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랭커들….
#16. 랭커들….
수많은 랭커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각자 세계를 대표하는 실력자들로서, 서로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는 이들이니만큼, 당연하게도 그들 사이의 기 싸움도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국가적인 대립까지 함께 곁들이고 있는 이들도 적잖았고, 그런 이유로 마찰이 발생하는 건 예정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최초는 승급 던전 내부였다.
인도의 랭커 존 밧찬과 파키스탄의 랭커 이스마일 칸, 그 둘이 하필이면 같은 승급 던전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두 나라의 관계를 알고, 그에 따른 랭커 간의 대립을 알기에, 최대한 마주칠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하건만, 실수로 이들의 동선이 겹쳐 버린 것이다.
이번 승급 던전을 관리하는 길드들의 경우, 규모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대형 길드에 비할 바는 아니었던 터라, 업무가 밀리는 걸 감당치 못했고, 이처럼 최악으로 꼬이는 상황까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자존심 강한 두 랭커들이 만났고, 눈이 맞아 버렸다.
―워… 랭커 대전 스타트 끊은 게, 존과 이스마일이었어?
―자강두천의 격돌!
―누가 이겼냐?
―결과는 잘 모르겠고, 둘 다 한동안 밖으로 안 나왔던 건 기억나네.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낀 사진 링크!
―랭커 대전 레알 흥미진진하잖우.
존과 이스마일처럼,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상당수의 랭커들이 크고 작은 마찰을 빚고 있었다.
―듣기로는 레이널드와 장량도 한판 붙었다는 말이 있던데.
―미국 VS 중국!
―승자는?
―알 수가 없다.
―느낌상으로는 레이널드 같다. 장량은 여전히 얼굴 안 비치는데, 레이널드는 몇 장 찍힌 게 있더만.
―아… 그래서 대륙에서 랭커 한 명 더 넘어온 건가?
―선글라스에 마스크, 이 식상한 세팅은 뭐냐?
―가면이라도 써야 함?
―아이언슈트가 선구자네.
―그건 미친놈이지.
―위대한 체조를 알려 주신 수령님께, 감히 그딴 망발이라니.
―사형!
―사형!
―미친놈들!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랭커가 몰려 있는 나라였다. 한 국가에 10명이 넘는 랭커가 모이는 경우란 대격변을 제외하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특별한 행사가 발생할 경우, 랭커들을 따로 초청하긴 하지만, 거기서도 제대로 얼굴을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 대리인을 보내거나 무시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한국에는 수많은 랭커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이 보여줄 여러 반응들에 대한 관심도는 세계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격변 정도는 돼야 이 정도의 랭커가 모이는데, 그 장소는 몬스터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자리이니만큼, 랭커들 간의 마찰이 크게 드러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 모인 랭커들은 전쟁과는 무관한 이유로 모인 것이다. 언제든 마찰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세계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랭커들의 동선은 수시로 체크됐고, 그들 간의 마찰을 살피는 건 은밀한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는 민간의 관심사 정도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인디안 존슨! 놈을 잡는다.”
“진정한 최강을 가릴 때다!”
바로 그 주역들인 랭커들 역시 관련한 호기심에 들끓고 있던 것이다.
최강의 헌터를 논할 때, 항시 언급되는 게 바로 인디안 존슨이었다. 하지만 오지를 돌아다니며 활동하는 터라, 상당 부분 행적이 불분명한 까닭에, 그에게 도전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데스워치가 존슨을 추격하다 포기한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던가.
붙고 싶지만 붙을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랐다.
한국!
어째서인지 이 작은 나라에 꾸준히 비비고 있던 것이다.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상황이었다.
특히, 지난 대격변 이후 존슨의 존재감은 한 단계 더 상승한 상황이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그냥 그가 ‘최강’이라는 걸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단지 각자의 사정에 의해서 적당히 둘러대고 있을 뿐, 랭커들은 하나같이 존슨을 인정하는 바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를 향한 도전 정신이 불타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알게 모르게 존슨과 묶여서 최강으로 꼽혀 왔던 랭커들로서, 아이언슈트를 찾아 방문한 한국이지만, 거기에는 존슨을 향한 도전 정신도 상당 부분 끼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왔냐?”
존슨은 쓰게 웃으며 자신을 가로막은 사내를 바라봤다.
