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14화 (914/1,007)

890회

인공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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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을 비롯한 수행원들 모두 마스크 착용이 끝나자 이동을 시작했다.

KF94라 그런지 바로 탁한 냄새는 사라졌지만,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5분 정도 걸어서 이동하는 것임에도 숨이 턱 막힌다는 느낌이었다.

역시 공기라는 건 편하게 숨 쉴 때는 몰랐다가, 마스크를 낄 때 소중함이 확 느껴진다. 게다가 사람들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유재원 일행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지금은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다. 카메라 플래시도 유독 많이 터졌다. 건강을 너무나도 챙기는 듯 보이는 유재원과 그 일행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유재원은 본인과 일행들의 모습이 별나다고 많이 보도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은 그저 공기질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하고, 그건 개인의 선택 사항일 뿐이지만, 나중에는 전염력이 어마어마한 바이러스 때문에 2년 내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큰 사건이 터지니 말이다.

2019년 겨울부터 우한에서 발생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사태였다.

이번에도 같은 규모로 사태가 커질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일단 백신 탐색 알고리즘이 완성되었고, 수많은 제약 회사들이 ID 클라우드 서버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열심히 알고리즘을 돌리는 중이었다.

실제로 에볼라 바이러스를 시작으로 B형 간염 바이러스, 홍역, 뇌염 등의 백신이 완성되었거나 임상 실험 중이었다. 몇몇 바이러스는 이미 백신이 존재하는 것도 있었는데, 일부러 백신 탐색 알고리즘의 검증을 위해서 돌려본 것이었다. 기존 백신이란 기준점이 있기에 임상실험을 끝까지 진행하지 않더라도 바로 잘못된 것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탐색 결과는 뜻밖이었다. 기존의 백신보다 훨씬 효과가 좋고 부작용을 줄인 백신이 나온 것이었다.

지금은 다이아몬드 반도체까지 완성되었다. 연산력이 다시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으니, 백신 탐색의 속도도 확연하게 단축될 것이 자명하다.

우한에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더라도 그에 대한 효과적인 백신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 것이고 팬데믹까지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재원은 그렇게까지 미래를 낙관하지 않았다

유재원이 우려하는 건 우한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자연 발생이 아닌 경우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이러스 병기를 만들다가 유출된 것이라는 가능성을 지금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바이러스를 설계한 놈들 역시나 백신 탐색 알고리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이를 무력화할 방법을 찾아낼 게 분명하니 말이다.

“회장님.”

김대석의 부름에 유재원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마스크를 쓰다 보니 시작된 상념이 인공 바이러스로까지 확대되면서 잠깐 멍하니 있었던 모양이다.

“아, 네, 무슨 일이죠?”

“여기 최종 확정된 스케줄표입니다.”

최종 확정이라고 해도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보았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한국행 스케줄에서 처리할 큼지막한 이벤트는 모두 4개.

라이트닝 볼트의 신차 발표, 프로녹틱스 3상 시작, AMD의 신형 CPU 시험 생산, 드림 스타디움 개장 행사.

이렇게 4개의 스케줄이 메인이었고, 그 사이에 자잘한 스케줄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김대석이 준 스케줄표에는 그러한 자잘한 스케줄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 거기엔 정부나 기업 행사의 참석이라던가 자선 파티 참석과 같은 이벤트였다.

오늘은 고향집에 내려가는 것 말고는 일이 없지만, 내일부터는 하루에 최소 2건 이상의 미팅과 출장이 잡혀 있었다.

스케줄이 빡빡하다고 김대석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모든 일정은 유재원 본인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말이다. 일단 오늘은 푹 쉬면서 비행의 피로를 떨쳐 버린 다음, 내일부터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리는 것이 최선이다.

다음 날.

고향집에서 푹 쉰 유재원은 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라이트닝 볼트의 신차 발표 행사를 위해서였다. 4년마다 한 번씩 신차를 내는 라이트닝 볼트였다. 신차 발표 행사는 보통 IDDC에서 치러졌는데, 이번부터는 독자적인 발표 행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트닝 볼트의 규모와 위상은 4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지면서 IDDC에서 하루짜리 행사로 삼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현재 라이트닝 볼트의 위상은 최고였다.

전기차 판매량은 연간 1,200만 대를 훌쩍 넘긴 수준이었고, 누적 판매 대수도 8천만 대를 넘긴 상태였으니 말이다.

전기 자동차 분야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가 없었고, 전통의 자동차 회사까지 포함하더라도 순위권에 들고 있었다.

이번 3세대 모델들의 경우에는 라인업이 확대되어서 추가 모델이 여럿 등장할 예정이었다. 물론 기존의 뉴로, 불칸의 신모델과 슈퍼카 라인업에서도 짐승과 같은 새로운 슈퍼카가 추가로 공개될 예정이다.

