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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213화 (213/325)

#13. 이유?

#13. 이유?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환각이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변함없이 시야를 채우고 있는 미소를 보며, 이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선희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신호등 너머,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며 그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단숨에 거리를 건너 그녀의 앞에 도착한 그가 물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그러더니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네 왔다.

[이선♥희]

그녀의 기억이 오랜 과거로 올라갔다.

―저하고 선생님하고 이름이 비슷하니까. ‘이선x희’ 이렇게 엮어서 표기하면 종이도 아끼고 공간도 절약하고, 이거 괜찮죠?

―요즘에는 이런 것도 줄이냐?

―개성이죠.

―하….

그와의 추억이 재생되는 가운데, 그가 재차 물어 왔다.

“같이… 붙이러 갈래?”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을 이제는 하러 가자는 소리에, 이선희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새겨졌다.

이에 이선이 뜨끔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 곧 그녀의 입가에 걸린 흐릿한 미소를 확인하고는, 비슷한 표정으로 우는 듯 웃으며 성큼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꼬옥 끌어안았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또다시 그렇게 물었고, 그녀는 조용히 그의 품 안에 얼굴을 묻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연인은 다시 만났다.

* * *

존슨의 표정에 히쭉 웃어 보인 사일론이 이야기했다.

“여긴 마법 대신 과학이라는 게 있다던데, 마석의 영향력은 오히려 마법 세상보다 더 화려하게 퍼져 있더라. 그래서 더 신기하단 말이야.”

“…뭐가?”

“말했잖아. 이미 침공이 이뤄졌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한데, 여전히 이레귤러의 발생률은 낮았고, 마계는 세상 바깥 테두리만 얼쩡거릴 뿐이었다.

“던전부터 시작해서, 마수지대라는 장소를 만들어서 마기를 모아 놓은 것까지, 이곳 세상의 신이 대비를 잘해 놨더라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헌터들의 ‘시스템’이었다.

“엔트라넷? PP? 흐… 재밌어. 아주 재밌단 말이야.”

존슨이 의아해서 바라봤다.

“재밌다고?”

“차원 침공이라는 건, 전 우주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거대한 행사나 축제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거든.”

“으음….”

불쾌한 내용에 신음성이 절로 새 나왔다. 이에 사일론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이 동네 격언을 빌리자면, 원래 강 건너 불구경이 제맛이라며? 그런 거야. 흐흐!”

“후우… 이야기나 계속해 봐.”

“축제라고 한 이유? 침공이 가시화될 정도면 대개 다른 세상의 신들이 하나둘 숟가락을 올리거든.”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야. 타 차원의 신들이 이곳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차원 너머에서 신도를 모집하고, 그렇게 믿음을 수확하는 거지.”

그야말로 신들의 축제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 지구라는 동네에는 그게 없더라고.”

그 답이 PP에 있었다.

“게임에 보면 전직과 신앙이라는 게 있다면서?”

“으음….”

떠오르는 바가 있던지, 존슨이 옅은 신음성을 흘렸다.

“이곳 세상의 신에게 정말 박수를 쳐 주고 싶더라. 그런 식으로 ‘중개’ 구역을 만들어 놓다니. 게다가 엔트라넷이라는 세계의 방벽이 워낙 단단해서, 타 차원이 신들이 멋대로 침입하기도 어려워 보이더라.”

결국 사일론은 박수를 쳤고, 존슨은 새삼 엔트라넷과 PP에 대한 생각을 해야만 했다.

“신앙이 빠져나간다는 건, 이곳 세상의 신력이 약해진다는 의미인데, 그런 식으로 중개 구역을 만들어 놨으니, 이런 부분을 컨트롤할 수 있을 거 아니야.”

나름대로 ‘수수료’도 뗄 거라면서 재차 박수를 쳤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존슨은,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 물었다.

“이곳에 넘어온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어, 그렇지. 그게 왜?”

“…아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건방지게 이 몸을 유괴하려던 인간 놈의 기억을 착취해 줬지.”

확실히 외형만 놓고 본다면 7~8세 아이였기에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사일론이 넘어온 장소는 산타카타리나가 아니던가.

