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72)
크와아아아악-!
찢어진 공간으로 나타난 몬스터는 거대한 털을 가진 짐승이었다. 아니, 5미터에 달하는 저 거대한 덩치를 짐승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소의 머리와 근육질 남성의 상체, 그리고 말의 하체를 가진 몬스터였다.
다행인 건, 저 마나홀로 딱 한 마리만 나타났다는 거지.
반면, 저 몬스터 하나로 끝났다는 건 저 몬스터가 몹시도 강할 거라는 뜻이고.
[스킬 ‘소환(lv.1)’가 활성화됩니다!]
[스킬 ‘빙의(lv.5)’가 활성화됩니다!]
나는 몬스터의 손에 잡혀 쿨럭쿨럭 숨을 토해내는 마법사, 숨을 토해내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 마법사를 물끄러미 보았다.
[소환 대상 ‘신 둑스’ (S급 영혼)의 힘을 받아들였어요!]
[5분간 사용 가능합니다! ※남은 시간: 04:58]
그는 통쾌하다는 듯이 힘없이 나를 손가락질하면서도 히죽히죽 웃었다.
몬스터에 쥐인 채 피를 마구 토해내면서도 마치 조금 뒤 찾아올 내 최후를 상상하면서 비웃듯이.
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너희가 날 얼마나 얕잡아 봤는지, 아주 잘 알겠어.”
“쿨럭, 뭐……?”
나는 검을 앞으로 올렸다.
“너희들 바보 아냐?”
거대한 몬스터는 마법사를 공격하는 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붉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안광이 빛나는 눈에 깊은 분노가 가득했다. 곧 발굽을 박찼다.
‘아무리 봐도 하체는 말의 형상, 그렇다면…….’
몬스터가 내 쪽으로 돌진했다. 마치 투우 속 황소처럼 달려드는 몬스터의 모습에 나는 숨을 삼켰다.
-인간! 내 힘을 빌렸어도 저건 정면에서 막기 힘들다! 컁! 네 몸은 작다!
‘알아!’
그러나 나는 거리가 좁혀질 때까지 멈춰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검 끝에 둑스의 힘인 주황색 빛이 마구 일렁거렸다.
1미터, 그리고 다시 반이 줄여질 때까지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이 살벌한 모습이 더 가까워졌을 때, 나는 검을 아래로 내리며 그대로 앞으로 몸을 굴렸다.
‘저기!’
그리고 자신의 돌진을 믿고 앞으로 나선 몬스터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나는 몬스터 뒤를 점거한 채로 땅에 검을 꽂았다.
쿠르르르릉-!
“이딴 환경에서 저런 몬스터를 소환하다니, 내가 얌전히 오냐 싸워주마 할 줄 알았냐?”
“뭐? 아, 안돼, 안돼!”
곧 땅에 금이 가며 몬스터가 짚었던 땅이 무너져내린다.
크아아아악!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몬스터가 괴성을 질렀다. 그 뒤로 마법사의 마지막 단발마가 뒤섞였다.
나는 숨을 살짝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쿠르르르르릉!
내 발밑이 무너지지만 않았다면.
‘이런!’
아찔한 부유감이 내 몸을 지배했다.
* * *
체단 성의 총관 아르테반은 히죽 웃었다. 왜냐,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현재 그는 중심지에서 영주민을 마주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일로 마주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난 얼굴로 그와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을 욕하고 손가락질하기 바빴으니까.
“감히 대공비님을 공격했다고? 죽어라!”
“둑스의 노여움을 살 거야, 죽여버려! 죽여라!”
“사형시켜라!”
여기 함께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달린 에스테의 암살 공모에 함께 했던 자들이었다.
지난 며칠간 여러 물리적인 고문을 함께한 심문 끝에 이들 중 하나가 증거를 토했고, 이로써 이들은 공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달린이 없는 사이 빠르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대공의 충성스러운 가신들은 주인의 뜻을 존중하는 동시에 동의해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에스테반은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영주민들을 보며 무언가를 찾았다.
얼마나 눈을 굴렸을까, 영주민 사이에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미리 준비해둔 ‘연락반’이었다. 남자가 아르테반을 향해 수신호를 취했다.
‘목표…….’
아르테반이 입술을 축였다.
‘사망.’
그 신호를 모두 본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하!”
아르테반이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까이서 돌을 던지던 이들이 주춤했다. 아르테반은 발목이 묶여 비틀거리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이 미천한 자의 위대한 주인, 대공 각하시여!”
저 위, 단상 위에 앉아있는 그의 위대한 주인을 향해서.
그래, 이 모든 것은 그의 주인을 위해서였다.
“이 아르테반이 드디어 해냈습니다! 해냈단 말입니다!”
이 드넓은 북부를 지배하는 주인이, 한낱 중앙 계집의 치마폭에 휩싸여서 되겠는가?
그는 죽음을 불사한 충신으로서 해야 마땅한 일을 한 것뿐이다. 방해물의 제거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주인이 진정한 북부의 주인으로서 거듭나도록 스스로 제물이 될 차례였다.
“당신의 눈을 현혹시키는 계집을 죽였습니다!”
