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붉은 새!
#9. 붉은 새!
충격적인 소식에 모두의 말문이 막혀 버린 가운데,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이반나였다.
“존슨이 살아 있다고?”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어렵사리 물었다. 프링쿨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에 토비가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정확한 건 아닙니다. 단지….”
“단지 뭐?”
이반나의 재촉에 토비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분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때문에 토비는 프링쿨스에게 물어야만 했다.
“전에 왔을 때, 뭔가 느껴지신 게 없습니까?”
그즈음 벽을 넘어서고 있었던 터라, 프링쿨스와 일부 팀원만이 존슨의 무덤을 확인하고 돌아갔었다. 때문에 그와 팀원들의 대답을 들은 뒤, 비교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프링쿨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지난 기억을 되새기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아니, 그분의 기운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어.”
당시 동행했던 팀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불기둥의 열기 말고, 따로 느껴진 건 없었습니다.”
“존슨님의 기운이라면, 분명히 알아챘을걸요.”
“벌써 10년을 넘게 봐 온 분입니다. 그분 기세를 몰라보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불길 말고 특별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요.”
고개를 끄덕인 토비가 입을 열었다.
“저는 그분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너무 희미해서 확신하긴 어렵지만, 왠지 존슨 님의 것이란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네요.”
그 혼자서는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기에, 결국 일행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딱 거기까지가 마족 놈들의 경계선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더 파고들면 들킬 것 같았거든요.”
그런 이유로 팀원들의 의견을 묻고자 한 것인데, 이에 프링쿨스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너는 나보다 오랜 시간 그분을 봐 왔지.”
프링쿨스가 합류하기 이전부터, 이미 토비는 존슨의 뒤를 따르던 인재였다. 그 무렵에는 이면이 아닌 바깥에서 활동했었는데, 이면에 발을 딛게 된 건 프링쿨스 팀으로 합류한 이후였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이반나 다음으로 오랜 세월 존슨을 보고 지낸 사이로서, 함께한 시간만 놓고 본다면, 실질적으로 1순위라 할 수 있을 터였다.
“네가 그분의 기운을 읽었다면, 착각이 아닐 거야. 그분에 대해선 특히 더 민감한 너니까.”
그렇게 결론은 나왔다.
“들어간다.”
만약 존슨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구해 내는 거다!”
프링쿨스의 선택과 함께 일행들의 기세가 돌변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마치 사생결단의 의지를 갑옷처럼 두른 채, 필사의 각오를 앞세우며 마굴의 심처를 향해 나아갔다.
* * *
긴 꿈을 꿨다.
철없이 까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며 세상의 무게를 알아 가던 시절까지.
‘스승님….’
그 앞에서 짐을 덜어 주며, 모진 풍파를 받아 내 주던 든든한 등판도 떠올릴 수 있었다. 덕분에 어긋날 수도 있던 청춘을 바로잡으며,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
함께했던 시절, 즐거웠던 추억들이 하나둘 그려지며 과거 여행이 이어졌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죽은 건가?’
그래서 스승을 만나러 온 것일까?
아주 잠시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이 모든 것들이 꿈이라는 걸 깨달았고, 오래지 않아 깜짝 놀라야만 했다.
‘살아 있다고?’
어떻게?
‘왜?’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으음… 목숨을 담보로 하는 봉인인데.’
마지막 순간, 살아나긴 어렵다는 결론 아래, 모든 사건의 불씨를 닫아 버리기로 결정을 내렸었다.
그래야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후의 봉인술을 시전한 것이건만,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그가 살아 있다면 모든 게 허사가 되어 버리는 만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여긴, 어디?’
자심이 기이한 공간 속에 부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린 것이리라.
사방 가득 넘실거리는 이 불꽃은 무엇일까?
그 너머로 일렁이는 검은 연기는 또 뭔가?
‘…뭐야?’
의문이 거듭되는 가운데, 문득 환청처럼 들려오는 음성이 하나 있었다.
―살아라… 존슨….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삼촌?’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었다.
존슨, 그가 이리저리 주변을 돌아보며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더는 그 음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히 삼촌의 목소리였어.’
데스워치!
제주도에서 최후를 맞은 그의 얼굴이 새삼 뇌리를 가득 채우는 가운데, 왠지 모르게 지금 이 상황이 그와 관련이 있단 느낌을 받았다.
