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탱커!
#10. 탱커!
일행은 랭커만이 느낄 수 있는 ‘마족의 경계’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경계를 넘는 순간 주변의 대기가 요동을 친 까닭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황 자체에도 변화가 일었다.
우워어어어어….
크우으으….
갑자기 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하는 고위종들이 보였는데, 하나같이 레이드 클래스의 괴물들이었다.
기존 존슨의 루트인 고위종들 사이, ‘영역의 경계’를 쫓아 움직일 때는 쉬이 맞닥뜨리기 어려웠던 상황이건만, 갑자기 그 같은 경계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한차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일까?
프링쿨스는 이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마족 놈들이 뒤에서 지휘하고 있을 겁니다.”
첫 돌입 당시에 이를 몰라서 당황하다 크게 치였었지만, 지금은 지난 경험으로 바로 상황을 파악해 낸 것이다.
“레이드 클래스쯤 되면 아무리 마족이라 해도 이리 쉽게 움직일 수 없을 텐데.”
이반나의 이야기에 프링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생각엔 테이밍 계열의 마족이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그리 대답하는 한편, 저 멀리 최전방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단하군요.”
가장 앞장서서 길을 뚫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정마루!’
프링쿨스는 새삼 그의 능력치에 놀라고 말았다.
‘존슨 님이 아끼는 이유가 있었어.’
그의 무덤에 직접 찾아오라고 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물론, 이는 존슨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 뒤, 품고 있는 ‘신물’을 상기하며 8번째 형제인 마루를 언급한 거였지만, 이를 모르다 보니 착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신 변환 ― 현무]
마루는 검은 아우라를 두르며, 달려드는 몬스터를 정면으로 받아 냈다.
쿠우우웅….
묵직한 충격이 온몸을 압박하며 밀려들 때, 능숙하게 전신 근육을 비틀어 움직이며, 밀려드는 힘의 궤적도 함께 비틀어서 흘려보냈다.
크워?
갑작스러운 흐름 변화에 몬스터의 동공이 부릅떠지고, 놈의 신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넘어가는 게 보였다.
마루는 딱 거기까지만 신경 쓰듯, 균형이 무너진 놈을 넘어서 다른 놈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2선의 프링쿨스 팀이 달려들며 비틀대는 몬스터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퍼퍼퍼퍽….
마루는 철저히 탱커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듯, 놈들의 전진을 막고, 균형을 흔든 뒤, 과감히 걸음을 내디디며 새로운 길을 열었다.
“허….”
너무나도 노련한 모습이었고, 이에 프링쿨스는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저격수라고 생각했는데.’
총기 각성은 위장이라는 걸 이 순간 알아 버렸다. 그와 동시에 의문도 이어졌다.
‘각성한 지 1년밖에 안 돼서, 저런 수준이라니.’
마루의 지난 15년 과거가 어떠했는지, 이미 관련 정보를 열람한 지 오래였기에, 더더욱 마루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총기 각성과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완벽하게 탱커 역할을 수행할 줄이야.
“정말, 엄청나네요.”
연달아 나오는 감탄사가 결코 아깝지 않았다.
그가 이럴 정도니, 바로 뒤따르며 보조하는 팀원들은 어떠하겠는가.
‘미쳤네!’
‘허… 완전 A급, 아니 특급 탱커네.’
‘이거, 오히려 우리가 밀릴 정돈데.’
‘퀄리티가 너무 높잖아!’
특히 놀라운 건, 마루의 동선이었다.
지금껏 한 번도 뒷걸음질을 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의 이동 경로는 너무나 깔끔했고, 이는 뒤따르는 이들에겐 남다른 든든함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그는 마냥 전진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으워어어어어!
워낙 많은 고위종과의 충돌로 인해, 간혹 시선이 분산될 때가 있는데, 이는 빈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고, 결국 한번 무너졌던 괴수가 포효하며 다시금 기지개를 켜는 상황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바로 그즈음, 마루의 A/S가 날아든다.
전진을 멈추는 건 아니다.
[사신 변환 ― 청룡]
이번엔 청명한 푸른빛 아우라를 몸에 두르는가 싶더니, 그대로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어지러이 쌍장을 내뻗는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
퍼엉! 퍼퍼퍼펑!
뒤통수를 맞으며 다시금 고꾸라지는 괴수가 보였다. 멀티 스킬 각성자라는 걸 알면서도, 새삼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원거리, 근거리만이 아니라, 중거리까지 전부 커버가 가능하다고?’
