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석이라 달이 휘영청 -- >
서대철 과장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세진이 부스스한 얼굴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를 깨운 것이 서대철 과장의 초인종 소리였다.
낮은 공방 대문에 달아 놓은 금속제 종을 끊임없이 흔들어서 세진의 잠을 깨운 것이다.
"뭐 하시는 겁니까? 차라리 전화를 하시지 그랬습니까?"
"전화 꺼놓지 않았나? 꺼져 있다고 하던데?
"아, 그랬군요."
어제 선정의 집에서 자꾸 울리는 스마트폰을 꺼버렸던 기억이 났다.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은 어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이었다. 그 번호는 서대철이 모르는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옷 좀 챙겨 입고 나오겠습니다."
"그보단 안에서 이야길 하지? 어차피 추석이라 지금 이 시간엔 들어갈 곳도 없을 거네."
"아, 추석. 그렇군요. 오늘이 추석이었죠?"
세진은 겨우 정신이 들었다.
"추석날 새벽에 집에 도둑이 들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깨어 보니 도둑의 배후가 집에 와 있는 거군요. 자 어쨌거나 날 밝은 지금은 손님이시니 들어오십시오."
세진이 조금은 뼈있는 말을 하며 서대철을 집안으로 들였다.
"마실 것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커피로 하지. 간단하게."
"뭐 그러죠. 그렇다고 커피를 내려 드릴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냥 타서 마시는 겁니다."
상관없네."
세진은 서대철을 대답을 듣고는 곧바로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찻잔을 준비했다.
그 사이에 서대철은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도청기를 꺼내서 소파 밑에 끼워 넣었다.
"참, 쓸데없이 집에다가 이상한 거 놓고 가지 마십시오. 그 벌레 같은 거 말입니다.
가시고 나면 소파고 뭐고 다 탈탈 털어서 확인을 할 겁니다. 그래서 만약 이상한 것이 발견되면 다시 보실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진의 디버프 범위 안에 있는 서대철의 행동은 세진이 등을 돌리고 있어도 모두 확인이 가능하다.
비록 에테르의 양이 적긴 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데블 플레인에서의 능력에 처지지 않았다.
디버프가 육체 능력이 아니라 정신 능력인 까닭이다. 서대철은 세진의 말에 깜짝 놀라서 방금 넣었던 도청기를 슬그머니 꺼내서 주머니에 넣었다.
먼 곳에 숨길 것도 아니고 자신이 앉은 자리 밑에 숨긴 것이 들키지 않으리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자, 여기 있습니다.
세진은 커피잔을 서대철 앞에 내려 놓고 자신도 그 앞에 잔을 들고 앉았다.
"그럼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세진은 그 말을 끝으로 서대철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닫았다.
몇 번 해 보니 침묵이 때로는 제일 좋은 대화법이란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자네는 위험하네?"
"네? 제가요? 아니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제가 무슨 테러리스트라도 됩니까? 위험하게?"
"그게 아니라. 자네가 위험한 상황에 있다는 말이네?"
"제가요?"
세진은 서대철의 말을 조금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자넨 지금 여러 정보단체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네."
"정보단체라, 그 쪽에서 원하는 것도 전에 보내주신 그런 주문서들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세진은 마땅히 그러려니 짐작을 하면서도 물었다.
"그렇지. 사실 자네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우린 자네가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든 것들을 받아서 조합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자네가 꾸린 어리공방의 설비로는 절대 자네가 내 놓는 것들을 만들지 못하지. 더구나 자네는 이곳을 차리기 전에 이미 벤츠를 만들었지."
서대철은 그렇게 말하곤 세진의 표정을 살폈다.
"계속 하십시오. 듣고 있습니다."
세진은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서대철을 대했다.
"사실 우리도 어리 공방의 다른 팀원들을 알아내지 못했네. 아니 도대체 그들이 어떻게 부품을 자네에게 전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지. 그럼에도 자네는 어디선가 부품들을 받아서 완성품을 만들고 있네. 그걸 생가하면 우리 직원들은 전부 접시에 코 박고 죽어야 할 일이지.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꼬리도 잡지 못하다니 말이야."