과거, 데스워치가 시간 조작을 통해서 죽음을 늦췄던 걸 떠올린 것이다. 덕분에 마지막 시간을 대화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는 지금 죽어 가는 과정 중일까?
왠지, 그건 아니라고 여겼다.
‘살아 있어!’
펄떡거리며 날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몸 상태도 매우 좋았다.
간만에 장시간 숙면을 하고 일어난 것 같달까?
단지, 문제라고 한다면?
‘포스가… 허!’
기운 한 점 없이 공허한 내부였다.
삐이이익~!
돌연, 머리 위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저 높은 창공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 모양의 새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건 마치 저 다양한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피닉스를 연상시켰다.
불새와 눈빛이 마주친다고 느낀 순간, 그 정체를 알아 버렸다.
‘신물!’
히말라야에서부터 오랜 시간 함께해 왔던 그 특별한 물건, 그것의 본질이 바로 저것이라며, 그의 감각이 외쳐 대고 있었다.
교차되는 눈빛 속에, 새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전투… 준비를 하라는 건가?’
문득, 잠들기 전 상황이 떠올랐다.
‘얼마나 지난 거지?’
일단 봉인술이 실패했다는 건 확실한 만큼, 이레귤러는 여전히 열려 있을 것이고, 마족들 역시 진을 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대격변은 어떻게 됐지?’
머릿속으로는 다급히 상황 파악에 들어가는 한편, 몸뚱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포스를 채우기 위한 명상에 빠져드는데, 그 순간 깜짝 놀라야만 했다.
화르르륵….
주변의 불길이 그에게로 달라붙는가 싶더니, 내부 깊숙이 뜨거운 열기가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전에 없이 정순한 기운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아아….’
아득한 쾌감이 전신을 가득 채워 나갔다.
* * *
저 어딘가의 휴양지, 수많은 미남미녀들이 아름다운 백사장 아래 다양한 만남들을 개최하고 있을 때,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명이 그들 무리 사이로 슬며시 끼어들었다.
“흘… 아가씨, 위스키 한잔 어때?”
이에 헌팅을 당한 여인이 웃으며 물었다.
“호홋! 지금 저한테 아가씨라고 하신 거예요? 한 20년 만에 듣는 소리네요.”
슬슬 백발이 피어나는 중년의 여인이었는데, 노인이 이에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꽃 같아서, 아가씨 소리가 그냥 나오던데.”
“풉!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네요.”
중년 여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보통 이럴 땐, 자기소개부터 하지 않나요?”
이에 노인이 웃으며 답했다.
“현무암이라고 한다네.”
“혀르무… 아미, 음… 어렵네요.”
“그게 힘들면, 동방의 신사라고 불러 줘도 좋고. 그쪽의 레이디는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
“호홋! 엘리샤라고 해요.”
폭소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노인, 현무암이 웃으며 말했다.
“어때? 위스키? 아니면 칵테일?”
마치 마술사처럼 손을 휘저을 때마다 술이 바뀌는 모양새에, 엘리샤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말솜씨만 좋은 게 아니라, 손재주도 보통이 아니네요.”
“…억겁의 시간 동안 쌓은 재주니까.”
“예?”
“흘… 헛소리니까 신경 쓰지 말게. 그래서 어떤 게 좋나? 신선한 게 좋다면, 동방의 소주와 막걸리도 있다네.”
또 다시 술이 체인지 되는 가운데, 엘리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쩌죠? 제가 딸아이와 함께 와서….”
“보아하니 남자 친구도 같이 온 모양인데, 둘이 놀라고 하고, 우린 우리끼리 어른의 시간을 가져 보는 게 어떤가?”
집요한 현무암의 대시에 엘리샤가 실소를 터트렸다. 언뜻 볼품없어 보이는 노인이건만, 그 눈빛이 너무도 깊고 아득한 탓일까?
묘한 매력이 있다고 여겼다.
그 때문일까?
“잠깐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도 괜찮겠네요.”
현무암이 히쭉 웃으며 길을 열었다.
그러다 문득, 저 먼 어딘가의 하늘을 응시하며 눈을 빛냈다.
“왜 그러세요?”
엘리샤의 물음에 히쭉 웃어 보인 현무암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저 멀리 멋진 새가 날고 있어서.”
