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14화 (214/325)

#14. 계약.

#14. 계약.

칼죽이는 되고 사자유희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

그에 관한 고찰을 길게 이어 가진 못했다.

“삼촌, 언제까지 PP에만 있을 거야?”

뿅 하고 나타난 루미가 그에게 투덜거린 까닭이었다. 초롱이와 마찬가지로 루미 역시 ‘삼촌’이란 호칭이 익숙해진 만큼, 아이의 투정에 금세 뜨끔해져 버렸다.

입술을 삐죽 내미는 모습에 마루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배고파요. 점심시간이에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마루는 곧 나간다고 이야기하며 루미를 내보낸 뒤, 빠르게 오늘 PP에 접속했던 목적을 확인하러 움직였다.

음유 시인!

PP에 존재하는 버퍼 계열의 직업군이 오늘의 목적이었다.

이유인즉,

‘만파식적도 결국 연주고 음악이니까.’

음유 시인들의 ‘스킬’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속셈이었다. 학원을 알아보려다가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이곳을 찾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띠링!

[스킬 ‘라임마임’을 배우셨습니다.]

[스킬 ‘띵가띵가’를 배우셨습니다.]

[스킬 ‘음취박취’를…….]

연주와 관련한 스킬들을 잔뜩 등록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라임에 맞춰 몸짓이 따라가는 스킬부터 해서, 그에 따라 손가락에 운율을 새겨 넣는 스킬에다가, 음악에 취하고 박자에 취하는 스킬 등등, 음유 시인 계열의 기본기들은 싹 쓸어 담았다.

그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만파식적과 비슷한 종류의 피리까지 구입했다.

거기서 또다시 고민에 들어갔다.

“칼죽이, 사자유희… 만파식적….”

오늘의 기묘한 경험으로 인해, 사자유희만이 아니라 만파식적까지 이곳으로 가지고 올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심하게 된 것이다.

그 시간이 너무 길어져 버렸던 탓일까?

“삼촌!”

또다시 루미가 넘어왔고, 화들짝 놀라며 튀어 나가야 했다.

“로그아웃!”

그리고 이내, 식탁 앞에서 수저와 젓가락을 공격적으로 들고 있는 초롱이와 루미를 마주할 수 있었다.

“밥! 밥! 밥! 밥!”

“밥! 밥! 밥! 밥!”

규칙적인 외침의 연계가 상당한 압박감이 있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새 점심을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미… 미안!”

마루는 다급히 점심을 준비했고, 아이들은 공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와구와구!

우걱우걱!

비싼 고기를 잔뜩 구운 덕분인지, 아이들의 표정은 금세 풀려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안도하는 마루의 머릿속으로, 또다시 사자유희와 만파식적에 관한 생각이 차올랐다.

‘어떤 차이가 있지? 뭐가 칼죽이를 PP 속으로 끌어들인 걸까? PP와 현실의 연결점이 뭘까? 도대체 뭐… 아!’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엔트라넷?’

칼죽의 특이 사항이 떠오른 것이다.

‘계약… 때문인가?’

눈이 번쩍 뜨였다.

* * *

설마설마 싶었다.

“오오….”

마루는 탄성을 내지르며 제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봤다.

―오오!

옆구리에서 칼죽이도 탄성을 내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만파식적!

그 신비로운 물건이 현재 PP에 구현되어 있던 것이다.

“이게 정말로 되다니.”

마루의 감탄에 칼죽이가 호응하며 말했다.

―저… 제 허리에 한 번만 박아 주십시다!

말투가 살짝 꼬여 있었는데, 내용은 더 꼬인 느낌이었다.

―한 번, 한 번만… 츄릅!

마루가 떨떠름한 얼굴로 허리춤을 내려다봤다. 짐작건대 데스 나이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발악이리라. 하지만 왠지 묘하게 귀에 해로운 외침이었다.

“퉤잇! 어디서 개가 짖나.”

마루는 그리 말하며 제 발 아래로 시선을 보냈다.

꿀렁….

사자유희가 그림자 속에서 일렁이며 그 존재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엔트라넷 계약!

그걸 통해서 이뤄 낸 쾌거였다.

어떻게 해야 엔트라넷 계약을 맺을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잡고 엔트라넷 계약서 오픈하시지 말임다.]

다나까체에 완전히 적응한 칼죽이의 조언으로 그냥 만파식적을 잡고 엔트라넷 계약서를 신청한 건데, 그 순간 정말로 만파식적과 정식 계약이 이뤄졌다.

사자유희도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했다.

그냥 발아래 그림자에 손을 대고, 사자유희와 연결한 채 엔트라넷 계약서를 요청한 것이다.

그렇게 두 신물 모두와 계약을 맺고, 부푼 기대감은 안은 채 PP에 들어오니, 아니나 다를까.

