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9회
인공 진화
=============================
○ 인공 진화
며칠 후.
-JFK 사건 담당 재판 1심 판결 확정!
-데이비드 록펠러 사형, 그 외 공범 13명에 대해서는 감형 없는 무기 징역.
반독점법 판결에 이어 JFK 사건도 1심 판결이 끝났다.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이 예상했던 그대로 사형과 감형이 없는 무기 징역의 형이 떨어졌다. 그렇지만 사형이 진짜 집행되진 않았다. 이제 1심이었고, 3심이 끝나야 형이 확정되니 말이다. 게다가 재판이 이뤄진 워싱턴 DC는 사형제가 없는 주였다.
사형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형은 집행되지 않을 거다.
대신 록펠러라는 가문에 대해서는 사형이 맞다.
이제는 지킬 명예도 땅에 떨어졌다. 그냥 땅바닥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지하로 뚫고 내려가 펄펄 끓는 마그마에 빠졌다고 해도 될 정도다.
전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던 재산이 있지만, 이제는 그것도 얼른 팔아서 벌금과 추징금을 만들어내야 했다. 미국 국민들은 단돈 1센트라도 모조리 환수하길 원했고, 미국 정부 역시 단단히 칼을 갈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록펠러 가문의 사람들은 유산 분배 문제로 소송에 소송을 거듭하면서 추잡한 일은 다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 록펠러라는 성은 명예가 아닌 혐오의 상징이 되었다.
같은 시간.
-30만 개, 30만 개만 보내주십시오.
“음, 알겠어요. 대신 올해는 딱 30만 개까지예요.”
-물론입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무슨 통화인고 하니, CIA의 맥마흔 국장과의 통화였다.
맥마흔 국장이 바라는 건 당연히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만들어진 DM12 칩이었다. 아키텍처는 모바일 AP였지만 그 성능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성능 벤치마크에서 DM12 칩 위에 자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도 2위와 압도적인 성능의 차이를 발현한다. 30% 정도 차이가 나면 확실한 세대 교체라고 하는 컴퓨터 업계에서 이제껏 8배의 성능이 튀어 오른 경우는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압도적인 전력 효율과 미지근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한 열 관리로 대규모 서버를 만드는 데 이보다 적합한 칩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얻어 보겠다고 유재원을 찾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맥마흔 국장처럼 진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네, 그동안 음지에서 도와주신 공도 있으니 챙겨 드리는 거예요.”
유재원의 머릿속에는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의 목록이 있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물량은 철저하게 해당 리스트에 따라 배분되었다.
맥마흔 국장은 4위 정도 된다.
본인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유재원을 도운 사람인데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3명이나 더 있다고?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유재원은 고민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존 매케인 대통령, 푸틴 대통령, 정병우 대통령이 그 위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쩐지 정병우가 존재감에서 밀리긴 해도, 한국에서 유재원이 지낼 때 안전을 위해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건 확실히 체감이 될 정도였다.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 옥상에 대공포도 설치해 줄 정도였으니, 존재감은 밀려도 제일 적극적이었다.
“배송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대전에서 직접 수령하겠습니다.
맥마흔 국장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직접 수령을 선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국이나 유럽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게 배송 사고였다. 값비싼 제품이 운반되는 걸 중간에 빼돌리는 택배 업체 직원도 있었고, 아예 물류 차량을 강탈하는 강도 사건도 있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쓰인 제품을 대상으로는 특히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 스마트 찬스는 P마켓과 ID 플래그십 스토어 인터넷 사이트를 기본으로 했고, 배송도 택배 배송이 기본이었던 탓이다. 배송 업체 사람들이 이걸 중간에 빼돌리는 건 너무 쉬웠고, 현금화도 너무 쉬웠다.
리셀러 시장에서 최고 인기 상품으로 등극한 덕에 즉각 목돈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제일 비싼 건 뉴에그였고, 스마트폰이 다음이다. 그렇다고 패드 제품이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피드백을 받고서 ID 그룹은 ID 플래그십 스토어의 현장 수령 옵션도 넣었다. 심지어 맥마흔 국장도 배송 사고를 우려해서 직접 수령을 선택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음, 물량은 이틀 후에 준비될 거예요.”
