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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가 전부는 아니야-347화 (347/424)

00347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다른 동북아시아 국가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려는 이유는 결국 중국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기업의 도움이 필요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우리 D&Y 피트니스 센터나 다나카 아크로바틱과 같은 회사와 제휴를 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이 두 기업은 냉정하게 따져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회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준비를 철저하게 한 만큼 정지영 과장의 프레젠테이션은 굉장히 매끄럽고 알찼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관계자들도 상당히 호의적인 태도를 그녀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반응 덕분인지, 정지영 과장은 굳었던 표정도 풀리고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가장 중요한 대목을 남겨둔 지금, 서두르지 않고 테이블에 놓인 냉수를 머금으며 세미나룸을 천천히 둘러보는 여유로움까지 보였다.

그녀의 발표로 조세핀 스톤 이사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최선을 다한 정지영 과장의 모습은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두 회사에 관심을 보인 건 바로 동북아시아 국가의 아이들 대한 높은 관심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뭘 말입니까?]

또다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자 월드 베리어스 클럽 관계자 한 사람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중국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왜 다나카 아크로바틱을 선택했느냐는 점입니다.]

[그건 다나카 아크로바틱 신드롬이 일본에서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셔서 하는 소리입니다. 중국과 일본이 완전히 똑같을 순 없겠지만 자녀들의 키에 대한 관심은 두 나라 다 비슷했습니다. 현지 조사 결과도 상당히 긍정적이었고요. 미취학 자녀들이 있는 중국인들 중 다나카 아크로바틱의 프로그램이 있다면 아이를 보내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이 70%가 넘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도 충분한 성공 가능성을 보고 제휴를 시도하고 있는 겁니다.]

조세핀 스톤 이사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상당히 고위직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리서치 결과까지 제시하며 정지영 과장의 발표에 반박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돌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분한 웃음으로 그의 발언을 끝까지 듣고 있었다.

[키에 대한 관심. 물론 높습니다. 운동을 통해 키가 클 수 있다면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동북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 키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입니다. 유교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덕분이죠.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무조건 자리에 앉혀 공부를 시키는 걸 최고로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문무겸전(文武兼全)이라는 말을 아주 큰 칭찬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건 곧 건강함과 학문에 대한 배움 두 가지 모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D&Y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그런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는 의미인가요?]

[그럼요. 두 가지 모두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 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쇼소와 달리 아동 스포츠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외국어를 배우고, 스포츠를 통해 산수를 배우고, 스포츠를 통해 예의범절과 규범을 배울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게 바로 아이 두입니다. 그 모든 것이 D&Y 피트니스 센터의 파트너인 윤 스포츠센터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고, 그 덕분에 ‘윤’이라는 네이밍 명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쇼소 또한 시간이 지나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될 겁니다. 충분한 잠재력을 갖췄고, 우리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돕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미국의 저명한 아동 행동학 전문가인 피터슨 박사가 쇼소에 대해 언급해놓은 내용이 있습니다. 혹시 읽어 보신 분 계십니까?]

정지영 과장의 기습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터슨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학적으로 봤을 때 쇼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확실히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것 보세요. 쇼소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오직 키를 키우는 목적으로 운동을 가르친다는 건, 아이들을 매우 편협하게 만들 수 있다. 세상은 키가 큰 사람이 있는 반면 작은 사람이 있고, 백인이 있는가 하면 흑인도 있다. 남자와 여자, 마른 사람과 뚱뚱한 사람, 잘 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 이렇게 다양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곳이 세상이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키가 크는 게 마치 최고의 과제인 것처럼 그것만 전문적으로 가르친다면 그 아이들은 키가 작은 친구를 실패자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쇼소가 가지고 있는 효과가 탁월하다고 해도 모든 아이들이 효과를 보기는 힘들다. 만약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키가 크지 못한다면 어릴 때부터 열등감과 열패감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키 크는 운동은 부수적이어야 하지 절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

피터슨 박사의 논리는 누가 들어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그녀의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세미나 룸은 침묵으로 휩싸였다.

[정지영 과장이라고 했나요?]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자 지금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조세핀 스톤 이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네. 이사님.]

[발표 아주 잘 들었어요. 특히 우리가 모르고 있던 부분을 아주 예리하고 짚어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확실히 생각해볼 문제네요. 어떻게 보면 키에 대한 차별이죠. 아시아에서는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자칫 인권침해로 불거질 수도 있어요.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본사가 미국에 있는 만큼 중국인들이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면 그것도 꽤 골치 아픈 일이겠죠. 그렇담 어떻게 해야 한다···.]

분명 우리가 노렸던 부분이고, 조세핀 스톤 이사도 그 문제점을 인정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에 우리뿐만 아니라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관계자들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 그런데 약점을 몰랐을 때는 약점이 되겠지만 약점을 알게 되면 고치면 그만입니다. 쇼소의 유아 성장 프로그램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입증이 됐고, 그렇다면 정지영 과장이 말할 것처럼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사용하면 그만입니다. 이제 곧 제휴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계약을 포기할 만큼의 결정적인 문제점이라고는 생각되진 않는군요. 물론 D&Y 피트니스 센터의 아이 두도 매력적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월드 베리어스 클럽은 좀 더 괜찮은 친구가 생겼다고 지금 친구를 버리는, 무책임한 기업이 아닙니다. 아쉽지만 오늘 면담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아···!]

