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8 소제목 추후 결정 =========================================================================
(제 글에서 등장하는 상호와 이름들은 현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세미나 룸으로 돌아오자 정지영 과장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나를 맞았다. 오늘 결과에 실망해 낙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런 아쉬움은 이미 털어버리고 원래의 장난끼 가득한 그녀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다니?”
질문의 요지가 뭔지 알았지만 나는 모른 척 물었다.
“조세핀 스톤 이사와 팀장님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말이에요. 난 또 둘이서 밀회라도 즐기고 오는 줄 알았죠.”
“뭐야? 질투라도 하는 거야?”
“에엑? 질투라니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제가 팀장님을 왜 질투해요?”
“아님 말어. 꼭 질투하는 마누라처럼 바가지 긁길래.”
“어머머. 기가 막혀. 질투하는 마누라라니···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정 과장아.”
“네. 팀장님.”
“그렇게 애쓸 필요 없어.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정 과장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 거든. 그러니까 괜히 밝은 척 애쓰지 마. 그냥 시무룩하게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그럴 사람 없어.”
처음에는 우울한 마음을 금방 털어낸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그녀를 지켜보니 평소의 분위기와 달랐다. 뭔가 과장된 표정으로 애쓰는 듯한 느낌?
“쳇! 민망하게 시리 그걸 또 그렇게 딱 알아보세요. 아무래도 팀장님과 오래 일 못 하겠어요.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파악하셨어. 죄송해요. 정말 한다고 했는데, 조세핀 스톤 이사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부족했나 봐요. 같이 고생한 여러분들에게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아니에요. 과장님.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영어도 일본어도 못해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그냥 과장님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드린 것 같아요. 역시 본사에서 일하기에는 부족한 가 봐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그동안 미래씨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만약 미래씨가 아니었다면 오늘 같은 발표 준비조차 못 했을 거야.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그래도 외국어를 할 줄 알았다면 더 도움이 됐을 텐데요.”
“그게 어디 미래씨 때문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맡은 팀장님 잘못이지. 솔직히 나도 일본어는 못한다고. 우리 팀에서 일본어 할 줄 아는 사람은 팀장님뿐인데 어떻게 일본에 출장올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어휴···.”
이번 면담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해 서로 위로를 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어이. 이봐들. 서로 쿵짝이 맞는 건 좋은데, 왜 나를 걸고 넘어져? 나도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됐거든요. 팀장님 선에서 못하겠다 커트했어야죠. 팀원들의 역량을 파악해서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도 팀장님이 해야할 일 중 하나라고요. 그래놓고 혼자서 신나게 미녀랑 놀고 오고, 정말 너무하세요!”
“놀고 온 거 아니거든!”
“됐거든요. 일하다 온 것도 아니면서. 정말 희한해. 팀장님이 아주 매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윤 작가님이나 조세핀 스톤 이사 같은 초특급 미녀들이 관심 보일 정도의 급은 아닌데. 왜 이렇게 줄줄이 엮이는지, 원.”
“그래. 계속 씹어라. 내가 나쁜 놈이다.”
“에이. 여기서 포기하면 재미없죠. 실망이셔. 흥! 그런데요, 팀장님. 진짜, 조세핀 스톤 이사는 팀장을 왜 부른 거예요?”
“정 과장 프레젠테이션은 매우 훌륭했는데···.”
“훌륭했데요? 그런데 왜 우리 제안을 거절한 거래요?”
자신의 프레젠테이션이 훌륭했다고 하자, 정지영 과장의 얼굴에 처음으로 화색이 돌았다.
“정치적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나 봐. 조세핀 스톤 이사가 더글라스 애리얼리 회장의 반대파거든. 그래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미안해하더라.”
“그렇죠? 그런 거죠? 그럼 제 프레젠테이션 문제가 아니라는 거네요?”
“그렇지. 정 과장 발표는 정말 훌륭했어. 그러니까 기죽지 마.”
“호호호.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가만···. 그런데 그 여자는 그 이야길 왜 팀장님에게 하는 건데요? 이거 정말 수상해지는데요?”
“쓸데없는 상상하지 말고 인제 그만 숙소로 돌아가자.”
“어! 말 돌리는 거 봐.”
“말 돌리는 게 아니라 말 할 가치가 없는 거야.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근처에 있는 온천에서 몸이나 푹 담그고 오자. 내가 특별히 료칸 정식요리가 유명한 곳으로 예약해뒀어.”
“네? 료칸 정식요리요? 그거 비싼데···.”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비싼 거 먹어도 돼.”
“우와! 좋아요. 좋아. 호호호. 팀장님이 쏘신다고 하니까 거절하진 않겠어요.”
오늘 면담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 회식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떡밥이지만, 그 사실을 알 길 없는 두 여인은 신이 나서 호텔 로비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 건.
(혹시 마동수 팀장님 되십니까?)
***
꼼수 마케팅
도서출판 길벗
지은이 : 마동수
엮은이 : 추미래.
제1장. 마동수 이사님에 대한 기억.
내가 정리한 분량이 꼼수 마케팅의 1/10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엮은이 자격으로 이렇게 첫 장을 열게 되어도 되는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마동수 이사님의 격려 덕분에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그냥 별다른 희망없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흔한 계약직 직원 중 하나였다. 그런 내가, 고작 고졸의 학력으로 동지마트에 입사했던 내가, 동지그룹 마케팅부의 대리로서 당당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마동수 이사님과의 우연한 만남 덕분이었다.
