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각도기
새로운 가족을 환영하기 위함일까?
“오늘은 소고기 파티다!”
마루는 과감히 투플 한우를 루미에게 맛보여 줬다. 거기에는 스토어의 환전 시스템에 대한 기쁨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꺄악~! 이게 그 소문만 무성한 투플!”
“만세~!”
루미는 감격하고 초롱이는 감탄하며, 이선은 앓았다.
“애가 둘이라니… 끄응…….”
허리가 휜다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열심히 한우를 구웠다. 그러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직접 쌈까지 싸서 먹여 줬다.
“아앙~!”
“지랄한다.”
이젠 제법 가까워진 탓인지, 거침없는 언사를 나누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물론,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받아먹는 모양새란, 마루가 내심 실소를 터트리며 열심히 고기를 뒤집었다.
그렇게 고기를 먹던 와중에, 슬쩍 질문을 던졌다.
“요즘 주변이 좀 소란스러운 것 같던데, 어때?”
그 말에 이선이 초롱이에게 쌈을 싸 주며 말했다.
“뻔하지. 드글드글한 게, 아무래도 존슨 그 인간 빠진 게 들킨 것 같다.”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긴 취했지만, 결국 존슨의 부재가 발각된 모양인 듯, 마루의 거처 주변으로 하나둘 감시망이 늘어가고 있었다.
특히, 존슨이 아닌 새로운 초월자가 그의 거처에 있다는 부분에서, 그게 과연 누구냐는 의문이 이어지며, 확인을 위한 눈길까지 더해지는 듯싶었다.
‘곧 광호에서 눈치 채고 움직이려나.’
반반이라고 여겼다.
이선은 여전히 태호 그룹 방계들에겐, 희망의 조각으로 기억되기 때문이었다.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제법 되는 데다가, 미국이라는 거대 강국을 뒷배로 두고 있는 탓에, 직접적으로 그를 저격하려 들긴 어렵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신하기 어려운 건?
‘강만기!’
광호 길드의 수장이라면, 어떤 미친 짓거리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과거에도 사건을 만들어서 그를 해외로 쫓아낸 것이 아니던가.
-선택해. 그년인지 길드인지!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오는 질문이었다. 거기서 그는 그녀의 안전을 골랐다.
‘그냥 남아서 부딪쳤더라면 어땠을까?’
가끔씩 드는 의문이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으리라. 랭커로써 탄탄한 입지를 다진 지금과 달리, 당시의 그는 결국 태호의 사냥개일 뿐이었다.
그 위태로운 위치 속에서도,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가며 그녀와의 미래를 그렸다.
혜성과 태호라는 경쟁 관계 속에서도, 최대한 마찰 없이 그들의 인연을 허락받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쓰고 있던 찰나, 강만기의 비수가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그가 계획하던 건 상당히 파격적인 거였다.
혜성과 태호라는 경쟁 관계를 뒤로한 채, 그들 사이의 접점을 만들어서 연합체를 구성하자는 거였는데, 이를 위해서 적잖은 인맥을 모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가장 큰 도움을 주기로 했던 게 삼족오의 길드장이었다.
아직 규모는 작았지만 내실은 알아줬고, 따로 뒷배도 없는 길드인 만큼, 그들의 후원은 든든한 버팀목이 될 거라 자신했고, 계획은 분명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찰나, 강만기가 사단을 낸 것이다.
‘혜성의 간부급을 습격했었지.’
그만한 사건을 혼자 일으키진 않았을 터, 짐작건대 그의 모친 측에서도 힘을 보탰으리라 여겼다.
이선을 아들의 걸림돌로 봤던 만큼, 그 계획에 한 팔 거드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애써 정리해 놨던 분위기가 엉망으로 헝클어져 버리는데, 거기서 이선과 이선희의 관계까지 수면 위로 부상시키려 했다.
사실, 알 만한 이들은 전부 아는 이야기였지만, 대외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인지라, 적당히 쉬쉬하며 넘어갈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공표하겠다고 한 것이다.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던 와중에 둘의 관계가 거론된다면?
양측 다 무사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약자라 할 수 있는 이선희가 더 위험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선희 주변에 사람까지 붙여 놨다는 강만기의 이야기로 인해, 그가 느꼈던 좌절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방심하진 않았다.
