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15화 (215/325)

#15. 골골.

#15. 골골.

PP에는 최근 들어서 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요즘 필드 골 때린다며?

―뭐가?

―골골거림.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님.

―뭔 소리냐고?

―뭐긴 뭐야. 언데드가 난리라는 소리지.

―해골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닌다더라.

필드에 대량으로 출몰하고 있는 죽음의 군세가 PP 유저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특수 이벤트라는 말이 있던데.

―그럴 법하네. 필드마다 한 번씩 튀어나오는 게.

―이벤트면 왜 위쪽 필드에서만 나오냐?

―그러니까 ‘특수’ 이벤트지.

―데스 나이트도 있다던데, 그거 잡으면 뭐 나오려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던데, 어디 필드에 나올 줄 알고?

―무슨 황금 고블린이냐?

―그러니까 ‘특수’ 이벤트지.

―데스 나이트가 왈왈거리며 짖는다던데?

―그러니까 ‘특수’ 이벤트지.

―하긴, 평범한 데스 나이트면 그따위로 짖을 이유가 없긴 하지.

―것보다 이 특수충 새끼는 뭐야 대체?

3차 전직자들을 위한 최상위 필드에서만 출몰하는 터라, 많은 고위 유저들이 이 특수한 이벤트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거기에는 길드 역시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처럼 많은 유저들이 몰린 덕분일까?

―몬스터가 몬스터를 잡는다고?

―미친! 이벤트가 아니라 유저였잖아.

―사령술사? 리치?

―저만한 병력 움직이는 거 보면 특수 직업 중에서도 레전드일 듯.

―그러니까 ‘특수’ 직업이지.

―아니, 이 게임 직업빨 약하다고 하지 않았냐?

―워… 혼자서 레이드도 뛰겠네.

―그러니까 ‘특수’ 직업이지.

―썅! 특수충 이 새끼 진짜 적당히 해라.

―이게 게임이냐?

관련 자료가 쌓이기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이벤트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게 있었다.

―요즘 가면이 유행이냐?

―후방에 뒷짐 지고 있는 저 해골 가면이 유저인 듯.

―저놈도 뼈다귄 줄 알았더니, 팔뚝 보소.

―살이 통통 올랐네.

―근육인 것 같은데.

―흑마법사 맞냐?

―훅마법사(물리)!

―뒤에서 지휘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뛰어들어도 되겠는데.

누군가의 이야기에 호응하듯, 관련한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워… 물 근육이 아니었네.

―몸땡이 보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전장에 뛰어들 줄이야.

―찰지게도 팬다.

―아니, 정말로 흑마법사 맞냐고?

―훅마법사(물리)!

―훅을 찰지게 날림.

―맞으면 훅 가자너.

마무리도 완벽했다. 전장의 끝에서 해골 가면이 손짓을 하는 순간, 죽음의 군세가 일제히 먼지도 돌아가고, 전장에는 시꺼먼 잔재만 흩날리는 가운데, 그 중심에 홀로 서서 필드를 돌아보는 모습이란.

―워… 싸 버렸다.

―카리스마!

―저게 그 오버 로드라는 거냐?

―기왕이면 가면도 좀 멋진 거 쓰지.

―그러게. 애들 장난감 수준인데.

―오지고 지리다가 가면 보고 저려 버림.

한 가지 옥에 티가 있기는 했지만, 워낙 마무리가 완벽했던 탓인지, 그마저도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요즘 길드들 난리 났네.

―저번에 그 용아병도 그렇고, 희귀 직업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은데.

―PP에선 직업빨 별로 없는 줄 알았더니, 속았다!

―지금까지 저런 경우가 없었는데, 갑자기 뭐지?

―3차 전직 특수 아니겠냐?

―노우! 사이트 공지에는 직업빨 관련해선 달라진 거 없던데. 정말 저거 직업빨 맞냐?

―아니면 뭔데?

―또 모르지. 신화급 장비 효과일지.

―저런 수준의 신화급 장비는 없을 텐데.

신화 등급 무구의 능력치가 제대로 공개된 적은 없지만, 관련 무구를 지닌 유저들의 전투는 여럿 공개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저런 엄청난 광경은 보여 주지 못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떠들썩한 거였다.

그리고 마루 역시 이런 부분에 놀라고 있기도 했다.

‘이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야.’

사람들의 반응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최상위 랭커들의 전투를 떠올렸다.

분명 그들도 신화급 장비를 지니고 있었건만, 마루가 보여 주는 것처럼 압도적인 광경을 보여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몇몇 보여 주는 경우도 각종 부수적 요인들을 통해서 이뤄 낸 것들로서, 길드적 차원의 대규모 버프 지원이라거나 트랩 등을 통해서, 한 명 몰아주기 설계를 취할 경우에나 가능한 액션이었다.

