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2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좀 황당하긴 한데 당사자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어야겠죠. 그래도 제가 운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 그런데 빌딩을 판매하려면 절차가 복잡하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내일 중으로 동지마트 주식을 매입할 생각인데, 그렇게 되면 현금확보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 정도 편의는 봐 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담보대출 형식을 띠어야 하기 때문에 제가 선지급해드릴 수 있는 금액은 90억 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적대적 M&A나 그린메일을 하실 게 아니라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한 금액입니다. ”
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보유주식을 높은 가격에 팔아 프리미엄을 챙기는 투자자를 그린메일러(green mailer)라 하고, 이때 보유주식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대주주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달러가 초록색이어서 그린메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공갈·갈취를 뜻하는 블랙메일(black mail)의 메일과 미국 달러지폐의 색깔인 그린(green)의 합성어로 미국 증권시장에서 널리 사용한다.
나야 시세차익을 노릴 뿐 경영권 따위에는 능력도 관심도 없다. 설사 능력이 된다고 해도 동지그룹의 우산에서 떨어져 나간 동지마트는 그냥 규모가 큰 동네 슈퍼와 다르지 않다.
“지금 동지마트 주가와 시가총액은 얼마죠?”
나의 질문에 박 차장은 노트북을 열어 동지마트와 관련된 자료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음... 지금 현재 1,300원입니다. 동지마트의 총 발행주식이 총 8,000만 주니까 시가총액은 1,040억 원이군요.”
2,000원 언저리에서 놀던 주가가 1,300원까지 떨어졌다는 건 그만큼 용역비리의 후폭풍이 거셌다는 의미다. 그리고 땅값을 비롯한 부동산만 따져도 최소 4,000억 원이 넘는 기업이니 원래 가치보다 1/4이나 평가절하된 상태다. 부도만 맞지 않는다면 절대 손해 볼 일은 없다.
“그렇다면 5% Rule(주식대량보유공시제도)에 걸리지 않고 제가 사들일 수 있는 주식은 총 400만 주. 약 50억 원이 되겠군요.”
5% Rule은 상장법인 등의 발행주식을 5% 이상 새롭게 취득하는 경우, 5% 이상 보유자가 1% 이상 지분을 사거나 팔 경우, 그리고 주식대량보유목적에 변경이 있는 경우 5일 이내에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거래소에 보고하도록 한 제도이다. 1991년 12월 31일 상장법인의 경영권보호와 투자자보호가 조화되게 하기 위해 도입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거래소에 보고하면 동지그룹에도 그 사실이 알려진다. 내가 그런 거액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웬만하면 5% Rule은 지키고 싶었다.
“추가 지분을 원하신다면 우리 시민은행이 대행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자산운용에서 주식 투자는 가장 기본적인 업무입니다.”
그 말에 잠깐 혹했으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흠... 아닙니다. 욕심은 적당히 부리는 게 맞습니다. 주식은 빚을 내서 하는 게 아니라 여윳돈으로 하라고 사람들이 충고하더군요. 빌딩 사기 위해 60억 원을 대출받았으니 그것부터 갚는 게 맞습니다. 그렇게 해도 40억 원이 남습니다. 거기에 15억 원을 추가하면 제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만 55억 원입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네.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그럼 주식은 어떤 방법으로 매입하실 계획이십니까?”
“저 혼자 대량의 주식을 매입하려 든다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질 수 있으니, 그냥 박 차장님에게 맡기겠습니다. 대신 이번에 맡기는 돈은 동지마트 주식 매입에만 사용하셔야 합니다.”
지금 나는 동지마트의 총 주식에서 5%에 가까운 물량을 사려고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주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괜히 멋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쓸데없이 주가만 뻥튀기할 수 있다. 그러니 나 같은 어설픈 초짜보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훨씬 현명하다.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반드시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래 관리하던 105억 원에서 40억 원을 추가로 맡긴다고 했더니 박 차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
웅성웅성.
동지마트 송파점의 직원 휴게소는 옆 게시판에 붙은 공지사항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왜.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스러워.”
뒤늦게 휴게소에 온 호기심에 먼저 온 사람에게 물었다.
“뭐긴 뭐야. 공지가 떴으니 이러지.”
“무슨 공지인데?”
“내일 밤에 동지마트 전 지점 새 단장을 한데.”
“뭐? 내일? 아무런 말도 없다가 갑자기 무슨 리뉴얼이래?”
“뻔하지. 지금까지 한두 번 봤어? 웃대가리들 생각은 항상 똑같잖아. 보여주기식 행정. 지금 동지마트가 낡아 보이니 겉모습이라도 바꾸자. 이런 거겠지. 알맹이를 안 바꾸고 겉만 바꿔서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그걸 몰라. 한심한 놈들.”
“그럼 우리도 동원되겠네? 협력 업체는?”
“협력 업체는 절대 출입 금지래. 우리도 원하는 사람만 참여하라고 나와 있어. 대신 돈을 주고 전문적인 외주업체를 불렀나 봐.”
“뭐? 미쳤구나. 왜 그런 돈 지랄을 한데? 그냥 협력업체 직원들을 불러서 시키면 알아서 할 텐데.”
