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겨울밤의 고백-37화 (37/108)

<-- 새벽에서 아침까지 -->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잭의 손을 뿌리쳤다.

“내 말 못 들었어요?”

뒤돈다. 잭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래. 마치 버림받은 대형견이라도 되듯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렸을 때, 개를 키운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매우 싫어하던 개였다. 그때 아버지는 용병으로 일하다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으셔서 오랫동안 일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굶을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용병의 딸을 써주는 곳은 없었다. 우리는 추천서도 없었고, 노동을 하기에는 힘이나 손재주가 부족했다.

우리가 10일째 굶었을 때, 아버지는 그 개를 잡아먹자고 했다.

‘내가 개새끼까지 먹여 살리고 싶지는 않다.’

카밀리아가 울었지만, 아버지는 그저 뒤로 돌아 누우시며 묵묵히 뜻을 피력했다. 나는 그대로 마당에 묶인 개를 바라보았다. 맥스는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맥스를 조용히 뒷산으로 데려갔다.

‘빨리, 달려가. 맥스. 바람처럼 달려가!’

그런데, 글쎄. 그 개가 낑낑거리며 내 치맛폭에 머리를 비볐다. 버리지 말라고.

‘우리, 물어오기 놀이 할까? 맥스, 착하지. 빨리 물어가지고 와.’

뼈다귀를 던져도 그는 눈물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한 짐승이라, 저를 버릴지 잘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래서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맥스가 다치지 않으려면, 나와 함께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가 맥스를 잡아먹을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바닥에서 돌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걸 떨리는 손으로.

맥스에게 집어 던졌다.

“짜증나! 진짜! 당신이 뭔데 참견이에요! 내가 괜찮다잖아!”

잭에게 소리쳤다. 그가 물기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공작님과 결혼할 사이예요! 짜증나게 자꾸 그러니까 오지 말라고요!”

내 강아지 맥스에게 돌을 던졌을 때, 맥스는 결국 숲으로 도망쳤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그의 흰 털에 묻어 있던 붉은 핏자국이었다. 내가 던진 돌이 낸 상처였다.

잭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보니 내 개의 붉은 핏자국이 떠올랐다. 내가 도망가라고 던진 돌에, 내 개가 맞아서 피가 났다.

내가 도망가라고 던진 모난 말들에, 잭이 상처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싸늘하게 뒤돌았다. 공작은 그저 낮게 웃으며 잭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요, 전하. 피곤해요.”

나는 잭을 친구로써 정말, 많이 아꼈다. 그가 내 행복을 위해 힘쓰는 것도 안다. 내가 지금 제롬과 함께 해서, 행복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것도. 내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게 잭에게 피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 때문에 잭의 사업이 무너진다면, 나는 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 때문에 아프는 건 싫다.

잭은 나를 위해서 모든 걸 걸겠다고 했지만, 그리고 그 다음에는?

1년 뒤엔? 5년 뒤엔? 10년 뒤엔? 그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어쩌면 범부인 남편보다는, 위대한 사업가가 되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

“세실리아, 춥습니까?”

제롬이 제 재킷을 벗어 내 어깨에 덮어준다. 보란 듯이. 내 볼에 입을 맞춘다.

“고마워요, 제롬. 빨리 눕고 싶네요. 어서 가요.”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제롬의 팔에 내 것을 끼고, 웃으며 마차에 탔다. 그리고 움직이는 마차에서, 생각하기를. 나는 옳은 선택을 했다, 나는 옳은 선택을 했다, 나는…….

아끼는 것을 상처입힌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상처입힌다는 것은,

소녀 시절이나, 어른이 돼서나 똑같이 힘들다. 아프다.

그럼에도, 나는 심호흡. 숨을 몰아쉬며. 내 개를 버린 날 산을 걸어나오며,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을 그 때처럼. 나는 제롬의 팔에 내 머리를 기대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차는 새벽을 뚫고 굴러갔다. 앞창문으로 들리는 마부의 하품소리, 그리고 말굽 따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의 팔에 기대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세실리아.”

“네?”