그녀의 말이 끝나자 우리는 아쉬운의 탄식을, 월드 베리어스 클럽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조세핀 스톤 이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D&Y 피트니스 센터와 제휴하자고 구두로 약속하긴 했지만 동지마트에 집중하느라 한동안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건 우리였다. 때문에 우선권은 다나카 아크로바틱에 있는 게 사실이다.

여러 가지 통계자료로 아이 두가 쇼소보다 더 나은 점을 입증해도 저렇게 원론적인 이야기로 거절해버린다면 우리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일단 여기서는 물러날 수밖에···.

[그리고 미스터 마.]

[네. 조세핀 이사님.]

[잠깐 저 좀 보고 가시죠.]

[알겠습니다.]

오늘 발표를 위해 정말 고생을 많이 한 정지영 과장을 다독이며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조세핀 스톤 이사가 잠시 나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데려간 곳은 숙소로 보이는 호텔의 스위트룸. 호텔 방에 단둘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설마 이 여자가 나를 유혹하는 건?’ 이런 상상을 하며 긴장했지만, 스위트룸에 들어서자 조세핀 스톤 이사의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등장해 나의 몹쓸 상상력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앉아요. 커피 한잔 하실래요?]

[아닙니다. 긴장을 했더니 목이 타네요. 시원한 냉수 한 잔 부탁드립니다.]

[호호호. 긴장은 왜 했어요? 설마 내가 잡아 먹을까 봐?]

아찔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확실히 방심할 수 없는 여자였다.

[아니요. 오늘 면담에 어떻게 될지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그랬습니다.]

[그래요? 뭔가 자존심이 상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네요. 음흉한 시선으로 나를 보지 않는 남자를 만나서 그런 가봐요. 역시 시연씨 덕분이겠죠. 그렇게 아름다운 애인이 있는데 나 같은 노땅이 눈에 들어오겠어요?]

[그럴 리가요? 이사님께 사심이 생기지 않는 건 시연이 덕분인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사님도 시연이 못지않게 매력적이십니다.]

[그럼 시연씨가 없었다면 나를 여자로 봤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네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장난스럽게 코를 찡긋거렸다. 그 모습조차 매력적인 걸 보면 확실히 요물은 요물이었다.

[시연이가 없다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조세핀 스톤 이사의 페이스에 말리기 싫어서 조금 도도한 대답을 했다. 게다가 그녀라면 왠지 이런 대답을 원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호호. 역시 미스터 마 다운 대답이네요. 그래서 더 믿음이 가기도 하고. 아무튼, 내가 여기서 보자고 한 이유는 오늘 면담 때문이에요. 서운했죠?]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이사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만약 우리가 다나카 아크로바틱의 입장인데,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다른 곳과 제휴를 맺어버린다면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이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아까 제가 말한 대답은 그냥 원론적인 이야기였어요. 정지영 과장이 프레젠테이션한 아이 두의 모습은 정말 충분히 매력적이었어요.]

[그러셨다면 다행이군요. 그런데 뭔가 다른 문제가 있나 봅니다.]

[지금쯤이면 미스터 마도 알았겠죠.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회장과 저의 관계를요.]

[에저튼 가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역시 알고 있었군요. 네. 맞아요. 미스터 마의 상사인 고현호 상무와 우리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은 굉장히 가까운 사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회장님의 반대파인 제가 미스터 마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었어요.]

내가 조세핀 스톤 이사에게 어떤 호감을 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정말 미안한 얼굴로 월드 베리어스 클럽의 속사정까지 이야기해줬다. 너무 미안해해서 내가 오히려 미안해할 지경이었다.

[기업이 경제적 이해득실이 아니라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한국에서는 꽤 많습니다. 이사님의 입장 충분히 이해하니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미스터 마의 상사가 우리 측과 손을 잡을 일은 없겠죠?]

[물론입니다. 만약 그럴 사람이었다면 제가 상사로 모시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가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인간미거든요.]

[그렇군요. 어쨌든 아쉬워요. 중국 시장 진출은 제 담당이기 때문에 같이 일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말이죠.]

[너무 낙담하진 마십시오. 같이 일하게 될지도 모르죠.]

[네?]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세핀 이사님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할 만큼, 저 그렇게 근성 없는 남자 아닙니다.]

미녀 앞에서 부리는 약간의 허세일 수도 있지만, 월드 베리어스 클럽과의 제휴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제휴 당사자는 두 곳이다. 월드 베리어스 클럽이 실패했다면 다나카 아크로바틱을 흔드는 방법도 있다. 아직 확실하게 이거다 싶은 방법이 없는 게 문제지만···.

[와···! 그 기백 마음에 드는데요.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일하게 되기를 기대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저도 같이 일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세핀 스톤 이사와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눈 나는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세미나 룸으로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살짝 느슨했죠?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됩니다.

기대해주세요.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선추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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