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50화 (150/281)

◈150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67)

‘혹시 칼리 그 언니는 여기 없나?’

하지만 복도를 돌아다녀 보아도 칼리는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난 리바를 발견했다.

이뿐 아니라 더 돌아다니면서 다른 수확도 있었다.

[축하합니다! ‘북부대공(남자주인공)’의 탈출에 필요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키워드: ‘통로’]

[‘통로’의 난이도 여부는 상중하로 나뉘며, 난이도는 당신이 이전 퀘스트 ‘친해지길 바라, 안 친해지면 쟤가 죽음!’에서 얻은 최종 신뢰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 탑을 드나드는 통로는 리바가 관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에 마법적인 장치를 설치한 것 같았는데, 리바의 도움이 필요한 듯했다.

[축하합니다! 당신이 진행한 ‘제 1 마법사 리바’의 신뢰도는 MAX, 따라서 통로의 난이도는 매우 쉬움입니다!]

이게 웬 떡이야. 이야기가 술술 잘 풀리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칼리는 보지 못했지만 칼리와 가까우면서도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칼리의 할머니 ‘바란타’였다.

어째서인지 할머니는 홀로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기도 했다.

곧 할머니가 웬 검을 통로 장식물 사이에 숨겼다. 그녀가 벽을 보며 속삭였다.

“……결전의 날이 머지않았군.”

나는 이 할머니가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검을 꺼내 보았다.

이상하게도 벽은 그대로 통과하더니 검은 내 손에도 잡혔다.

[축하합니다! ‘북부대공(남자주인공)’의 탈출에 필요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키워드: ‘무기’]

[‘통로’의 강도 여부는 상중하로 나뉘며, 강도는 당신이 이전 퀘스트 ‘친해지길 바라, 안 친해지면 쟤가 죽음!’에서 얻은 최종 신뢰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장검이었다. 거기다 내 손으로 들기엔 묵직한 무게까지 지닌.

[축하합니다! 당신이 진행한 ‘내성 대장 칼리’의 신뢰도는 MAX, 따라서 무기의 강도는 최상입니다!]

검집에서 살짝 뽑아보자, 날카롭다 못해 섬세하게 벼려진 검날이 보였다.

난 검을 잘 모르지만…… 심상치 않은 검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검을 잡을 수 있는 거면, 내가 이걸 대공님에게 가져다줄 수도 있단 말인가?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검을 든 채로 벽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대공님이 있는 방안에 도착했다.

바깥을 보고 와서인가, 이 방안이 얼마나 이상하고 기묘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근데 나 대공님에게 말은 걸 수 있는 건가?’

조금 전에 대공님이 둑스의 컁컁 우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도 보였는데,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도 이 자세네.’

대공님은 내가 나갔던 때와 마찬가지로 웅크린 모습이었다.

몹시도 작은 등에 나도 모르게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옆에 쓰러진 몬스터가 너무 컸기 때문에 더욱 이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대체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래빗도 그랬지만 이 세계 사람들은, 특히 주인공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살아온 것 같다.

나는 바닥에 내려섰다.

“대공님.”

나지막하게 그를 불렀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어떤 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나는 한 손을 뻗어 그를 건드려 보았다. 손이 그대로 통과했다.

‘이런, 난감한데.’

이러면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도와? 도와주라며. 난 미간을 찡그리며 둑스를 흘끗 보았다.

“둑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 아이랑 얘기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모르겠다, 여긴 ‘요정’의 힘이 너무 강해, 컁!

그야 그놈이 보낸 공간이니 그렇겠지.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대공님이 문득 부르르 떨더니 제 몸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동시에 자그만 몸의 떨림이 더욱 강해졌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요…….”

미약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휴고.”

그와 동시에 내 몸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귓가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빙의자님, ‘우린’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몸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내 몸이 뭔가 조금 무거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는 둥실 떠오를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모르게 내 손을 바라봤다.

-인간? 너 혼자 실체를 가지게 된 거야?

나는 찡그리며 내 손을 응시했다.

‘실체?’

그와 동시에 대공님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탁한 빛이 드는 붉은색 눈동자에 천천히 생기가 돌아왔다. 대공님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내가 보이는구나.’

나를 감쌌던 하얀 빛이 아직 남아 있던 탓에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빛이 일으킨 바람에 내 머리카락이 살랑 나부꼈다.

대공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누구야?”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한 것처럼 잔뜩 쉰 목소리. 아이가 곧 눈을 깜빡였다.

“……천사?”

이 무슨 낯간지러운 표현이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어린 대공님이 잠시 움찔하더니, 눈치를 살그머니 보며 다시 말했다.

“요……정?”

어떤 존재를 말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지만, 그건 더 안 좋은 소리였다.

북부에서도 요정은 지구에서 알려진 것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런 이미지인가?

물론 지금의 내게는 욕설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둘 다 아니야.”

대공님이 눈앞에 아이 모습으로 있었으니 절로 말도 짧아졌다.

