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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170화 (170/424)

00170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꼬르륵.

윤권이를 허수아비마냥 세워두고 시연이와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는데 난데없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큰 덩치에 어울리게 배꼽시계 소리 또한 우렁찼다.

“어머. 배고프신가 봐요.”

“상수 형에게 연락받고 급하게 준비하느라 아침을 건너뛰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배고픔은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견딜 수 있다는 말인지, 배고픔을 ‘견뎌야 할’만큼 힘들다는 건지 애매한 말이었다.

“정말 괜찮아?”

“물론입니다. 배고픔을 견디는 건 군대에서 자주 했던 훈련 중 하나입니다.”

꼬르륵.

괜찮다고 했지만, 윤권이의 배는 타이밍 좋게 또 한 번 요동쳤다. 자기도 민망한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긴 110kg이 넘는 거구를 움직이려면 웬만큼 먹어서는 몸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갑자기 짠해지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너 밥은 먹고 다니냐?”

“밥은 아니고 주로 라면을 먹습니다.”

동생 말로는 실력 좋은 경호원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놀고먹는 백수. 주로 라면을 먹는다고 하니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나도 좀 출출하네. 뭐 좀 시킬까?”

출출하기는 무슨. 조금 전에 밥 먹고, 디저트로 사과를 먹던 중이었다. 그렇다고 돈도 없는 녀석에게 돈을 쥐여주며 혼자 나가서 먹고 오라고 하면 자존심 상해할 것 같고, 이럴 땐 민망하지 않게 같이 먹어주는 게 상책이다.

“네? 환자인데 시켜 드셔도 됩니까?”

“괜찮아. 환자복만 입고 있는 나일롱 환자야. 수술받은 것도 아니고, 검사를 해도 멀쩡해. 주변 사람들이 워낙 극성이라 퇴원 못 하고 있는 것뿐이야. 뭐 먹을까? 좋아하는 거 있어?”

“아니요. 저는 아무거나.”

“피자 먹을까?”

“네? 그것도 괜찮습니다.”

피자라고 하는 순간 녀석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아니면 치킨?”

“그것도 좋습니다.”

치킨이라는 말에 또다시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족발은 어때?”

“저는 다 괜찮습니다.”

족발이라는 말에 침이 꿀꺽 넘어간다. 윤권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하나만 시키기가 왠지 미안해졌다.

“그럼 셋 다 시키지 뭐. 시연아. 나 셋 다 먹어도 괜찮지?”

“음. 그래도 환자인데. 어휴. 알았어요. 대신 이번만이에요.”

역시 우리 시연이는 눈치도 빠르다. ‘조금 전에 밥 먹었는데 또 먹어요?’라는 식의 센스없는 대답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오예! 윤권아, 고맙다. 네 덕분에 포식할 수 있게 생겼다. 하하하.”

나는 절대 밋밋한 환자식에 질려서 웃는 게 아니다. 단지 윤권이가 민망해 할까 봐 애써 웃어주는 것뿐이다. 정말이다. 뭐, 오랜만에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솔직히 아주 조금 좋긴 하다.

“어떻게 시킬까요, 동수씨.”

“나는 괜찮은데 윤권이가 배고프니까 큰 걸로 시키자. 피자는 치즈크러스트 패밀리사이즈로. 족발은 특대. 그리고 치킨은 두 마리 치킨으로. 아저씨한테 무, 피클 많이 달라고 해줘.”

시연이는 다 안다는 듯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윤권이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입은 헤벌쭉 벌어져 빙싯거리며 웃고 있었다.

후릅후릅 쩝쩝. 후르릅 쩝쩝쩝.

음식이 도착하자 윤권이는 정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는다는 말이 어떤 건지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정신없이 먹어대기 시작했다. 나도 어디 가서 못 먹는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녀석의 엄청난 먹방을 구경하느라 식욕까지 잊(?)어버릴 정도였다.

“윤권아. 체할라. 콜라 좀 먹어가며 먹어.”

“네. 감사합니다.”

꿀꺽꿀꺽.

후릅후릅 쩝쩝. 후르릅 쩝쩝쩝.

윤권이는 내가 건네는 1.25리터 콜라를 단숨에 반 이상 마시고는 또다시 먹방을 계속했다. 피자 패밀리사이즈, 족발 특, 치킨 두 마리를 먹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분. 이 녀석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경이적인 속도였다.

