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281화 (281/325)

#7. 테러.

#7. 테러.

흥미로운 상황이라 여겼다.

‘깜찍한 짓을 하는군.’

대마왕은 하르칸을 비롯한 도플갱어 일족이 벌이는 금단의 술법을 알고 있었다.

나름 잘 숨긴다고 숨긴 듯하지만, 그의 눈은 이곳만이 아니라 저 너머의 인간계에도 닿아 있기에, 결국 발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겨우 일어서고 있는 일족이건만, 그 일원들을 가지고 금술을 부려 가며 저 너머 세계에 투입을 거듭한다?

‘식민지를 노리는 거겠군.’

한차례 멸족의 위기를 겪었기에, 당장 현실에 안주하기보단 미래를 보며 움직일 줄 알게 된 것이다.

‘금술이라….’

하지만 굳이 아는 체하며 제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더 재밌겠네.’

차후에 다른 마계의 왕들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불만을 토로할지도 모르지만, 가볍게 씹어 줄 수 있을 만큼, 도플갱어 일족이 하는 바가 상황에는 더 맞기도 했다.

지구라고 불리는 인간계에는 단단한 방벽이 세워져 있는 탓에, 여전히 제대로 된 침략 루트도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도플갱어 일족이 금술을 통해 꾸준히 건너가고 있었다.

‘딱 좋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균열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둑이 무너지겠지.’

도플갱어 일족은 금술을 통해 제 육신을 버린 채, 혼만 넘어가서 인간의 삶에 끼어들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건 아니었고, 이는 분명 저 너머의 세상에 선명한 균열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저곳 세상에 세워진 방벽을 통한 진입이 아니었다.

던전이나 대격변 게이트가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루트로 밀항을 해선 불법 체류 중인 것이다.

당연히 그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말썽이 일 수밖에 없었다.

즉 균열이 선명해지는 현상을 낳을 것이고, 이는 결국 방벽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내는 결과로 이어질 터였다.

느낌이 왔다.

‘얼마 안 남았군.’

침략의 깃발을 올리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여왕의 생일 축하 퍼레이드도 이 정도는 아닐 듯싶었다.

런던 외곽에서부터 시작해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군악대의 화려한 연주 솜씨가 발휘되는데, 이를 따르는 시민들의 숫자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 사이사이 각성자들을 이용한 다채로운 축포도 솟구치니, 눈과 귀를 비롯하여 오감이 전부 충족되는 축제의 현장이었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먹을거리는 입을 즐겁게 하고, 그 열기가 어우러지며 만든 축제의 향기는 코를 흥분시키며, 사람 간의 마찰은 가슴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악~!”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요란한 외침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가운데, 대기 중이던 클레어가 왕실 근위대를 이끌며 행진을 시작하는 게 보였다.

“수호검이다!”

“언니 사랑해요~!”

“엘―소드 한 번만 들어 주세요!”

“정령검으로 날 때려 줘!”

틈틈이 헛소리도 제법 끼어 있었지만, 클레어를 향해 환호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런 근위대의 가운데에는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바로 훈장의 주인공이었다.

“오오… 저게 트랩퍼인가?”

“생각보다 큰데?”

“인상 살벌하네.”

“총질보단 주먹질이 어울리는데.”

“건어택이 밑바닥 생활이 길었다니까. 인상이 그쪽에 맞춰진 거겠지.”

군데군데 올라오는 소리 중 거슬리는 내용이 제법 끼어 있었음에, 마루는 애써 표정을 관리해야만 했다.

현재 그의 곁에는 근위대 외에도 다양한 인사들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또 다른 훈장 임명식의 주인공들이었다.

마루와 비슷하게 명예 훈장을 하사받는 외국인들로서, 마루와 같은 2등급의 KBE는 없었지만, 3~5등급까지 다양한 구성원으로서 이번 행사의 한 자리를 차지할 터였다.

직업군은 다양했다.