“시작이 조금 서툴긴 했어도, 항상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는 말했다. 제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담아서.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이 제 레이디라서 행복합니다.”

“…….”

“세실리아.”

“네. 그래요.”

그리고 또 정적이었다.

“당신 친구에 대해서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해서 그의 사업이 순항을 맞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짜증나, 그 사람.”

“알겠습니다.”

마차는 굴러갔고, 그는 나를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은 보석을 보러 가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면 드레스는…….”

“그게 사교 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세실리아가 좋아하는 걸…….”

“피곤해요.”

“알겠습니다.”

그 뒤로 쭉 정적이었다. 마차는 그대로 굴러갔고, 나는 몇 번이고 그의 팔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다시 깼다. 그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공작 전하께서 귀가하신다! 다리를 내려라!’

도르래 내려가는 소리, 쿵, 소리가 들렸다. 마차는 당연하다는 듯 그의 집으로 향했다. 마차를 돌리라고 할까, 생각도 하다가 나는 그냥 생각을 멈췄다.

태연하게 행동해야지. 내가 자세를 고쳐 기대니 공작이 당황한 듯 움찔했다. 내가 눈을 굴려 그를 올려다보니 그가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곧 도착이네요.”

내가 힘없이 말했다. 그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빨리 눕고 싶어요. 피곤해.”

“피곤하시다니, 당신을 위해서라면 법적으로 율러의 모든 파티를 금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작게 웃었다.

“됐어요. 그리고 모두의 원성을 산 다음에 돌 맞아서 죽게요?”

“당신에게 그런 일을 벌인 자들을 모두 잡아서 벌하겠습니다.”

“왜요? 그럼 사람들이 당신 싫어할 텐데.”

“괜찮습니다.”

그가 내 손을 잡아서 입술을 맞추었다.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껏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한숨이 나온다. 저 사람은 미워하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라서.

한 다리를 사랑에 걸쳐놓고, 온 몸을 안전에 뉘어 두거라. 영원을 믿지 말라. 곧장이라도 떠날 수 있게 무언가를 남기지 마라. 나는 다짐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한테 더 반하지 말자. 저 사람의 친절에 익숙해지지 말자. 저 사람의 부에 익숙해지지 말자. 저 사람의 사랑에 익숙해지지 말자.

영원하지 않을 것 같다면, 흔적조차 남기지 말자. 그의 세상은 나의 것과는 다르다고 믿자. 행복해지지 말자.

마차가 멈춘다. 문이 열린다. 집사장은 늦어진 가주의 귀가에, 잠을 자지도 못했는지 꽤나 피곤해 보였다. 그럼에도 격식있는 자세로 우리를 맞이했다.

“로드 화이트, 레이디 로즈를 뵙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앞으로는 세실리아를 레이디 화이트라고 부르도록 해라.”

“제롬!”

내가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굳건했다. 레이디 화이트. 그의 아내가 될 사람에게만 허락된 칭호.

“그리고 모든 고용인들에게 전해라, 앞으로 내 지붕 아래서 세실리아를 레이디 화이트로 부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엄벌에 처하겠다.”

“우리 오늘 밤에 약혼했어요!”

“세실리아.”

그가 단호한 어조로 나를 불렀다.

“세실리아.”

그리고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다시 한 번. 그의 손등이 내 뺨을 훑었다. 집사장과, 마부는 분위기에 자리를 비켜 넓은 마당에는 그와 나 뿐이었다.

“저는 당신이 없는 미래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나는 수없이도 많이 상상했는데. 그가 나를 떠나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제 성의 레이디가 되어주십시오.”

“나중에 얘기해요.”

“세실리아!”

그가 부르며 따라왔지만, 나는 그를 무시하고 그의 저택 정문으로 걸어갔다.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 순간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제가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들어가죠.”

나는 그의 팔에 내 것을 끼워 넣고는 가만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아무말없이 보폭을 맞춰 나를 이끈다. 한 지붕 아래, 다른 미래를 그리는 두 연인.

이게 얼마나 웃긴, 아이러니인지. 나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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