-고맙습니다. 대금은 즉각 입금될 겁니다.
“계산이 깔끔하시네요.”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물건인데,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내년이면 양산이 시작되는 물건이지만, 첩보의 세계에서는 단 하루, 몇 시간 차이로 작전의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슈퍼컴퓨터 순위 역시 이제는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새롭게 쓰여질 판이었다. 연산력의 단위도 페타플롭스가 아니라 엑사플롭스라는 단위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예정이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이전에는 엑사플롭스 단위가 오직 ID 클라우드 시스템에서만 자랑하던 경지였다면, 이제는 그 문턱이 훨씬 내려갔다.
“네. 서로 기본을 지키는 게 좋은 일이죠.”
-예, 바로 그렇습니다. 그럼 다음에 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맥마흔 국장과 통화를 종료한 유재원은 CIA의 주문서를 승인했다.
이번 거래가 이뤄졌으니 CIA의 프리즘 시스템도 엑사플롭스 단위로 업그레이드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클라우드 시스템을 능가하진 못하겠지만.”
당연하게도 ID 클라우드 시스템도 한창 업그레이드 중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퓨처 액세스로 준비된 물량이 500만 개라고 했지만, 그건 9월까지 생산 라인을 돌리면서 물량을 맞췄다.
물량을 다 맞췄으니, 생산 라인을 쉬게 놔두느냐?
당연히 아니다.
앞으로 만들어낼 물량은 ID 클라우드 시스템을 위해서 전량 사용할 예정이었다. 최악의 수율에도 열심히 생산을 한 덕에, 지금은 약간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수율이 조금 올랐다. 원래는 웨이퍼 한 장에 10~20개의 양품 칩이 나왔다면, 지금은 20~26개 정도의 양품이 나온다.
원래 목표인 1장당 200개 이상까지는 아직도 먼 길이 남았지만, 그래도 수율이 좀 오른 덕에 한 달에 200만 개 이상의 칩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 물량을 그대로 ID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성하는 데이터센터 업그레이드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이러한 업그레이드 작업으로 가장 기대되는 건 인공지능 골드의 지능 향상이었다.
성능이 업그레이드되는 만큼 지능이 향상되는 게 골드를 구성하는 핵심 알고리즘의 최대 강점이었다.
한층 더 똑똑해질 골드가 너무나 기대되는 유재원이다.
물론 이렇게 업그레이드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골드가 자의식이 생기는 강인공지능으로 진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양자 슈퍼컴퓨터 프로젝트인 퀀텀이 완성된 후에나 기대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10월 말이 되었다.
굵직한 사건에 휘말린 유재원이었던 만큼 눈 한 번 깜빡거리니 벌써 10월도 다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조바심은 없었다.
2012년에서 제일 중요했던 IDDC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주제도 모르고 싸움을 걸어 왔던 록펠러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스트레스가 확 풀렸기 때문이다.
짧은 휴식기를 마치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는 날이지만, 업무라는 것도 아주 가벼운 일만 남았다. 다만 첫 스케줄이 한국행 출장이라는 건 살짝 아쉬운 대목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빠 한국 다녀올 동안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응!”
유재원은 출장길을 나서기 전 혜성이에게 늘 하는 당부의 말을 건넸다.
“동생 라희도 잘 챙겨주고.”
이제부터는 동생을 챙기라는 말도 추가되었다.
“응!”
대답을 시원시원하게 하는 혜성이지만, 두 손에 쥔 Z2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상태로 하는 대답이었다.
“혜성이, 아빠 출장 가시는데 계속 엄마 스마트폰만 잡고 있을 거야?”
“아니야!”
유재원은 그 모습도 그저 귀여워 보였는데 티파니가 기어코 한소리를 했다. 한 번 뭐에 꽂힌 아이들을 멈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혜성이는 바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게 아닌가.