연예인부터 시작해서 운동선수, 교육자, 작가, 과학자 등등, 다채로운 인사들이 함께하며 퍼레이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로 거창하게 이뤄질 행사는 아니었지만, 트리니티 여왕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무대 규모가 커진 것으로, 역시나 그 중심에는 ‘아발론’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아발론의 왕실의 극비이니만큼, 관련해서 언급되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쓴다는 걸 통해, 마루의 가치를 확실히 보여 주려 한 것인데, 이는 시민들보단 왕실의 고위층 인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봐야 했다.

차후 버킹엄 던전의 입장에 대해 알릴 때, 발생할 수도 있는 소란들을 잠재우기 위한 밑밥 깔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준비된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화아아악….

빙빙 돌고 돌아 런던 시내로 들어설 즈음, 돌연 한 줄기 서광이 저 높은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게 보였다.

의도된 연출로, 일부러 만들어 낸 먹구름과 그곳을 뚫고 떨어지는 서광으로 화려한 조명 효과를 낸 것이다.

이를 연출하고자 투입된 각성자들의 수가 상당했다.

그렇게 쏟아지는 선명한 불빛 아래, 뜻밖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 저… 저… 설마?”

“성녀 레아?”

“레아 공주님!”

“오오오오!”

왕실의 요청으로 도착했던 성녀 레아, 그녀가 드디어 그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까지 방문 사실을 감추고 있던 터라, 더더욱 그녀의 등장이 주는 임팩트가 강렬했다.

특히,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장소가 인상적이었다.

호수 위!

성경의 기적을 목도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물 위를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았다.

잠시 후 그녀가 뭍에 올라왔다.

시민들이 그녀를 향해 요란히 달려들 걸 대비하며, 근위대의 긴장감이 바짝 상승하는 가운데, 뜻밖에도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마치 모세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는데, 사실 이 역시도 연출된 장면의 한 부분이었다.

일종의 바람잡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호수와 가까운 제1선에 깔아 놓은 것인데, 그들이 물러나며 분위기를 잡으니, 군중 심리에 이끌리듯 시민들도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마련된 무대였다.

성녀 레아가 차분한 발걸음으로 그 위를 걷고 또 걸어 퍼레이드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녀의 걸음에 맞춰 근위대도 길을 열었고, 이내 마루의 앞까지 이르러서야 멈춰 서는데, 마루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 게 보였다.

화아아악!

그 순간 마루의 머리 위로 성녀가 손을 얹고, 찬란한 빛의 축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역대급 성력을 지닌 성녀라 불리는 만큼, 그 강대한 빛의 물결은 너무도 고귀하고 거룩해 보였고, 그 때문인지 몇몇 시민들은 눈물까지 흘려 가며 이를 동공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뒤이어 마루를 일으켜 옆에 세우는 장면까지, 놀랍도록 확실한 임팩트가 방송을 타고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성녀 레아와 마루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운데, 다시금 행진이 시작됐다.

“와아아아~!”

“사랑합니다! 성녀님.”

“트랩퍼! 트랩퍼!”

환호성이 솟구치는 가운데, 행렬의 가장 후미에서 적잖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저게 정말 내 아들 맞아? 성녀님께 축복이라니.”

“날 닮아서 그런가? 재주가 많다니까.”

마루의 부친과 모친을 비롯한 가족들이 그곳에 있었는데, 그들만이 아니라 다른 훈장 주인공들의 가족 역시 함께였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날에 맞춰 왕실에서 준비한 전용기를 타고 넘어온 뒤, 편안한 휴식 및 관광을 즐기다가, 퍼레이드에 참여한 상태였다.

정길한 이미자 부부는 자신들의 둘째가 정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됐다는 걸 새삼 깨달은 듯, 서로 손을 꼬옥 잡으며 어깨를 모아야만 했다.

뿌듯하면서도 동시에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건, 마루가 사는 세계가 헌터 업계이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잘 컸더라도, 부모 앞에서는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성녀 레아의 등장은 확실히 충격적인 부분이었던 터라, 각국의 커뮤니티는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아니.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

―갑자기 성녀라고?

―영국하고 교황청 사이가 이 정도고 가까워졌나?

―하긴, 대환란 이후로 많이 가까워지긴 했지.

―교류가 있기야 하지만, 저만큼 크게 움직일 정도는 아닌 줄 알았는데.

