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권 12화
유재원도 당연히 사장단들의 우 려를 예상했다.
오히려 로봇이라는 임팩트에 눌 리지 않고, 계산기를 두드려 손익 을 따져보는 모습에 만족해했다.
당연히 유재원도 로봇 청소기와 로봇 강아지로는 ID 일렉트로닉스 의 가전 부문 실적을 개선할 수 없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분, 여기 진돌이와 로봇 청 소기의 공통점을 아시겠어요?"
유재원은 곧장 준비한 해답을 보 여주기 전에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인터넷입니다!"
다행히 가전 부문 사장은 정답을 맞혔다.
"네, 인터넷이죠. 그러면 사물과 인터넷의 결합은 뭐라고 해야 할까 요'?"
그렇지만 이어진 유재원의 물음 에 사장단은 대답이 없었다.
사물 인터넷의 개념은 아직 대학 교 연구소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 는 최신의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1999년 MIT의 오토 아디 센터
에서 처음 나왔지만, 아직은 연구 단계였지 지금처럼 그럴듯한 예제 를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IoT, 사물 인터넷이라 하죠."
사장단들은 유재원의 말에 IoT를 몇 번이고 곱씹어 보았다. 이해가 어려운 개념은 아니었다.
진돌이와 인공 지능 청소기만 봐 도 인터넷과 사물이 결합했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 었으니 말이다.
"이리 오세요. 백색 가전에 IoT 를 결합한 모습을 보여드리죠."
유재원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 다.
사장단을 이끌고 이번에 도착한 곳은 티파니 그리고 예전부터 집에 고용된 전문 요리사들이 한창 음식 을 만들고 있던 주방이었다.
그곳에서는 큼직한 LCD 터치스 크린이 달린 양문형 대형 냉장고와 식기 세척기를 보여줬고, 세탁실에 서는 드럼 세탁기와 건조기, 드레 스 룸에서는 의류 관리 기기인 스 타일러, 실제 유재원 부부가 생활 하는 프라이빗 룸에서는 대형 LCD TV를 보여줬다.
제품을 볼 때마다 사장단은 진돌 이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 받았다.
진돌이는 미래에서 가져온 물건 이었다면, 이번에 보여준 물건은 현재의 기술로 최대한 세련되게 만 들어진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더더욱 놀라운 점은 해당 제품에 는 죄다 ID 로고가 있었다는 점이 다.
ID 로고는 손톱만 하게 작아서 처음엔 잘 보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도대체 어느 회사 제품인지 찾 아보느라 애를 먹었을 정도다.
유럽의 명품 가전 업체인 밀레도 저렇게 세련된 디자인의 신제품을 내놓은 기억은 없었다.
다른 경쟁 회사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ID 그룹 회장의 집이었고, 그 명성에 부합 되도록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고 기 품이 철철 넘쳐흘렀다.
그런 인테리어 속에서 각각의 가 전제품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사장단들은 오죽하면 세계 최상위 부자들만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 드는 가전제품 회사가 따로 있나 싶을 정도다.
작은 단서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 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사장단 중 누군가의 눈이 부릅떠졌고, 덕분에 모두가 그 단서를 발견하고는 흥분 했다.
"회장님! 이 가전제품들을 모두 우리 그룹에서 만들었습니까?"
사장의 흥분된 목소리였다.
"네!"
유재원의 간단한 대답이다.
가전 부문 사장은 유재원 앞이지 만 헉 소리가 절로 났다.
제품 구석에서 찾은 단서란 바로 ID 로고였다. 그걸 발견하고 얼마 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ID 그룹 전체를 봐도 백색 가전을 만드는 공장은 오직 ID 일렉트로닉스에 있었으니 말이다. 가전 부문 사장도 모르는 가전제품 생산 라인이 또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저의 의뢰로 하이테크 연구소에 서 만들었죠."
하이테크 연구소의 임무는 대외 적으로는 최첨단 기술의 연구였다. 실제로 드론처럼 엄청난 물건이 태 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다 른 임무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온 갖 제품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일 이었다.
특히 유재원이 필요한 물건인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하이테크 연구소를 통해 만들어졌티파니폰이 그랬고, 태블릿 PC가 그랬다.
