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02화 (602/1,007)

29권 11화

가전 부문에 혁신이 없던 건 아 니다. 3사 통합된 매머드급 전자 회사였기에 겹쳐진 사업 영역도 상 당했다. 이러한 사업장을 통합하고 핵심을 추려 강화했다.

특히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의 대표 백색 가전의 라인업을 정리하 는 건 아직도 수행 중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이 다 끝난다고 해서 실적이 기적처럼 반전될 거라 는 보장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재원으로부터

직접 미국으로 와서 보고하라는 명령이 왔고, 다들 을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 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와 보니 정 해진 스케줄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숙박도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이 주어졌고, 단체로 영화 관람까지 했다. 그리고서 회장님의 집에 초 대를 받기까지 했다.

불호령을 걱정하던 사장과 임원 들에게는 그야말로 반전인 상황이 었다.

"그간 일이 많아서 가전 부문에 신경을 쓰지 못하긴 했죠."

"아, 아닙니다, 회장님!"

사장과 임원들이 유재원의 가벼 운 자책에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들을 이곳으로 불렀다.

"혁신을 완성할 돌파구를 보여드 리죠."

정확하게는 ID 일렉트로닉스의 가전 부문도 초일류로 만들어 줄 미래의 가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혁신을 완성할 돌파구라니.

가전 부문 사장과 임원들은 불안 감이 사라지자 호기심이 밀려들었 다. 수천억 원 단위의 적자 보고에 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젊은 회 장님의 배포마저 과연 대단하다는 감정도 뒤따랐다.

하긴 ID 그룹이라는 기업의 한 해 순이익은 기본이 10조 원 이상 이었다.

고부가 가치 상품인 운영 체제는 물론 다양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확고부동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 었다. 인터넷 공급은 물론 인터넷기반 서비스와 모바일도 무시무시 했다. 심지어 컴퓨터 완제품 판매 도 대단했다.

이러한 ID 그룹에서 오점은 딱 하나, 가전 부문이었다.

덕분에 가전 부문 사장과 임원들 그리고 직원들이 갖는 공통의 걱정 은 바로 매각이었다.

다른 재벌들이었다면 분명 그랬 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수천억 원의 적자가 나오는 사업에 대해서 불같이 화를 내고 대책을 마련하라 고 닦달했을 것이고, 그것이 신통치 않으면 어떻게 해서든 포장을 해서 매각을 한다.

요즘 한국에서 한창 인기를 끄는 경영 서적이 바로 GE의 회장 잭 웰치의 초일류 경영이었다.

초일류 경영이라고 해서 뭔가 대 단한 경영 기법이 있는 건 아니고, 1등을 하지 못하는. 최소 2등은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면 과감하게 정리한다는 이야기였다.

실제 IMF를 졸업한 한국이지만, 많은 기업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여러 혁신을 실행중이었고, 그중에는 잭 웰치의 초 일류 경영 기법을 따라 하는 이들 이 제일 많았다. 구조 조정만큼 기 업의 실적을 쉽고 빠르게 반전시킬 수단은 없었다.

ID 일렉트로닉스 역시나 가전 부 문을 모두 매각해 버린다면 2001년 도 실적은 거의 1조 원 정도 상승 한다.

가전 부문이 낸 순손실 금액이 5 천억 수준인데 왜 1조 원이냐 하 면, 임직원들의 임금과 공장 설비 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또 따로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가전 부문 임 원들을 미국으로 소환했을 때 드는 제일 큰 걱정이 바로 매각 방침을 정한 거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천만다행히도 유재원은 가전 부 문을 매각할 의사는 조금도 보여주 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계열사들에게 먼저 보여준 '회장님의 마법'을 보여주겠 다고 했으니 기대감이 커졌다.

회장님의 마법이란 ID 그룹의 직 원들끼리만 공유하는 전설을 말했간단한 의견 제안이 수백, 수천 만 달러를 벌어들일 아이디어 상품 이 되고, 몇 시간 혹은 며칠의 프 로그래밍만으로 전설로 기록될 소 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며, 수십 개 월 고민했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 는 등의 마법과 같은 능력을 발휘 했다.

다른 기업들도 유재원처럼 회장 님들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보였다는 PR 활 동을 하고 있지만, 실제 능력을 발휘한 건 극소수였다.

그만큼 어려운 일인데, 유재원은 식은 죽 먹는 것처럼 해냈다. 과연 그 기적이 ID 그룹의 쥐구멍이라는 가전 부문에도 들어올 것인가.

사장과 임원들은 유재원의 뒤를 따라 궁궐과 같은 거대한 집의 복 도를 걸을 때마다 감탄과 함께 기 대감이 올라왔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여기에요."

