, 3강에 4개, 4강에 8개...’
이렇게 2배씩 올라가는 것이다.
‘제곱이 아닌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4강 이상 해본 이들이 없는 터라, 그 부분에 대해 확신하기도 어려운 면이 있었지만, 일단 당장의 정보는 그러했다.
강하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선 3강까지는 해야 할 터, 그렇게 계산한다면 7개의 강화석이 필요했고, 그 결과는?
‘어...억...’
1억 4천만원 정도가 깨지는 거였다.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며 순간적으로 숨이 턱 하니 막혔지만, 애써 평정을 유지하는 건, 그의 생활이 더는 자린고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단 점이었다.
단지, 지난 세월 뼛속 깊숙이 뿌리내린 습성인 터라,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널을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생리현상과 같은 반응인 것이다.
그의 경우엔 뜻밖의 환전 시스템이 있어서 이런 계산이라도 두드릴 수 있는 것이지, 일반적인 랭커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계산 자체에서 제외하기 일쑤였다.
강화석 하나면?
‘정화제 하나를 살 수 있으니.’
그 역시 1만 포인트를 필요로 하는 물건이었다. 쓸데없는데 포인트를 낭비할 경우, S급 던전이나 마굴의 고지대를 정복할 수 없는 터라, 대다수의 랭커는 포인트 관리에 매우 철저했다.
C급에서부터 A급 그리고 벽 넘어 랭커가 되기까지, 실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그동안 꾸준히 포인트 작업을 할 경우 상당량이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소비할 수 있는 게 바로 랭커들의 던전 생활이었다.
그 즈음에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확실히 존슨 형님이 대단하긴 해.’
가장 많은 마굴과 고위 던전을 경험한 만큼, 포인트 소모도 어마어마할 것이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그가 꾸준히 업데이트 하는 공략법이나 여러 던전의 생존법 등이,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는 까닭이었다.
데스크의 상위 게시판에 주로 업데이트 되는 공략법들의 경우, 열람에도 포인트가 소모되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조회수가 늘어나는 실정이었다.
‘최초의 1억 조회수 돌파 기록도 지니고 있었지.’
백만 조회수만 찍어도 ‘대’ 기록이라 하건만, 그는 거기서 무려 100배가 넘는 조회수를 올려버린 것이다.
이는 데스크의 기적이라 불리며, 여전히 회자되는 대 사건으로써, 오직 존슨만이 지닌 꿈같은 기록이기도 했다.
C급 이상의 헌터를 헤아려 봤을 때, 그만큼의 조회수가 나오는 건 불가능했다.
‘얼추, 3천만 명 정도는 되려나?’
공략법을 봤던 이들이 재차 열람을 하면서, 조회수를 늘린 것인데, 상위 게시판에 올라온 공략법이다 보니, 매 열람마다 포인트가 나가는 만큼, 보통 2번 이상 열람하지 않는다는 걸 상기해 봤을 때, 여러모로 대단한 기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같은 기록들이 든든한 후원금이 되어 존슨의 뒤를 받쳐주는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3강까지만 하고.’
4강을 계산에서 제외하는 건, 거기부턴 장비가 깨져나가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안전장치라 할 수 있는 물건이 있긴 했다.
보호석!
강화 실패를 하더라도 장비는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물건으로써, 장비의 상태를 0강 상태로 만든다는 약점이 있지만, 일단 장비를 보호한다는 건 확실했다.
가격은?
10만 포인트!
마루의 입장에서 본다면?
‘2억.’
만약 강화가 실패해서 다시 투자해야 한다면?
‘4억 8천.’
다시 3강을 만드는데 거의 5억 가량이 깨지는 것이다.
‘1억 4천만원으로 충분하지. 음음!’
연인을 위한 선물로 억 소리 나는 이벤트라니.
결국 그의 장비로 돌아올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힘겹게 강화석 7개를 구입 했다.
“꺄악~! 감사합니다. 고갱님!”
그 과감한 현질에 루미가 환호성을 터트리며 방방 뛰는 것이 보였다. 괜히 더 배가 아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