아낌없이 나눠주시던 인생의 부모님 같은 존재이며,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스승이자 멘토였던 마동수 이사님. 내가 그분을 만난 건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행운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처음에는 이사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학 졸업장도 없는 나를 동지마트 TF팀 팀원으로 뽑아 하나부터 열까지 다정하게 알려주는 모습에, 나에게 마음이 있는 거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분의 약혼녀이자 지금은 나의 둘도 없는 베스트 프랜드인 시연이를 만나는 순간 나는 바보 같은 오해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심없는 호의에 감사하며 존경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곁에서 지켜봤던 그분이 보여준 무수한 기적들 덕분에, 이사님을 향한 마음은 존경심을 넘어 내게는 신앙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기상천외했고, 가끔은 짜릿했고, 또 가끔은 전율과 반전이 있는 스릴러를 보는 기분일 때도 있었다. 물론 ‘이게 대체 말이 돼.’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엽기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마동수 이사님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했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건, 그런 행복한 시간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회사 기밀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공개할 수 없는 내용도 있고 아쉽게도 우리만 아는 이야기로 조용히 묻어야 할 사실들도 있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에피소드는 모두 100% 진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계속 읽게 된다면, 아마 여러분들은 마동수 이사님이 펼친 놀라운 기적의 향연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꼼수 마케팅 이야기에 앞서 나는 내 기억에 가장 강렬히 남아 있는 한 사건을 소개하자고 한다. 냉정하게 말해 꼼수 마케팅이 아닐 수도 있다. 처음엔 워낙 엄청난 일이라 이 이야기를 책 속에서 해도 될지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이사님이 그런 내게 한마디 하셨다.
‘괜찮아. 이젠 밝혀져도. 그리고 지금 자꾸 우리를 귀찮게 하는 그 녀석들에게도 좋은 경고가 되겠지. 그놈들이 나를 너무 띄엄띄엄 보더라고. 그러니 수틀리면 내가 얼마나 또라이가 되는지 한 번쯤 알려줘야지 않겠어? 책 나오면 제일 먼저 그쪽에다 퀵으로 부탁할 게.’
그 사건은 2011년 초 일본 출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마동수 이사님은 팀장이었고, 정지영 팀장님은 과장이었다.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 그때의 직급으로 표현하겠다.)
당시 D&Y 피트니스 클럽의 해외진출을 위해 노력하던 우리는, 한 일본 기업과 제휴 협상 중이던 월드 베리어스 클럽을 설득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동지랜드, D&Y 피트니스 클럽 분당점, 동지마트, DJ마트 프로젝트, 방방곡곡 프로젝트 등 한번 시작했다고 하면 항상 놀라운 성공만 거둬왔던 팀장님이기에, 이번 일도 어떻게든 성공하실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단순한 경제논리가 아니라 예기치 않은 정치적 논리까지 개입하는 바람에, 상대를 설득하기는커녕 월드 베리어스 클럽 관계자들과의 면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말 어렵사리 노력해서 미팅을 성사시킬 수 있었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 당시 정지영 과장님은 완벽하리만치 깔끔한 발표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도 나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될 만큼 과장님의 모습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멋졌다.
그렇지만 정치적 논리는 확실히 무서웠다.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완벽했던 발표도, 청중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합리적인 설득도, ‘우리와 적이 될 사람들’이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논리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이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노력하면 못 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어리숙했던 내게, 그 실패는 꽤 아픈 충격이었다. 물론 팀장님과 과장님은 달랐다. 실패는 금방 툭툭 털어버리고 다음 도전을 위해 심기일전하는 모습에 나는 큰 감동과 부끄러움을 느꼈었다.
팀장님은 그때 내게 그러셨다.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 포기하자 말자.’
내가 지금 동지그룹 마케팅부에서 독종 대리로 소문난 것도 팀장님이 내게 해주신 그때 그 말 덕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직 포기한 게 아니라며 하루 푹 쉬고 내일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하고 있을 때,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을 맞이하게 됐다. 그때 그 만남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충격적이었다.
키사라기 에이지. 우리와 경쟁 관계이던 다나카 아크로바틱의 사장.
평범한 키에 어울리지 않게 징그러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근육을 자랑하던 짐승 같은 몸과 짐승(?) 같은 예의범절을 보여줬던 무뢰하기 짝이 없는 남자.
그는 이미 실패를 예상한 듯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남의 나라였고 다른 꿍꿍이가 숨어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수작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고, 게다가 집요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의 행동을 무시하자 그는 더욱 유치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바라는 어린 아이처럼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하지만 치기 어린 행동도 용납할 수준이 있다. 무관심으로 일관한 우리의 대응에 오히려 약이 올랐는지 그의 행동은 어느 순간 도를 넘어서고 말았고, 그 모습에 화가 난 팀장님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친 모습으로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 앞에 섰다.
키는 평범해도 팔뚝과 허벅지가 팀장님 두 배는 되는 듯한 무시무시한 모습. 일촉즉발의 상황. 지켜보던 내 마음이 더 조마조마해졌다. 다행히 윤권씨의 개입으로 험악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팀장님은 키사라기 에이지 사장을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부터 서술할 내용이 바로 그때의 이야기들이다.
한 남자의 치기 어린 행동 때문에, 한 남자의 분노 때문에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흔들릴뻔했던 어처구니없는 그 사건······.
============================ 작품 후기 ============================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흔들릴 뻔했던 그 사건? ㅎㅎㅎ
대충 감이 오시나요?
이전 사건과 해결 방법은 비슷합니다. 단지 스캐일이 조금 커질 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