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희망을 위한 찬가 - 현자의 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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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들고 있었다. 그가 바쁘게 숟가락을 입안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고, 민성이 물었다.
“그런데, 이는 괜찮아?”
지난 주에 은결은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어금니가 모두 부서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항상 별로 씹을 필요가 없는 것들로 대신 때우곤 했다.
“응. 좀 비싸게 먹혔지만, 괜찮아.”
은결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민성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질문에 답했다. 민성은 혀를 차며 말을 추가했다.
“이는 오복의 하나라 하니 조심해야지.”
은결은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의치를 해 넣는데 든 비용만 생각해도, 이가 건강하면 충분히 오복의 하나라 할 만하다고 여겼다. 지난주 어금니 갈아 넣는데 든 돈의 총액은 집안하나 거덜 내기 부족함이 없는 액수였다.
“그건 그렇고- 쿠로사카가 안 보이는데 어디 갔는지 몰라?”
‘그건 그렇고’ 다음에 이어진 질문이 상당히 생뚱맞았다. 그 생뚱맞음에서, 민성의 친절함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를 이해한 은결은 뚱해져서 답했다.
“몰라 임마.”
“괜히 신경질은.”
은결의 태도에서 자신의 목적이 읽혔음을 알고 민성은 뻘쭘하게 물러섰다.
“괜히라니, 누구라도 제 연애의 도구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알면 화낼 거다.”
그때 고릴라가 낄낄대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울컥한 민성이 한 수 가르치려는 듯이 여유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후,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 알아?”
고릴라는 그 말을 통해 민성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어차피 고릴라도 은결을 미래와 연결되기 위한 다리로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라고 이해했다. 찰나의 순간 가운데 반론을 완성시키고, 고릴라가 남자의 기개를 담아 입을 열었다.
“물ㄹ-”
“-그만두자. 알면 니가 고릴라 소릴 들었겠냐.”
민성이 어깨를 으쓱이며 조소했다. 그 모양새만 해도 사람 속을 뒤집어놓기 충분한데, 질문의 의도가 고릴라의 예측을 넘어섰다. 그는 정말로 적반하장이란 고사성어의 뜻을 니가 알겠냐는, 성적이 좋든 나쁘든 간에 정규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에게는 무진장 실례되는 질문을 한 것이다. 고릴라는 광분했다.
“이 자식이!”
은결을 비롯해 여우와 늑대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잘 논다.’라는 공통된 감상을 떠올렸다. 때로는 언어라는 슬픈 범주를 넘어서는 소통도 가능하다.
식사를 끝낸 은결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사람이 거의 오다니지 않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 점에서 옥상은 최적이었다. 그곳을 들락이는 학생은 없다. 문을 잠가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결에게 그 정도 잠금쇠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낡은 철문의 손잡이를 접고, 은결은 내부에 기를 집어넣어 잠금쇠의 구조를 해독하고, 움직였다.
‘어라, 열려있네?’
은결은 문을 열었다. 끼긱- 하는 긴 쇳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방해받지 않는 태양빛이 은결을 맞이했다. 넘치는 광량에도 그는 눈을 좁히지 않았다. 기를 많이 끌어올리지 않더라도 이 정도 광량의 변화에 은결의 눈은 고통 받지 않는다. 그의 눈은 옥상의 넓은 풍경을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사물의 경계는 명확했고, 색의 선명했다. 하나를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
은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계는 불명확하고, 색은 선명하지 않은 것을 바라봤다. 그것은 쿠로사카였다. 그녀는 지금 검무를 추고 있었다. 곡선이 직선으로 이어지고, 그 직선이 다시 곡선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십방의 존재를 겨누었고, 만물의 핵심을 향했다. 그 동작은 너무도 빨라 힘을 끌어올리지 않은 은결로서는 경계를 읽을 수 없었고, 주변의 사물과 뒤섞이는 색을 구분 지을 수 없었다. 때때로, 키리야미의 날 위로 햇빛이 스치며 허공 가운데 빛 가루를 뿌렸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곧, 그녀의 검무가 끝났다. 그녀는 물이 흐르는 것 같은 동작으로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넣었다. 쿠로사카를 구성하는 경계가, 범주가, 차이가 명확해 졌다. 은결은 순결한 감탄의 마음에 박수를 치며 그녀에게 접근했다. 쿠로사카는 천천히 은결을 바라봤다. 표정에서 다소 놀란 기색이 엿보였다. 그의 등장 자체에 놀란 것은 아닌 듯 했다. 그것 치고는 안정감이 있는 표정이었다. 아마도 은결이 박수를 치고 있다는 것 자체에 놀라고 있는 듯 싶었다.
"すごい。"
(굉장해.)
쿠로사카는 움찔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카미와의 전투가 있었던 이래로, 은결이 그녀에게 사적인 상황에서 일본어로 말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何しに来た?"
(뭐하러 왔지?)
“너와 같아. 사람이 없는 곳을 찾고 있는 것 뿐이야.”
은결의 말이 다시 한국어로 돌아왔다. 쿠로사카는 그녀가 인정하지 않는 약한 유감을 느끼며 "そう。"(그래.) 하고 답했다. 그리고 은결은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옥상의 중간쯤에 가서는 손뼉을 쳤다. 짝-! 은결의 손바닥이 찢어지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손뼉이었다. 빛이 줄기줄기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쿠로사카가 다시 움찔 놀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결국 진과 진이 연결되어 다시 진을 이루고, 그 진을 이루는 진들이 복잡한 운동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장대한 진이 은결의 주변으로 펼쳐졌다. 굉장한 수준이 아니었다. 경이로운 진이었다.