‘허… 이거, 사기 아닌가?’
‘오지리네.’
‘미쳤다!’
저격수가 탱커를 하는 것도 놀라운데, 염동 계열의 공격까지 퍼붓고 있던 것이다.
이미 마루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율이 일며 호흡을 뺏길 뻔했다. 사전에 예고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크게 흔들리며 전투의 흐름이 틀어졌을지도 몰랐다.
더더욱 놀라운 건, 그 와중에도 마루의 전진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뒤를 돌아볼 때면?
쿠웅!
마치 철산고를 박듯, 몸뚱이를 욱여넣으며 전진 기어를 밟고, 그대로 장풍의 반동을 이용해서 품 안에서 힘의 궤적을 틀어 내는 기예까지 선보였다.
[필살 ― 약점 검색]
게다가 기회가 될 땐, 급제동과 함께 깊고 묵직한 한 방도 놓치지 않았다.
푸욱!
끄어어어어억….
숨넘어가는 괴성과 함께 허리를 기역 자로 꺾는 몬스터의 모습에서, 약점을 제대로 찔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전진 또 전진을 거듭한 결과,
“후우우우….”
어느새 마루의 앞으로 뻥 뚫린 대로가 펼쳐졌다.
물론, 여전히 수풀이 우거지긴 했지만, 더 이상 그의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가 없는 만큼, 길이 활짝 열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한 호흡 고르는 사이, 등 뒤로 기척들이 모여들었다.
프링쿨스 팀!
그들이 바짝 따라붙은 것인데, 지금 이 순간 팀은 마루의 존재감을 새롭게 각인하고 있었다.
무려 랭커 3인이 있는 최정예의 파티인 만큼,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속도가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완벽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은 마루의 탱킹 능력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만약, 그 없이 이 속도를 맞췄더라면?
좀 더 치열하게, 더욱 힘겹고 위험하게, 겨우겨우 사선을 넘어온 뒤, 한참이나 숨을 헐떡이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괴물이네!
팀원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B급 A형?
웃기는 소리였다.
A급 중에서도 최상이며, 저 다양한 스킬과 그를 활용한 변칙적 전투 스타일까지 고려한다면, 감히 짐작건대 S급의 헌터, 무려 랭커와도 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전율의 중심에서 마루가 입을 열었다.
“오는군요.”
그러며 돌연 자세를 잡는가 싶더니,
쿠우우웅….
강대한 충격파가 그를 중심으로 크게 퍼져 나갔다.
“크흡!”
“이게, 무슨?”
마루의 신호와 동시에, 이미 다른 이들도 이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A급 중에서도 최정예들만 모인 특급 파티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건, 예상을 웃도는 충격파 때문이었다.
일행들은 직감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이거, 설마?’
‘왔구나!’
‘벌써?’
대전 상대의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킥킥킥킥….
키히히히히히….
저 앞으로 악몽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게 보였다.
마족!
대격변의 상징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하나, 둘… 무려 다섯이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불기둥에 닿으려면 한참 남은 상황이다 보니, 좀 더 격전을 치르고 난 뒤에나 마주할 거라 여겼건만, 이게 웬일?
저쪽에서 먼저 마중을 나온 것이다.
훤하게 뚫린 대로는 일행의 진입로가 아닌, 저들이 나오는 레드 카펫이었던 모양이었다.
“으음… 설마, 이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프링쿨스가 신음성을 뱉어 내며 팀원의 포지션을 다시 잡았다. 상황이 바뀐 만큼 거기에 맞는 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나쁘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지만, 생각보다 빠른 조우였고, 그만큼 포스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왜?
‘너무 빨리 등장한 것 같은데?’
프링쿨스와 이반나 그리고 토비의 시선이 교차됐다. 셋 다 랭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행 중 가장 많은 대격변을 경험한 베테랑이기도 한 만큼,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있다!’
일찌감치 일행들의 발목을 붙잡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세 랭커의 시선이 마족들의 어깨 너머, 하늘에 닿을 듯 높이 타오르고 있는 불기둥으로 향했다.
저 장소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단 예감을 받았다.
키에에엑!
그들 시선이 뒤로 넘어가 머무는 순간, 마족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깊은 생각을 하기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일행은 일사분란하게 쪼개지며 마족들의 전력을 나눠 갔다.