만파식적과 사자유희가 구현되어 있던 것이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아아아호오오오~!”

거의 피어 수준의 외침에 한동안 필드가 들썩이며 몬스터들이 쫓아왔지만, 칼죽이를 움직여 간단히 정리해 줬다.

―으르르릉… 왈왈!

어디서 개가 짖냐고 했더니, 개 소리를 내며 몬스터들을 썰어 버리는 칼죽이의 모습에, 잠시 헛웃음이 나오긴 했다.

그 소소한 개그 요소를 제외하고 봤을 때, 데스 나이트가 죽음의 군세를 이끌고 필드를 쓸어버리는 광경이란, 그야말로 전율적이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최상위 필드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필드를 압도할 수 있다는 건, 등허리를 짜릿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일인 군단!

마루는 자신이 그 같은 괴력을 손에 쥐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해골 부대 덕분에 조용해진 필드 위에서, 그는 조용히 각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만파식적 ― 전설]

[사자유희 ― 전설]

[반칼죽 ― 전설]

셋 모두 신화의 바로 아래라고 여겨지는 아이템들이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하나만 들고 있어도 캐릭터를 다시 키워도 이상하지 않다는 물건들이 무려 셋이나 손에 들어온 것이다.

거기에 추가로 하나 더,

[오염된 여의주 ― 신화]

현무와 주작의 신물도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둘은 따로 등급이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여의주에 귀속되는 거라 그런가?’

따로 계약도 없이 알아서 PP로 넘어온 물건이지 않던가. 아마도 여의주를 통해 연결되었기 때문이라 여겼다.

‘전설만 셋에 신화가 하나라니.’

짐작하건대 아이템만 놓고 본다면, PP 내에서 마루를 뛰어넘을 만한 존재는 단 한 명도 없을 터였다.

마루는 그간 가장 궁금했던 사자유희에 대해서 특히 더 자세히 살폈다.

[사신의 낫]

이는 그에게 다양한 이능을 선물해 줬던 스킬로서, 사자유희가 이전의 주인 그림리퍼에게서 갈취한 능력이었다.

‘호… 몬스터들을 죽여서 스킬을 생성한다니.’

대격변에서도 느낀 바 있지만, 지니고 있는 이능과 중첩시킬 수도 있던 만큼,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라 할 수 있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긴 했다.

‘제한이 있네.’

대격변이 끝나고 이능이 사라졌던 경험으로 예상했던 바였지만, 몬스터에게서 갈취한 이능은 영원한 게 아니었다.

‘충전과 방전인가.’

시간이 흐르며 축적된 죽음의 기운들이 흩어지고, 자연히 이능도 함께 빠져나가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능력들도 확인했다.

[염라전(閻羅殿)]

이 스킬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저승의 심판장을 소환한다고?’

살펴본바, 일종의 ‘영역 선포’와 같은 계열로 여겨졌다. 아마로 이 위에서는 마루에게 자체적인 버프가 걸리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이와 연계되는 또 다른 스킬도 확인했다.

[살생부(殺生簿)]

‘염라전에 들어온 이들을 심판하는 서적?’

묵빛 책자가 손위에 들어오는데, 그곳에 핏물을 찍어 상대의 이름을 적으면 특수 효과가 발동되는 스킬이었다.

스킬의 종류는 ‘디버프’로서 염라전 내부의 적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상대와의 격차가 클 경우엔… 목숨까지 거둬 갈 수 있다고?’

거의 데스노트에 가까웠다.

이 외에도 몇몇 능력들이 더 있었지만, 일단 굵직한 것만 놓고 앞의 3종류였다.

‘변형 능력에다가 사기 흡수, 방출, 갈취… 휘유~!’

마루는 사자유희의 다른 스킬들까지 쭈욱 훑으며 감탄을 거듭해야만 했다.

“저승왕의 신물이라더니. 대단하네!”

―왈왈! 저도 대단하지 말임다.

어느새 필드를 정리하고 온 칼죽이가 끼어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마루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저도 대단함돠!

마루는 귀화를 번뜩이는 죽음의 기사를 무시한 채, 각 장비들의 기본적인 사용법 등을 차분히 정리했다.

‘사자유희는 기본 방어구 세트를 대신하면 되겠고, 반칼죽은 무기 겸 소환수로 세팅하면 되겠네. 그리고 만파식적은 버프 및 지원용으로… OK!’

그리고 이 모든 장비를 완벽히 숙달하게 됐을 때, 현실에서도 일인 군단의 위세를 떨칠 수 있으리라.

‘…그 전에 스탯 좀 채워야겠네. HP하고 MP 공유 스킬도 좀 더 배워 놔야겠고.’

