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69화 (269/281)

◈269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34)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든 메인 퀘스트가 끝났다고……? 정말?’

눈 깜빡하는 사이에, 어쩌면 나보다 더 신나 보이는 요정의 창은 정말이지 아주 열심히 열렬하게 창을 띄웠다.

[빰빠라라빰빰! 축하합니다! ‘나만의 로판’기능이 완성되었습니다! (ง˙∇˙)ว(๑ ˃̵͈́∀˂̵͈̀ )]

심지어 답지 않게 귀로 엄청난 팡파레 소리까지 들려와 나도 모르게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드디어 나만의 로판 기능이 완성되었다.

여러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지만 실감 나지 않는 건 여전했다.

‘나만의 로판 기능이 완성되면 어떻게 되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해일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거대한 파도를 맞았음을 인지하는 기분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야?”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 뭐라도 있어?”

리제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살짝 삼켰다.

지금까지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모두 다 ‘나만의 로판’ 기능 속 인물로 추가되었는데, 리제도 추가되는 건가?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래빗, 휴고 그리고 발데르에게마저 뜨던 요정의 창이 뜨지 않았다.

내가 당황하는 순간이었다.

[특별 보상, 두 번째 보따리가 발동합니다. ??? ‘??’의 회차 기록이 펼쳐집니다.]

……뭐?

나는 군데군데 지워진 요정의 창을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누구의 회차 기록? 분명 물음표가 떠 있었는데?

게다가 두 번째 보따리?

세 번째 메인 퀘스트 보상으로 받았던 세 개의 보따리.

‘리제의 회차 기록을 보여주는 게 첫 번째 보따리였는데?’

이제 모든 메인 퀘스트가 해결된 마당에 갑자기 무엇을 보여주겠다고?

나는 군데군데 지워진 요정의 창 속 인물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익숙한 부유감이 느껴지고, 눈을 뜨니 낯익은 공간에 서 있었다.

‘……여긴.’

내 방이었다. 아주 익숙한 내 침실.

‘왜 이곳으로 온 거지?’

리제의 회차 기록을 읽을 때야 질리도록 본 방이었다.

그도 그럴 게 리제가 회귀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달린’을 찾아가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둘러보아도 그 어디에도 리제는 없다.

그렇다면 왜?

천천히 살펴보던 나는 마지막으로 침대를 보았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곳에는 ‘달린’이 앉아있었다.

‘놀라라.’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몇 번인지 모를 리제의 회차를 보며 이미 ‘달린’ 또한 익숙하도록 많이 보았으니까.

다만, 이렇게 리제가 없는 상황에서 ‘달린’만 보는 건 처음이긴 해서, 조금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달린’ 앞에 섰다.

‘달린’은 언제나처럼 창백하리만치 하얀 낯색이었다.

누가 봐도 병약한 얼굴,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던 얼굴이 점차 굳어갔다.

‘달린’은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뭐지? 왜 충격 받은 얼굴이지?’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달린!

곧 문이 벌컥 열리며 허겁지겁 다가온 리제가 ‘달린’에게 달려왔다. 리제는 그대로 달린을 폭 끌어안았다.

산발이 된 머리와 다급하게 달려온 듯한 기색을 보아서는 대략 회차 중후반쯤의 리제인 것 같았다. 물론 리제의 회차 기록을 알려주는 요정의 창이 없었기에 정확히 몇 회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뭐지?’

그저 이상한 점은 ‘달린’이 덜덜 떠는 손으로 리제를 끌어안았단 점이다. 마치 울 것처럼 흐린 얼굴로, 충격받은 표정으로, 매달리듯이.

‘대체 왜……?’

아픈 거라기엔 이상한 얼굴이다 싶을 때, 눈 앞이 암전되었다.

이제 돌아가는 걸까? 이렇게 생각했지만, 의아하게도 다시 눈을 뜨면 똑같은 장소였다.

다시 한번 ‘달린’의 방.

그리고 눈앞의 ‘달린’은 비슷하지만 묘하게 색이 다른 잠옷을 걸치고 있었다.

-대체, 왜……?

‘달린’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차차 가라앉는 얼굴은 조금 전과 다르게 ‘달린’은 다소 침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입술만은 떨리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중얼거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리제가 나타났다.

언제나처럼 회귀하자마자 가장 먼저 친구를 보러 온 리제의 모습은 무한에 가까운 회귀 중 회차 중반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리듯 피로하면서도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한편으로는 친구를 향한 애정만은 놓지 못한 얼굴이었다.

지금까지는 리제의 모습에만 주목했기 때문일까. 이번엔 처음부터 ‘달린’만을 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리제를 본 ‘달린’의 표정이 묘해지며,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달싹였다는 것을.

-……!

그러나 ‘달린’은 입만 뻐끔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달린’이 자신의 목을 감싸 쥐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으니까.

저건 꼭……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나오지 않는 모습 같은데……?

-달린? 달린! 왜 그래? 아파?

‘달린’이 리제의 손을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허겁지겁 일어나 탁자로 비틀비틀 달려가더니 펜을 잡았다.