그 순간 대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광이 진 얼굴은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건 저 영주민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의 이야기였을 뿐 아르테반에게는 달랐다.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대공의 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아아, 위대하신 군주시여!’
아끼고, 존경하고, 숭배하며, 숭앙하는 존재.
그를 처음 본 그날부터 결심했다.
제 평생을 이 아름답고도 위대한 군주를 위해 바치겠노라고.
그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 아직 가닿지 못한 저 설산과 산맥까지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저 중앙의 건방진 것들이 감히 대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중앙의 계집은 역시나 간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왜냐, 마지막까지 당신을 찾기는커녕 정신없이 수도 쪽으로 도망가더군요!”
그러기 위해서 대공은 자신을 지배하는 광증을 터트려야 한다.
아르테반이 생각한 ‘터트린다’는 그가 이 위대한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사악한 계집은 역시 각하의 눈을 속이고 달콤한 말을 속살거렸을 뿐 진심 따윈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이 대공은 폭주해야 한다.
“그 계집은 정말로 죽었으니까요!”
만약 이 폭주를 극복하지 못해 영원히 이성을 잃는다면?
아아, 그것도 괜찮겠지.
그 또한 위대한 존재의 첫 발걸음일 터이니!
이를테면 여기 있는 영주민과 같이 보잘것없는 이들을 제 손으로 해치우는 군주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아르테반은 이 또한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대공은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르테반은 너무나 못마땅했다. 한낱 계집 때문에 저런 얼굴을 하다니.
역시 유약함 같은 건 북부 군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를 약하게 만드는 감정 또한!
“신은 마지막까지 이 땅과 각하를 섬기겠습니다!”
그가 마련한 마지막 ‘축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르테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를 묶고 있던 밧줄이 스르륵 풀렸다.
혼란이 가득한 영주민들 사이에 심어둔 수하의 솜씨였다.
아르테반의 손에는 못 보던 장치가 있었다.
이를 가장 먼저 알아본 건 근처에 있던 영주성 최고 마법사 라바였다. 노인이 벌떡 일어났다.
“당장, 당장 막아!”
저 손에 들린 것은 ‘거대한 마나홀’을 불러오는 도구였으니까.
그러나 때는 늦어, 아르테반의 뒤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공간이 찢어지는 징조였다!
“젠장, 사라진 기기는 회수했을 텐데, 왜 저딴 놈 손에 저게 있냐, 이놈들아! 돌아가면 관리자놈들 하나같이 뒤질 줄 알아라!”
“스승님!”
라바가 지체하지 않고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라바의 힘이 잠시지만 찢어지는 공간을 억제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젠장, 시민들 대피에, 흩어진 전사를 모으는 동안에 누군가는 시간을 끌어야…….’
라바는 정신이 없었다. 아니, 그가 아니라 다른 가신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여기 있는 자들 중에서 ‘달린 에스테’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은 자는 없었다. 당연했다.
자신들이 아끼고 존경해마지않는 군주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정상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이였으며, 최근엔 그녀에 대한 군주의 감정이 극히 깊어졌음을 모르는 자가 없다.
그런데 그런 이가 죽었다니?
“우리 예비 대공비님이 얼마나 강한데, 어디서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리바가 욕을 짓씹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인의 가슴 속에서는 불안이 치솟았다.
저 음흉한 아르테반의 술수에 정말로 달린이 당한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그들의 군주는…….
“모두 뭣 하는 거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서.”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라바는 묵직한 음성을 들었다.
이곳 모두에게 들리는 음성이었다.
“당장 대피하라! 지금부터 최고 경계 대피령을 명한다! 영주민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기사를 따르도록!”
놀랍게도 휴고의 얼굴엔 어떤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다른 때와 같이 평온하다 못해 냉정함마저 느껴졌다.
“가르카! 리바! 당장 마법사와 전사를 보내 영애가 갔던 길을 추적하라! 영애를 다시 모셔와!”
“네, 넷!”
이미 마나홀에 너무나 익숙한 영주민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들의 눈에는 둑스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예비 대공비님이 절대 죽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 이 사태를 만든 아르테반을 향한 증오.
마지막으로 군주를 향한 믿음으로 가득했다.
“하하, 하하하! 의연하시군요, 위대한 대공 각하! 이것이야말로 이 충신인 제가, 원했던 그 모습이옵니다! 아아! 그 계집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아르테반은 제 위로 그늘이 지는 것을 느꼈다.
손이 허전했다. 어느새 발치에 그가 쥐고 있던 장치가 떨어져 있었다. 이미 발동한 이상 더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지만, 그 옆에 무언가 함께 떨어져 있으니…….
아르테반이 몸을 떨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으아아아아악!”
“혀를 잘못 놀린 죄는 직접 겪어보는 것이 좋겠군.”
“아악, 아아, 가, 각하!”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휴고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늘 아르테반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불만을 가졌던 흐리멍텅한 표정.
하지만 아르테반은 휴고의 붉은 눈동자에서 깊게 일렁이는 광기를 보았다.
아르테반은 고통 속에서도 미소지었다.
‘그래, 바로 이 모습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군주의 모습……!’
그러나 그는 더는 생각을 잇지 못했다. 배로 깊이 들어온 검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