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40화 (40/298)

< -- 추석이라 달이 휘영청 -- >

세진은 추석 전날 선정의 집에서 녹초가 되어서 돌아왔다.

선정의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 여동생까지 도합 다섯 명의 협공을 받아서 진이 다 빠진 것이다.

거기에 선정이 언니의 남편도 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한 다리 걸쳤다. 그나마 집안 며느리는 아직 명절 지내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 종종 거리느라 세진에게 관심을 두지 못해서 다행이었다고 할까?

세진이 알기로 결혼 2년차에 오빠가 따로 서울에 분가해서 살고 있다고 했으니 추석 때문에 시집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아가씨가 데리고 온 사람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어쨌건 날이 저물기 전에 들어간 집에서 11시가 넘어서 나온 세진은 술까지 잔뜩 걸친 상태로 어리 공방으로 돌아왔다.

- 세진님 다녀오셨어요?

"그래. 그래."

-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응, 뭐가 말이냐?"

세진은 어리의 난데없는 투정에 침실로 건너가 잘 생각도 않고 어리 앞에 의자를 끌어 놓고 앉았다.

불도 켜지 않아서 어리의 방은 어두컴컴한데 컴퓨터 화면과 어리의 스마트폰 화면만 밝게 켜져 있다.

- 중간에 스마트폰 꺼버리셨잖아요. 다시 걸어도 연결도 안 되고.

"으응. 그거? 그거야 스마트폰이 계속 켜져 있다고 형님이 뭐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지. 내가 그러고 싶어 그랬겠냐?"

- 아무튼 어리는 심심해서 죽을 뻔 했다구요.

"미안, 미안. 그래도 어쩌냐? 형님이 자꾸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 걸. 거기다가 술을 몇 잔 먹은 뒤로는 스마트폰도 꺼버렸을 걸?"

- 쳇, 지나간 일이니까 어쩔 수 없죠. 그런데요 세진님.

"응?"

- 선정씨 오빠가 세진님보다 한 살 어리지 않아요?

"그렇지."

- 그런데 왜 형님이라고 불러요?

"응? 그거? 그거야 내가 선정이 남자 친구고,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되면 내가 손아래 동서가 되는 거니까, 동서가 아닌가? 처남인가? 아니구나 매제구나. 그래 매제가 되는 거니까 집안 서열이 그렇게 되는 거지."

- 그게 이상하단 거죠. 어딜 가면 형이 되고, 어딜 가면 동생이 되고 그러니까요. 참 이상해요.

"음. 그건 그렇취이. 좀 이상하긴 하지이."

이야기를 하던 중에 조금씩 세진의 혀가 꼬이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 세진님 술 취하셨어요?

"으음. 거기선 안 그랬는데 여기 오니까 막 취하고 그러네에. 생각보다 술이 독했지. 커엄, 형님이 준다고 먹고, 처형이 준다고 먹꼬, 장인 어른이 준다고 넙죽... 흠야아. 어리야 나 좀 자야겠다. 으응?"

- 침대 가서 주무세욧. 세진님. 세진니임.

어리가 세진을 깨우려 몇 번 불러 보지만 답이 없다.

세진은 벌써 술에 취해 잠이 든 것이다.

술이 약한 것도 아닌데 세진이 그렇게 빨리 골아떨어진 것은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마시긴 많이 마셨던 술이 긴장감 때문에 오르지 않다가 집에 도착한 순간 확 올라온 것이다. - 이불도 없는데, 하필 여기서 주무시냐구요. 음, 에테르 운용으로 술기운도 빨리 날릴 수 있었을 텐데, 그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정신 없으셨나? 하긴 선정씨 집에 도착할 때부터 우왕좌왕, 술병이 든 선물을 장모님께 드리고, 화장품 들어 있는 건 장인에게 드리고, 다른 가족들이 왜 자기건 없냐고 하니까 생각을 못했다고 또 당황해서 횡설수설, 세진님이 이상했었어. 그 때부터.

"어리 너어!"

- 앗, 들으셨어요? 주무신다면서요? 죄송해요오.

"흠냐. 흠냐. 어리, 귀여운 어리. 예쁜 선정이 크크큿."

- 잠꼬대 하신 거였어요? 세진님? 세진님?

어리가 낮은 소리로 세진을 불러보다가 답이 없자 혼자서 컴퓨터 화면을 넘겨가며 뭔가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세진은 잠결에 온 몸을 두드리는 에테르의 파동에 화들짝 놀라서 깨어났다.

"뭐? 뭐야?"

