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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쎄~호!

#22. 쎄~호!

전리품을 챙긴 마루는 이내 뒷산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죽은 듯 누워 있는 이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형씨, 이런 데서 자다간 입 돌아가.”

남다른 감각으로 이선의 심장 박동을 체크한 덕분인지, 걱정스러운 와중에도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부렸다.

이선이 창백한 안색으로 눈만 떠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이렇게 늦었냐?”

“어우, 피 빠진 거 봐. 몸보신하게 고기값 좀 구해 왔지.”

마루는 그리 말하며 제 손에 채워진 묵주 반지를 빼서 이선의 손가락에 끼워 줬다. 이를 본 이선이 물었다.

“프로포즈냐?”

“우웩!”

오바이트 액션을 취한 뒤, 마루가 말했다.

“헛소리 말고, 한동안 차고 다녀.”

이선은 반지를 찬 손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시원한 감각이 전신에 가득 묘한 활력을 불어넣는 걸 느꼈다.

“…아티팩트냐?”

“소문처럼 어마어마한 건 아니야.”

사실, 아티팩트라기보단 아이템으로 분류해야 하지만, 굳이 이를 밝히지는 않았다.

이는 언젠가 성녀 레아가 만들어 준 것으로, 마루의 말과 달리 착용만으로도 컨디션을 1점이나 올려 주는 특별한 물건이었다.

이선도 이를 느끼는 중이었다.

“귀한 거니까 잘 챙겨. 대여료도 받을 거야.”

그리 말한 마루가 이선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고, 그렇게 둘은 힘겨운 하루를 끝마치며 귀갓길에 올랐다.

* * *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강만기가 발끈하며 입을 열었다.

“너… 이… 그게… 후욱! 무슨 소리죠?”

막말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은 듯, 힘겹게 존대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이에 발록이 실소하며 답했다.

“계약서는 써니 한 명을 치는 건데, 랭커가 한 명 더 있더라고.”

“…설마?”

강만기의 머릿속으로 한 여인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상황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로, 어때?”

“이… 이이… 지금 이 상황이 누구 때문인데?”

이에 발록이 어깨를 으쓱였고, 그게 강만기의 신경을 건드렸다.

“빌어먹을! 당신이 일정을 멋대로 조정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 아니야.”

마루와의 비밀 거래로 인해, 발록은 일정을 콕 찍어서 정해 줬고, 그 빠듯한 일정에 놀란 강만기는 할 수 없이 자신의 비밀 병력을 움직여야만 했다.

겨우 강용호의 방해가 풀린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판을 짜려는데 발록의 돌발 행동이 다시금 그를 조여 버린 것이다.

그렇게 악연 모임의 팀원으로 위장시키며 군데군데 투입하고, 이리저리 무대의 배역들을 급하게 늘렸다.

방계들이 움직인 것도 이를 알기 때문이었다.

“쯧… 좋아. 그렇다면 서비스를 좀 더 해서, 이놈들을 싹 지워 주지. 어때?”

그 갑작스러운 발언에 포위망이 술렁이는 가운데, 돌연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발록께선 거래를 멈춰 주시죠.”

방계의 무리들을 헤치며 웬 청년이 나서는 게 보였다. 이를 본 강만기의 동공이 부릅떠졌다.

“너… 넌….”

청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까지 나설 생각이 없었는데, 상황이 이리됐으니 어쩔 수 없죠.”

그리 말한 청년이 강만기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처음 뵙습니다. 형님!”

“으득… 어디 감히 사생아 따위가!”

이에 청년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자학 개그입니까? 저나 형님이나 다를 바 없는 거로 아는데요. 아! 외가의 힘이 빵빵한 게 다르긴 하군요.”

“죽여 버린다!”

외침과 달리 달려들지는 못했다. 방계들의 포위망은 그만큼 촘촘했고, 쓸데없는 행동으로 발록의 후방 포지션을 내던질 수도 없는 까닭이었다.

“역시, 판단력 하나는 끝내주시네.”

청년이 엄지를 바짝 세우며 말했다.

“기왕이면 계속 그렇게 움츠리고 계시지 그랬습니까. 더 이상 작은 어머님도 안 계셔서, 뒤를 봐줄 분도 없는데, 적당히 분수에 맞게 행동하셨어야죠.”

가만히 그들 형제의 다툼을 듣고 있던 발록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묘한 억양이나 말투 등, 청년의 긁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년이 히쭉히쭉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아! 큰 어머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순간, 분노로 얼룩져 있던 강만기의 눈가에 옅은 두려움이 스쳐 갔다.

강용호의 첫 번째 부인이 언급된 까닭이었다.

그의 모친이자 강용호의 둘째 부인으로 인해 태호 그룹에서 쫓겨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상당한 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단지,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암흑가의 힘이라는 단점으로 인해, 대외적인 활동을 자제하는 거였다.

