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난전.
#9. 난전.
시민들이 건물로 숨어드는 모습에, 이면의 문제아들은 당혹감 속에서도 이들을 놓치지 않고자, 급히 뒤를 따라서 움직였다.
이 거대한 행사 날에 문제를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저들을 인질로 활용하는 것까지, 모두 계획에 포함시키며 움직였던 게 아니던가.
당연히 시민들의 덜미를 잡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성녀 레아를 비롯하여 존슨과 패밀리까지, 여러 생각지도 못한 인사들의 출현에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시민들을 붙잡고 늘어지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이거, 뭐야?”
“왜 안 들어가지는 건데?”
“끄으으응….”
건물마다 딱 그들 이면의 주민들만 걸러 내며 튕겨 내고 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당황하는 가운데, 한 걸음 물러난 위치에서 이를 살피던 레메게톤의 요원은 오래지 않아 답을 얻어 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각성자만 밀어내는 건가?’
‘맙소사! 이런 식의 결계가 가능하다니.’
‘으음… 트랩퍼!’
잘 살펴보니 이면의 주민이 아님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보였는데, 이번 퍼레이드를 즐기러 온 헌터들로 보였다.
감각계 요원들이 움직이며 이들을 측정했다.
―언뜻 느껴지는 기세는 C급 정도?
―기준점을 C급으로 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젠장! 그렇게 낮다고?
―최소한 B급 이상으로 준비했는데.
실제로도 그게 정답이었는데, 마루는 이 행사를 망치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 필요할지 계산한 뒤, 그에 맞는 수준만 커버하게 결계를 펼친 거였다.
일반 시민 중에도 각성자는 있기에, 하급의 각성자는 들여보냈고, 그게 아닐 경우에는 근위대나 길드 요원들에 의해서 보호받는 게 최선이었다.
마루가 펼친 결계에 성녀의 직접적인 축복으로 강화까지 더해졌으니, 분류 작업은 확실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뚫어 봐!
―시민을 인질로 잡아야 돼.
―이대로라면 끝장이라고!
각 무전기가 요란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 * *
데일, 이선, 루시아, 바하마, 다비드, 커난 그리고 마루까지, 존슨과 형제가 된 순서대로 나열됐는데, 바로 이들이 존슨 패밀리라 불리는 멤버의 구성원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데일과 이선만 하더라도 각기 이름 높은 랭커로서, 세계적인 영웅이지 않던가.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더욱 놀라운 건, 이들 중 랭커가 아닌 이들이 없단 점이었는데, 다비드와 커난의 경우에는 아직 A급 헌터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그들이 데일과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은퇴를 한 까닭인데, 업계에서 발을 뺀 뒤로도 꾸준한 단련을 거쳐 온 덕분인지, 어느 틈엔가 랭커의 영역에 올라 버린 것이다.
사실, 그 벽을 깨트리기 위한 은퇴이기도 했다.
던전을 뛰며 치열한 격전을 통해 성장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때론 스킬 특성으로 인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마치 일종의 면벽을 하듯 수행해야 성과가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존슨과 데일 그리고 이선의 경우 1세대 각성자라 한다면, 유일한 홍일점인 루시아는 1.5세대 각성자며, 바하마와 다비드 그리고 커난은 2세대 각성자로서, 각기 세대를 대표하는 재능의 소유자들이기도 했다.
유일한 홍일점인 루시아의 경우에도 은퇴는 아니지만 은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유가 조금 특이했다.
어느 틈엔가 데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루시아의 모습에 패밀리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를 바라보는데, 문득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제자 다 키웠다면서?”
“…그래.”
평소의 포커페이스와 달리, 묘한 불안감에 빠진 데일의 모습이 신선했던 듯, 습격자들을 휘젓는 와중에도 패밀리의 귀는 이들에게로 향해 있었고, 눈도 수시로 닿았다가 떨어졌다.
루시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럼, 슬슬 합쳐야지.”
너무도 저돌적인 그녀의 태도에 당황한 듯, 데일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맺히는 가운데, 루시아가 말했다.
“동거부터 시작하자.”
그 뜨거운 눈빛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데일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결국 존슨이 폭소를 터트리는 가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습격자들의 진영에서 변화가 일고 있었다.