- 쉿 조용히요. 세진님.

둠속에서 어리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세진은 자신이 어리의 방에 들렀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든 것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냐? 네가 날 깨운 거야?"

- 네, 세진님. 지금 어리의 집에 침입자가 있어요. 담 밖에 둘이 있고, 담 넘어서 셋이 들어 왔어요.

"침입자? 도둑인가? 추석이라고 빈집을 노리는 놈들이 있다더니 그 놈들인 모양이네?"

- 누군진 모르죠. 그런데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일단 신고부터 해야지."

- 신고는 이미 했어요.

"응? 벌써?"

- 네. 담 넘을 때, 벌써 신고를 하긴 했는데, 지금 침입자는 공방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뒤지고 있어요.

세진은 급하게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넓게 펼쳤다.9미터 정도지만 적어도 어리의 방으로 다가오는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어딨는데?"

- 타지마할 쪽을 살피다가 밀링머신을 지나서 그라인더, 천공기 뭐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어요.

"기계는 뭐 하러 살펴? 그걸 들고 갈 것도 아닌... 설마 이것들 도둑이 아니라 딴 놈들 아냐?"

- 딴 놈이라니요?

"우리 공방을 염탐하려는 놈들 말이야. 그 국정원이나 그런 곳에서 나온 놈들."

-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쩌죠?

"어차피 공방을 다 뒤지고 나면 이 방으로 들어오겠지? 그럼 기습해서 잡아야지. 어디 보자, 일단 몽둥이부터 있어야 할 텐데?"

- 몽둥이로 때리시게요? 참으세요. 그러다가 죽으면요?

"내 주먹으로 때리는 게 더 위험할 걸? 주먹으론 얼굴이나 가슴, 배 이런 데를 때려야 하는데 그럼 잘못하면 정말 크게 다칠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 아예 방망이로 다리나 팔을 부러뜨려야지. 그게 더 쉬워."

- 그, 그럴까요?

"에테르를 사용해서 사람을 때려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몬스터 상대 하듯 하면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아서 곤란해. 그냥 몽둥이를 창 대용으로 생각하고 때리고 찌르면 그게 더 편하지."

- 그렇군요. 세진님은 창을 다루신다고 했죠?

"저기 저 파이프가 좋겠다. 잘라서 쓰려고 둔 건데 이럴 때에 쓸모가 있네. 다음에는 미리미리 창을 준비해 둬야겠다.

촉만 빼면 뭐 그냥 둬도 될 테니까."

- 와요 세진님.

세진이 긴장을 풀기 위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데 어리가 경고를 한다. 그리고 세진의 디버프 에테르 감각 속으로 두 사람이 다가와 어리의 방문 밖에 좌우로 붙어 서는 것이 느껴진다.

그 두 사람의 경호를 받으며 한 사람이 다가와서 어리의 방문 손잡이를 잡아 돌린다.

잠겨 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다.

철컥.

어리의 방은 한 번도 잠긴 적이 없으니 당연히 손쉽게 열린다.

끼이익.

낮은 마찰음과 함께 방문이 천천히 열리고 그 사이로 한 사람의 얼굴이 살짝 들어와서 방안의 동정을 살핀다.

이미 컴퓨터 화면과 스마트폰도 꺼진 상태라 방은 깜깜하기 짝이 없다.

세진은 문 옆 벽에 붙어 있지만 문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있어서 고개만 내민 침입자는 아직 세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클리어."

문을 열고 작은 등으로 방을 살피던 사내가 한 마디를 하고 천천히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또 다른 한 사람이 들어오고, 나머지 한 명이 움직이려는데, 앞서 들어오던 사람이 세진을 발견했다.

습관적으로 조명을 돌리며 방을 확인하던 중에 벽에 붙어 자세를 움츠리고 있는 세진을 본 것이다.

"엇!"

휘릭 퍼걱!

"커억! 아악!"

푸욱!

"켁!"

"뭐야? 무슨 일이야?"

방문으로 들어서려던 세 번째 사람이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소리를 지르는가 싶더니 급하게 벽으로 등을 붙인다.

"누가 있어. 난 팔이 부러졌고, 하난 배를 맞았는데 의식 불명이야. 컥!"

상황을 전하던 이는 세진이 다시 휘두른 쇠파이프에 목을 맞고 쓰러진다.

'살살 때렸는데 죽진 않겠지?'

세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벽에 붙어 섰다.

등 뒤 벽 뒤에는 세진과 비슷한 모습으로 벽에 붙어 서 있는 사람이 있다.