행사 장소는 부산 벡스코!

역대급 신차 라인업을 쏟아내는 행사였기에, 행사장의 규모도 그에 맞춰야 했다. 부산 모터쇼가 열리는 벡스코는 라이트닝 볼트의 규모에 딱이다.

사실 처음 고려된 장소는 군산이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기가팩토리가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곳이 군산이었으니 말이다.

2005년에 기가팩토리가 자리를 잡은 군산은 매일매일 상전벽해가 일어나고 있었다. 군산의 기가팩토리가 직접 고용하고 있는 직원들의 숫자만 4만 명이 넘는다. 여기에 협력사들까지 더해지면 규모는 더욱 커진다.

비록 전기 자동차가 휘발유 차량보다 구조가 간단하고, 그만큼 핵심 부품의 숫자도 크게 줄었다지만 외부, 내부에서 어마어마한 커스터마이즈를 지원하고 있는 만큼 협력사들의 숫자는 훨씬 많았다.

덕분에 군산이란 도시의 운명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GM의 철수로 성장 동력이 사라지면서 급격한 인구 감소가 일어났다면, 지금은 완전 반대였다. 인구는 꾸준히 증가했고, 소득 수준도 향상되면서 주상 복합 아파트를 시작으로 대규모 상가와 유흥 주점들이 늘어났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군산이었는데, 라이트닝 볼트의 신차 발표를 할 만한 행사장 자체는 부족했다. 게다가 여기저기 공사판인지라 공터에서 치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게 부산의 벡스코였다.

볼트 사장과 최 부회장이 최종 입지를 선정할 때 부산은 일성 자동차의 본진이라 살짝 켕기기도 했다는데, 유재원은 딱히 마음이 쓰이진 않았다.

회귀 전 일성 자동차는 IMF의 직격탄을 맞은 다음 르노에게 넘겨야 하는 신세였지만, 지금은 국내 판매량 2위, 해외 수출도 잘 되는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서 2위는 휘발유 차량의 판매량만을 따졌을 때였고, 전기차까지 포함하게 되면 라이트닝 볼트에 밀려 3등이다. 부동의 1등인 미래 자동차와 라이트닝 볼트에 밀리는 신세지만, 그래도 르노에 넘기는 것보단 월등히 나았다.

“KTX 승차감 좋은데요?”

하여튼, 고향집에서 부산 벡스코까지 가는 방법으로 유재원은 KTX를 선택했다.

헬기도 좋고 전용기도 좋지만, 접근성이 문제다. A380을 띄우려면 인천까지 다시 올라가야 하고, 헬기는 승차감이 별로였다. 반면 KTX는 역까지 가는 길도 편했고 속도도 헬기 부럽지 않게 빨랐다. 덤으로 부산행이라고 하니 KTX가 절로 떠올랐다.

원래대로라면 헬기 이동이었다. 그러니 유재원의 갑작스러운 변덕이었지만 김대석 비서실장은 순발력 좋게 KTX의 특실을 빠르게 예약할 수 있었다.

“그러십니까? 다행입니다.”

다만 김대석은 KTX가 별 탈 없이 부산에 도착하길 기원했다.

KTX가 다 좋은데 잔고장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재원이 탄 KTX가 가다가 멈춰 서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문제였다. 게다가 외신의 주목도가 엄청난 유재원이었으니, 외국에서도 신나게 보도될 거 아니겠는가.

키잉

“응?”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리던 KTX에서 조금 날카로운 소음이 나더니 속도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김대석의 심장이 덜컥하며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설마 고장인가?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김대석 비서실장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때, 기차 안에 안내 음성이 나왔다.

-KTX 산천 부산행 열차입니다. 앞서 달리는 다른 열차와의 간격이 가까워 부득이하게 속도를 줄였습니다.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천만다행히도 고장은 아니었다.

김대석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제로 몇 분이 더 지난 후 KTX는 다시금 속도를 올렸다. 이후 유재원 일행은 부산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여기가 라이트닝 볼트 본사 같네요.”

벡스코에 도착하자마자 나온 유재원의 감상이다.

라이트닝 볼트의 본사는 제주도에 있었지만, 어지간히 마니아가 아니면 거기에 본사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본사 건물은 제주도의 천연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규모도 생각처럼 거대하진 않았다. 그래서 언론에서 라이트닝 볼트를 보도할 때 군산이나 디트로이트의 기가팩토리의 모습이 더 많이 나왔다.

반면 벡스코는 입구로 들어서는 길부터 라이트닝 볼트의 로고가 가득이었다.

