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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위한 찬가-283화 (283/300)

#   284-희망을 위한 찬가 - 희망을 위한 찬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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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쿠로사카는 상위에 그릇을 놓았다. 탕, 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려 상위에 내려앉은 그릇에는 연갈색 살점이 희게 익어 물어진 쌀알들과 뒤섞여 드문드문 보이고 있었다. 부엌에서 스며드는 내음으로도 예상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닭죽이었다. 왜 하필이면 닭죽? 은결은 의문을 담고 쿠로사카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쿠로사카는 해맑게 웃었다.

“(그래. 네가 나한테 처음 만들어 줬던 거야. 내가 네게 해 주는 최초의 음식으로 이만한 것은 달리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확실...히.)”

은결은 신중하게 그 내음을 맡았다. 짙은 김 사이로 각종 재료의 농도가 민감하게 재어졌다. ‘훌륭하다.’ 전체적인 조화를 가늠해 보고 은결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뛰어난 음악가가 악보만 보고서도 머릿속에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것 처럼, 은결은 내음을 맡는 것으로 음식에 대한 맛을 그려낼 수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은결은 음식을 한 입 든다. 쿠로사카는 기대에 찬 얼굴로 은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은결은 그녀의 시선을 약간의 부담감과 함께 이질감을 느낀다. 불과 방금 전의 그녀보다 한층 밝고 발랄하다는 인상이다. 그녀는 오늘 줄곧 이렇게 밝았었는데도. 은결은 이상한 일이라고 내심 생각한다.

“(어때?)”

“(훌륭해.)”

은결은 웃으며 주저없이 답한다. 틀림없이 맛이 있을 거라 내음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재료를 다루는 수준에 따라 입 안에서 느껴지는 음식의 감촉이 나쁠 수도 있었고, 그것은 맛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때문에 아무리 향기에서 맛의 완성도가 높게 특정되더라도 단정적으로 요리의 질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쿠로사카가 만든 음식은 실제 입안에서의 촉감 역시 훌륭했다. 아무런 과장 없이, 쿠로사카의 이 음식은 최상급의 요리였다. 쿠로사카는 긴장이 풀린 안심한 얼굴을 한다.

“(다행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거야. 이만한 음식은 어디서도 쉽게 맛볼 수 없을테니까.)”

은결의 말을 들으며 다시 쿠로사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뜨거움 같은 것이 마음을 스친다. 가슴의 심부를 꽉 조였다가 느슨해지는 야릇한 온기. ‘애틋함?’ 혹은 ‘切ない?’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어휘를 살펴보지만 이 뜨거움에 이름을 붙이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은결은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채지 못한 채로 음식을 드는데 열중하고 있다. 조용하게 흐르는 시간 가운데 소년은 음식을 먹고, 소녀는 그 앞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아무도 네게 신을 바라지 않아.’ 자신이 그에게 이야기 해 놓고서, 자신은 그에 대해 ‘신’이 되길 원했다. 찰칵, 하는 시계의 초침소라도 어딘가 짜증스런 방해자의 모습으로 변해버릴 것 처럼 완전하게 조율된 공간의 모습이다. 어느 덧 그릇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그리고 새삼스레, 쿠로사카는 깨닫는다.

“(...나는 네가 정말로 좋은 것 같아.)”

쿨럭, 쿨럭 하고, 은결은 가볍지만 견뎌내는 것 같은 기침을 한다. 기도로 음식이 넘어간 것 같다. 쿠로사카는 그의 곤경에 가볍에 웃는다. 이 바보 덕분에 자신이 느끼고 겪어야 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해도 괜찮다고 여겨진다. 아니, 그거 다 계산하면 이런 걸로는 텍도 없다. “(에-)”하고 어떻게 자신의 말을 받아야 할지 당황해 하는 은결의 모습을 한층 유쾌하게 바라보면서 쿠로사카는 주저없이, 아니 도리어 놀리듯이,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덕분에 이전의 나라면 도무지 하지 않았을 종류의 무척 시시한 생각도 했었거든.)”

“(어떤?)”

쿠로사카는 대답 대신 웃음의 종류를 바꾼다. 은결은 본능적으로 그녀가 자세한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임을 인지한다. 대신에 쿠로사카는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그, 전에 이야기 했던 남자아이 있잖아.)”

“(아, 그 놀이터에서-)”

은결은 자세한 언급을 피한다. 그 아이의 이야기는 자신의 과거와 오버랩된다.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타자의 고통에 둔감한 ‘상상력의 부재’는 의혹 없는 주체의 확신과 함께 언제나 폭력의 가능성을 지닌다. 울쩍해 하는 은결의 표정을 알고 있다는 듯이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며 쿠로사카는 말한다.

“(그 아이가 말야, 자기가 괴롭히던 아이를 보호하는 걸 봤어.)

“(어- 정말이야?)”

“(그럼. 그런 걸 거짓말 해서 뭐하려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함께 악수까지 하던걸. 두 사람은 아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기뻐...)”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로 기뻤다. 거대한 파도가 첨단(尖端)에 끓어 올리는 포말처럼 민성과 자신의 관계가 떠올랐다- 아니야. 그만두자. 은결은 마음 속으로 고개를 흔든다. 어느덧 그릇은 비워졌다. 은결은 수저와 젓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천만에요.)”

