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5화
제195편 황태자의 꿈
와락!
“리키 건강해야 해?”
“도련님도 건강하십시오…….”
눈이 내리는 설원을 배경으로 한 편의 연극을 찍는 케한과 어린 설인 소년을 보며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주군.”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설인들의 실질적인 수장을 맡고 있는 눈보라 일족의 족장 위천.
그가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올렸고, 그 뒤로 눈비 일족과 눈꽃 일족의 족장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셋의 모습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도움이 더 필요한 것은 없나?”
“이미 충분합니다.”
나의 물음에 위천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더 필요하다면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위천이 나를 향해 부탁해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까지 부정하는 것은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군데군데 부서지고 어지럽혀진 마을을 둘러보았다.
“보수가 필요하겠군.”
“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주군 덕분에 카이도를 팔며 자금이 많이 생겼지 않습니까? 마을 재건에 투자하여 더욱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려고 합니다.”
“호오?”
너무나도 긍정적인 위천의 말에 나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설인족들 특산물인 술, 카이도를 팔아 어마무시한 금액을 벌어들였다.
“그 돈을 안 쓰고 모은 것이냐?”
“딱히 쓸데가 없다 보니…….”
나의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위천.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도 한 병만 줘.”
괜히 부러웠다.
나는 트레이 교단이 관리하는 고아원에 투자한다고 돈 다 썼는데 말이다.
“지금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제작이 끝나는 대로 곧장 보내겠습니다.”
피식.
나의 투덜거림에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죄하는 위천의 모습이 웃겼다.
덩치는 산만한 사내가 나의 농에 당황해하며 허둥대는 모습이 웃겼던 것이다.
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농담 두 번 했다가는 무릎 꿇을 기세다.
“자, 나는 이만 간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위천의 인사와 함께 나를 향해 감사를 표하는 수많은 설인들.
나는 그들에게 대충 손을 휘저어준 다음 마차에 올랐다.
이제 하이아칸으로 가야겠다.
* * *
“아비뇽의 흔적이 없는 것이 확실한가?”
깊은 밤.
카시야스는 자신의 방을 찾아온 검은 로브의 사내에게 물었다.
“네, 확실합니다. 현재 그 사건은 미해결 상태로 종결이 되었습니다.”
카시야스의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사내.
그에 카시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아비뇽 그자는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야…….”
“그분을 대신해 카시야스 님께서 파견되신 것입니까?”
죽은 아비뇽을 떠올리던 카시야스.
그는 사내의 물음에 피식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귀찮게 말이야.”
“…….”
카시야스의 대답에 사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사내를 살짝 내려다보던 카시야스는 테이블 위에 있는 술잔을 들었다.
꿀꺽.
그러고는 한 모금 마신 다음 다시 테이블 위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성물의 행방은?”
술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카시야스의 입이 열렸고, 그의 물음에 사내는 품에서 작은 지도를 꺼내었다.
그러고는 카시야스에게 내밀었다.
“성물이 있을 거라 예측되는 장소입니다.”
“호오.”
사내의 말에 카시야스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사내가 건넨 지도를 받았고 이내 지도를 펼쳐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뭐야? 마을 옆이잖아?”
아비뇽이 납치했던 설인들.
그들의 주거지인 마을의 바로 옆에 위치한 동굴인 것을 확인한 카시야스가 인상을 찌푸리자 사내는 송구스럽다는 듯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아비뇽, 완전 삽질했네.”
“죄송합니다. 정보가 너무나도 적어…….”
카시야스의 말에 사내가 깊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아니, 잘했다. 내가 찾아서 들고 가지 뭐.”
사내의 사죄에 고개를 가로저은 카시야스가 웃으며 말했고 사내는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가 봐.”
“네, 미하일 님의 가호가 있기를.”
카시야스의 축객령에 고개를 숙인 사내.
그가 물러났고 홀로 남게 된 카시야스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쉼 없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
카시야스는 그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큰 공을 세우겠군.”
* * *
“누구시오!”
하이아칸과 제국의 국경지대인 엘란 산맥.
그곳을 지키고 있는 하이아칸의 레인저 부대는 예고도 없이 찾아온 두 명의 사내를 향해 석궁을 겨누며 물었다.
그런 레인저의 경고에 깊게 눌러쓴 로브를 벗은 두 명의 사내.
한 명은 적발의 머리칼을, 또 한 명은 백발의 머리칼을 지닌 미남자들이었다.
그들의 모습에 살짝 흠칫한 레인저.
그가 다시 석궁을 겨누며 입을 열었다.
“신분을 밝히십시오!”
또다시 들려오는 레인저의 목소리에 적발의 사내가 한발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칼론 루드비히라고 하오.”
“화염의 기사!”
적발의 사내, 아니 주군은 요한을 찾아 이곳까지 온 칼론의 소개에 레인저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에 칼론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에르 님의 검이자, 성자님을 모시고 있는 팔라딘, 칼론 루드비히요.”
“……?”
화염의 기사라는 이명을 박탈당한 불명예 기사 칼론.
그가 트레이 교단의 검인 팔라딘이 되었다는 소문은 아직 듣지 못한 레인저였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레인저의 행동에 이번에는 칼론의 옆에 있던 백발의 사내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당당한 표정으로 성벽 위에 있는 레이저를 올려다보았다.
“메이슨이오.”