데일이 걸음아 날 살리라며 황급히 그쪽으로 뛰었고, 루시아가 이를 쫓듯이 뒤따랐다.
패밀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 * *
사흑련의 요원들이 움직였다.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었나.’
시민들을 쫓아서 건물로 들어가려다 튕겨져 나오며, 사흑련의 요원들마저 밖으로 드러나 버렸다.
관광객 사이에도 헌터들이 있었던 터라, 거기에 섞여서 움직일까도 싶었지만, 근위대가 나서서 통제를 하는 터라, 들킬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그 같은 결론 아래, 각 요원들을 이끄는 팀장들이 신호를 나누며 일제히 칼을 빼 들었다.
차차차창….
무림맹이나 사흑련은 ‘무림(武林)’이라는 그들만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냉병기 하나씩은 품고 다니고는 했다.
그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분위기는 또 한 차례 반전을 맞이했다.
비록 랭커급 실력자들은 없었지만, 숫자를 비롯해서 실력 수준까지 평균치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기 시작했다.
* * *
마루는 존슨 패밀리의 등장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둘 정도만 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전부가 올 줄이야.
특히, 저들 모두가 각자 가짜를 세우거나 비밀스럽게 움직인 터라, 습격자들의 당혹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데일과 이선을 제외하고는 전부 첫 대면이지만, 워낙 유명한 이들인 데다가, 존슨의 팬으로서 저들 영상을 자주 접했던 덕분인지, 묘한 친근감이 드는 걸 느꼈다.
물론, 든든함 역시 기본이었다.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는 가운데, 마루가 행렬 이동을 시작했다.
“어엇! 어딜 가시는 겁니까?”
“위험합니다.”
호위대가 깜짝 놀라며 그를 말리려 들었지만, 이어진 마루의 이야기가 그들의 손길을 막았다.
“이미 레어를 펼쳤습니다.”
그 안에서는 랭커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던가. 가만히 앉아 저격만 하기에는 그의 전력이 아깝기만 할 따름이었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호위대는 잠시 주저하다가 길을 열어 줬고, 이런 그들을 향해 마루가 이야기했다.
“저보다는 다른 분들을 우선시해 주십시오.”
그러며 성녀에게로 시선을 보내는데, 지금 이 순간 특히 그녀의 역할이 중요했다.
놀랍게도 결계에 대한 통제권 일부가 그녀에게로 전이된 까닭이었다. 이미 마석 결계술의 영역을 벗어나, 스킬로 발전해 버린 상황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이야.
‘기적의 힘인가.’
하나 오히려 잘됐다고 여겼다.
덕분에 좀 더 홀가분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인데, 그 대신 성녀의 역할이 중요해져 버렸다.
마루의 시선에 담긴 명확한 뜻은 알 수 없었지만, 성녀를 중요시하라는 것 정도는 전달된 듯, 호위대는 그녀 주위를 에워싸며 단단히 가드를 세웠다.
이에 고개를 끄덕인 마루가 쌍권총을 흔들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목표물이 알아서 어장에 뛰어드는 상황에, 습격자들이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기 시작했고, 마루는 BG―eye를 휘두르며 쉼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앙… 타타타탕….
왕실에서 맞춰 준 멋들어진 기장의 예복 때문일까?
아니면 세계가 감탄한 건가드의 액션 때문일까?
―건어택이 저리 멋졌나?
―쌍권총에는 바바리지.
―옷이 날개네.
화면 너머, 세계 각국의 시청자들은 환호하며 마루의 액션을 바라봤다.
마루의 전투는 특히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는 했는데, 스스로를 B급 A형의 기준에 맞춰서 움직이기 때문일까?
감히 눈으로 따라잡을 엄두가 안 나서, 따로 슬로우를 따야 하는 고위 헌터들과 달리, 마루는 순수 플레이 영상을 그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변은 고속으로 돌아가고 있건만, 그 혼자만은 정상 속도로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나왔다아아아! 미친 뇌지컬.
―방아쇠 당기면서 이미 다음 수까지 계산 끝내는 듯.
―다음 수? 적어도 10수는 본다.
―100수 아님?
―백수라고?