-달린……?

그러나 무언가를 쓰려했던 손은 덜덜 떨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달린’은 핼쑥해졌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설마, 이거…….’

띠리링, 눈앞으로 푸르른 요정의 창이 떠올랐다.

드디어 떠오른 창 안에는 내가 짐작한 사실이 떠올라 있었다.

[현재 희생자 ‘달린’의 3회차입니다.]

……뭐야.

나는 의미심장한 말들을 읽으며 푸르른 창과 ‘달린’을 번갈아 보았다.

내 입술이 툭 떼어졌다.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에.

“……달린도 회귀했다는 거야?”

정답이라는 듯 요정의 창이 하나 더 떠올랐다.

[무한회귀자 ‘리제’의 영향을 받은 희생자 ‘달린’은 동반 회귀를 시작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말투, 나는 이전에 보았던 요정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지금 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열되는 글자들에서 눈을 떼어내지 못했으니까.

“그게 뭐야…….”

수없이 많고 기나긴 회귀에서도 리제의 유일한 구원이자 희망은 바로 친구인 ‘달린’이었다.

그런데 그 ‘달린’이 리제 때문에 덩달아 회귀하게 되었다고?

대체 왜?

[세계의 오류는 무한 회귀자 ‘리제’의 영원한 절망을 바랐습니다.]

흘러나오는 끔찍한 사실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지금은 내가 달린이잖아? 그럼 진짜 달린은 어떻게 된 건데?’

이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무한에 가까운 회귀를 경험한 리제와 다르게 눈앞의 ‘달린’의 회차는 오래 반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희생자 ‘달린’은 회귀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달린’은 회귀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리제가 자신의 회귀를 털어놓는 회차에도, ‘달린’은 자신도 같은 상황임을 말할 수 없다는 것. 잔인한 일이었다.

‘달린의 상태가 이상한데.’

한데, ‘달린’은 회귀를 거듭할수록 뭔가 모습이 이상해졌다.

본래도 병약한 사람이었지만, 회차가 반복될수록 바짝 말라가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안에서부터 고갈되어가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마치 영혼이 고갈되기라도 하듯이.

[무한 회귀자 ‘리제’와 달리 희생자 ‘달린’은 타고난 영혼의 크기로 회귀로 인한 영혼의 고갈을 견디지 못합니다.]

요정의 창은 이 공간에서 건조한 해설자였다.

나는 이 끔찍한 비극 앞에서 말을 잃고 말았다.

[희생자 ‘달린’은 소멸을 앞두고 절대적인 존재를 마주했습니다.]

빠르게 흘러간 시간이 멈추더니 나는 방 앞에서 가쁘게 숨을 내쉬는 달린을 마주했다.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급박해 보였다.

한데,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달린’이 죽어가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그녀는 관자놀이가 축축해지도록 눈물이 흘렀다.

식은땀으로 달라붙은 머리카락, 안쓰러울 정도로 가는 손가락이 허공을 향해 뻗었다.

-부, 부탁이에요……. 리제를, 그 애를…… 도와주세요…….

‘달린’은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것만 같았다.

[요정은 희생자 ‘달린’의 소원을 이루어주기로 했어요!]

다시 돌아온 해맑고도 발랄한 말투, 요정의 창은 이 비극과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누군가를, 내 영혼을 대가로…… 부르기만, 하면…… 그 애를 구할 수 있, 나요?

나는 그제야 어째서 내가 이 비극을 보고 있었는지.

-그, 애를…… 구할, 영혼…….

그저 과거를 보여주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이건, 원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

-할, 게요. 부를, 게요, 그러니까…….

아니, 내가 이 세계에 ‘소환’된 이유.

-그, 애를 구해주세요.

나는 ‘달린’이 부른 영혼이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감는 ‘달린’을 바라보다가 눈을 돌렸다.

“그래서, 저 애가 나를 불렀다는 거야?”

허공에서 꺄르르,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이제야 모든 진실을 밝혀 기쁘기라도 하다는 듯이.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그렇다고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

화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회차를 바라보는 동안 ‘달린’에게 동화되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얼굴을 쓸어내렸다.

“결국은 네가 날 데려온 게 아니라고, 그 말이 하고 싶은 거니?”

내 나지막한 목소리에 웃음소리가 멈췄다.

[세 번째 메인 퀘스트 특별 보상- ‘세 개의 수수께끼의 보따리’

내용: 급조된 이야기를 훌륭하게 해결한 당신에게 주어진 아주 특별하고 희귀한 보상입니다.

네 번째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보따리- 무한 회귀자 ‘리델라제’의 지난 회차 기록과 감정

두 번째 보따리- 희생자 ‘달린’의 소원

세 번째 보따리- ???

※보따리는 메인 퀘스트 진행도에 따라 열리거나 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눈을 뜨면 다시 현재였다.

눈 앞에는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얼굴이 보였다. 리제였다.

어째서일까.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조금 전의 그 비극은 내가 겪은 일이 아닌데…….

이 애의 얼굴을 보려니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나는 흐리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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