"그렇군요. 아직 그들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그건 다른 정보기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네. 만약 그 숨겨진 사람들이 밝혀졌다면 자네의 가치는 없어지지. 그럼 당연히 자넨 제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네. 자네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고 여길 테니까 말이야.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세계의 정보 단체들과 음지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이 어리 공방의 능력에 군침을 흘리고 있네."
"곤란하군요. 제가 뭐라고 그렇게 관심들을 가지는지 말입니다."
세진은 내심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리의 능력을 다운그레이드 해서 만들어 낸 것이 미니어처들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있단다. 거기다가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국정원 과장이 나와서 경고하고 있으니 세진이 당혹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전까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던 문제인 것이다.
"자네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자네 팀이 중요한 거야.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들이 파악되면 자넨 죽을 수도 있어. 그리고 어쩌면 자네 때문에 부모님께도 문제가 생길 수가 있지."
"뭐라고요?"
세진은 서대철의 말에 깜짝 놀랐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모님에 대한 것은 세진에게 역린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진의 몸에서 조금씩 에테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새벽에 자네 부모님에 대한 경호를 지시했네. 필리핀에 계시더군. 일단은 아무도 모르게 경호를 하고 있으니 안심하게."
"고맙습니다."
세진은 진심으로 서대철에게 고마웠다.
부모님은 세진에겐 더없이 귀한 분들인 것이다. 다행스럽게 세진의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사실 그 분들이 외국으로 나간 것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네. 우리도 하는 일이 많고 또 간혹 정보 전달에 혼선도 생기고 그런다네. 어쨌거나 다른 곳에서도 자네 부모님에 대한 작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네."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것이 뭡니까?
세진은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안 순간 서대철에 그 해답을 가지고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 답부터 들어보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우리 소속이 되게."
"네?"
"그러니까 기술 고문 정도? 국방과학원 같은 곳에 속해도 되네. 일단은 공무원에 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지. 그렇게 되면 다른 국가 정보기관들은 자네에게서 한 발 물러나야 하지. 적어도 이 나라 안에서는 우리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나가 국정원 소유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려서 건드릴 수 없게 한다는 말입니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그런 거지. 맞는 말이네."
세진은 서대철의 권유가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부모님에 대한 위협도 사라지는 겁니까?"
세진은 대철에게 물었다.
"확언을 할 수는 없네. 우린 지키려 할 거고, 다른 쪽에선 빼앗으려 할 테니까 말이지."
"제가 두 분을 지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겠군요."
"싸움을 좀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두 분을 한꺼번에 지킬 수 있겠나? 경호원을 고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을 거네."
"그럼 어쩌란 겁니까?"
세진이 평정을 잃고 흥분하자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러자 가라앉았던 에테르가 조금씩 끓어올라서 그 힘을 등에 업은 사나운 기세가 서대철 과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흐음, 이미 벌어진 일이네. 그러니 이름을 바꾸고 이사를 가시게 해야지.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뒤를 지워야 하고 말이야. 그럼 어느 정도 안심을 할 수 있을 거네. 그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지."
그래도 훈련 받은 요원이라 그런지 서대철 과장은 어느 정도 세진의 기세에 대항했다.
그런 서대철의 반응에 세진은 슬그머니 기세를 죽였다.
"부모님은 인질로 내 놓고, 나는 졸지에 죄인 취급을 당하며 갇혀 살게 되는 겁니까?"
"인질이라니, 보호지. 그리고 신분을 바꾸고 살면 우리도 접근을 하지 않을 거야. 보호자의 바뀐 정보는 누구도 알 수 없도록 폐기하네. 사실 우리 내부의 정보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려워서 그런 일은 실무자가 처리하고 기록을 삭제하지. 몇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최종 단계도 알 수 없도록 하고 말이지. 그걸 아는 사람은 총책임자인 나뿐일 거네."
서대철은 열심히 준비한 요인 보호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한다. 신분을 바꿔서 살게 하고 그 후에는 손을 떼겠다는 소리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도 없다.
