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5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임시 이사회 때문에 작은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한동안 겉돌던 이야기가 비로소 본론으로 접어들었다.
“그 말은 들었지. 정호가 발의를 했다더구나.”
“왜 열리는지도 아십니까?”
“지금 네 옆에 있는 녀석이 꽤 큰 사고를 친 모양이더구나. 간도 크지.”
“설마 소문을 믿으시는 겁니까?”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 법이지.”
“요즘은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많이 나더군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사람들이 그걸 믿느냐가 중요하지. 이미 그룹 내에서는 기정사실처럼 알려져 버렸잖아. 소문이 이 정도까지 퍼져버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에는 관심이 없어. 원래부터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게 인간이라는 족속이거든. 이쯤 되면 아니라는 게 밝혀져도 마 팀장의 결백을 믿기보다 뭔가 뒷거래가 오갔다가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걸?”
“그건 별로 상관없습니다.”
“상관이 없다? 그럼 이미 대책을 세워놨거나 아니면···. 이런! 어쩐지 소문의 확산이 빠르다 했더니 일부로 방조한 거였군.”
역시 고진성 부회장의 눈치는 빨랐다.
“방조까지는 아니지만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 건 맞습니다.”
“그게 그거지. 약았군, 약았어. 이런 짓을 현호 네가 할 리는 없고, 마동수 팀장 자네 짓이군 그래.”
“잘 보셨습니다. 부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본인을 미끼로 사용하다니 대단한 자신감이군 그래.”
“자신감 때문이 아닙니다. 위험부담이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태를 해결할 자신이 있으니까 소문을 수습하지 않고 내버려 둔 거 아닌가?”
“그건 맞습니다. 저 혼자만 관련된 게 아니라 약혼녀까지 연관이 되었는데 대책 정도는 마련해둬야죠.”
“그럼 그 문제로 나를 찾아온 건 아닌가 보군. 임시 이사회 때문에 왔다고 해서 혹시나 했거든.”
“그건 아니지만, 뭔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찾아온 건 맞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별다른 도움이 필요 없다고 큰소리 빵빵 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비자금 조성의 배후가 고진성 부회장인 걸 밝혔을 때 우리는 그에게 자금 회수와 추가투자 요청 이렇게 두 가지만 요구했을 뿐 다른 부탁을 하지는 않았다. 그 약속만 확실하게 지켜진다고 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충분히 자신감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동지마트의 매출은 매달 엄청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찾아온 건가? 지금 나를 찾아왔다는 건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할 게 있어서가 아니었나?”
“솔직히 말씀드려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온 건 맞습니다. 조금 돌아가야 할 길, 부회장님의 도움을 받아 질러가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그렇다고 뻔뻔하게 생떼를 쓰려고 온 건 아닙니다. 동지그룹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싶어서 찾아온 거니까요.”
“잘못된 관행? 그게 뭔데?”
“동지마트는 대형할인마트입니다. 다양성과 가격경쟁력 확보가 생명인 곳이죠. 그런데 동지 바이오와 동지 오피스의 경우 같은 계열사임에도 불구하고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이 적다는 이유로 경쟁업체보다 공급가를 높게 받고 있습니다. 더욱 재미있는 건 이런 가격 차별이 최근에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그래 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동지마트를 처음 런칭하던 초창기부터 계속 그런 일이 있어 왔습니다.”
“뭣이? 그 말이 사실인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조사를 해보니 같은 계열사라서 이득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몇몇 프로모션을 통해 대폭적인 가격할인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른 경쟁 마트에 비해 불리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 받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 여전히 가격적으로 불리함을 안고도 매출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그냥 동지 바이오와 동지 오피스에게 공급가격 수정을 요청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두 회사에 거래중단을 선언하고 타사의 경쟁업체에 독점권을 주고 가격을 맞췄습니다. 꼼수긴 해도 그 덕분에 다른 경쟁 마트와 가격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허허허. 꼼수이긴 한데 그들로선 뭐라고 할 명분이 없군. 하지만 동지마트가 같은 계열사 제품을 팔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분명 문제가 생길 거야.”
“그래서 제가 이사님을 졸라 부회장님을 찾아뵌 겁니다. 아무리 후계자 경쟁에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해도 그 경쟁에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야지 제 살 깎아 먹기가 되면 어느 정도의 개입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더욱이 그 가격문제는 동지마트 초창기부터 있었던 문제였습니다.”
“흠···.”
내 말을 듣던 고진성 부회장은 고민이 되는 듯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이런 모습이 관행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지 동지마트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후계자 경쟁이라는 정치적 논리가 다른 계열사 간의 거래에서도 개입된다면 동지그룹 전체의 경쟁력에 치명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부회장님이 나서셔서 최소한의 룰을 만들어 주시면 제 살 깎아 먹기식의 막무가내 경쟁은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런데 다른 경쟁 업체와 독점 계약을 했다면서?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나?”
