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37화 (237/281)

◈237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2)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다시 현재였다.

[세 번째 메인 퀘스트 특별 보상- ‘세 개의 수수께끼의 보따리’

내용: 급조된 이야기를 훌륭하게 해결한 당신에게 주어진 아주 특별하고 희귀한 보상입니다.

네 번째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보따리- 무한 회귀자 ‘리델라제’의 지난 회차 기록과 감정

두 번째 보따리- ???

세 번째 보따리- ???

※보따리는 메인 퀘스트 진행도에 따라 열리거나 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요정의 창을 빤히 보았다.

……새로운 이야기를 해결한 보상이라는 건가?

발데르를 희생시켜 얻은 보상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도 잠시 속으로 작게 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원작의 환상을 보았던 때처럼, 리제의 회차 기록을 보는 동안엔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리제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과는 다르게 그 눈에 희미한 혼란이 어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기록을 보아서는 달린은 회차를 거듭할수록 일찍 죽었어.’

결국 내가 나타나기 직전의 회차에서는 리제가 회귀하자마자 죽었다.

그리고 내가 나타난 뒤에 리제는 나를 보고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살아있는 것에 기뻤던 게 아닐까.’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리제.”

“……알겠어. 아주 잘 알겠다고.”

리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는 달린이 아니야. 달린일 리가 없어. 그래, 그 애에게 신이라니?”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내 주변으로 주황빛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스킬 ‘소환(lv.-)’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빙의(lv.5)’가 활성화됩니다!]

마력이 검처럼 만들어져 내 손에 쥐어졌다.

내가 막고 있는 너머로 내게 막힌 리제의 손이 보였다. 파지지직, 전류가 튀었다. 리제의 손을 감싼 검은색 기류는 몹시도 강해 보였다. 숨을 꿀꺽 삼켰다.

……요정이 굳이 퀘스트에 끔찍한 강자라고 말할 정도였지. 하기야 몇 번인지 모를 시간을 반복한 사람이었다.

“이제야 신이라고? 웃기지 마. 정말 신이 있다면 더 빨리 나타났어야지! 넌 달린이 아니야.”

그러게. 그건 나도 동감한다.

요정은 대체 왜 네 번째 이야기가, 주인공 리델라제가 이 모양이 되도록 방치했단 말인가.

“이 힘을 봐. 네가 달린이라고? 그 앤 마력은커녕 검조차 쥐지 못하던 애야. 대체 넌 뭐야. 누구냐고.”

아니, 요정은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방치해온 걸까.

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니, 난 달린이야. 리제.”

“웃기지,”

“이 힘은 신이 억지로 준 힘이고. 이 힘이 없었다면 난 진작에 죽었어.”

나는 대치한 채로 차분하게 말했다.

“리제, 혹시 내가 널 제대로 부르지 않아서 화가 난 거야? 지금 막 기억났어.”

“……뭐?”

“리제. 넌 아주 어렸을 때 매번 쿠키를 태웠는데, 이젠 잘 구워. 항상 맛있었어.”

“…….”

리제의 손에서 살짝 힘이 빠졌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뒤로 살짝 물러났다.

“리제, 나 팔이 아파.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

리제의 몸 주변에서는 여전히 검은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왔어.”

나는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내 손에서 마력으로 만든 검이 사라졌다.

“내가 하려는 일은 명확해. 이 세계에는 세계를 망치는 주범이 있어.”

“…….”

리제는 세계의 오류를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리제의 표정이 미묘해지는 순간을 발견했다.

“그간 내가 한 일은…… 이 주범이 만든 희생자들을 도와주는 일이었어.”

전생을 기억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아기 황녀님.

광증을 앓는 차갑지 않은 북부 대공님.

이미 죽은 주인공이자 친우를 홀로 기억해 온 외로운 대마법사님.

……비록 세 번째 이야기만은 끝이 개운하지 못했지만.

네 번째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이 해결 보지 못한 세 번째 이야기까지 구원하고야 말 거다.

물론 가장 먼저 할 일은 눈 앞에 있는 주인공 ‘리델라제’를 돕는 것.

그리고 리제의 신뢰를 얻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받은 신의 계시는, 이 세계를 망치는 주범을 무너트리는 거야.”

“……말도 안 돼.”

리제가 작게 중얼거렸다. 체념과 음울함, 증오가 어린 눈동자로 혼란이 뒤섞였다.

“……그 어떤 회차에도 네가 이런 행보를 보인 적도, 이런 말을 한 적도 없어.”

“신의 계시를 받았으니까. 그 주범을 무너트리라고.”

“그게, 가능할 리 없어.”

“가능할걸?”

나는 이제야 방긋, 평소처럼 웃었다.

리제의 얼굴 위로 흐린 표정이 스쳤다. 그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너랑 나랑 힘을 합치면.”

리제가 뒤로 살짝 물러났다. 일시적으로 리제를 감싼 검은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믿을 수 없는 상대를 신뢰하라는 거야?”

리제의 예쁜 입술이 비틀어지듯 웃음을 머금었다.

“차라리 혼자 움직이면 움직였지, 정체도 모르는 존재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어.”

“난 달린이야. 리제.”

“거짓말.”