단지, 그가 이선희에게 따로 붙여 놨던 이들 중, 몇몇이 강만기에게 돌아선 것일 뿐이었다.
-어차피 놈들도 태호의 핏줄이야.
그 무렵 강만기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배신자들의 선택은 분명 잘못됐지만, 그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그만큼 크게 절망했을 뿐이다.
강만기의 말처럼 태호와 깊게 연결되어 있던 만큼,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약점 앞에서 그들은 너무도 나약했다.
그 와중에 이선이 자유로울 수 있던 건?
-고아 따윌 거둬서 먹여 주고 키워 줬더니, 감히 주인과 겸상을 하려 들어?
방계의 핏줄은 맞지만, 그는 온전한 가족이 없었다. 단지 태호에서 운영하던 시설의 사냥개였을 뿐이다.
오직 태호의 핏줄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는 특징 때문에, 일반적인 고아원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이 제공되긴 했다.
비슷한 시설이 몇몇 더 있었는데, 바르다 길드의 길드장이던 김바른, 그 역시 그런 시설에서 자란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그가 부모님이라 부르던 이들은 결국, 그곳 시설의 ‘원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도 방계 출신이었지.’
특히, 이선의 경우에는 그들이 보여 줬던 온기나 온정이 전부 가식이었단 걸 일찌감치 알아챘고, 그 때문에 그의 성장기 한편에는 항상 어둔 그림자가 끼어 있고는 했다.
어쩌면 그의 불꽃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잡아먹으려 했던 것도, 이 같은 성장 과정에 따른 울분이 촉매제로 작용한 것일지도 몰랐다.
“삼촌, 왜 그래?”
품 안에 있던 초롱이의 부름에, 가까스로 침잠해가던 자신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이것 좀 드세요.”
루미가 옆에서 조막만 한 손으로 쌈을 싸서 주는데, 어찌나 엉망으로 쌌던지 내용물이 옆으로 다 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괜히 실소가 나왔다.
“고맙다!”
그리 말하며 아이가 싸 준 쌈을 입에 담았다. 그러며 결심했다.
‘강만기, 이번에도 개수작을 부린다면…….’
더는 그를 용서치 않을 생각이었다.
“어후~! 눈에 독기가 꽉 찼네.”
마루가 몸서리를 치는 모습에 이선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한테 복수하려고 다짐 중인데, 들켜 버렸네.”
“…투플 한우로는 부족해?”
“매일 이 정도 식단이면, 한번 고려해 보고.”
그 말에 울상이 된 마루의 표정에 재차 실소가 나와 버렸다.
* * *
구정국은 광호 길드 정보팀의 팀장이었다.
그 말인즉, 광호에서 발생하는 대다수의 사건, 사고가 그의 눈과 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였는데, 그 때문에 최근 발생하는 변화도 모를 수가 없었다.
‘기어이 저질렀군.’
그는 강만기의 행보를 꾸준히 체크 중이었는데, 감히 길드장의 뒤를 캘 수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우습게도 그에게는 그게 가능했다.
애초부터 구정국의 충성심은 광호가 아닌, 그 모태 그룹인 태호에 있기 때문이었다.
‘쯧! 내 반응이 밋밋하다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다니.’
강만기가 이선을 치기 위해서 이리저리 손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고, 이는 광호와 태호에 큰 위협으로 다가올 확률이 높기에, 따로 그룹 본사에 언질을 넣을 필요가 있었다.
‘이번 건, 회장님께 직접 보고를 드려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길드를 나선 뒤, 그룹 방면으로 차량을 몰고 움직였다.
그가 막 길드의 영역을 벗어났을 즈음, 문득 거대한 트레일러 차량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그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설마…….’
불길한 예감에 급히 가속하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어느새 새로운 화물차들이 등장하며, 그의 방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특수 제작된 차량들인 듯,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말도 안 되는 가속을 선보이더니, 이리저리 그의 차량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젠장!’
핸드폰을 들어 도움을 요청하려는데, 어찌된 일인지 통신이 먹통이었다.
‘단단히 준비했군.’
잘근거리며 입술을 씹는 한편, 상황 타개를 위한 방법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데, 먹통이던 핸드폰이 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우우우웅…….