그 때문에 강용호가 강만기의 모친과 어울린 것이기도 했다. 강만기의 모친은 바깥세상의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청년이 전언을 입에 담았다.

“남은 세월, 쥐 죽은 듯 살라고 하시더군요.”

싸한 한기가 강만기의 등줄기를 두드렸다.

* * *

강용호는 쓰게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놨다. 멀리 피닉스의 전장에서 날아든 보고를 들은 것인데, 실망적인 내용만 가득이었다.

“쯧… 억지를 부렸으면 성공이나 할 것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들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생각지도 못한 발록의 출현으로 인해, 이선의 죽음을 대비한 이런저런 조치들을 준비해 놨었는데, 솔직히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의 계획이 실패한 게, 전체적인 구도상으로는 베스트였다.

하지만 아비 된 입장에선, 귀여워하던 집안 막둥이의 커다란 실패가 안타깝고 쓰린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일까?

치익!

여든이 넘는 시점부턴 끊어 버렸던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후우우우….”

오랜만에 방 안 가득 자욱한 연기가 채워졌다.

* * *

관전 중이던 여러 랭커들은 무대가 막을 내리는 걸 확인했다.

시체 처리팀!

그들이 출동했다는 게 증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현장을 살피는 건, 오늘 마루가 보여 줬던 놀라운 ‘물품’들 때문이었다.

트랩!

관전자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며, 일찌감치 관람석에서 내려와 현장을 돌고 있었는데, 그렇게 무대를 직접 보고 만지고 살피면서, 어떤 식으로 함정이 설치되고 발동됐는지,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후우… 이건 존슨이 가끔씩 보여 주던 그거 같지?”

“마석 결계술?”

“어. 그 작자는 그런 기술을 어디서 배워 와선.”

“확실히 존슨과 보통 관계는 아닌 모양이네. 그 인간이 밑장까지 빼서 보여 주다니.”

몇몇 눈에 익은 기술도 있었고, 생소한 재주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연신 감탄을 터트려야만 했다.

“허… 뭐지? 마석 결계술은 아닌 것 같은데.”

“존슨이 가르친 건가? 아니면 독자적인 기술?”

“트랩 솜씨가 보통이 아닌 거로 봐선 오리지널일지도 모르지.”

“킁킁, 언뜻 몬스터 체취가 나는 게, 마석 말고 다른 종류로 특수 현상을 끌어낸 건가?”

“휘유~! 감탄밖에 안 나온다. 슬슬 길드에 설치된 트랩도 새로 갈아야 하는데, 이 친구한테 부탁하고 싶을 정도네.”

산전수전 다 겪은 랭커들이다 보니, 그들도 트랩에 대한 지식이 제법 있었지만, 수박 겉핥기식인 경향이 컸다.

그 때문에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건 얼마 없었지만, 그래도 퀄리티나 수준 등은 감지할 순 있었고, 덕분에 마루에 대한 ‘전문가’적인 이미지가 한층 굳건해질 수 있었다.

딱, 마루가 원하던 분위기며 흐름이었다.

* * *

활로 모색이 필요한 상황, 입술을 짓씹던 강만기가 발록을 향해 외쳤다.

“거래에 응하죠.”

그 순간 청년이 손을 뻗어 막았다.

“거기까지! 절대, 안 됩니다. 현 시간부로 형님의 모든 재산은 저희 ‘적호’ 길드에서 관리합니다.”

“적호?”

강만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불길한 예감이 든 까닭인데, 청년이 특유의 얄미운 미소를 걸며 말했다.

“아버님의 전언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시겠답니다. 광호의 역사는 오늘로 끝이고, 지금부터는 적호의 깃발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으득… 감히!”

기어이 폭발한 듯, 강만기의 기세가 사납게 터져 나오는 가운데, 청년이 손을 뻗어 방계의 무리들을 물리며 말했다.

“그래도 광호의 마지막 주인으로서 예우는 해 드리죠. 들어오십시오. 저 혼자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에 강만기가 발끈하면서도, 슬쩍 발록에게로 시선을 보내는데, 이에 청년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발록과 하신 계약과 보상도 전부 저희 적호에서 처리할 예정이니, 부디 집안싸움에서 물러나 주시죠.”

이에 어깨를 으쓱이며 한 걸음 물러나는데, 제대로 발을 빼려는 듯, 악마의 갑주까지 거둬들이고 있었다. 완전히 방관자로 돌아서겠단 신호였다.

강만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가운데, 청년이 뜻밖의 딜을 해 왔다.

“만약, 저를 이긴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얌전히 물러날 뿐만 아니라, 회장님께 말씀드려 선처도 부탁드리죠.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네깟 놈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고?”