“헤헤, 아빠 출장 잘 다녀오세요. 돌아오실 때 선물 부탁해요!”
엎드려 절 받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이어서 유재원은 티파니 품에 안겨 천사처럼 자는 라희와도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럼, 다녀올게.”
마지막으로 티파니와 가벼운 키스를 한 유재원은 밖으로 나가서 김대석이 준비한 차에 올랐다.
저택에서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도 금방이었고, 공항에 주기되어 있던 전용기도 유재원이 탑승하자 바로 날아 올랐다.
한국이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인천국제공항에 내려 보니 확실히 한국에 왔다는 느낌을 받는 유재원이다.
냄새였다.
공항마다 독특한 냄새가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조금 탁한 느낌이었다. 샌프란시스코도 그다지 좋은 공기 질은 아니었지만, 서울의 공기 질은 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나빴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늘은 좀 심한데?”
그런데 몇 달 전 출국했을 때보다 훨씬 탁한 느낌이었다.
“골드, 여기 미세먼지 수치는?”
-미세먼지 103㎍/㎥, 초미세먼지 47㎍/㎥입니다.
“뭐야? 적색 경보 수준이잖아!”
미세먼지가 103이라니. 게다가 미세먼지보다 훨씬 위험한 초미세먼지 수치도 47이나 된다. 이 정도면 2020년 기준으로 적색 경보가 나올 만한 수치였다.
“회장님, 여기 마스크 있습니다. 숨 쉬는 게 좀 불편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착용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 최 부회장이 KF 마크가 선명한 마스크를 건넸다.
차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데 5분이면 되지만, 그래도 건강을 위해서 유재원은 바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작년부터 미세먼지가 부쩍 심해졌다고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저감 조치를 하고 있는데도, 연일 신기록 갱신이라더군요.”
“우리가 열심히 저감 조치를 시행해 봐야 중국이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거죠.”
한중 무역 전쟁도 소강기에 접어들었고, 미중 무역 전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끝나면서 그동안 돌리지 못한 한을 풀 듯 공장을 미친 듯 돌렸다. 여기에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석탄 소비도 늘어나니 동남풍이 불면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에 미친 듯 유입되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것도 과거에 비하면 조금 나아진 것이었다.
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으로 중국 북부 지방에 난방용 기름과 가스가 계속 공급되고 있는 덕이었다. 그렇지만 석유나 가스가 비싸서 쓰지 못하는 집에서는 여전히 석탄을 썼고, 좀 더 구식인 집에서는 나무를 썼다.
“그리고……. 특이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최 부회장은 안드로이드 패드에 문서 하나를 띄워 유재원에게 보여 줬다.
세종시의 시티 OS에서 관리하는 미세먼지 데이터였다.
100% 계획도시이자 스마트 시티인 세종시는 궁극적으로 모든 동력을 전기로만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세종시가 세워진 후 몇 년 동안은 일부 자동차들의 통행이 허가되었지만, 지금은 전기자동차가 기본이 되었다.
과거엔 허용되었던 유로6 기준을 통과한 자동차들도 슬슬 퇴출 중이었다.
그런데 중국발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도 세종시 곳곳에서 매연이 감지가 되고 있는 것이었다. 도로마다 센서가 있어서 매연 지도가 나오는데, 규칙성이 딱히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세종시에서는 ID 그룹이 만든 시티 OS에 무슨 결함이 있는 거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보고였다.
유재원은 보고를 듣자마자 바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다.
디젤 게이트.
유로6라는 비현실적 규제를 통과하기 위해서 독일의 자동차 업체들은 우수한 정화 장치를 만드는 대신 배기가스 조작을 선택했다. 출력을 유지하면서 배기가스 오염 기준치를 맞추는 건 불가능하니, 검사를 받을 때만 배기 부품을 껐다가 켜는 꼼수를 부리고 있었다.
그들의 긴 꼬리가 드디어 밟힌 것이었다.
유재원은 이번 사건을 제대로 공론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유럽 찍고 중국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