“단기 계약일 뿐입니다. 독점 판매하기로 한 계약기간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참. 아까도 말했지만, 확실히 약았어. 동지 바이오와 동지 오피스가 이미 백기 투항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일부러 독점 계약기간을 짧게 잡은 거군.”
“제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예상했겠습니까? 단지 장기적으로는 동지 바이오와 동지 오피스 제품을 팔아야 더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좋네. 그 일은 내가 해결하지. 동지마트 초창기부터 공급가격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니 다행히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은 있어. 하지만 이번 한 번뿐이네. 다음에도 비자금 핑계로 은근슬쩍 다른 부탁을 해온다면 그땐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
고진성 부회장이 불쾌한 얼굴로 두 계열사의 사장을 호출하자 회의 분위기는 차갑게 내려앉았다. 고정호 전무나 고평호 상무도 그의 독단적인 결정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 고진성 부회장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마땅한 명분이 없다 보니 꿀 먹은 벙어리처럼 불만어린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내가 한마디만 더하지. 서로 경쟁하는 건 좋아. 하지만 그 경쟁으로 인해 그룹에 손해를 끼친다면 나는 절대 그걸 묵과할 생각이 없어. 나는 누가 마지막에 살아남을지 관심이 없어. 내 관심은 오직 동지그룹의 발전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네.”””
“그래. 다들 알아들은 것 같으니 회의 계속해. 박 이사.”
“네. 부회장님.”
“아까 하던 이야기 계속하지.”
“아··· 알겠습니다. 에··· 그러니까. 감사팀의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가 과연 마동수 팀장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고진성 부회장의 난입(?)으로 기세를 완전히 잃어버린 박 이사의 말에는 아까와 같은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뭡니까?”
“D&Y 피트니스 클럽 런칭을 위해 동지그룹과 윤 스포츠센터가 맺은 계약서는 신뢰할 수 없는 마동수 팀장이 주도한 계약입니다. 그리고 윤 스포츠센터가 마동수 팀장에게 3억 원이라는 돈을 줬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계약 자체가 명백히 무효입니다.”
“돈을 줬다는 건 명백한데, 그 돈에 대가성이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시간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약혼 시기만 늦었을 뿐 두 사람은 그때 이미 교제를 하고 있었는데 있었습니다.”
“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건 윤시연 양이 동지랜드 광고 모델로 활동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그 시기는 마동수 팀장이 동지랜드에 근무하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꼭 이것만이 아니라도 윤시연 양이 쓴 ‘그에게 내 마음을 담이 보낸다.’라는 책에서 등장하는 연인이 마동수 팀장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3억 원에 대가성이 있었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윤 스포츠센터에 유리하도록 계약서가 작성된 것도 아닌데요?”
“크흠. 그··· 그렇다고 해도 마동수 팀장이 동지그룹 소속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도대체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지지부진하던 윤 스포츠센터와의 합작을 이끌어 낸 걸 말입니까? 아니면 폐업 직전의 동지마트를 다시 살려낸 걸 말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동지랜드도 마동수 팀장의 손을 거치면서 요즘은 꽤 재미를 보고 있다지요? 그런 인재를 보고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본인의 말실수로 곤욕을 치렀던 강 이사가 박 이사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원래의 분위기였다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회의를 지켜봐야 했으나 고진성 부회장의 개입 덕분에 심기일전할 수 있었다.
“강 이사님. 지금 강 이사님 말씀에는 큰 어폐가 있습니다.”
강 이사의 논리적 반박에 박 이사가 크게 당황하자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조 이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떤 어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조 이사님.”
“여기서 중요한 건 마동수 팀장의 공로가 아닙니다. 아무리 학생을 잘 가르치는 교사라고 해도 학생을 성추행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 교사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세운 사람이라도 살인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고요. 마동수 팀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업무 성과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십니다. 저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윤 스포츠센터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대가성이 있든 말든 찝찝하지 않습니까? 저는 예전처럼 그를 신뢰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동지그룹과 윤 스포츠센터 사이의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순 없어도, 우리가 그를 믿고 일을 믿기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왜 같은 말을 반복하십니까? 대가성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증거가 있든 말든 예전처럼 신뢰할 수 없는 건 사실 아닙니까? 그런 사람을 동지마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TF팀 팀장에 계속 둔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번 임시 회의는 동수에 대한 개인징계가 아니라 D&Y 피트니스 클럽에 대한 계약을 백지화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계약서 백지화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 그룹 수뇌부가 모여 고작 계열사 팀장 하나를 징계한다면 그건 명백한 시간 낭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 이사회를 발의한 고정호 전무 측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회의를 끝내는 게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동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일이 있어서 어제 하루 쉬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ㅜ
연재 속도를 올리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안 되는지. 글쓰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네요. 저도 막 연참도 하고 그러고 싶어요. ㅠ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