유재원이 사장과 임원들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태평양이 훤히 보 이는 거실이었다.

다만 티파니와 함께 주로 지내는 개인적인 공간의 거실이 아닌, 집 안에 많은 손님들이 왔을 때 모두 가 함께 모일 수 있는 커다란 거실 이었다.

전망이 대단히 시원했고, 거실 내부의 인테리어도 과연 세계적 기 업을 거느린 회장님의 집답게 훌륭 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디디야."

갑작스러운 유재원의 부름에 긴 장하고 있던 사장단들이 깜짝 놀랐 다.

디디?

ID 일렉트로닉스를 위한 비밀 병 기가 디디인가 하고 그들의 머릿속 이 복잡해질 때, 거실 구석에서 털 이 북실북실한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다 유재원에게로 왔다.

-야웅!

고양이계의 테너 같은 굵은 울음 소리와 함께 말이다.

혁신을 완성할 비밀 병기를 보여 주겠다고 사람들을 데려와 놓고 고 양이 자랑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디디라는 고양이는 확 실히 귀여웠다. 사장단 중에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 었고, 고양이는 더더욱 생각이 없 었는데도 그 귀여움 때문에 시선이 절로 꽂혔다.

"어디 가 있나 했더니, 여기 있 었네?"

유재원은 가까이 다가온 디디를 안아 올리면서 말을 걸었다. 물론 사람 말을 알아듣는 고양이는 없지 만, 때로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 럼 행동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너 무 귀여워서 저절로 아무 말이나 하게 된다.

만약 유재원과 티파니 사이에 아 기가 생겼다면, 모든 관심은 그 아 기에게로 가겠지만 아직은 아니었 다.

더욱이 당분간은 아기를 가질 계 획도 없었다.

유재원은 적어도 2010년까지는

정신없이 바쁠 예정이었고, 티파니 도 셰브롱의 후계자 레이스에 참여 중이라 아기를 낳아 돌볼 시간이 없었다.

덕진리에 계신 부모님은 손주를 안아 보고 싶어 하셨지만, 유재원 의 설명을 듣고서 충분히 이해해 주셨다.

무엇보다 유재원이나 티파니나 이른 나이에 결혼한 덕에 2010년쯤 에 아기를 낳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디디, 여기서 뭐 했어? 또 진돌이 괴롭히고 있었어?"

유재원은 이번엔 다른 이름을 언 급했다.

-야割

디디는 억울하다는 듯 유재원의 품 안에서 울었다. 곧이어 바둥거 리기 시작했다. 내려 달라는 뜻이 었기에, 유재원은 디디를 내려놓고 다른 이름을 불렀다.

"진돌아!"

조금 전 언급된 진돌이었다.

사장과 임원들은 또 다른 반려동물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거실 한편에서 나온 것은 상상했던 동물 이 아니었다.

따그닥, 따그닥.

마치 말의 발굽 소리와 함께 뭔 가가 나타났다.

"헉!"

상황을 지켜보던 임원 중 하나가 헉 소리를 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새롭게 등장한 반려동물은 상상했던 모습 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로봇!"

덩치가 좀 큰 강아지였다. 하지 만 피부는 털이 하나 없이 매끈했 고 짙은 회색의 몸통에 곳곳에 은 빛의 크롬이 들어간 강아지 로봇이 었다.

따그닥 소리가 났던 것도 고양이 처럼 젤리와 같은 발바닥이 아닌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다리가 거실의 대리석 바닥과 부딪치며 나 는 소리였다.

"로봇 강아지 진돌이를 소개할게요.

진돌이라는 귀여우면서도 위엄 있는 모습이 어울리게 새롭게 등장 한 로봇 강아지는 제법 듬직했다. 원형 모델이 진돗개였기에 다리는 길었고, 귀도 날렵하게 생겼다.

"인공 지능이 탑재된 로봇이고, 반려견 역할과 함께 집 안의 내부 경비도 담당해 주는 녀석이에요."

제작사는 보스턴 다이나믹스였 고, 설계는 ID 하이테크에서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운영 체제와 가 벼운 인공 지능 알고리즘은 ID 테 크놀로지 그리고 유재원이 직접 만들었다.

"소니에서 나온 로봇 강아지도 있지만, 기능적으론 차원이 달라요.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유재원은 입이 떡 벌어진 가전 부문 사장과 임원들을 거실의 푹신 한 소파에 앉게 했다. 유재원도 맞 은편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진돌이라는 로봇 강아지 는 유재원에게 꼬리를 흔들면서 소 파 옆 공간에 앉았다.