“에이. 그건 아니다. 다른 마트면 몰라도 그놈들이 우리 동지마트는 좀 무시하잖아.”
“그건 그렇지? 에잇 자존심 상해. 그런데 어떡할 거야? 리뉴얼 참석할 거야?”
“당연히 해야지. 총무팀, 물류팀 날아가는 거 못 봤어? 지금 잘못 보이면 우리도 그 꼴 날 수 있다고. 솔직히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딨어? 사소한 꼬투리라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잖아. 그러니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해야지.”
“귀찮게 생겼네. 그래도 하는 시늉은 해야겠지. 한 몇 달 굴리다가 안 되면 자기들도 알아서 포기하겠지. 어휴. 그때까지 어떻게 참지. 짜증 나.”
***
<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동지마트의 고현호 이사
최근 대기업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진 용역비리 사건으로 세상이 온통 시끄러웠다. 실제로 그 사건을 살펴보면 그들이 앞장서서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 기업 이사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비정규직 직원을 단순히 기계의 소모품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지 않았다.
만약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이번에 일어났던 엄청난 규모의 용역비리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법적 책임은 물을 수 없다고 해도 도의적 책임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해당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나태하고 오만한 그들에 대한 대중들의 준엄한 심판이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은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억울하다는 입장만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등 실망스러운 태도만 계속 보이고 있다.
그런데 오직 한 곳 동지마트만은 달랐다.
본 기자가 취재한 결과 이번 용역 비리 사건을 가장 먼저 인지한 곳이 동지마트였다. 지금까지 보여준 대기업의 행태를 생각하면 조용히 덮었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동지마트는 달랐다.
용역비리를 인지하자마자 조용히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 사건이 조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동지마트의 그런 적절한 판단 덕분에 비정규직 직원들의 등골을 빼먹던 현대판 노예상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용역업체 일당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동지마트는 단순히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는 것으로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용역비리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즉각적으로 피해규모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는 총 1,500여 명. 피해액은 약 25억 원 규모. 경영 실적 악화로 적자로 돌아선 동지마트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만약 회사 돈으로 피해를 보상한다면 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
이곳 동지마트의 새로운 책임자인 고현호 이사(동지그룹 총수인 고대성 회장의 삼남)는 지금껏 우리가 보아왔던 재벌 2세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바로 자신의 사재를 털어 피해자에게 선 보상을 한 것이다. 아무리 재벌가의 자식이라고 해도 25억 원은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게다가 가해자들로부터 피해액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그 돈을 고스란히 날릴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고현호 이사는 그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고 보상액 지금을 마무리 지었다.
그동안의 관리 소홀로 용역 비리가 일어난 것은 분명 동지마트의 과실이다. 그러나 이후의 조치는 다른 어떤 대기업과 달리 진정성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불매운동의 여파로 안 그래도 힘든 경영 상태가 더욱 악화된다면 앞으로 누가 동지마트와 같은 선택을 할까?
지금도 어떠한 변명도 없이 묵묵하게 대중들의 비난을 받아들이고 있는 동지마트에게 이제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
- 대박사건. 이게 진짜야? 아니면 지금 위기를 탈출하려는 쇼야?
- 이 기사 사실입니다. 우리 엄마가 동지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데 백만 원이 넘는 보상금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매달 꼬박꼬박 세금처럼 떼가는 수수료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우리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회사에서 보상해줬다고 생각했는데, 고현호 이사라는 사람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런 재벌만 있다면 정말 살만한 세상일 텐데요. 그게 참 아쉽네요. 혹시라도 윗님처럼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일부러 글 남깁니다.
- 우와. 기사가 사실인가 봐요. 정말 멋집니다. 고현호 이사. 응원할게요.
- 동지마트 대박나세요.
- 동지마트 처음 들어보는 데 어디 있나요? 가까이 있으면 앞으로 거기만 이용하겠습니다.
- 가슴 따뜻한 재벌 2세라니 멋지네요. 혹시 미혼일까요?
- 미혼이면 어쩌게? 설마 결혼이라도 하게? 마음이 따뜻해도 남자는 다 똑같거든. 못생긴 오크년들은 쳐다보지도 않아 그러니 헛물켜지 말고 주제 파악이나 해.
- 위에 사람 말이 심하네요. 하지만 남자는 다 똑같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은 동감.
- 동지마트. 우리 집 앞에 있는데, 솔직히 시설이나 그런 건 좀 구려요. 그런데 책임자가 바뀌었다고 하니 기대합니다. 자주 애용할게요.
- 하악하악.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재벌 2세가 현실에서도 존재하다니. 저 남자 이제 내 거야.
- 여기 정신병자 한 명 추가요.
- 여기 정신병자 두 명 추가요.
- 쯧쯧. 그러고 놀면 재미있냐? 여기 정신병자 세 명 추가요.
- 혼자 있고 싶습니다. 전부 나가주세요.
============================ 작품 후기 ============================
이제 본격적으로 동지마트 회생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공감할 수 있었으며 좋겠는데, 저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는 길에 선추코 3종 세트 부탁드려요. 쿠폰도 남은 게 있으면 한두어장 투척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