브라질의 범죄율이나 상황 및 수준 등을 생각해 봤을 때, 예쁘장하니 귀티가 나는 아이가 혼자 돌아다니는 건, 유괴당하기 딱 좋은 구도였다.

“쓰레기 같은 놈 하나 죽였다고 불쾌한 건 아니겠지?”

“어. 그런 놈은 나도 모가지를 비틀었을 거다.”

한숨을 푹 내쉰 존슨은 다시금 기존 질문으로 돌아가며 물었다.

“후… 그것보다 마왕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거냐?”

사일론이 잠시 생각하는 듯, 턱을 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존슨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떤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균열의 발생 지점이 상당히 한정되어 있는 것 같던데, 그걸 잘 컨트롤한다면 아주 방법이 없진 않지.”

그러며 사일론은 다른 세계를 침공전을 언급했다.

“마왕군이 매번 승리만 한 건 아니야. 우리도 패배한 경험이 꽤 있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용사가 등장해서 마왕과 단판을 짓는가 하면, 드래곤이라 불리는 반신격의 존재들이 등장해서 마왕군을 쓸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 드래곤은 기대하지 마. 침공이 이뤄지는 경우는 대부분 드래곤이 멸종된 차원만 조지는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이 등장할 경우가 있긴 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또라이 같은 드래곤들이 있어서, 수명이 다했는데도 안 죽고 버로우 탈 때가 있거든.”

묘하게 지구어 패치가 잘된 듯, 귀에 쏙쏙 박히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게 또 어찌나 잘 숨어 있는지, 차원 관찰자의 시선을 요리조리 잘 피해 가요. 그렇게 짱박혀 있다가 침공이 발생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짠 하고 나타나는 거지.”

“드래곤이 그렇게 대단한가?”

“대단하냐고? 큭큭큭큭! 반신이라고 불리는 종족이야. 너희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여기는 드래이크도 드래곤 앞마당에서 키우는 똥개 수준밖에 안 돼.”

마왕이 마신의 아들로 불린다면, 드래곤은 신의 사자라 불리는 존재였다.

사일론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격이 달라. 격이!”

한 차례 붙어 보기도 했다는데, 결과는?

“흐흐… 개 쪽 당했지.”

졌다는 의미였다.

“대공 2인분은 하겠더라.”

확 와닿는 비유였다.

“이런 특수한 경우는 도움이 안 될 테니 제외하면, 결국 세계 수준의 단합력으로 군세를 밀어낸 게 그나마 도움이 되겠네.”

“단합력?”

“그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알지? 이 근방에서 특히 더 유명한 격언이라던데.”

사일론은 그리 말하며 재차 PP를 언급했다.

“여러 신들의 개입으로 신력이 소모가 줄어드는 건, 세계 차원의 방벽이 얇아지는 걸 의미하거든. 그런데 여긴 그 부분에서 낭비가 없어.”

뒤이어 엔트라넷을 입에 담았다.

“이 독특한 시스템으로 헌터들을 연결시켜 놨지. 흐흐….”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궁금한데.”

“나중에 마왕 놈이 엿 먹을 거 생각하니까. 그냥 막 즐겁네. 큭큭큭큭!”

그 순간 사일론의 동공이 붉게 물들었다. 마계에서 도망치던 기억이 떠오른 탓인데, 바로 최근의 일이다 보니 생생한 분노가 두 눈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엔트라넷이라….’

존슨은 새삼 그에 관한 호기심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그 와중에 사일론이 대뜸 검지를 세웠다.

“하지만 결정적인 건 따로 있다.”

“…뭐지?”

“전에 숲에서 봤던 그놈.”

“누구를 말하는 거지?”

“용의 기운을 품고 있던 놈.”

“용?”

“그래. 그놈이 핵심이야. 큭큭큭큭!”

사일론은 그리 말하며 ‘귀엽게’ 웃었다.

* * *

마트와 카트 그리고 장난감 한 바구니의 위력이라고 해야 할까?

“잠깐 PP에 다녀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야 한다.”

“넵!”

“충성! 충성! 충성!”

초롱이와 루미는 싱글벙글 함박웃음을 지은 채, 마루가 틀어 준 만화에 흠뻑 빠져들었다.