물론, 그의 경우에는 전설과 신화급 장비가 여럿 존재해서 압도적인 것일지도 모르나, 그게 전부가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하위 레벨일 때는 몰랐지만, 고레벨에 오르며 랭커들과의 격차가 좁혀지면서 그런 생각은 더더욱 확실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PP의 완성도를 보면 신화 등급을 어설프게 구현했을 것 같진 않은데.’

의문은 깊게 이어질 수 없었다.

“삼촌~!”

저 한편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루미와 초롱이가 도도도 달려오고 있던 까닭이었다.

놀이공원!

현재 그는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상황이었다.

‘레벨 작업해야 하는데.’

이선이 오늘도 외출을 해 버린 터라, 결국 아이들은 그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양손 가득 커다란 솜사탕을 들고 나타난 아이들의 모습에 마루가 옅은 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게 어찌나 컸던지 애들 머리가 쏙 가려질 정도였던 것이다.

귀여운 모습이었던 터라, PP 관련한 상념은 옆으로 치워 버린 뒤,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김치~!”

이에 초롱이와 루미가 솜사탕을 들고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데, 솜사탕에 얼굴 대부분이 가려 있었다.

“큭….”

미소가 절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걸 이선에게 보내 줬다.

―연애가 이것보다 달달함?

문자 역시 찍어 주는데, 바로 답장이 날아들었다.

―단짠!

겨우 한 단어였다.

하지만 짧지만 강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야만 했다. 그 역시 연애를 하고 있기에 더욱더 와닿는 내용이었다.

옅은 실소를 흘린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이들에게 외쳤다.

“메~ 롱!”

그에 맞춰서 아이들이 혓바닥을 내밀었고, 이걸 찍어다가 이선에게 보내 줬다.

―메롱!

답장은 오지 않았다.

“큭큭….”

* * *

이선과 이선희 두 연인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손을 맞잡은 채 하릴없이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장소인 데다가, 마침 한적한 시간대였던 까닭일까?

그들 연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들을 위해 마련된 세트장처럼, 만개한 봄꽃이 좌우로 펼쳐져 있고, 은은한 바람결에 떨어지는 꽃잎과 쏟아지는 향기까지,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이끌었다.

요 며칠 수시로 만남을 가지고 있지만, 긴 세월을 건너 마주한 인연이기에, 미묘한 어색함과 긴장감 등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꿈결 같은 풍경으로 인해, 그들은 좀 더 풀어질 수 있었고, 조금 더 가까워질 수도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걸 보며 꼭 닮은 감탄사를 쏟아 내면서 걷다 보니, 길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땐, 어느새 그들 연인은 서로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어렵사리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며,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꽃향기가 가득한 거리를 그렇게 수차례 오고 가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선희가 기나긴 침묵을 깨며 물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건가요?”

“…그건 어려워.”

예상했던 그대로의 대답이기에 놀라지 않았다. 알고 있었음에도 그냥 묻고 싶었던 탓이다. 그저 눈가에 옅은 그늘을 스쳐 보낼 뿐이었다.

미국의 손을 잡고 그들이 세운 발판을 딛고 도약까지 했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높이 와버린 상황이었다.

그는 ‘미국의 히어로’였다.

이선희의 눈가에 스쳐 간 그늘을 놓치지 않았음일까?

“…돌아올 방법을 찾을게.”

저도 모르게 무리한 발언을 해 버렸다.

“그리고, 그때… 결혼하자.”

어렵사리 마주 잡고 있던 손을 떨어트렸을 때, 이선희는 손안에 다른 온기가 잡혀 있음을 깨달았다.

“이건…?”

반지가 거기 있었다.

“받아 줄 거지?”

어느새 무릎까지 꿇은 이선의 모습에, 이선희는 울상이 돼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여제의 약지에 반지가 올라갔다.

* * *

제대로 한 방 먹은 탓일까?

존슨은 아주 매서운 눈초리로 사일론을 노려봤고, 이에 사일론이 실실 웃으며 그를 놀려 댔다.

“눈빛이 아주 레이저도 쏘겠어?”

“쏠 수만 있으면 정말로 쏘고 싶다!”

간만에 이반나에게 멱살을 잡고 털렸더니, 정신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겨우겨우 사정을 설명하고 난 뒤에야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녀에게 사일론의 존재를 알릴지 말지, 많은 고민을 하다 어렵사리 내린 선택이건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괜한 짓을 한 건가.’