'でも…'
(하지만)
눈을 좁히며 그 장대한 진을 바라보는 쿠로사카의 마음은, 그러나 석연치 않았다. 저 진은 경이롭지만, 아름답지 않았다. 그녀가 이세와 깊은 연을 가지고 있는 이상, 진에 대해 깊은 소양을 지니지 않을 수는 없다. 저것이 지극히 높은 완성도를 지닌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카미와의 싸움에서 은결이 보여줬던 그 단촐하고 작은 하나의 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덩치만 큰, 무질서한 혼돈의 덩어리 같았다.
"それは?"
(그건?)
“현자의 돌을 꺼내기 위한 열쇠... 라고 할까? 정확히는 자물쇠지만, 이걸 역산해 해제하면 현자의 돌에 다가갈 수 있어.”
은결이 자신의 주변을 움직이는 진들 중 하나를 잡아 그 진을 이루는 기호를 끊임없이 계산하고 재배합시키면서 답했다.
"おまえ、本当に…。"
(너, 정말로...)
쿠로사카가 놀라움을 담아 말했다.
“나는, 허언은 하지 않아. 현자의 돌... 아니, 그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도 좋아. 세연양의 몸속에 있는 카미를 녹여버릴 수만 있으면 되니까.”
"でも、逆算て… 哲學者の石は貴方の父上が作り出しだもの…。 あんた、まさか!"
(하지만 역산이라니... 철학자의 돌은 네 아버님이 만들너 낸 것... 너, 설마!)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던 쿠로사카가 경악가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은결을 노려보며 외쳤다. 은결은 그녀의 반응에 아무런 동요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시선을 역산하고 있는 진에 고정시킨 채, 쿠로사카에게 설명했다.
“어쩔 수 없어. 푸른 이빨은 사람의 기억을 읽을 수 있어. 직접 보았으니, 너도 알겠지? 하지만 현재 아버지는 푸른 이빨에 대해 아무런 방어력이 없어. 상담을 한다면, 세연양은 죽겠지. 그렇다고 그 녀석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아버지에게 하면 그게 무슨 뜻인지 푸른 이빨은 눈치챌거야. 나는 그가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이런 걱정이 필요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이 일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그렇잖아?”
은결의 말은 논리적이었었다.
"それは…"
(그건...)
“-그러니, 내가 하는 수밖에 없어.”
쿠로사카의 반론을 막고 은결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은결은 그 말이 자신의 모든 의도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선명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현자의 돌에 집착하는 것은, 단지 그 때문만은, 분명히 아니었다. 시간이 없었다.
"だけど、時間はそんなに多くない。その陣を逆算するのにどれほどかかるか…。"
(그러나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아. 그 진을 역산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쿠로사카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언듯 보았지만 쿠로사카는 이 진을 이루고 있는 기호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지독하게 어려운데다, 대단히 특수한 기호와 문법을 사용한 진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극한의 자물쇠였다. 진을 이루는 기호와 문법 체계에 익숙하지 않다면 평생을 투자해도 풀길이 없어 보였다. 현자의 돌에 어울리는 봉인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기로, 한 사람이 한다면, 이 진을 구성하고 있는 기호는 물론 문법에 대해서도 정통했을지라도 이를 역산하는데 적어도 3년 이상이 필요하리라 보였다. 이 진의 추정난이도와 규모를 생각하면 거의 최소한의 시간이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었다.
“-반년 안에 해제하겠어.”
"…!!"
은결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
“그때까지 안 된다면... 그땐 내게 아무런 수도 없다는 말이야. 세연 양을 죽여 사태를 해결하는 것 이외에, 모든 것을 네게 일임하지. 나는 전면적으로 협조하겠어.”
"分った。"
(알았어.)
복잡한 시선으로 은결을 바라보며, 쿠로사카는 담담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이고 작업에 열중했다. 그녀는 그런 은결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현자의 돌의 기본 술식, 봉인 진식의 경이적인 수준- 그리고 그의 아들 은결. 어째서 이세에서 한국 전체보다 수행 한 사람을 더 높게 쳤는지, 그녀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마셜님과 푸른하루님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는 줄창 내리고, 이스라엘은 미친 짓을 하고 있지만, 이에 지지 않고 힘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제일 큰 에너지원입니다. 흑흑. 그래도 연참은 좀 무리고(...) 제가 원래 사일에 한 화 체제였는데 요즘 거의 이틀이 되어 죽어나는데 말입니다. 근데 마셜님의 추천은 덜덜덜... 그거 보고 이 글 보신 분들은 추천보다 찌질하다고 다 떠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클라우스 학원 보신 분들이 아닌가 싶은데, 저의 청개구리 기질을 자극해 글의 진행에 못을 박으시려는(것으로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심 골룸. 이 글의 플롯은 기본적으로 다 결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옆구리 찌른다고 바뀌거나 하지는 않을 거... 라고 저는 믿습니다.(어이;) 마지막으로, 저는 블루보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댓글이 적다는 것은 다른 화들과 비교해 그렇다는 거죠. 백개가 아니라 천개를 받아도 평소 만개를 받았다면 적은 거지 별거 있습니까. 절대수가 적다기 보다. 사실 절대수에는 적다 많다 하는 말을 사용할 수가 없죠.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말이 안 되는 말이니. 저는 최근 평균 댓글, 이런 거에 좀 민감한 편이라.
*이스라엘은 사실 중동(!)에서 물가지고 장난치는 거 하나만으로도 주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 따위 없다고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결국은 또 전쟁이군요. 하기야, 주변의 눈만 없다면 제노사이드에 홀로코스트를 저지르고 싶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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