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73화 (273/281)

◈273화. 4. 회귀자가 회귀를 거부함! (38)

* * *

래빗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었다.

휴고가 우려했던 대로 성밖에는 더욱 많은 괴물들이 있었고, 그것이 수도 곳곳에 나타났던 것이다.

거리낌 없이 신성력을 쓴 래빗은 처음이 어려웠다는 듯 곧 익숙해져서는 무기에 계속 힘을 불어넣었다.

중요한 전력이 된 탓에 래빗은 아주 바빠졌고 우리는 며칠간 만나지 못했다.

정확히는 만나더라도 이야기할 새도 없이 바쁜 것이었다.

“대공님, 괴물에 관해 새로운 정보가 알려졌다고요?”

“네, 영애.”

래빗과 마찬가지로 한창 바쁘지만 시간을 할애해 나를 찾아온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게도 라이칸과 휴고는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나와 공유해주었다.

이를 토대로 리제와 나는 ‘세계의 오류’를 찾는 중이기도 했다.

“전염에 관한 것인데……. 우선 모든 개체가 전염시키는 건 아닌 듯해요.”

“전염을 시키는 개체가 따로 있는 거란 거죠?”

“네. 문제는… 똑같은 생김새 때문에 어떤 개체가 전염을 시킬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 쓰러트려야 한다는 점이죠. 생김새라도 달랐다면 그 괴물부터 없애고 무기를 가진 자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 나머지는 일반 기사와 병사에게 맡기면 될 텐데…… 이게 어려워요.”

래빗은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무기에 힘을 불어넣고 있지만, 모든 인력에게 주기엔 부족했고 괴물의 숫자는 날로 급증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세계의 오류가 대체 어디서 이만한 괴물을 만들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리제가 저놈이 여러 회차를 거치며 준비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기묘한 공포마저 느낄 뻔 했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 쪽이 불리해져. 저쪽이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도 모르는데, 일단 사람은 체력적으로 지친다는 한계가 있고, 저쪽은 아니니…….’

가장 좋은 건 원흉을 제거하는 거겠지만, 나도 리제도 아직 세계의 오류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리제는 세계의 오류가 돌아다니던 곳을 가보았고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폐신전에 다시 가보았지만 우리가 찾는 그 존재는 없었다.

언제는 공포 영화 속 살인마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해 사람 앞을 가로막더니, 찾을 땐 나타나지 않다니.

나는 손을 꾹꾹 쥐었다가 폈다.

“그러네요, 이대로는 안 될 텐데…….”

괴물이 나타나는 족족 막아내고 있다지만 일반인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한번 전염이 퍼지기 시작하면 일반인들은 속수무책이니…….

그때였다.

[요정은 심사숙고 끝에 존재를 일부 제물로 바쳐 빙의자님에게 도움을 주기로 해요! ( •́ ̯•̀ )]

눈앞으로 푸르른 요정의 창이 떠올랐다.

의문이 드는 표현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며칠간 계속 침묵하기에 이제는 손을 놔버린 건가 싶은 기분이었건만.

‘무슨 도움?’

요정은 답변하듯 창을 이어서 띄웠다.

눈앞에 거대한 창이 떴다. 마치 지도와 같은, 아니, 지도였다.

땅의 모양을 찬찬히 보던 나는 눈썹을 들어올렸다.

……이거, 수도잖아?

지도를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이미 두 번째 메인 퀘스트에서 이상한 마법사의 계략에 빠져 외성 밖으로 쫓겨났지만, 지도를 보고서 휴고가 있는 성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니까.

[빠라바라빰빰! 엣헴, 요정은 빙의자님이라서 해드리는 거라며 생색을 냅니다! ⸝⸝ʚ̴̶̷̆ˬʚ̴̶̷̆⸝⸝❤ ]

지도에는 땅을 가로지르는 성벽이 있었다.

이 성벽을 기준으로 안쪽과 바깥쪽에 검은 점들이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안쪽의 점보다는 바깥쪽의 점이 훨씬, 아주 훨씬 많아서 거의 개미떼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영애, 이게 뭡니까?”

놀랍게도 휴고도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게 보여요?”

“……네, 보이는데. 대체 이건.”

[요정은 ‘나만의 로판’기능에 지도를 추가해주었어요! 기능 내 인물과 공유가 가능합니다 .❤*.(๓ ͈ ꈍᴗꈍ ͈๓).*❤]

허어, 확실히 이건 생색낼 만한데?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었다.

“휴고,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이것 좀 봐요.”

나는 휴고의 망토 자락을 잡고 지도 한쪽을 가리켰다.

휴고가 살짝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쪽이 더욱 급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여기, 빨간 점. 보여요?”