데카 도라!
한국을 찾은 수많은 랭커 중 한 명으로서, 존슨과 마찬가지로 최강을 가릴 때 항상 언급되던 헌터이기도 했다.
특이 사항을 꼽으라 한다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으로서, 이면의 주민이었다.
“굳이 이래야만 하겠냐?”
존슨의 물음에 데카가 말했다.
“네가 이 시대의 정점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오늘 이 자리에서 진정한 최강을 가리는 거다.”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던 존슨이 슬쩍 데카의 전신을 훑으며 물었다.
“기왕이면 혼자 왔으면 더 그럴싸했을 텐데.”
이에 흠칫 놀란 데카의 표정에 존슨이 물었다.
“숨길 수 있을 줄 알았어?”
“…어떻게?”
“겉으로 보기엔 1대1이지만, 이건 뭐… 다대일인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문어발이라고 불린다더니, 이래서였나?”
“으음….”
데카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비밀’까지, 너무도 쉽게 간파해 버린 존슨의 모습에 전율하며 입을 열었다.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생겼군. 으득!”
살기등등한 모습에 존슨은 히쭉 웃었다.
그는 데카의 전신에 가득 씌워져 있는 ‘버프’를 확인했고, 그 안에서 강렬한 힘의 파장도 읽을 수 있었다.
‘휘유~! 대체 몇 개나 두르고 있는 거야?’
언뜻 과감한 도전으로 여겨졌지만, 데카는 그 나름대로 견적을 내고 계산을 끝낸 뒤, 안전장치까지 마련하고서야 내디딘 여정이며 모험이었다.
그 때문일까?
“안전핀을 뽑아 줄까?”
존슨이 서늘한 음성과 함께 하얗게 웃었다.
* * *
간만에 온 연락이었다.
―우리 지금 만나!
한때, 부캐 즐겜러로서 그와 함께 파티를 했던 일원에게 메시지가 온 것이다.
갑자기 웬일인가 싶어서 약속 장소로 나가니, 이게 웬일?
‘라시아?’
그의 제자인 임시안의 여동생인 임지안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과거, 호로로 파티에서 루띠 역할을 맡았던 여인, 진수미가 오늘의 약속 상대였던 터라, 자연스레 그녀에게로 시선이 넘어갔다.
‘…그러고 보니. 둘이 사촌이라고 했던가.’
마침 함께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데리고 나온 것일까?
의문스러운 와중에도 일단 그녀들에게 향하며 인사를 나눈 뒤 물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에 두 사촌 자매가 눈을 빛내는가 싶더니, 대뜸 질문을 던져 왔다.
“오빠지?”
“아저씨죠?”
뜬금없는 물음에 마루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뭐가?”
안쪽 꽉 찬 직구가 날아들었다.
“아이언슈트!”
마루는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이내 두 여인의 초능력 수준의 재주를 떠올렸다.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분위긴데.’
제법 깊이를 채워 가는 인연이다 보니 알게 된 거로서, 이들이 꽤 믿을 만하다는 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햐… 진짜 눈썰미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알았는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저 두 여인은 타인의 특징을 잡아내는데 천부적이기 때문이다.
‘집안 내력 참 특이하단 말이야.’
제자인 임시안에게 듣기로는 외가 쪽 집안 여인들에게 발아하는 특이한 재주라고 하는데, 물론 무조건 발생하는 건 아니라고도 했다.
‘…신내림 비슷한 건가?’
대격변이 발생하고 다양한 스킬과 능력자들이 생겨났지만, 이들 사촌 자매를 보고 있노라면, 격변 이전에도 나름 능력자라 할 만한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키홀 클랜의 제퍼드 역시 그런 부류 중 한 명이지 않던가.
‘그놈은 초감각이었지.’
마루는 스탯과 스킬을 통해 겨우 획득한 감각으로서, 이는 실로 말도 안 되는 감각이라 여겼는데, 이런 감각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는 점에서, 확실히 어지간한 스킬은 씹어 먹기에 충분하다 여겼다.
그의 반응에 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난 아직 배고프다.”
“아저씨 저도 제자 하면 안 돼요?”
아리송한 진수미의 이야기와 달리, 임지안의 부탁은 아주 직선적이었고, 덕분에 그들이 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마루에게 배우고 싶단 뜻이었다.