스킬도 스킬이지만 어마어마한 마력 소모량을 생각해 봤을 때, 결국 200레벨과 3차 전직이 필수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데스 나이트와 죽음의 군세가 필드를 장악하고 있는 게 보였다.

레이드 같은 솔플이 가능한 전력이었다.

폭렙이 가능한 것이다.

그의 두 눈 가득 안광이 번뜩였다.

* * *

존슨은 사일론에게 물었다.

“내가 널 믿어도 될까?”

이에 사일론은 답했다.

“말했잖아. 거래라고.”

정보를 주고 그에 합당한 값을 치르는 것이다.

“내가 회복될 때까지 보호하는 것뿐이야. 별거 아니잖아. 마계의 정보에 겨우 이 정도 값이면 거저 아닌가?”

그것도 무려 마계 최고위의 대공급 인사가 가져다 나르는 정보였다.

만약, 상대가 마계에서 보낸 스파이나 수작질이라면?

‘그렇다고 해도, 놓치기 어렵군.’

상품이 너무 뛰어났다.

저 정보의 정확성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나, 실버 박사가 안배해 둔 것보다는 많을 건 분명했다.

게다가 사일론의 태도 역시 나쁘지 않았다.

“마왕하고 한판이라니. 이렇게 신나는 일이 또 어딨겠냐고. 큭큭큭큭!”

저 너머 마계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했다.

“마계에서 오직 나만이 반기를 들 수 있었지.”

무려 마신의 자식이라 불리는 마왕이었다.

강자존의 세상 속에서도 마족들은 감히 마왕에게 이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일론은 달랐다.

반인반마!

그의 반쪽 핏줄이 마왕으로 하여금 불경한 생각을 품게 한 것이다. 거기에는 모친의 영향도 일부 있을 터였다.

용사라고 불리던 일행의 전사였다.

나약한 반인반마의 아이가 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

모친에게 배운 각종 전투법 덕분이었다.

짐승들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홀로 형을 취했으며 법을 가꿨다. 칼을 잡았고 날을 벼렸다.

그 위로 스스로가 지닌 짐승의 본능을 덧씌우니, 어느새 반인반마의 자그마한 아이는 야성의 심장까지 취한 채, 하루하루 도약을 거듭했고, 종래에는 대공이라 불리는 마계의 하늘에까지 오른 것이다.

“뭐, 반쪽짜리 핏줄이 나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나만큼 성공한 놈이 없고, 나처럼 살아남은 놈들도 없지.”

그렇기에 마왕을 향해 발톱을 드러낼 수 있는 건, 그가 유일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신의 축복을 둘둘 두르고 있는 마왕이었다.

“일단, 마계에서 마왕하고 붙는 건 미친 짓이야.”

게다가 대공들까지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뭐… 실력이 부족한 것도 있고.”

어깨를 으쓱인 사일론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마왕하고 한판 붙고 싶은 건 진심이니까. 쓸 만한 전력 하나 얻었다고 생각해.”

그러며 존슨의 표정을 사악 훑어보던 그가 재차 웃으며 이야기했다.

“쉬이 믿기 어렵겠지. 그러니 계약을 하자.”

“계약?”

사일론이 손을 내밀었다.

* * *

존슨은 사일론과의 지난 대화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설마, 엔트라넷에 그런 계약 시스템이 있었을 줄이야.’

그 모습을 본 이반나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아니, 그냥… 별거 아니야.”

어깨를 으쓱이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것도 잠시, 그녀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누구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에 존슨의 얼굴 한편에 긴장감이 어렸다.

“보고 놀라면 안 돼.”

“누군데 그래?”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킨 존슨이 저 한편을 향해 외쳤다.

“나와 봐.”

그러자 골목길 모퉁이에서 자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이내 도도도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

7~8세나 되었을까?

웬 깜찍한 아이 하나가 그들에게 바짝 붙더니, 이내 존슨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잡으며 물었다.

“아빠? 이 아줌마가 새엄마야?”

“…….”

“…….”

이반나의 사고가 정지했다.

존슨의 뇌에 오류가 났다.

“…이게… 무슨… 뜻일까?”

어렵사리 정신을 차린 이반나가 힘겹게 질문을 건네 오는데, 그 마디마디 담겨 있는 떨림과 분노에 존슨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오… 오해다. 착각이야!”

존슨이 급히 아이, 사일론에게 외쳤다.

“너도 장난치지 말고. 빨리 진실을 말하라고.”

“우… 우으… 왜 그래, 아빠?”

울먹이는 쪼그만 아이의 모습이란, 이반나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존슨의 멱살을 잡고 털기를 시전했다.

탈탈탈탈….

그 모습에 사일론이 조용히 웃었다.

히쭉!

악마의 미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