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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패밀리!

#8. 패밀리!

표면과 이면의 경계가 나뉜 건 언제부터일까?

사실, 과거에는 이런 구분이 모호했던 시절이 존재했다.

대격변의 초창기!

수많은 각성자들이 쏟아져 나오며, 그 체계가 정리되지 않은 채 혼란이 야기되던, 말 그대로 대환란의 시기가 그러했다.

그 무렵에는 몬스터만이 아니라, 각성 범죄자들의 전쟁도 수시로 발생하면서, 사방이 피비린내로 극성일 정도였다.

옳고 그름의 경계도 없었다.

단순하게 힘이 정의였던 시절이었고, 그 때문에 국가 전복의 위기도 심심찮게 뉴스로 언급되던 무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들이 낯선 건, 2~30년에 걸친 노력에 의해서 과거의 아픔들을 지우며, 안팎의 경계를 명확히 한 덕분이었다.

이를 위해 노력한 게 바로 WHA의 1대 회장 마르코였고, 그 의지를 이어받으며 명확한 체계를 세운 게 바로 2대 회장 데일이었다.

몬스터만이 아니라 사람이, 각성자가 공포의 일원이 돼선 안 됐기에, 국가 전복의 위기 속에서도 포커스를 몬스터에게 맞추려 노력해 왔다.

이 같은 작업이 빛을 발했기에, 각성자들이 돌연변이로 취급받는 게 아니라, 영웅이자 희망의 등불로 여겨질 수 있던 것이다.

이면의 거물들도 그런 상황에 한 팔 거들었는데, 그들 역시 수많은 다툼 속에서 지쳐 버린 면도 있고, 몇몇은 당시 상황에 환멸을 느낀 이들도 있으며, 때로는 정의에 의해 이면으로 넘어간 경우도 상당했기에, 그들이 힘을 모으며 안팎의 경계가 명확해진 거였다.

한데, 그 같은 이면의 거물이 직접 나서서 벽을 허물려 하고 있었다.

레메게톤!

거인의 발걸음에 이면이 들썩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침 시기도 적당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과거에 규칙을 세웠던 이들 대부분이 은퇴하고, 어느새 새 시대에 맞춰 새로운 피가 수혈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혈기 왕성한 문제아들이 넘쳐 나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 등 떠밀어 주기만 기다리던 이들이 상당했기에, 이번 사태는 그들 가슴을 널뛰게 할 만한 파괴력이 있었다.

콰아앙… 쾅… 콰아아앙….

그 신호탄처럼 울려 퍼지는 폭발성이, 혈기 왕성한 문제아들의 가슴속 열기를 일깨웠다.

“신호가 왔다.”

“지금이다.”

“가자!”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시민들 사이사이 스며 있던 이면의 주민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무릎을 꺾였다.

“크윽….”

기이한 압력이 어깨를 짓누른 까닭이었는데, 엄청난 건 아니었지만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훅 들어온 까닭인지, 저도 모르게 오금이 풀린 이들이 상당했다.

한데, 그 기현상에 놀란 건 이면의 주민들만이 아니었다.

“헉? 갑자기 이게 뭐야?”

“크흐으음….”

각지에서 올라온 여러 길드의 요원들 역시 생각지 못한 압력에 당황한 듯, 휘청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멀쩡한 건 오직 한 부류밖에 없었다.

왕실 근위대!

그 덕분에 발 빠른 대처가 이어지며, 시민들에게 길을 열어 줄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여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크하아압!”

“차하앗!”

앞서 언급했듯 대단한 압력은 아니었기에, 짧은 기합과 함께 이를 떨쳐 낸 이면의 주민들이 뒤늦게나마 활동을 시작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 미묘한 타이밍의 오차로 인해, 근위대와 여러 요원들에게 상황을 살피고 파악할만한 시간이 주어졌고, 이면의 주민들이 바라던 화려한 파티는 열 수가 없었다.

피의 축제는 시작부터 꼬이고 있었다.

* * *

콰앙! 콰아아앙….

요란한 폭발성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기이한 장면이 눈에 잡혔다.

분명 대단한 폭음이었고 그만한 폭풍도 몰아치고 있건만, 어느 하나 무너지는 건물이 없던 것이다. 너무도 멀쩡한 거리의 풍경으로 인해, 몇몇 시민들은 안정감마저 찾고 있었는데, 개중 눈치가 빠른 이들이 외쳐 댔다.

“건물로 들어갑시다!”