“새요?”
“그래. 태양처럼 붉게 빛나는 새.”
이에 바다를 둘러보지만, 그런 특별한 새는 보이질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에게 현무암이 슬쩍 팔짱을 내밀었다.
그 능청스러운 태도에 헛웃음을 터트리면서도, 결국 엘리샤의 팔이 그 사이를 통과했다.
* * *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토비가 신호를 보내 일행들을 멈춰 세웠다.
이반나와 프링쿨스는 초인의 남다른 감각으로, 바로 그 시점부터가 ‘경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길 넘어가면, 마족 놈들에게 들킬 겁니다.”
토비의 말에 프링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들의 포지션을 정해 주는데, 그즈음 마루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도 전방을 맡도록 하죠.”
그 뜬금없는 소리에 모두가 의문을 내비쳤다. 갑작스런 포지션 교체도 말이 안 되건만, 저격수인 그가 탱커의 위치로 넘어온다?
헛소리도 이 정도면 미친 소리가 따로 없다고 여길 때, 이반나가 일행들의 동요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자신 있는 거지?”
이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간 숨겨 왔던 비밀을 털어놨다.
“제퍼드도 정면으론 저를 못 잡습니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는 가운데, 마루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보이는 건 비밀이니까. 직박구리 파일에만 담아 두고 유출하면 안 됩니다.”
“…….”
나름 농담도 던져 봤지만, 시원찮은 반응만 이어졌다. 이에 입맛을 다시며 본론으로 들어가듯 스킬을 발현시켰다.
[사신 변환 ― 현무]
전신 가득 검은빛 아우라가 피어나는 모습에, 일행들이 일제히 경악성을 터트렸다.
“헉! 저게 뭐야?”
“저격수 스킬?”
“아니, 저런 정보는 없었잖아?”
“설마….”
몇몇 눈치 빠른 이들이 뭔가를 알아챈 듯, 동공을 확장시키는 게 보였다.
“으음… 멀티 스킬…?”
재차 경악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루가 말했다.
“저 안쪽은 상황이 어지러울 것 같아서, 그 때 밝혔다가 괜히 호흡 뺏기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미리 알리고 들어가려고요.”
그러며 프링쿨스에게 말했다.
“기존 포지션에 변동을 주고 싶진 않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잘 조율된 팀의 포지션이 헝클어지면 안 되죠. 개별적으로 전방의 최전방에서 가드를 맡을 테니. 개별 바리게이트로 분류하고 세워 주십시오.”
최대한 일행의 피해가 없는 포지션을 잡고자 한 것이다.
너무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무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형님….’
존슨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등을 떠민 것이다. 그는 정말 전력으로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할 생각이었다.
마족!
듣기로는 그 실력이 초인들 중에서도 상위급과 견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몇몇 특수한 개체들은 초인 여럿이서 달려들어도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라는 소리도 들었다.
괜히 대격변의 핵심으로 분류되는 게 아닌 것이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대였다.
분신의 경우엔 능력이 상당 부분 깎여 나간다지만, 그래도 기본 가락은 감출 수 없는 만큼, 랭커급으로 분류해야 할 터였다.
‘그런 놈들이 다섯.’
마루는 자신의 본질을 떠올렸다.
몽크!
최전방을 사수하는 거야말로 그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의 의지를 읽은 것일까?
화르륵….
마치 불길처럼 타오른 그림자 사슬이 변형을 거듭하더니, 그의 양손에 새로운 형태로 달라붙었다.
“억! 저건 또 뭐야?”
팀원들이 놀라는 가운데, 마루는 사슬의 새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건틀릿!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건틀릿 위로 가시처럼 칼날이 피어나는데, 그 정체가 또 놀라웠다.
사신의 낫!
문득, 미국의 돌연변이 만화 맥스맨의 유명 캐릭터가 떠올랐다.
스릉….
그의 의지에 따라 가시가 솟구쳤다 들어가는 모습이, 딱 그 캐릭터와 닮아 있던 것이다.
반전을 위해, 완벽히 건틀릿 속에 자취를 감추게 만들어 놓은 뒤, 여전히 놀라 있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시죠!”
혹여 질문이 쏟아질까, 마루가 먼저 앞장서며 길을 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일행들이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