느낌이 왔다.
이 불청객들의 주인이 보내는 연락일 터, 동공 가득 독기를 띄운 그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전율해야만 했다.
-아버님께 가는 거냐?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까닭이었다.
‘길드장!’
핸드폰 너머, 강만기가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정말 길드를 위한 선택이냐? 아니면 이선을 위한 거냐?
순간적으로 숨이 턱 하니 막혀 버렸다.
이선!
빌어먹게도 그리운 이름이었다.
그의 영웅이었다.
같은 태호 고아원 출신으로서, 평생을 그의 뒷모습만 보며 자라왔다. 하지만 구정국은 그 같은 재능이 없었고, 그처럼 정의롭기 어려웠으며, 남다른 탐욕까지 지니고 있었다.
과거, 이선을 배신했던 무리에는 그 역시 끼어 있었다. 덕분에 남다른 부와 권력을 얻어 낼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멍울로 점철된 지저분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순간적으로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난 회장님을 위해서 움직이는 걸까?’
답하지 못했고, 강만기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포위 중이던 트레일러가 일제히 열렸다.
푸쉬이익…….
시꺼먼 어둠이 그를 삼켰다.
* * *
성녀 레아는 이야기했다.
-난 네가 바깥세상을 좀 더 즐겼으면 좋겠다.
레베카는 그 말에 결국 혜성의 면접장에 나갔고,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제고 마루가 예상했던 것처럼, 제 동생이 응달을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형제자매가 어디 있겠는가.
성녀 레아 역시 레베카가 밝은 세상으로 나오기를 원했고, 마루의 제안이 그 좋은 촉매제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사실, 면접의 스타트는 그리 좋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묻겠습니다. 이면과 엮여 있나요?
면접관인 김연희가 그녀의 과거를 유추한 듯,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여 줬던 탓인데, 뜻밖의 반전 포인트가 있었다.
-헤에… 어지간하면 뽑는 게 좋을 걸?
뜻밖의 인물, 이반나가 면접장에 등장하면서 그녀를 지원한 것이다.
갑작스런 난입자의 모습에 직감할 수 있었다.
성녀 레아!
그녀가 이반나를 움직인 것이다.
과거, 레아가 비밀스레 한국에 입국하던 당시, 이반나가 활개를 치며 시선들을 끌어 줬을 만큼, 그들은 제법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짐작건대 그런 인연을 발휘하며 레베카의 면접에 지원 사격을 한 것이리라.
무례할 수 있는 난입이었지만, 김연희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랭커라는 위치 덕분인지, 그녀의 등장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이후 김연희의 잔소리 폭격이 이어졌지만, 그 부분은 레베카로써는 알 길이 없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면접 당시의 분위기로 짐작건대, 혜성 특수 1팀에 뽑힐 확률은 매우 높아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번 사건이 그녀가 마루의 가드로서 활약할 수 있는 마지막 임무일지도 몰랐다.
‘광호, 키홀, 베이리, 아크소울…….’
마루의 거처 주변으로 겹겹이 쌓여 가는 감시망을 역으로 감시하며, 그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세심히 분류하고, 한편으로는 이들의 목적이나 계획 등을 살펴 나갔다.
오랜 경력과 노하우 덕분인지 혼자서 이 정도 멀티 플레이를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뽑아낸 정보들로 마루와 의견을 나눴다.
“규모가 커지기 전에 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녀의 이야기에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기왕이면 판을 더 키워 볼 생각이야.”
“…어떤 식으로요?”
“다시는 이 부근에 얼씬도 못 할 정도로.”
언뜻 허언처럼 여겨졌지만, 레베카는 기대감이 부푸는 걸 느꼈다. 그간 마루가 보여 준 말도 안 되는 능력들을 아는 까닭이었다.
이제는 그녀도 알고 있다.
‘멀티 능력자!’
성녀의 선택을 받은 존재, 그 특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필요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에 마루가 웃으며 말했다.
“최근에 쓸 만한 각도기를 얻어서, 설계도 한번 제대로 구상해 보려고. 흐흐흐흐…….”
왠지 모를 음흉한 웃음이었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고 하면 이상할까?
손바닥까지 비비는 모습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