“비운의 천재 마법사!”
하이아칸 왕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명문 콜드 가의 끔찍한 사건.
하이아칸 왕국의 국민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그 사건의 주인공인 메이슨의 등장에 레인저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아래에 있는 메이슨을 살펴보았다.
새하얀 백발에 새하얀 피부, 푸른색의 두 눈.
틀림없다.
한때 하이아칸 왕국의 자랑이었던 마법 천재 메이슨 콜드인 것이 말이다.
“신분패요.”
계속해서 놀라는 레인저를 향해 칼론과 메이슨이 신분패를 던졌고 레인저는 그들이 던진 신분패를 허공에서 낚아채었다.
그러고는 찬찬히 살펴보았다.
역시, 진품이다.
하긴, 저렇게 타오를 듯한 적발 적안의 미남자와 백발의 미남자가 흔할 리가 없지 않은가?
신분패를 확인하고 생각을 정리한 레인저가 아래를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려 보였다.
끼이익.
그리고, 굳게 닫혀있던 하이아칸의 국경 수비대의 문이 열렸다.
“요한…… 치사하게 진짜.”
“전하…… 이번에는 기필코 제가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문을 향해 칼론과 메이슨이 들어섰다.
* * *
“에취!”
“왜 그런가?”
하이아칸 왕국의 왕성에 도착하고, 짐도 풀기 전에 국왕인 카자르와 독대를 하기 위해 응접실에 들어선 나.
그런 내가 갑작스럽게 재채기를 하자 카자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설마…… 병은 아니겠지?”
카자르의 대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데 그런 나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카자르는 마치 더러운 동물을 보듯이 나를 보며 뒤로 슬쩍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이 양반이, 오랜만에 봤다고 장난을 심하게 치네.
그런 카자르의 행동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전염병입니다.”
“되었네.”
나의 말에 피식 웃은 카자르.
그가 자세를 바로 하며 말하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가 먼저 해놓고 자기가 먼저 되었다 하냐.
재미없는 양반 같으니라고.
“엘로나와 함께 올 줄을 몰랐네.”
자세를 바로 한 카자르의 물음에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카자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엘로나와 함께 온 것이 아닌, 황태자로서 온 것입니다.”
“자네, 요새 정말 거침이 없군.”
그런 나의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지은 카자르.
그가 나를 향해 말하자 나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 양반 저번부터 진짜 이상하다.
왜 이렇게 묘한 말을 하며 계속 내 신경에 거슬리게 하는 것일까?
내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카자르를 바라보자 카자르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밀리언, 오스란, 이제는 하이아칸뿐인가?”
흐음…….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는 카자르를 보며 나는 조용히 턱을 쓰다듬었다.
겨울의 군주라 불리며,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인 카자르다.
한데 그렇게 대단한 그가 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하이아칸의 대는 나에게서 끝이 나겠군.”
“저는 하이아칸을 없앨 생각은 없습니다.”
카자르의 말에 내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그에 카자르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진심인가?”
“네.”
“내가 살아있는 한, 하이아칸이 제국의 공국이 되는 일은 없을 거야.”
나의 대답에 차가운 표정을 지은 카자르.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나를 향해 경고했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웃겼다. 아니, 가소롭다고 해야 하나?
나를 향해 이빨을 보이는 카자르의 모습이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 엘로나의 아버지.
그에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야겠지.
“제가 국왕 전하보다 더 오래 삽니다.”
당신이 죽으면 속국으로 삼지 뭐.
그런 나의 대답에 놀랐을까?
카자르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붉어진 얼굴로 나를 놀려보았다.
-야…… 너무 잔인하잖아.-
그런 카자르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던 나의 귀에 들리는 크산느의 목소리.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잔인한 것이지?
내가 카자르의 눈치를 살피어야 하나?
내가 왜?
그러기는 싫었다.
나는 제국의 황태자. 판게아 대륙을 전쟁 없이 통일하고, 전쟁 없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그런 나의 임무에 당당히 반하는 존재가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카자르였다.
나는 그를 향해 저번부터 분명히 경고했고, 또 그에게 예를 지키며 대답을 했다.
한데 그런 내가 잘못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네놈…….”
“국왕 전하.”
붉어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카자르.
그런 카자르의 선 넘는 행동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카자르를 불렀다.
그런 나의 부름에 입을 다문 채 나를 노려보는 카자르.
나는 그런 카자르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선을 지키십시오.”
엘로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판게아 대륙의 군주가 될 나의 경고였다.
그에 카자르는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싱긋.
그리고 나를 흠칫하며 바라보는 카자르를 향해 나는 다시,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런 나의 미소에 얼굴을 굳힌 카자르.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아버지뻘인 사내의 지긋한 시선은 역시 좋지 않았다.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그때.
나를 빤히 바라보던 카자르가 입을 열었다.
“황태자가 꾸고 있는 꿈은 도대체 무엇인가?”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세상.”
카자르의 물음에 싱긋 미소를 지은 내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저번에, 같은 질문을 두 번 들었다.
나를 회귀시키고,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연결해준 크산느와 멸종했다고 알려진 장인의 종족 드워프, 라칸에게서 말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물음에 대답을 하며 나의 꿈은 정해졌다.
비단 인간뿐이 아닌, 평화로웠던 고대시대.
인간과 오크, 엘프, 고블린, 오우거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던 그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