도로에 줄지어 늘어선 가로등에 큼지막한 깃발이 달려 있었고, 벡스코의 벽면에도 라이트닝 볼트의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볼트 사장이 곧 마중을 나올 거라고 합니다.”

“아니에요. 오늘 제일 바쁜 주인공인데 굳이 나올 필요는 없어요.”

유재원은 손을 저었지만, 볼트 사장은 벌써 벡스코의 로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쁠 텐데 본인 일에 더 집중하라고 하는 유재원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따를 수 있는 임직원들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볼트 사장도 발표회를 손수 준비하는 실무진은 아니었으니 유재원과 함께 움직이면서 신차들을 소개하는 게 훨씬 이로운 일이었다.

“회장님, 드디어 오늘입니다!”

볼트 사장은 차에서 내리는 유재원과 두 손으로 악수를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늘의 신차 발표는 볼트 사장의 오랜 꿈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보잉 출신 엔지니어였던 볼트 사장은 전기 자전거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유재원과 만나면서 라이트닝 볼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전기 자동차 개발에 돌입했다.

ID 그룹의 계열사 중에 ID 테크놀로지와 함께 역사가 깊은 조직이 바로 라이트닝 볼트였다. 그룹이 무한 확장을 펼치는 동안에도 묵묵히 라이트닝 볼트를 이끌었던 볼트 사장의 뚝심이 오늘 그 결실을 맺는 날이었으니 잔뜩 흥분할 수밖에.

“이쪽입니다!”

볼트 사장은 유재원을 벡스코의 메인스테이로 이끌었다.

잠시 후.

벡스코의 메인 스테이지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동차 전문 매스컴의 취재진으로 가득했다.

본인의 눈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다들 인공적인 제3의 눈까지 준비했다. 제3의 눈은 각양각색이었다. 대포처럼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부터 액션캠이나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들이 내뿜는 취재 열기는 대단했다. 무대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다가오려다가 제지를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무대와 객석을 구분 지은 철제 안전바가 없었으면 진작에 대열이 무너졌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행사가 시작되면서 질서는 잡혔고, 곧이어 메인 스테이지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되자 모두가 홀린 듯 몰입했다.

ID 그룹의 전통에 따라 라이트닝 볼트의 역사가 감각적으로 편집된 동영상이 먼저 나왔다.

이젠 명품 반열에 오른 모델1이라는 전기 자전거부터 2세대 슈퍼카인 슈퍼소닉까지, 라이트닝 볼트의 역사 그 자체가 함축적으로 담긴 그래픽이었다. 그리고 곧장 오늘 발표될 신차들의 아이덴티티를 형상화한 이미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이미지 센서, 초음파 센서, 전자파 센서 등의 다양한 센서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들이 빛줄기로 형상화되어 다이아몬드로 지어진 CPU에 모이는 장면이었다.

CPU로 모인 데이터들은 다시금 사방으로 흩어지며 어둠을 밝혔다.

섬광이 번뜩일 때마다 자동차의 일부가 드러났다.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 전륜과 후륜, 전면 유리에 비치는 HUD까지.

자동차의 부분 부분이 드러났지만, 전체 샷은 단 한 컷도 없었다. 대신 섬광이 번뜩거리는 주기는 점점 빨라졌고, 자동차의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싶은 순간.

전시장은 암전되었고, 곧이어 거대한 짐승의 하울링과 같은 묵직한 울림이 벡스코 메인 스테이지를 울렸다.

그와 함께 전면에서 밝은 빛 두 줄기가 터지면서 맹렬하게 객석으로 돌진했다. 깜짝 놀란 이들이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180도 턴을 하면서 드리프트가 이뤄졌고 두 줄의 스키드 마크를 그려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3세대 슈퍼카의 충격적 등장이었다.

드리프트는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메인스테이지의 공간은 겨우 330제곱미터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무한대 기호의 잔상을 그리며 현란한 기동을 선보였다.

그제야 관객들은 무대와 객석을 튼튼한 철봉으로 구분해놓았는지 알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위험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주행이었기 때문이다.

슈퍼소닉이 근미래의 자동차를 이미지화했다면 지금 등장한 3세대는 완전한 21세기 중반 슈퍼카의 모습이었다. 유리로 빚은 듯한 질감에 거의 직선에 가까운 유선형의 동체는 오직 달리는 것만을 위해 설계된 머신과도 같았다.

-라이트닝 볼트의 제3세대 전기 슈퍼카, 슈퍼스트림입니다.

차가운 인공적 목소리가 슈퍼카의 네이밍을 공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에 놀라지 않았다. 메인 스테이지의 조명이 밝아지면서 드러난 운전석에는 운전자가 없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3세대 전기 자동차에서 차별화된 대표적 기능은 레벨 5 완전 자율 주행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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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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