마루가 물었다.
“공짜로?”
진수미와 임지안 자매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한 걸음 물러나며 양팔을 교차시켰다. 그리고 마치 짐승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내왔다.
“변태!”
“저질!”
이거 생각보다 상처가 컸다.
“어… 나 그런 놈 아니다!”
마루가 울컥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두 여인이 히쭉 웃으며 표정을 풀었다.
“장난이야.”
“당연히 잘 알죠.”
하지만 여린 가슴에는 이미 대못이 박힌 뒤였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던 것도 잠시, 마루가 두 여인을 향해 물었다.
“정말로 나한테 배울 생각이 있는 거야?”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재차 물었다.
“뭘 믿고?”
“제로 원!”
“인디안 존슨!”
아이언슈트에 대한 신뢰도는 존슨과의 어깨동무 한 방으로 해결이었다. 그만큼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영웅이 바로 존슨인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그로 인해서 존슨의 명성이 깎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는데, 당장 두 여인만이 아니라, 아이언슈트의 체조를 배울 모든 이들에게 통용될 이야기이기도 했다.
마루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심사숙고해 가며 연공법의 육성 루트를 잡은 것이지 않던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안이는 모르겠지만, 수미는….’
그는 내심 이 만남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저 두 여인, 그중에서도 특히 진수미에 대해서는 적잖은 눈독을 들이고 있던 까닭이었다.
‘나중에 개인 팀으로 스카우트할까 생각하긴 했는데.’
앞서 언급했듯, 그녀의 남다른 눈썰미는 분명 매력적인 요소였다.
‘정보통한테 꼭 필요한 재주지.’
뿐만 아니라 남다른 탱킹 능력과 센스 등이 있으니, 그 눈썰미와 어울린다면, 차후에 현장 수색조로서도 활동할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진수미만이 아니라, 한때 함께했던 호로로 파티 전부에게 명함을 내미는 것도 생각한 바 있었다.
충분한 재능들로 넘쳐 났기 때문이다.
고심하길 한참, 대강의 생각을 정리한 그가 먼저 임지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헌터가 되고 싶은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능력 하나쯤 있었으면 싶어서요.”
이유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 험한 세상 자신을 보호할 수단 하나쯤 지니고자 하는 건 크게 이상한 게 아니었다.
박달수가 각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헌터가 되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며, 그처럼 나이가 찬 사람들이 뒤늦게 그의 체조를 배우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였다.
총기 규제가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돌발 게이트라는 특수 상황에 맞춰서 경보 박스로 무장을 하는 것이지, 여전히 민간의 일상에서 총기를 들고 다니는 건 불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각성과 스킬은 훌륭한 대안이 될 터였다.
“리튜브에 올려놓은 영상으로도 충분할 텐데.”
“헤헤! 기왕이면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요.”
바로 옆에 맞춤 정장집이 있는데, 굳이 멀리서 양산 정장에 눈을 돌릴 이유가 없다 여긴 것이다.
나름대로 애교를 부리는 것인지, 보조개를 앞세운 채 강아지 같은 눈으로 올려다보는데, 초롱이와 루미가 생각날 만큼 제법 귀여운 상이었다.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인 마루가 이야기했다.
“좋아. 앞으로 시안이하고 함께 나오도록 해.”
“꺄~악! 감사합니다. 싸부님!”
환호하며 방방 뛰는 소녀의 모습에 절로 실소가 나왔다.
제자인 임시안의 가족이니만큼, 어느 정도는 살펴 줄 필요성도 느꼈기에, 그녀를 받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임지안을 해결한 뒤, 진수미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현성이하고 미애도 알아?”
호로로 파티의 클놈과 패피를 언급하니, 진수미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비밀이잖아.”
확실히 입이 무겁다고 생각하며 그가 이야기했다.
“난 팀을 만들 거야.”
눈썰미만큼 눈치도 남다른 진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한 듯싶었다.
“수당만 확실히 챙겨 줘.”
이미 자신의 역할까지 짐작한 것일까?
“야근은 자제해 줘.”
정보 업계가 유독 야근이 심한 편이다 보니, 일찌감치 커트를 한 것인데, 이에 마루가 이야기했다.
“추가 수당은 확실히 챙겨 줄게.”
자제한단 소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