그 모습에 사장단들은 더더욱 놀 랐다.

마치 영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진돌이의 모습은 상당히 완성도가 있었다. 소니의 로봇 강아지와 비교한다면 다리도 이중 관절로 무릎이 완벽히 구현되 어 있었다. 덕분에 앞다리를 쭉 펴 고, 뒷다리로 앉는 모습이 전혀 어 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따지고 들어가 면 현대의 기술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리튬 계열 배터리 중에 안정성이 제일 좋은 리튬 폴리머 배터리가 채용되었고, 주변을 살피는 각종 센서들도 안드로이드폰에 탑재된 모델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진돌이 의 두뇌라 할 수 있는 프로세서도 MAP3 프로세서였다.

인공 지능 역시나 강아지의 모습 을 본뜨게 활동하는 정도이지, 진 짜 자체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행동 하는 건 아니었다.

"평소에는 보통의 강아지들처럼 활동해요. 그러다가 소리가 나면 달려가서 무슨 일이 있나 확인을하죠."

대신 눈이 있는 부위에는 고성능 CCD가 장착되어 있었고, 이를 통 해 밖에서도 집 안의 상황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렇게요."

유재원은 본인의 안드로이드폰을 꺼내 진돌이 아이콘을 눌렀다.

그러자 프로그램이 구동되더니 비디오 화면이 나왔다. 진돌이의 눈을 통해 본 영상이 안드로이드폰 에 그대로 전송되는 것이다.

사장단들 사이에 감탄이 절로 나 왔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원리는 간단 했다. 웹 캠이다. 진돌이의 눈에 내 장된 CCD 로부터 받은 영상을 MAP 프로세서와 인코딩 칩이 고 화질 저용량으로 압축해, 와이파이 로 연결된 무선랜을 타고 유재원의 안드로이드폰으로 전송이 되는 것 이다.

"진돌이는 시범적으로 만든 프로 토타입이고, 그만큼 실제 발매할 때는 스펙을 좀 다운시켜야겠지요."

그렇지만 진돌이 하나만으로 ID 일렉트로닉스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다.

소니가 로봇 반려견이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힘을 썼지만, 소수 의 마니아가 아닌 대중적인 보급에 는 실패했다.

그렇지만 로봇 반려견으로 세계 적인 명성을 얻었다. 최첨단 가전 제품은 소니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진돌 이는 ID 일렉트로닉스라는 신생 전자 회사의 대중적인 인기를 만들어 줄 아이템이었다.

"인공 지능 로봇은 진돌이뿐만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유재원은 시선을 돌렸 다. 때마침 바닥을 쓸고 다니는 등 글납작한 기기가 있었다. 무선 인 공 지능 청소기였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인수하면서 의뢰했던 물건이 바로 인공 지능 청소기 였다.

진돌이를 보고 난 다음이라 사장 단은 감흥이 좀 덜해 보였다. 하지 만 기술적인 수준에서는 진돌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돌이와 로봇 청소기의 차이는 경우 네 발과 바퀴의 차이점이 있 을 뿐이다.

나머지는 동일한 센서가 장착되 어 있었다. 오히려 장애물을 파악 하고 움직이는 건 로봇 청소기의 수준이 좀 더 높았다.

초음파를 통해 바닥에 널린 장애 물을 감지한다든가, 자동 충전을 위한 도크의 자리를 기억한다든가, 이미 쓸고 지나간 자리를 기억하는 등의 기능이 좀더 보강되었다.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폰으로 조작이 가능하죠."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어 청소기의 상태를 확인한다거나, 먼 지 통에 먼지가 얼마나 쌓였나 확 인할 수 있고, 가득 찰 경우 알람 을 울려 주기도 한다.

또한, 안드로이드폰으로 잠들어 있던 로봇 청소기를 깨워 청소를 시킬 수도 있다.

유재원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사장단들 사이에서는 감탄을 숨길 수가 없었다. 확실히 기존의 가전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부는 얼굴빛이 어두워 졌다. 이러한 제품으로는 ID 일렉 트로닉스 로고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지언정, 실적을 개선시키기 엔 무리였다.

진돌이라는 강아지 경비 로봇은 딱 보기에도 엄청나게 비싸 보였고, 이를 구매할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다.

로봇 청소기 역시 새로운 물건에 호기심을 보이는 이들이라면 기꺼 이 구매하겠지만, 기존의 진공청소기를 대체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저기 회장님……

결국,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라도 쥐어짜 질문을 하려는데, 유재원이 더 빨랐다.

"하하, 무슨 말 할지 알아요. 여 러분께 보여드릴 게 이게 전부는 아니죠."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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