“네가 눈을 떴을 때 그렇게 소개했잖아. ‘리제’라고.”

“…….”

너는 왜 이제야 의심을 품게 된 걸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달린이 이번만큼은 죽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아니었나 하고.

……그러니, 리제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아니었을까.

“내 친구도 아닌 존재와 이야기 나눌 생각은 없어.”

리제가 자신의 기운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나를 노려보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동시에 리제의 머리카락이 다시 갈색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외형은 왜 숨겼던 걸까? 이것도 묻지 못했다.

‘다음엔 물을 수 있겠지.’

내가 알던 리제의 모습으로 돌아온 리제가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리제가 있었던 자리를 가만히 보았다.

[신뢰도를 재산정합니다! 회귀자 ‘리델라제’의 빙의자님을 향한 신뢰도가 공개됩니다.

신뢰도: -12 / 100]

……신뢰도가 올라간 것 좀 보게.

‘혹시 리제도 라이칸과 비슷한 부류인가.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 나는데 속은 이미 풀린?’

아마 차마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제외하고서는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게 정답이었나보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이 신뢰도를 올리는 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촉박했다.

* * *

다음 날, 나는 쇼파에 누워 일어나질 못했다.

다시 병이 재발했다거나 한 건 아니고, 정신이 피로해져서 휴식이 필요했다고 할까.

‘어젯밤엔 한숨도 못 잤네.’

세상에, 네 번째 이야기가 이렇게 망해 있을 줄은 어떻게 알았겠냐고.

지금까지 앞선 이야기들의 망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죽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느꼈던 막막함과 비슷했지만, 어려움이나 절망, 분노는 그때보다 더했다.

아마 세 번째 이야기 주인공들은 얼굴을 볼 새도 없이 사라진 뒤였지만 리제는 오랫동안 정을 쌓아온 인물이었기에, 리제의 불행과 고통에 더욱 이입한 걸 거다.

‘……무한 회귀라.’

세 번째 특별 보상.

수수께끼의 보따리를 사용하면 내가 원할 경우 리제의 과거 회차 기록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걸 보는 데에 기력이 굉장히 만힝 들었고, 어젯밤에 도전하다가 녹초가 될 뻔했다는 거다. 리제가 바로 앞에 있을 때는 기력 소모를 못 느꼈던 것 같은데. 긴장했기 때문인가?

어쨌거나, 오늘은 리제에게 직접 가볼 생각이었다. 이제 리제의 정체도 알았겠다. 메인 퀘스트도 주어졌겠다.

……마지막으로 시간도 엄청 촉박하겠다.

‘마지막엔 나름 수긍을 한 것 같아 보였지?’

그랬으니 신뢰도가 재조정이 된 걸 거다.

물론 새로 산정된 신뢰도도 좋은 지표는 아니었지만 마이너스 오백이라는 아득한 숫자보다야 나았다.

무한 회귀자, 게다가 본래도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내 말이 앞뒤가 다 들어맞는단 생각을 했을 거야.

‘그저, 감정적으로는 납득하지 못한 거겠지.’

그럴 만도 했다.

리제의 지난 회차 속 ‘달린’은 나와 성격은 비슷하게 보여도, 항상 병약했다. 내가 막 이 몸에서 눈을 떴을 때와 비슷한 상태거나 그보다 살짝 더 좋은 상태?

걸을 수는 있지만 조금만 많이 걸어도 숨이 차고, 이유 없이 피를 쏟고. 열이 나고…….

그런 모습을 쭉 보다가, 이번 회차에서는 애가 병을 매단 채로 무도회까지 참석하질 않나, 북부로 가는 등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질 않나.

끝에 가서는 병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펄펄 날아다니니.

나라도 의심을 안 하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그나저나 파올로한테는 뭐라고 말한담?’

파올로에게는 리제랑 이야기해 보고 내막을 알려주겠다고 했었는데, 오히려 이야기해 보고 나니 알려줄 수 없는 이야기만 잔뜩 안게 되었다.

네가 좋아하는 여성은 사실 내 죽음을 nn번을 넘게 본 사람이야, 라고 어떻게 말해.

그러고 보니 어제 본 기억에서 리제가 파올로를 언급한 것도 있긴 했지? 나는 차근차근히 네 번째 원작을 떠올렸다.

네 번째 이야기의 남자주인공은 파올로가 아니다. 암흑가에서 바닥부터 뒹군, 암흑가 보스가 남자주인공으로 알고 있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뒤틀려버렸다면 남자주인공은 어떻게 된 걸까?

이제 리제가 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인데, 우리 오빠는 이 이야기의 서브 남주였던 것이다. 정확히는 메인 서브도 아니고 한 서서브 정도?

‘그러니 기억을 못 했지.’

하지만 이건 똑똑히 떠올랐다. 한날은 마차를 함께 타고 가다가 잠시지만 사이렌 오더가 파올로에게 반응했던 것을 말이다.

그때는 착각이려니 하고 말았는데, 그때 또한 놓쳐서는 안될 단서였던 거다.

나는 후 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럴 게 아니라 행동해야지.’

일어나서 준비할 채비를 하려 하는데, 하녀가 내게 다가왔다.

“……아가씨, 대공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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