그리고 둘은 표정을 편안하게 웃는 표정을 교환했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부엌의 싱크대 안으로 옮기면서 쿠로사카는 마음에 스며든 ‘기쁨’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것을 맛있게 먹어 주었다. 그. 은결. 멀지도 않은 과거들이 많이 겹겹이 마음에 쌓이는 것을 느낀다. 임무를 위해 이곳에 왔고, 임무를 위해 저 바보와 싸웠고, 그리고- 이 음식을 대접받는 것으로 그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의 극치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에서 해방되기 위해, 처음에 모든 것이 시작되게 한 이 한 그릇의 음식으로 반대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바보같이.

그리고 상은 치워졌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은결은 쿠로사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식사 대접을 받고 난 뒤 둘만 남은 방에서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부담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집을 나선 둘 걸음이 멈춘 것은 아파트 앞의 놀이터에서였다. 이제 가로등의 불빛이 쓸쓸한 놀이기구의 원색과, 발자국이 채 지워지지 않은 모래밭의 표면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흔들리는 그네의 삐꺽임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없었다. 쿠로사카는 그 앞에 서서 빠져든 것 처럼 정치한 공간을 뚜렷하게 바라봤다. 은결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정말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지금 눈앞의 이 놀이터라는 공간이 아님을 알고 가만히 그녀를 기다렸다.

쿠로사카는 몸을 돌리고 은결의 눈을 곧장 쳐다본다. 은결은 공격해 오는 것 처럼 공격적인 그녀의 시선에 움찔, 하고 몸을 떨었지만 피하지 않는다. 눈동자와 눈동자가 마주한다.

“(그 아이가 어째서 괴롭히던 것을 멈추고 도리어 친구가 되기로 한 건지 알아?)”

“(글세...)”

“(나도 확신은 할 수 없어. 하지만 그건 역시 ‘상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말이 마음을 직격한다.

“(상상했다고?)”

“(그래. 나는 상상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해. 네가 말했잖아. 상상해야 한다고. 나는 그 아이에게 네가 했던 말을 해 줬거든.)”

말은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둔중한 충격을 파장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상상’ 하나 그곳에는 언제나 고통이 있다. 영원히 초월해야 하기에, 아무 것도 안전하지 않다. 상상해봐. 국가가, 종교가, 소유가 없는 세상을. 그러나-- 은결은 짜내듯이 답한다.

“(그렇, 구나.)”

“(아마 나는 너를 괴롭히게 될 거야. 이번에 저질렀던 것과 같은 일들을 계속해서 네게 겪게 할지도 몰라. 네가 상처 입는 것을 보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말을 지껄이면서 위로하려고 노력해 보는 것 정도일지도 몰라. 그래도-)”

선언처럼 말하던 쿠로사카는 말을 멈추고 결심한 듯 깊게 숨을 들이킨다. 그리고 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기다리는 은결을 향해 단숨에 접근한다. 예상치 못했던 데다 그녀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리 없기에 은결의 대응은 늦었다. 그녀는 은결의 멱살을 잡았다. 이어서 강하게 끌어당기며, 자신의 입술에 그의 입술을 맞춘다.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정지한다.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시간은 다시 흘렀다. 쿠로사카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속삭이듯 말한다.

“(너를 좋아하는 건 그만두지 않을 거야.)”

“으-”

은결은 주춤 물러선다. 그의 당황해 하는 모습을 즐기면서 쿠로사카는 자신의 입술에 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장난스레 말했다.

“(이건 식비. 후후- 너무 싸게 받았나.)”

“(여기서 더 비싸면- 곤란해.)”

은결은 마찬가지로 시뻘개진 얼굴로 겨우 답한다. 쿠로사카는 “(아, 응큼하긴)” 하고 웃는다. 은결은 당황 가운데서도 선명하게 그녀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자신에게 결여된 그녀의 힘찬 걸음걸이는 그것만으로 마음의 심부를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면서, 그녀는 그것들을 딛고 일어설 줄 안다.

“(음, 창피해서 더는 너랑 못 있겠어.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봐.)”

“(그래.)”

쿠로사카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등을 보이고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그녀의 등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은결도 몸을 돌려 갈 길을 간다. 도로에 가까워지며 불빛과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 많은 빛과 사람의 모습에 다시 숨이 턱 막히고 만다. ‘진정으로 대결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긴 숨을 쉬어 막힌 것을 뚫어내며 은결은 세연을 생각한다. 그녀의 상상력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인지 생각한다.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생각한다.

“......”

은결은 잠시 눈을 감는다.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것 같았다.

*anyway님의 추천에 감사! 제가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것은 그저 글 써서 밥벌이를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일 뿐,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제가 진지하게 글로 밥벌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2년간 출판되지 않을 글을 잡기는 힘든 일이었겠죠. 오래 갈 것 같진 않지만 그때까진 즐겁게 즐겨볼 생각입니다.

*수행의 사설을 완결까지 모아 봤습니다. 5만 5천 바이트정도가 나오더군요. 딱 소책자 분량이었습니다. 생각이 나서 ‘공산당 선언’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5만 8천입니다. 별 의미 없지만, 음, 그래도 매우 기뻤습니다. 후후후.

*댓글을 답시다. 댓글을 답시다. 댓글을 답시다 댓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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