마루의 액션을 보고 있노라면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본인들도 이게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묘하게도 마루의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기이한 용기를 북돋아 주고는 했던 것이다.
실제로 비각성 헌터들 중, 마루의 건가드를 보며 관련한 공부를 밑바닥부터 다시 닦는 이들이 상당했는데, 개중 몇몇은 정말로 나름의 성과를 얻은 경우도 있었다.
지금 촬영되는 영상처럼, 마루가 보여 주는 건가드는 따로 어택이라 불릴 정도로, 기존의 개념은 몇 단계는 훌쩍 뛰어 버린 영역을 보여 주고 있는 터라,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됐던 것이다.
관련 자료를 분석하는 영상도 상당했고, 이를 토대로 새롭게 건어택을 위한 품새도 다방면에 걸쳐 제작 중이기도 했다.
이번 영상 역시 그들의 학구열을 불태울 터였다.
타타타탕….
요란한 총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마루는 단순히 총을 쏘는 정도로 끝내지 않았다.
습격자들은 품 안으로 날아드는 동그란 물건을 바라봤다.
‘수류탄?’
어느 틈에 빼 들었던 것일까?
다급히 피해 보려 하지만, 마루의 총탄이 수류탄을 정확히 저격했다.
퍼어어엉!
바로 코앞에서 터진 폭발이었다. 피할 재간도 막을 재주도 부족했다.
몬스터와 달리 차원 방벽이 없는 인간이기에, 오히려 이런 공격이 더욱 효과적이었는데, 포스를 둘러 막아 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터라, 어찌 방비해 낸 이들도 기력이 쭈욱 빠지며 이어지는 저격에 몸을 내어 줘야 했다.
당연하게도 커뮤니티도 난리가 났다.
―워… 영화처럼 수류탄 저격하면 터지는구나.
―저게 쉬운 게 아님. 기폭제를 정확히 맞춰야 하는 건데, 저 난전에서 그 작은 부위를 노려서 맞춘다고? 진짜 저건 말도 안 되는 거다.
―저런 게 건어택의 무서운 점이지. 별것 아닌 것처럼 해내서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하나하나 뜯어 보면 죄다 말이 안 되는 것투성이거든.
―그냥 미친놈임!
―인정!
신기한 건 저렇게 던져 대는 수류탄의 숫자였다.
―대체 저 많은 게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4차원 주머니라도 있나?
―설마, 아공간?
―스킬은 말도 안 되고, 아티팩트?
그런 의문이 샘솟는 찰나, 기이한 장면 하나가 화면에 잡혔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르는 순간 어느새 수류탄이 허공에 솟구치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에서 힌트를 얻은 듯, 몇몇이 마루의 이명을 언급했다.
―트랩퍼!
―이미 작업을 끝내 놨구나.
―런던에 생활도 한 달가량은 되니까.
그들의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았는데, 앞서 클레어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각종 함정과 마찬가지로, 마루는 거리를 거닐었던 그녀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각종 장비들을 런던 곳곳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사자유희!
바로 그 특별한 아티팩트의 활약이었다.
머릿속으로 완벽히 구현된 런던 지도를 따라 세세하게 지시를 내렸고, 사자유희는 이를 쫓아서 다양한 설치들을 한 것이다.
액션만 취하고 아공간에서 뽑아내도 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보고 배우길 원했다.
건가드의 변형 건어택이 새롭게 꾸며지듯, 그를 통해서 비각성 헌터들의 터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활력이 깃들기를 바라기에, 아이언슈트나 트랩퍼가 아닌 건어택으로 활약할 땐, 최대한 저들이 인지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리튜브로 연공법을 풀었다지만, 이를 통해서 어디까지 각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기에, 그 나름대로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 놓고자 했다.
특히, 상대가 랭커급의 괴물이 아닌 만큼, 건어택의 능력치만 놓고서도 판을 휘어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랭커급이라….’
마루의 뇌리를 스쳐 가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데자르!’
분명, 이 피비린내 나는 행사의 주최자로서, 어딘가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으리라.
마루의 한쪽 시야가 사자유희 특유의 스코프로 넘어가고, 자연스레 런던 시내를 쭈욱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시계탑!’
목표물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