따로 간식까지 챙겨 준 뒤, 마루는 VR 기기를 뒤집어썼다.

“로그인!”

꿈과 환상의 세계가 문을 열었다.

* * *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너가 왜 여기서 나와?”

마루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 칼죽을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게요… 임다.

칼죽도 당황했던지 괴상한 다나까체를 사용하며 대답하는데, 이들이 이처럼 놀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퍼펙트 플레이!

현재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공간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 PP의 내부였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엇? 상태가… 회복됐씀다.

칼죽이는 검집까지 장착 중이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벙쪄 있던 것도 잠시였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마루는 눈을 반짝이며 필드로 뛰어갔다.

[뇌신의 외침]

그리고 뇌전 스킬을 발동했다.

파지지지지직….

백록담에서 그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뇌전이 쏟아져 나오며, 필드의 몬스터들을 휩쓰는 것이 보였다.

“그렇지!”

두 주먹을 불끈 쥔 마루는 환호하며 칼죽을 착검했다. 뇌기 충전을 위한 대기 시간이었다.

크워어어어어!

워어어….

이에 몬스터들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일제히 달려들지만, 마루의 손발은 놀고 있지 않았다.

빠바바바바박….

경쾌한 타격성이 어지러이 발생하며,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때려눕히는 가운데, 검집에서 옅은 떨림이 전해져 왔다.

우웅….

충전이 다 됐다는 신호였고, 마루는 다시금 스킬을 발동시켰다.

[뇌신의 외침]

빠지지직!

다시금 뇌전이 뻗어 나오며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그리고 이 같은 패턴을 몇 차례 반복하니, 어느새 필드에는 그 혼자만이 서 있었다.

그즈음, 마루는 실로 흥미로운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몬스터는 사망하면 일정량의 아이템을 놓고 사라지는 게 보통이건만, 기이하게도 그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시체들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일까?

그런 건 아니었다.

칼죽에게 당할 경우 발생하는 특수 현상으로서, 이는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스킬과도 연관이 있었다.

[망자의 노래]

또 다른 스킬이 발동되고, 그와 동시에 시체들이 꾸역꾸역 몸뚱이를 일으키는 게 보였다.

백록담 앞에서 마루를 고생시켰던, 해골 괴수 스킬이었다.

시체들은 몸을 일으키는 와중에 살 거죽이 벗겨지고 근육이 흘러내리더니, 허리를 바짝 세웠을 즈음에는 대부분 뼛조각만 남은 채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오오오오….”

마루의 감탄이 거듭되는 가운데, 그는 핵심이 될 수 있는 스킬까지 발동시켰다.

[죽음의 기사]

그와 동시에 칼죽이의 검신에 칠흑빛 어둠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이내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데스 나이트!

백록담의 지배자가 강림한 것이다.

―오… 오오… 오오오오!

이번에는 칼죽이 역시 환호하며 자신의 새로운 몸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완성도 역시 백록담의 인형에 버금갔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긴 했다.

‘으음… 마력 소모가 엄청나네.’

마루는 MP 게이지가 단번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걸 보며 옅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칼죽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좀 더 레벨을 올려놔야 할 듯싶었다.

현실이라면 이쯤에서 스킬을 해제했겠지만, 이곳은 신비하고 놀라운 물약들이 가득한 PP였고, 지금 그는 칼죽의 스킬을 확인하며, 나름의 숙련도 작업을 하는 중이 아니던가.

“가랏! 반칼죽 백만 볼트!”

―으랴아아아압!

마루의 신호에 맞춰 칼죽이 검을 휘두르며 뇌전을 쏟아 내는 게 보였다.

PP에 접속한 본래 이유도 망각해 버린 채, 이리저리 필드를 돌며 새로운 스킬 숙련도를 올리는데 심취해 갔고, 이는 마력 고갈로 드러누울 때까지 필드를 돌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누워 있길 한참, 문득 마루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그가 턱을 괸 채 생각했다.

‘PP에 칼죽이가 업데이트됐다? PP에?’

마루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봤다.

“…혹시, 사자유희도?”

묘한 예감이 왔다.

‘칼죽이는 되고 사자유희는 안 된다고?’

그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사자유희가 안 될 이유가 뭐야?’

그리고 안 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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