“당장 건물로 숨어요.”

대피소를 찾는 게 아니라. 가까운 건물을 목표로 뛰라면서 외쳐 대고 있던 것이다.

뭔가를 알고서 외쳤다기보단, 이질적 풍경 속에서 생존 본능이 그들을 이끌었다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는 정답이라 할 수 있었다.

‘설마, 그동안 거리를 돌아다닌 게…?’

클레어는 이런 상황을 한눈에 살피며 지난 며칠간 마루의 행적들을 떠올렸다.

런던 시내가 마치 대피소 같은 모습으로 굳건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게 마치 마루의 레어를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녀는 이내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닿았다.

‘런던 전체를 커버하고 있는 건가?’

곳곳에서 폭발성이 들려오는 가운데, 왠지 시야 바깥의 건물들도 멀쩡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신음하는 가운데, 이면의 주민들이 그들 행렬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너무도 뚜렷한 동선이었더 터라, 저들의 목표가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트랩퍼를 노리는구나!’

무려 랭커인 클레어가 왕실 근위대가 함께하고 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든다는 점에서,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차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화아아악….

마치 파도처럼 밀려드는 파동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는 걸 느꼈다.

무수히 많은 물결이 들이치는 느낌 속에서, 온몸이 무거워지며 기력이 쭈욱 빠져나가는데, 오랜 전장의 경험이 답을 내어 줬다.

디버프!

그 방면의 특수 능력자들이 다중 중첩으로 그녀를 제어하려 든 것이다. 장시간은 무리겠지만 잠시간은 그녀의 발목을 잡기에 충분하리라.

으득!

입술을 짓씹으며 포스를 끌어올리고, 밀려드는 디버프에 대항하고자 하지만, 너무 많은 스킬이 로테이션을 돌리듯 순차적으로 치고 들어오니, 묶이고 풀리는 작업이 반복되며, 꾸준히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너무 완벽한 준비성에 떠오르는 단체가 있었다.

‘레메게톤 이놈들이 기어이….’

멋대로 놀아나는 이면의 주민들이 이렇게까지 손발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아마도 레메게톤에서 따로 수작을 부려 합을 만들어 준 것이리라.

실제로 이는 정답이었는데, 그저 이면의 주민들만이 아니라 사흑련의 일원들도 한 팔 거들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입술을 짓씹으며 마루를 바라보는데, 교차되는 시선 속에서 가슴이 진정되는 걸 느꼈다.

‘그렇구나….’

생각해보면 저 폭발성 속에서 건물들이 멀쩡할 때, 이미 깨달았어야 했다.

이동요새!

마루의 동네를 떠올리면서 이제야 깨닫다니.

이미 레어는 발동한 상태였고, 마루는 자신의 터전 속에서 랭커로서 호흡하는 중이었다.

자신만만한 마루의 눈빛이 그 증거였다.

게다가 지금 이 상황에 전혀 당황하지 않는 저 태도에서, 왠지 마루가 이미 이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예감이 들었다.

마치,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마루의 모습에, 클레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거뒀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해야 할 건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거였다.

수호검!

그녀 주위로 물의 검이 솟구쳐 올랐다.

* * *

마루는 내심 감탄을 거듭하며 어지러운 거리의 풍경을 바라봤다.

‘효과 끝내주네!’

자신의 펼친 결계지만 이 정도로 완벽할 줄은 생각을 못 한 까닭이었다.

그도 그럴 게 단순히 그 주변 정도만 보호하는 게 아니라, 이 넓은 런던 시내 전체를 커버하는 결계였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그의 시선이 곁으로 돌아갔다.

성녀 레아!

그녀의 도움이 컸다.

신성결계!

PP의 메달을 활용한 결계술이 런던 전역을 감싸고 있는 것인데, 거기에 사용된 모든 메달에 성녀의 축성 작업이 이뤄졌던 터라, 그 증폭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일회용인 게 아깝네.’

아직 마루의 재주가 부족해서 이 거대한 힘을 잡아 놓고 유지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를 통해서 습격자들의 발목을 잠시 붙잡을 수 있었는데, 결계에 걸린 조건은 간단했다.

[각성자를 제압하라]

그 때문에 비각성의 일반 시민들은 별다른 피해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고, 습격자를 비롯해서 파견 온 요원들은 무릎이 꺾인 거였다.

근위대가 멀쩡했던 건, 그들에게 따로 나눠 줬던 안전장치 덕분이었다.