―허… 호수 걸어오는데, 너무 거룩하심. 으아아! 오늘부터 가톨릭으로 넘어간다.

―개종 신청 들어갑니다!

의도된 연출이었다고는 하나, 그 안에는 분명 성녀의 존재감이 잔뜩 발산되고 있던 터라, 연출과 성력의 뻥튀기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아니, 것보다 갑자기 등장해서 트랩퍼한테 축복이라고?

―성녀가 등판한 것도 뜬금없는데, 굳이 트랩퍼하고 나란히 걷는 건 뭔데?

―트랩퍼가 그만큼 대단하단 뜻이겠지.

―겨우 B급 A형 헌터 아님?

―아직도 그딴 소리를 하네. 이미 랭커급으로 분류되고 있는 데다가, 그 재주만 놓고 봐도 실력 여부하곤 무관하게 최고 몸값으로 놓는 기관이 한둘이 아니다.

―영국 왕실이 직접 케어하고, 성녀가 등판해서 띄워 준다? 더 말할 것 있냐?

또 한 차례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었다.

트리니티 여왕은 버킹엄에서 행렬을 기다리면서 이런 반응들을 틈틈이 살피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절로 어깨가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이 정도면….’

아발론을 여는 것도 문제없을 듯싶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다른 방면의 소식에도 귀를 기울였다.

‘레메게톤.’

그들이 이번 행사를 얌전히 보고 지나갈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인데, 지난 공항 사태의 미친 짓거리를 생각하면, 분명 또 한 차례 난동을 부릴 확률이 높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만으로, 이미 발표해 버린 일정을 거둘 수는 없는 일이다 보니, 이처럼 불안감을 지닌 채 행사를 진행해야만 했다.

각지의 길드를 움직였고, 인연이 닿는 한에서 최대한 많은 실력자와 요원들을 불러들였다.

‘후우… 무사히 끝나야 할 텐데.’

커뮤니티 반응을 살피며, 애써 불길한 예감을 떨쳐 낸 채, 이내 축제의 한 장면에 발을 담갔다.

* * *

여왕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걸까?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사이, 불온한 그림자들이 스며들고 있었다.

레메게톤!

그들의 입김이 닿아, 영국 이면의 문제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인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뜻밖의 불청객들도 끼어 있었다.

사흑련!

판에 한 발 걸치고, 상황에 따라서는 무대의 주도권마저 가져가려는 의도를 지닌 채, 각 문파의 정예들을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유럽과 아시아의 문제아들이 대거 행사에 걸음을 한 가운데, 이면의 축제를 주도했던 이가 런던을 상징하는 빅벤 시계탑에 올랐다.

“슬슬 준비가 끝났나.”

데자르는 그리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태양이 하늘 정중앙에 자리하고, 그와 동시에 발아래의 빅벤이 특유의 종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대애애앵… 대애애앵….

그와 동시에 데자르가 손가락을 튕겼고,

퍼엉! 펑… 퍼퍼퍼펑….

런던 시내 곳곳에서 알 수 없는 폭발이 연달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아아악!”

그 갑작스러운 테러로 인해, 축제로 흥분해 있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각지에서 올라온 요원들이 다급히 시민들을 통제하려 들지만, 이미 상황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 상태였다.

수많은 건물이 박살 나고, 거기서 떨어져 내린 잔재에 어마어마한 희생자들이 속출할 터, 데자르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리며 런던 거리를 쭈욱 돌아봤다.

그리고 이내 당황해야만 했다.

“사람 살려!”

“아아아악… 도망쳐!”

“엄마~! 아아아앙”!

분명 귓가에 들려오는 혼란의 외침은 선명하건만, 시야에 담기는 풍경은 어찌 저리 정갈하단 말인가.

시민들의 반응이야 외침처럼 어지러웠다. 하지만 거리의 풍경이 문제였다.

퍼엉… 펑… 퍼퍼퍼펑….

여전히 폭발성이 들려오며, 준비한 축포가 터져 나가고 있건만, 어느 하나 무너지는 건물들이 없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그러다가 닿는 생각이 있었다.

“…트랩퍼?”

데자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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