“후… 저같이 어린놈한테 길드장의 자리를 맡기는 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강만기가 새삼스러운 얼굴로 청년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실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이미 접수하고 있었다.

‘아직 20대인 놈을 길드장으로 올린다고?’

후반도 아닌 중반으로 알고 있었다.

문득, 그의 머릿속으로 악몽과도 같은 얼굴 하나가 스쳐 갔다.

이선!

조금은 뜬금없지만, 눈앞의 청년에게서 이선의 그림자를 엿본 것인데, 거기서 묘한 느낌이 왔다.

‘천재구나!’

눈앞의 청년이 피닉스에 버금가는 재능의 소유자란 예감이 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강용호가 저 같은 사생아를 전면에 띄울 이유가 없다 여겼다.

으득!

그 때문일까?

강만기는 결국 걸음을 내디뎠고, 그렇게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광호와 적호가 격돌했다.

* * *

[광호 길드, 새로운 깃발을 달다!]

[미친 호랑이, 광기를 바로잡다?]

[붉은 호랑이의 포효!]

[젊은 신성의 출현?]

[강호구 그는 누구인가?]

여러 매스컴과 포털 사이트 등이 한 가지 기삿거리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길드장을 바꾼다고?

―이름도 바꿈.

―강만기는 어떻게 됨?

―건너건너 듣기로는 벽 넘으려고 폐관 들어갔다던데.

―올~! 그럼 2번째 초인?

―듣기론 삼족오 길드장도 폐관 중이라더라.

―이거, 단숨에 랭커 3명 보유하는 건가?

적당히 포장된 소문을 흘린 덕분인지, 강만기의 은거에 대한 소란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의문을 품는 이들이 없진 않았다.

―폐관이야 그렇다 쳐도, 아예 길드장을 바꾸고 깃발까지 새로 작업하는 건 뭔데?

하지만 이를 화제로 끌어 올리긴 힘들었다.

―광호나 적호나 거기서 거기지.

―솔직히 광호는 어감이 좀 껄끄러웠잖아. 이참에 적호로 깔끔히 개편한 듯.

―적호 입에 착착 붙네.

태호 그룹 댓글 부대의 즉각적인 대처 작업이 이어진 까닭이었다.

적당히 화제 전환도 이끌었다.

―그런데 새 길드장 이름 어때?

―왜 하필 호구임?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호구였음. 크크크크!

―건너건너 들었는데, 철학관에서 지은 거라더라.

―What? 그런데 저따위로 지었다고?

―초년 운이 엉망이라, 오히려 위태로운 이름을 지어야, 위기를 피할 수 있다나? 그래서 저렇게 지어 줬다던데.

친인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내용까지 살살 풀어 가며, 적호 길드의 새로운 주인에 대한 화제 몰이를 하는데, 그 내용이 조금쯤 우스워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친근한 이미지를 어필하는 건가?’

이선 역시 한때는 태호 그룹의 일원이었기에, 일련의 흐름 속에서 저들의 의도를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러며 숨겨진 뒷이야기를 떠올렸다.

‘강만기를 무릎 꿇렸단 말이지.’

기사 한편으로, 조금은 어수룩하고 또 한편으론 순박해 보이는 청년의 사진을 눈에 담았다.

강호구!

바로 이번 화젯거리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이었는데, 다른 무엇보다 놀라운 건, 바로 그의 나이였다.

‘스물다섯….’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역시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A급 무대를 밟을 수 있었건만, 이 젊은 청년은 무려 20대 중반에 본선 무대에 오른 것이다.

기사 곳곳에 세계적인 재능이라며, 이슈를 만드는 게 보였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노력도 남달랐겠지.’

강호구의 배경을 아는 만큼, 그가 얼마나 힘든 성장기를 거쳤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직계의 혈통을 담은 사생아이기에, 오히려 그들 같은 방계보다 더 힘든 시간을 거쳤으리라.

안타까운 마음 한편으론, 태호의 업계 기반이 그만큼 탄탄해질 거란 생각이 섞여 들며, 이래저래 그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인지 얼굴 가득 그늘이 내려앉는데, 이를 본 루미가 걱정스레 물어 왔다.

“삼촌 많이 아파요?”

만화에 집중하던 초롱이도 깜짝 놀라 다가왔다.

“아프지 마!”

그 모습에 이선이 장난기가 발동한 듯, 앓는 소리를 내며 슬쩍 액션을 취했다.

“으으….”

이에 놀란 루미가 초롱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쎄 하면, 넌 호 하는 거야.”

“아라쪄!”

그렇게 아이들의 간호가 시작됐다.

“쎄~!”

“호~!”

“쎄!”

“호!”

뜻밖의 포텐이 터져 버렸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마루가 폭소를 터트리고, 연쇄 작용을 하듯 이선까지 폭소를 터트리며, 한바탕 난리가 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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