'이걸 그냥 벽을 뚫고 찔러?'

잠깐 그런 망상을 했지만 그랬다간 정말 사람이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냐?"

벽 너머에서 세진에게 묻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지 알아서 뭘 하게?"

"어디서 보낸 놈이냐?"

"지랄, 안 가르쳐준다니까? 이제 어쩔까? 여기 두 놈 목을 밟아 버릴까?"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알긴 뭘 알아? 어둠속에서 서로 죽이자고 하는 짓인데 누군지 알 필요 있나? 나야 이대로 사라지면 그만인데?"

세진은 그렇게 상대를 놀렸다. 그런데 세진이 생각지 못한 반응이 상대에게서 왔다.

"박세진씨, 그만 합시다."

"뭐?"

"밖에서 음성 분석 결과가 박세진씨라고 하네요. 그러니 그만합시다. 우리 실수를 인정합니다. 그러니 그냥 그 두 사람 보내 주십시오. 우리도 이대로 철수 하겠습니다."

"지랄을 하세요. 남의 집에 무단 침입을 해서 이젠 그냥 놓아 달라고? 이건 어느 나라 깡패들 법이야?"

"시간이 지나도 경찰을 오지 않습니다. 우리 팀이 경찰 출동을 막았답니다. 벌써 경찰 신고까지 하시다니 정말 빠르시군요."

세진은 경찰이 오지 않을 거라는 소리에 한밤의 침입자들이 누군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서대철?"

"그분 밑에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또 신분증 맡겨야 합니까?"

"젠장!"

세진은 벽에서 떨어지며 어리의 방에 불을 켰다.

그러자 벽 뒤에 붙어 있던 사내도 방문 열린 방문으로 모습을 보였다. 다만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그걸로 때린 겁니까?"

그는 세진이 들고 있는 1미터 50 정도의 쇠파이프를 보며 물었다.

"잡히는 것이 이것뿐이니 어쩌겠습니까? 젠장 추석 전날, 아니 추석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정말 우리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추석날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집에 안 갑니까? 서울에 부모님 계신데 당연히 집에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세진의 투덜거림에 도리어 사내가 화를 낸다.

검은색으로 딱 붙는 옷을 입은 것이 딱 봐도 빈집 털이범 같은 인상이다. 쓰러진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것까지 조사할 재주가 있었으면 우리 부모님 이번 추석에 외국 여행 갔다는 건 왜 몰랐습니까? 아니면 좀 더 조사를 해 보면 우리 부모님 명절 때마다 외국으로 나가신 것이 벌써 몇 년 전부터란 것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 정보처 새끼들! 암튼 일 하는 거 보면 누굴 죽이려고 이따위로 일처리를 하는 거야?"

사내가 세진의 말에 버럭 화를 낸다.

"아무튼 이 사람들이나 데리고 가십시오. 여기 이 사람은 팔이 부러지고 목에도 약간 금이 갔을 거고, 여기 이 사람은 장파열까진 아니어도 충격이 컸을 겁니다.

세진은 쓰러진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그런 세진을 보며 국정원 사내는 입을 떡 벌렸다.

"우리 직원을 저렇게 만들어 놓고 태연하기도 합니다.

"저야 가택침입 절도범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약간의 강제 진압을 한 것뿐이죠."

"아무튼 오늘은 그냥 돌아가고, 조만간 서과장님이 찾아오신다고 전해달랍니다."

"안 보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겠죠?"

"꼭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답니다. 그리고 들어서 손해날 이야긴 안 하시겠답니다."

"휴우, 뭐 맘대로 하라고 하십시오. 오지 말라고 한다고 들을 사람들 같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세진은 한숨을 쉬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곧이어 밖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들어와서 기절한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갔다.

세진은 그 중에 여자가 전에 카페에서 봤던 여자임을 기억했다. 서대철을 만났던 그 자리에 있었던 여자였고, 세진을 공방까지 미행했던 여자였다.

"또 보내요?"

여자는 세진의 인사에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가 황급히 닫았다. 그리곤 동료들을 따라 철수했다.

"어휴, 이게 도대체 뭔 일이래?"

-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도 일단 한 고비는 넘긴 것 같네요. 그래도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크게 다쳤으면 그냥 안 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모르겠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난 죄 지은 거 없다.

세진은 투덜거리며 침실로 향했다. 아직 자야 할 시간인 것이다.

"빌어먹을 경찰들, 신고를 했는데 안 와? 나쁜 것들."

세진은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몸을 던지며 또 다시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네네... 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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