지도 위에는 검은 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빨간 점이 곳곳에서 반짝거리며 점멸하고 있었는데, 검은 점에 비하면 그 숫자가 훨씬 적었다.

요정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이거, 검은 점은 일반 괴물이고 붉은 점은 ‘전염’을 일으키는 개체에요.”

[요정은 정답이라고 말해요! ヾ(๑ㆁᗜㆁ๑)ノ”]

너 인마, 마지막에 가니까 좀 쓸모 있게 군다?

나는 속으로 진작에 이럴 것이지 하는 짧은 생각을 투덜거리고는 다시 지도에 집중했다.

휴고 또한 긴장감을 잊고서 집중했는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끄덕였다.

“대체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되신 건지…… 아니, 이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근데 문제가 있어요. 이거, 휴고와 래빗 황녀님, 그리고 라이칸만 볼 수 있을 거예요.”

혹시 나만의 로판 기능에 다른 사람을 추가할 순 없나 싶었지만 이미 앞서 그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휴고는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아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휴고가 고민 끝에 대안책을 말했고 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이건 제가 원하면 언제든지 킬 수 있는 걸까요?”

[요정은 빙의자님이 허락한다면 가능하다고 말해요!]

“음, 네……. 맞아요. 제가 허락했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어요.”

“……정말 놀랍군요.”

휴고는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유순하게 웃었다.

“정말 신의 사도 같습니다. 영애.”

“……아하하하.”

신의 사도란 이름은 너무 거창해요.

그보다는 짓궂다 못해 사악한 존재의 장기말에 더 가까울 것 같지만 말이죠.

곧 이 사실은 휴고를 제외한 래빗과 라이칸, 리제에게도 전달되었다.

이 지도를 활용해 그들은 마법사와 함께 다니며 전염을 일으키는 괴물에게 표식을 해두거나 미리 제거하고 떠나는 식의 게릴라전 전략을 펼치기로 했다.

‘이런 식이면 수도를 지키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요정의 갑작스러운 선물로 어떻게 큰 위기는 넘겼지만,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라이칸과 휴고는 조심스러워하며 모두 전해주지 않은 것 같지만, 오염의 전파는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고맙긴 하지만 이제 와 이런 선물을 준 게 조금 원망스러울 정도란 말이지.’

왜 요정이 새삼 세상의 멸망 운운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건 시간 제한이 있는 싸움이야.’

래빗과 휴고가 수도를 막아주고 있는 동안에 어떻게든 세계의 오류를 찾아야 한다……!

잠시 후 내가 있는 곳으로 라이칸이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황자님.”

“별일 없었나?”

“네. 불행 중 다행히도요.”

리제가 세계의 오류 발견 시 부탁했던 것 중 하나가 강력한 검사와 동행하는 것이었다 보니, 라이칸은 급한 일을 처리하는 족족 내 곁에 돌아와서 머무르곤 했다. 언제 타겟을 발견해서 달려나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역시, 리제에게 세계의 오류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들어볼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경고등이 울리는 듯 저릿한 감각이 목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바로 내가 몇 번이고 목숨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느꼈던 감각이었으니까.

곧이어 문이 쾅 열리더니 리제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달린!”

그러나 리제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리제의 옆으로 기사 하나가 또 달려왔다.

황실의 기사인 듯했는데 리제와 마찬가지로 다급한 표정이었다.

“황자님, 큰일 났습니다. 성벽 밖으로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황급히 지도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성 밖에서 보았던 새까만 점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황자님, 지금 몰려오는 괴물들 사이에는 전염을 시키는 개체가 없어요!”

지도는 라이칸 또한 볼 수 있었기에 그는 빠르게 끄덕였다.

문제는 성 밖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쪽에서 붉은 점이 늘어났어.’

전염을 시키지 않은 괴물은 기사와 병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니, 현재 수도에 모인 병력이 저 까맣게 몰려오는 점들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버틴다는 점이겠지.

‘얼른 해결해야 해.’

정말로 시간 싸움이 되어버렸다.

“이미 대공은 알고 있겠군.”

“네. 이걸 봤을 테니까요.”

라이칸은 기사에게 빠르게 명했다.

“당장 돌아가서 밖에 몰려오는 개체들 사이에서는 오염을 시키는 것이 없음을 알려라. 오히려 성 안쪽의 개체를 조심하라는 말도!”

“네? 네, 알겠습니다!”

기사가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급히 다시 리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리제, 찾은 거야?”

리제가 이토록 급히 나를 찾아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제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빨리 나서야 해. 내가 전에 말했던 거, 도와줄 수 있어?”

물론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어차피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늘 준비된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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