존슨은 고개를 저었다.

비록 엔트라넷 계약을 통해 족쇄를 채워 놨다고는 하나, 상대는 무려 마계의 대공 중 한 명이었다.

방심은 금물이다 보니, 어지간하면 최대한 곁에 둘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이반나에게도 전해질 터, 그냥 스스로 밝히자는 게 낫다는 결론으로 알린 것이다.

어렵사리 사정 설명을 한 뒤, 그녀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사일론이 또 장난을 걸었던 터라, 몇 차례 위기가 왔었고 그 때문에 더더욱 사일론에게 분노가 컸다.

존슨과 사일론, 그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사일론은 슬슬 분위기 전환의 필요성을 느꼈다.

“워~ 워! 이러다간 밥도 못 얻어먹겠네.”

그가 슬쩍 딜을 해 왔다.

“정보를 좀 더 줘야지 눈깔에 힘을 빼려나?”

말해 보라는 듯, 존슨이 고갯짓을 했다.

“전에 침공 방법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지?”

“뭐가 더 남았나?”

“굵직한 것만 설명해 줬잖아. 오늘은 자잘한 것도 좀 풀어 보려고.”

그러면서 사일론이 이야기했다.

“대개 이런 환란이 오면 떠오르는 게 있지.”

“떠오르는 거?”

“종교! 시기가 어수선해 지면, 미지의 것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마련이거든. 그게 크면 클수록 좋지. 예를 들면 ‘신’처럼 높고 커다란 거.”

사일론이 히쭉 웃으며 손가락을 세웠다.

“이런 말 하면 골 때리는 거 아는데, 마신도 신은 신이야.”

“…놈도 신앙을 요구한단 건가?”

“원래 밖에서 대문 두드리는 것보다, 안에서 빗장을 여는 게 쉬운 법이야. 신들이 하는 일은 간단해. 힘을 주고 이를 기반으로 세력을 키운 뒤 믿음을 늘리고 신앙을 수확하지. 그 과정에서 빗장을 여는 건, 일도 아니지.”

그러면서 또다시 언급되는 건?

“엔트라넷이 참 기가 막힌 시스템이긴 해.”

다른 차원의 신들이 쉬이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방벽이라 했다. 그 말은 마신에게도 통용됐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직접적으로 힘을 부여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잠자리에 찾아와서, 속삭이는 정도는 가능하지.”

놀랍게도 이런 일만 전문으로 하는 마왕군 직속 부대도 있다는 것이다.

“몽마라고, 꿈속을 넘나드는 놈들인데, 개중 ‘퀸’급으로 불리는 특별한 녀석들은 차원 너머까지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지.”

존슨은 그 부분에서 실버 박사를 한 차례 떠올려야만 했다. 이런 그의 모습에 뭔가 눈치챘다는 걸 느낀 듯, 사일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놈들이 차원 관찰자라고 불리는 감시탑이지.”

분명 실버 박사와 비슷한 부류인 듯싶었다.

“차원 너머, 새로운 세상이 있다. 그곳이야말로 꿀과 젖이 흐르는 낙원이다. 신세계다.”

꿈속에서 환상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엔트라넷이라는 게 대단하긴 한데, 여기에도 약간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

“아쉬운 점?”

“각성자 네트워크 서비스라며.”

그게 어떻다는 것일까?

“비각성자는 이용할 수 없단 소리잖아.”

“아….”

그 말에 몽마의 표적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비각성자를 통해서 움직인다는 건가?”

“정답이야. 뭐, 이런 세상에서 힘이 없다는 건, 세를 키우는 데 지장을 주긴 하겠지만. 그래도 사기꾼이라는 건 주둥이라는 타고난 능력들이 있잖아.”

그러며 또 이야기했다.

“비록 힘을 줄 수는 없지만, ‘지식’을 전달하는 건 어렵지 않지.”

“지식?”

“간단히 예를 들자면, 키메라 같은 거?”

존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이비. 그거 우습게 볼 거 아니다.”

히쭉 웃어 보인 사일론이 말했다.

“이 정도면 밥값은 됐냐?”

“차고 넘치는군.”

앞의 분노마저도 상당 부분 깎여 나가는 걸 느꼈다. 이반나와 관련된 일이니만큼, 완전히 씻겨 나갈 일은 없을 터였다.

“잔돈이 남았단 말이지? 그렇다면 부탁 하나 하자.”

“부탁?”

“퍼펙트 플레이.”

사일론이 저 한편의 VR 기기를 보며 말했다.

“계정 좀 만들어 주라.”

PP의 세상, 그의 새로운 호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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