거기다 내 목소리는 조금 불퉁했다.

아니, 내게 ‘요정’이냐니.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정말.

“그럼, 넌 누구……?”

나는 무어라 해야 하나 고민하다 흘끗 둑스를 보고선 이내 씩 웃었다.

“위대한 짐승께서 내려주신 사자라고 하자. 나는 그분을 따르는 신도야.”

그러자 옆에서 컁! 소리가 나더니 이내 둑스가 신이 나서 내 주변을 마구 빙빙 돌았다.

아이고, 어지럽다 이 아기 여우님아.

-인간, 내 사자? 사자인가? 기쁘다, 컁! 좋아! 나도 좋아!

‘응, 나도 좋으니까, 일단 자리에 앉아줄래? 어지러워.’

아기 여우가 멈춰서 내 다리에 마구 얼굴을 비볐다.

윽, 심장이 아프군.

“신께서 나를 여기 보내줬어. 널 도우라고.”

좋아, 컨셉 잘 잡았고.

이렇게 잘 설득해서 앞으로 48시간 내로 탈출을 잘만 도모하면…….

그 순간이었다.

-인간!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콰당 넘어지고 말았다.

윽, 내 엉덩이야……. 아파도 너무 아팠다.

‘이 정도면 건강 수치도 떨어지는 거 아니야?’

다행스럽게도 건강 수치 운운하는 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서는 건강 수치와 관련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떨어질 정도의 아픔은 아니었던 건지 몰라도…….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아, 몸이…….’

내 손이 내 의지를 배반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압도적인 기운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운은…….

-살기다, 인간!

눈 앞의 어린 대공님이 내뿜고 있었다.

팽팽해진 줄, 그가 더는 다가오지 못한 건 저 줄 때문이었다. 동시에 둑스가 내 옷자락을 물고 날 떨어트린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코앞에서 낡은 검이 멈춰있었으니까.

“거, 거짓말…….”

목소리가 떨리고 말을 더듬었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아, 아버지께서 또, 내, 내 눈을 현혹하기 위해, 보낸 거지?”

검 끝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눈에는 떨림 하나 없었기에 나도 모르게 숨을 꼴깍 삼켰다.

‘둑스, 가만 있었으면 찔렸을까?’

-인간 너는 약해서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컁!

둑스의 사실 적시를 듣고 나니 오싹해졌다.

아니, 대공님 저를 공격하시면 어떡해요.

“세상엔, 인, 인간 형태를 한 몬스터도 있다고 했어. 아버진 이제, 그, 그런 것까지 보내는 거야…….”

아니, 아니. 오해야. 오해예요. 대공님.

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슬그머니 뒤로 엉덩이를 뺀 건 물론이었다. 일단 저 대공님을 진정시키는 게 먼저다.

“난 몬스터가 아니야.”

하지만 몸을 뒤로 빼는 것이 좋은 선택은 아니었는지 방을 지배하는 살기가 더욱 거세어졌다.

아니, 이 대공님은 왜 어린 시절에도 기세가 이렇게 범상치 않은 건데? 끙, 주인공이니까 당연한가…….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게 생겨서는. 반칙이야.’

검을 들이댄 건 자기면서, 저렇게 겁먹고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화도 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억지로 하는 사람의 행동 아니냐고.

그러니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행동을 강요받았던 거구나.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물러나는 건 그만두자. 나는 손을 뻗었다.

-인간!

둑스가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내 손은 이미 톡 검에 찔린 뒤였다.

대공님의 눈이 커다래졌다.

“자, 여기 보이지? 나도 붉은 피가 흘러.”

“어, 아…….”

“몬스터는 검은 피가 흐르잖아.”

대공님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었던 것 같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동시에 방을 지배하던 살기의 기세가 꺾였다. 나는 그제야 남몰래 숨을 내쉬었다.

“보다시피 사람이야. 거기다가 보면 모르겠어? 나 같이 연약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 숨어들어오겠어? 네 공격을 멋지게 피하지도 못한 거도 봤지? 실력도 없어. 그러니까 이건!”

나는 피가 주르륵 나는 손가락을 들어올려보였다.

대공님이 기세에 눌려 움찔했다.

“위대한 둑스님의 뜻이야 알겠어?”

그 위대한 둑스님께선 기분이 좋아서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고 계신다고!

“어, 으응, 응.”

“그래, 알아들었으면 됐어. 그리고 잘못했지? 사람을 막 함부러 공격하고 말이야. 내가 크게 다쳤으면 어떡할 뻔 했어!”

“어? 어, 그, 으음.”

“따라해 봐. 미안해.”

“미……안해?”

“그래.”

나는 생긋 웃었다. 그러고는 피가 묻지 않은 손을 그대로 뻗었다.

대공님이 흠칫했지만 뒤로 물러나기 전에 뺨에 내 손을 얹었다.

“따뜻하지? 몬스터들은 대체로 체온이 차갑다며? 아 털 달린 애들은 빼고 말이야.”

“…….”

“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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