이곳 샌프란시스코 신혼집에 있 는 가전제품도 그렇게 탄생했다.
전 세계에 딱 하나, 오직 이곳에 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다.
친절한 유재원의 설명을 모두 들 은 가전 부문 사장과 임원들은 진 심으로 우러난 감탄과 함께 깊은 자괴감도 밀려왔다.
집이 커서 집 안 곳곳에 마련된 가전제품들을 둘러보는 데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냉장고와 TV처럼 나 여기 있다 는 듯 존재감을 강하게 뿜어내는 제품도 있었고, 시스템 에어컨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제품도 있었 다.
그렇지만 떡하니 보이든, 보이지 않든 공통점이 있다면 IoT라는 기 술이 적용되어 있었고 안드로이드폰을 통해 어디서든 제어할 수 있 었다는 점이다.
이는 집 밖에 설치된 제품들 역 시 마찬가지였다.
삼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많은 경비 인력이 상시 근무 중인 유재원의 집이었다.
그렇지만 면적이 워낙 넓어서 그 인력으로도 사각이 생기는 곳이 있 었다. 그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당연히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된 CCTV였다.
그것도 고정형이 아닌 소리가 나면 해당 지점으로 CCTV가 움직이 고, 촬영된 영상은 이미지 분석 모 듈을 통해 실시간으로 분석되는 압 도적 성능을 자랑한다.
설정한 안드로이드폰으로 알람이 가고 원한다면 영상도 받아 볼 수 있었다.
첩보 영화에서 항상 나오는 장면 인, CCTV는 잘 작동하는데, 담당 자가 한눈을 팔아서 혹은 한눈을 팔도록 만들어 침입하는 상황은 이 곳 유재원의 집에서는 불가능하다 는 이야기다.
한 시간 남짓한 집 안 투어를 마 치고 유재원과 사장단은 다시 서재 로 돌아왔다.
서재는 타이밍에 맞게 시원한 음 료도 세팅되어 있었다.
"어때요?"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며 숨을 돌 린 유재원은 사장단에게 소감을 물 었다.
"10년 정도 앞선 미래를 보고 온 것 같습니다."
가전 부문 사장의 대답에 유재원은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다.
이곳 샌프란시스코 신혼집에 설 치된 제품들의 구조는 현재의 가전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세련 된 디자인 그리고 인터넷과의 결합 으로 10년은 앞서 있는 것처럼 느 껴지게 했다.
"그렇다고 IoT가 만능은 아니 죠."
세탁기나 식기세척기에 인터넷을 연결한다고 해도 딱히 쓸모는 없었 다. 괜히 가격만 올라갈 뿐이었다.
"세탁기는 빨래 세탁을 잘하고, 식기세척기는 설거지를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러니 여러분 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가전 기 기의 본질을 극대화하면서 인터넷 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회장님!"
가전 부문 사장이 대표로 대답했 다.
그야말로 의욕이 넘쳐흘렀다. 가 전제품만 수십 년 만들어 온 베테 랑이었던 그는 조금 전 확인한 제품들의 시장성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무조건 성공이라고 말이다. 진돌 이나 인공 지능 청소기도 대단한 반향이 올 것이 확실했다.
다만 양산을 위해선 분해해 볼 제품 혹은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설계도가 있어요."
유재원은 사장의 생각을 읽은 것 처럼 설계도를 말하며 쪽지를 내밀 었다.
ID 그룹 내부의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와 암호였다. 저장 장치는 디스켓에서 CD 로 DVD로 발전했고, 이제는 USB 메 모리가 대중화 되는 중이지만 시간 을 달리는 ID 그룹은 클라우드 서 버가 기본이 되는 중이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인증 키를 넣으라는 창이 또 뜰 거 예요. 당황하지 마시고 사장님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문자의 인증 키를 그대로 입력하면 됩니다."
클라우드 서버의 최대 단점인 해 킹은 이중 보안으로 철벽을 쳤다.
아무리 잘난 해커라도 분리된 인증 절차를 동시에 뚫어내기는 불가능 했다.
실제로 ID 그룹의 클라우드 서버 에 대한 공격은 하루에도 수백 건 씩 생기고 있었다.