“더 시켜줄까?”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정신없이 먹었죠?”

“아니에요. 그렇게 잘 드시니까 듬직해 보이세요. 많이 드시고 우리 동수씨 잘 지켜주세요.”

듬직해 보인다는 말에 울컥했다가, 뒷말을 듣고 금세 마음이 풀어졌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낯설지만, 이런 낯설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물론입니다. 형수님. 신명을 바쳐 동수 형님을 지켜내겠습니다.”

“신명은 무슨. 몸은 사려 가며 지켜. 몸 안 다치고 지킬 자신 없어? 자신 없으면 이야기해. 다른 사람 찾아볼 테니까.”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 위험하다 싶으면 같이 도망가면 돼. 난 그런 거 비겁하다고 생각 안 해. 그러니까 너나 나나 항상 안전이 최우선이다. 진정한 보디가드는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게 아니라, 의뢰자를 끝까지 안전하게 수행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강한 거다. 내 생각은 그렇다. 조금 비겁해 보여도 안 다치고 무사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윤권이는 왠지 우직해 보여서 이렇게 말을 안 해놓으면 몸은 안 사리고 경호 임무를 수행할 것만 같았다. 내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녀석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물고기가 나의 낚싯줄에 걸렸다.

“네.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역시나 튀어나오는 사극 톤의 말투. 처음에는 약간 이상했지만 자꾸 들으니 은근 중독성이 있다.

“그런데 윤권아. 넌 경호원을 왜 그만둔 거야?”

이혼한 사람에게 왜 이혼했냐고 묻는 게 실례인 것처럼 회사 그만둔 사람에게 왜 그만뒀느냐고 묻는 것도 실례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윤권이와 계속 함께할 고용인이다.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게는 경호원으로서 결격사유가 될만한 안 좋은 성격이 하나 있습니다.”

“결격사유? 그게 뭔데?”

“바람 피우는 사람을 보면 가만있지를 못합니다.”

“뭐? 의뢰인이 바람피우는 모습에 발끈해서 사고라도 친 거야? 설마 때린 건 아니지?”

경호원이 뭔가? 경호 대상자의 신변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의뢰인을 보호하기는커녕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오히려 위해를 가했다면 경호업체 입장에서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약간 겁만 줬을 뿐입니다.”

양아치도 아닌 저 순박한 녀석이 일반인을 함부로 때렸을 리는 없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를 가진 녀석이 얼굴을 굳히며 위협했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폭력 이상의 정신적 압박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것 말고 다른 결격사유는 없나요?”

조용히 듣고 있던 시연이가 물었다.

“네. 그걸 제외하면 최고의 경호원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럼 문제 될 게 없겠네요. 우리 동수씨가 바람피울 일은 없잖아요?”

“당연합니다. 형수님처럼 아름다운 분을 두고 바람을 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혹시라도 만약에 바람피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제가 다리 몽둥이를 확 분질러 버리겠습니다.”

저렇게 말하는 윤권이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든 아니면 다른 상처가 있든 뭔가 트라우마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내가 시연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팔 일은 없다.

다양한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호업체에서는 결격사유일지 몰라도 별것도 없는 대리 한 명을 수행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경력을 가진 게 윤권이니, 녀석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똑똑똑.

뼛조각조차 거의 남지 않은 깨끗하게 비워진 음식 그릇들을 정리하려는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아무 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윤권이가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뭔가 오글거리고 오버하는 것 같이 느껴졌지만, 지금부터 나의 안전을 지키는 게 그의 일. 나는 잠자코 윤권이의 모습을 지켜봤다.

녀석은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몸놀림으로 병실 문앞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우아하면서도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문이 열렸지만, 윤권이의 몸에 가려 방문한 사람이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뭔가 조용히 실랑이를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다.

우당탕탕.

“어이쿠.”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은 새로운 방문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믿음직해 보였던 성윤권 그 녀석이었다.

============================ 작품 후기 ============================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입니다. 비중이 있어서 페이지를 좀 할애했습니다. 활극을 넣겠지만, 양아치 세명도 못 이기는 주인공이 활극을 담당하면 뜬금없겠죠? 그래서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뜬금없는 등장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납치당할뻔 한 준재벌가 예비사위에게 수행원 하나 붙이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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