랭커 셋이서 각기 한 개체씩, 프링쿨스 팀이 한 개체, 그리고 놀랍게도 마루가 홀로 한 개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는 마루의 제안에 의한 결정이었다.
―혼자서 한 놈, 붙들어 보겠습니다.
승부를 결정짓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시간 벌이는 하면서 팀의 부담을 줄여 주겠다고 한 것이다.
무려 랭커에 비견되는 존재를 홀로 감당한다?
처음에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지만, 탱커로서 길을 뚫는 모습을 통해, 그게 더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됐다.
놀라울 만큼 단단한 탱킹에 든든함을 느꼈고,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지만, 상황의 급전개로 인해서 바로 넘어가 버린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의 눈빛에 더는 의심의 빛은 보이지 않았다.
심처를 꿰뚫던 그 짧은 여정만으로 단단한 믿음과 신뢰가 쌓였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결정을 따랐다.
놈들을 유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랭커 3인의 행동을 따라 하면 됐는데, 마족을 넘어 심처로 향하려는 액션을 취하면, 마치 이를 방해하듯 따라붙는 것이 아닌가.
그 덕분에 3인의 랭커는 더더욱 불기둥 방향으로 의심의 끈을 이어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인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루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놈들에 관한 정보를 되새기며 분석을 거듭하고 있었다.
‘대격변의 상징, 마족이라….’
지난 역사를 되새기며, 그 전투의 포인트를 체크한 결과, 제법 쓸 만한 스킬들을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고, 이를 위해 준비물을 꺼내 들었다.
상당히 뜬금없긴 하지만, PP에서 사용되는 메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제작사 측에서 만들었다는 기념 메달로서, 따로 레베카에게 부탁해서 성녀의 축성 작업까지 마친 물건이었다.
평소에는 별다른 축성이 없는 평범한 메달을 사용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성녀의 축성이 된 녀석으로 꺼내 든 것이다.
[성호]
이마와 양어깨를 찍어 삼각형을 만든 뒤, 인중에 가져다 대는 PP 특유의 성호를 긋자, 메달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성녀의 축성 효과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엄청나네!’
전신 가득 성력이 차오르는 걸 느끼며, 바로 새로운 메달을 하나 더 꺼내선 입에 담았다.
[복음 양식]
그리고 스킬을 발동시켰다.
“나 여기에 신언을 읊노니, 빛이여 내게 깃들라!”
입 안의 메달이 녹아내리고, 성력의 농도가 급격히 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나 더!’
이번에는 메달이 아닌 큼지막한 말뚝 두 개가 나왔는데, 마루는 이를 악물며 과감히 양손에 박아 넣었다.
퍼억, 퍽!
큼지막한 관통상으로 인해 아찔한 통증과 함께 핏물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스킬을 발동시켰다.
“나 고문의 고난을 고행으로 받겠다!”
[삼고(三苦) ― 고고(苦苦)]
그 순간 말뚝이 빛으로 화해 사라지는 가운데, 전신의 성력들이 양손의 관통상 속으로, 마치 소용돌이치듯 빨려들기 시작했다.
몽크의 전용 스킬로서, 고통을 고행으로 삼으며 신앙을 일깨우는 스킬이었다.
키힉?
그를 쫓아오던 마족의 두 눈 가득 의문이 떠올랐다. 갑자기 자신들과는 반대되는, 그야말로 상극이라 할 만한 기운이 마루에게서 뿜어져 나온 까닭이었다.
상당히 농도가 짙었던 탓인지, 표정 한편으로 긴장감마저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루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 갔다.
지난 대격변의 역사 속에서, 특히 포인트가 되었던 부분을 짚어 보라 한다면?
‘성녀의 활약이지.’
작정하고 교황청에서 밀어준 탓일까?
그녀들은 본연의 능력에 비해 상당히 뻥튀기된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랭커라 해도 겨우 말석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격변이 발생할 때면 남다른 활약을 보여 줬던 터라, 감히 그녀들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말을 끼얹을 수 없게 만들고는 했다.
물론, 실상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맞았다.
하지만 성국이 작정하고 키워 낸 성력 탱크인 건 확실했고, 그런 만큼 역대 성녀들의 성력은 언제나 시대 톱클래스라 할 수 있었다.
바로 그 같은 부분이 대격변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마족들은 성력과 상극이지!’
그리고 몽크는 성직자였다.
말인즉,
“너 지금 족 된 거야!”
마루는 그리 말하며 히쭉 웃어 보였고, 그와 반대로 마족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