일단 일차적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 낸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면의 주민이 왜 범죄자라 불리겠는가.

“꺄아아악!”

과연, 저 한편에서 시민을 방패로 삼아 휘두르는 이들이 보였다. 근위대를 비롯한 여러 요원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마루가 슬쩍 시선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그 순간이었다.

파앗….

한 줄기 섬광이 떨어져 내리며, 인질극을 벌이려던 불청객을 저격했다.

모두가 깜짝 놀라는 가운데,

파파파팟….

돌연 유성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마루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막 여의주를 얻고 현장을 뛰던 무렵, 자신에게 명함을 내밀었던 거대 길드의 톱스타.

얼음여제!

저 높은 창공 위, 그녀가 무수히 많은 얼음 결정을 뽑아내며 대지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주님!”

오늘의 가장 큰 변수 중 한 명이었던 여인, 성녀 레아가 양손을 모으며 기도를 올린 순간, 마루가 펼쳐 놨던 결계의 연결망을 타고, 그 거룩한 파동이 쭈욱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안에 담긴 포근한 기운이 혼란에 휩싸였던 런던 시민들을 진정시켰고, 이를 통해서 상황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여유도 만들어 줬다.

덕분에 건물이 안전지대라는 걸 깨닫는 이들이 늘어나며, 빠르게 도로가 비워지는 가운데, 마루 역시 움직였다.

타앙… 탕… 타아아앙….

어느새 뽑아 든 쌍권총 BG―eye가 그의 양손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비워지는 거리만큼 거리의 음영이 사라지고, 이면의 주민들이 숨어들 그림자 역시 줄어들기에, 목표물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건 거기서부터였다.

마루의 총격은 습격자들만 노리며 날아들지 않았다. 오발탄이 난무하듯 두서없는 총격이 이어지기도 하는데, 놀라운 건 그럴 때마다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커억! 어디서 그물이?”

“이 족쇄는 뭐야?”

“땅이 꺼지고 있어!”

목표물을 빗나간 총탄이 거리 곳곳을 두드리고, 그럴 때마다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함정들이 발동되더니, 습격자들의 발목을 묶고 어깨를 짓누르며 전신을 구속했다.

분명, 외출할 때마다 함께했건만, 대체 저런 건 언제 또 설치했나 싶어서 클레어가 놀라는 가운데, 트랩퍼의 이명이 무색하지 않게, 다양한 함정들이 발동되며 습격자들을 옭아맸다.

개중에 몇몇은 행렬 후미에 있는 가족들을 노리며 움직이는데, 인질극을 목표로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진 않았다.

“거기까지.”

나직한 음성과 함께 행렬 후미로 뜻밖의 얼굴 하나가 등장했다.

“히이이익!”

그 순간 습격자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탈색됐다.

“제… 제로 원?”

존슨이 그곳에 있었다.

“허억! 분명 한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제로 원이 여기 있을 수 있지?”

더욱 놀라운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르르륵….

행렬 후미로 불길이 치솟으며 마치 벽을 형성하듯, 행렬 후미의 가족들을 보호하는데, 몇몇 이면의 베테랑들이 불길 속에서 익숙한 향을 맡고는 신음했다.

“으음… 피닉스….”

또 다른 랭커가 등장한 것이다.

비록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한 존재감이 그들 감각 속 악몽을 일깨우며 발목을 붙잡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스스스스스….

대지를 타고 흐르는 핏빛 안개가 있었는데, 몇몇 그 정체를 눈치챈 이들이 경악했다.

“루시아?”

“블러드 문!”

“해비 스모커?”

붉은 달빛 혹은 골초로 유명한 여인으로, 그녀가 처음 유명세를 탄 건 마루와 비슷했다.

‘존슨 패밀리의 홍일점!’

습격자들은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설마….”

“…나머지 형제들도 움직인 건가?”

존슨 본인이 등판했을 뿐만 아니라, 피닉스의 불길이 타오르고 블러드 문이 밤안개를 흩뿌렸다. 거기에 마루까지 더하면 무려 4명의 패밀리가 한자리에 있었다.

나머지도 없으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슬슬 눈치챈 모양이군.”

느긋한 음성과 함께 등장하는 사내가 있었다.

‘아드리안 데일!’

WHA의 2대 회장이자 존슨의 첫 번째 형제였다.

그 뒤로,

“맙소사!”

다른 형제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누군가 이를 보며 외쳤다.

―떴다 패밀리!

커뮤니티가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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