심지어 미국과 한창 해킹 문제로 힘겨루기를 하는 중국도 빠지지 않 았다. 아니, 건수만 따지면 제일 많 았다.
중국의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 다.
지금 중국은 911 사이버 테러로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 미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강경 대응 여론이 하 늘을 뚫을 듯 높았다.
여기엔 군산 복합체의 로비도 한 몫했다. 원래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에서의 작전이 전쟁으로 비화되는 걸 원했다.
소규모의 작전이 전쟁으로 확대 된다면 재고를 처분하는 것은 물론, 무기도 원 없이 팔 수 있었으니 말 이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작전 이 예상과 달리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당황했다. 그러다가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중국이었다.
냉전이 러시아의 내부 붕괴로 마 침표를 찍은 다음, 군수 업체들의 꿀단지는 사라졌다. 이라크 전쟁으 로 숨통이 조금 트이긴 했지만, 냉 전 시절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도출된 결론은 미국 에겐 새로운 숙적이 필요하다는 것 이었다.
그들의 눈에 중국이 들어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욱이 사이 버 911 테러라는 명분까지도 만들어지면서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라이징 차이나라는 말이 워싱턴 DC에 자연스럽게 떠돌아다니기 시 작했다.
물론 그 어원은 유재원이 만든 싱크탱크인 동아시아 전략 연구소 에서 출판한 책이었다.
수년 전부터 중국의 급부상을 예 측했고, 강대해진 중국이 펴 나갈 행보에 대해 예측한 책이었다.
현재의 중국은 책의 초중반부와 싱크로율이 80% 이상이었으니, 다 시금 회자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튼 중국은 매년 10% 이상씩 경제 성장을 하고 있으니, 보이는 게 없던 모양이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그럴 만했다.
IT 혁명 이후 미국의 탄탄한 경 제 성장에는 공짜에 가까운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통한 생산 비용 감소가 절대적이란 분석도 있었으 니 말이다.
그러니 미국이 중국에 사이버 911 테러를 명분으로 압력을 넣더 라도 경제 봉쇄 같은 조치는 취하 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다.
오산이었다.
미국인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실감한다면, 절대 선택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지금의 미국인들에게는 911 테러 에 대한 보복을 위해서라면 경제 성장률이 좀 떨어진다는 건 아무것 도 아니었다.
유재원도 마찬가지다.
슈퍼 파워를 가진 중국의 횡포를 직접 경험했던 유재원에게는 당분 간 세계 경제가 얼어붙는 건 큰 문 제도 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절대 기대를 저버 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유재원의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가전 부문 사장은 그저 황송해하며 쪽지를 받았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신제품들 로 ID 일렉트로닉스의 가전 부문도 화려하게 부활할 것임을 믿어 의심 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IoT가 적용된 신제품들 은 어떤 식으로 마케팅을 할 건가 요?"
안타깝게도 유재원의 지적 사안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ID 일렉트로닉스 가전 부문의 제 일 답답한 점은 신제품 개발도 아 니었다.
IoT와 같은 신기술은 지금 시점 에서는 오직 ID 하이테크에서만 구 현 가능한 기술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바로 마케팅이었다.
3사 통합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라인업의 정리도 아직 이루 어지지 못했다.
LCD TV만 해도 일성에서 반쯤
만들어 보다가 ID 일렉트로닉스로 넘어온 하브라는 브랜드도 있었고, 대호전자의 PDP TV도 있었다.
메커니즘부터 브랜드까지 그야말 로 중구난방이었다. ID 디스플레이 라는 세계 최대의 LCD 패널 회사 도 보유했지만, 이렇게 파편화된 제품군 때문에 완제품 LCD TV에 서는 소니나 샤프, 필립스 같은 회 사에 밀렸다.
"TV와 같은 디스플레이 제품은 보르도, 세탁기와 냉장고, 에어컨 등의 대표 백색 가전 라인은 클라세로 이원화하는 게 좋겠어요. 이 렇게 대표 브랜드를 만들고 모델의 기능과 가격별에 따라 수식어를 추 가하는 거죠. IoT이 LCD 패널도 부착된 양문형 대형 냉장고는 클라 세 셰프 에디션이라 하고, 소형은 미니라고 해도 되고요."
이에 대한 유재원의 대처는 바로 개별 브랜드였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