세진은 빠른 시간 안에 무슨 수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이 좋겠군요."
"응? 무슨 소린가?"
뜬금없이 미국이 좋겠다는 세진의 말에 서대철이 반문했다.
"그 나라가 제일 힘이 세죠? 그러니 거기 소속이 되면 굳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죠. 안 그렇습니까?"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설마 나라를 버리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가?"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생각했을 뿐입니다.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말입니다.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제 팀원들은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들의 능력이 모이면 어떤 것을 가능하게 만들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들의 잠재력은 가히 최고니까요."
세진은 그렇게 엄포를 놓았다. 여차하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춰서 국정원의 전횡을 막았고, 또 자신 이외의 알려지지 않은 팀원들의 존재를 부각시켜서 쉽게 어떤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약까지 건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다른 팀원들을 밝히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서 저를 죽이거나 하진 않겠죠? 그럼 제가 굳이 신분을 감추고 숨어 살 필요가 있습니까? 이대로 지내면 될 일이죠. 그리고 내 모습이 보여야 놈들도 부모님을 찾으려고 애를 덜 쓸 거 아닙니까? 그러니 부모니만 신분을 바꾸는 걸로 하죠."
"그러다가 정말 큰 일이 날 수도 있네."
"전 괜찮습니다. 부모님 일만 잘 처리해 주면 국정원 일에 협조하죠. 하지만 내 팀원에 대한 것은 알려드릴 생각이 없으니 알아서 찾으십시오. 찾으면 뭐 그쪽 설득도 알아서 하고 말입니다."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훗, 제가 그들로부터 어떻게 부속을 전달받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세진은 서대철의 물음에 그렇게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알겠네. 그럼 이제부터 하는 이야길 잘 듣게. 자넨 그 미니어처 기술 때문에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 연구를 하게 된 거네. 그리고 자네의 가치는 무척 높아서 외국의 정보기관과 암중 세력들이 자네를 노리기 시작했네. 때문에 부모님도 위험해진 것이고 말이네. 그 때문에 자네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신분을 바꾸고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하는 입장이 된 거네. 이렇게 자네 부모님을 설득하게. 알겠나? 그럼 나머지는 우리 쪽에서 처리를 해 줄 거네."
서대철은 미리 준비한 해결책을 세진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신분증이나 뽀대 있게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 부모님 그 정도는 되어야 껌뻑 하실 겁니다."
"최대한 보기 좋은 신분증을 사용하는 곳에 취직을 시켜주지. 그것도 사외 근로자로 말이네."
진짜로 있는 직장의 신분증을 주겠다는 소리다. 적어도 그곳에 전화를 하면 사외 근로자로 일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세진의 이름을 알려줄 정도는 준비를 할 거란 소리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나도 준비를 하지."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하십시오. 꼭 국정원이 아니어도 된다는 거 말입니다."
"음."
서대철은 낮은 침음성을 삼켰다.
"제가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서 서과장님과 거래를 하긴 하지만, 이런 거래를 국정원이 아닌 다른 나라 정보기관과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을 빌미로 당신들이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란 소립니다."
서대철은 세진의 말에 마땅한 대꾸를 찾지 못했다.
약간의 위협을 통해 세진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저 협력자 관계를 만든 것뿐이란 사실을 느낀 것이다.
세진은 아직 서대철의 손에 쥐어진 것이 아니었다.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부탁을 하고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을 분인 것이다.
"음, 알겠네. 분명히 기억하지."
"그러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팀을 대표해서 드러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팀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아두십시오. 그들이 거부하면 저로서도 강제할 수단은 없습니다. 물론 그들과의 통로를 밝혀낼 수 있다면 협상은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우린 어리 공방 팀에 무척 많은 기대를 하고 있네. 그러니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네."
서대철은 적어도 그것이 세진이 협조적으로 나올 때에나 유지될 수 있는 대우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을 일이라 여긴 것이다.
그렇게 서대철과 세진 사이에 거래가 성립되었다.
============================ 작품 후기 ============================세 편이라죠... 쿠쿠... 그러니 추천?
그럼 행복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구요... 넵.. 행복해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