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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뜻밖의 해적-25화 (2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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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와 길로틴 섬과 나팔

우리는 돛단배를 타고, 섬 위에 상륙했다. 모두가 내리고 나자. 마리아는 근처에서 젖은 나무들과 이파리들을 가지고 와서 모닥불을 하나 만들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그걸 보며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섬을 싹 뒤져라. 밤이 되기 전에 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돌아오고. 가능하면 찾아다니면서 끼니 때울 것이나 물도 찾아라.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모닥불을 유지시키며 계속해서 연기를 피우고, 임시로나마 쉴 수 있는 거처를 만들 사람들을 남겨놓고. 마리아는 일곱개의 조로 사람들을 편성했다.

이곳은, 백프로 무인도다. 저걸 뚫고 들어올 생각을 하는 자식이 있을리가 있나. 나누어진 사람들은 각자 횃불을 하나씩 챙기고 섬의 울창한 숲 속으로 출발했다. 하늘로 뻗쳐있는 수많은 나무들과, 그 아래로 넓게 서로 엉켜달라붙어있는 덩굴들과 풀들. 바닥을 기어다니는 온갖 벌레들과 얼굴에 달라붙으려고 지랄을 하는 날벌레들.

바다와는 전혀 다른 공간. 숲 안으로 들어서자, 하늘에는 태양이 분명히 떠 있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밤처럼 컴컴하다. 들고 있는 횃불이 없으면 순식간에 방향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 저 멀리 하늘로 올라오는 검은 연기만이 유일하게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려 줄 뿐이다.

나는 그 잘나신 러셀의 검을 뽑아들고 주변의 덩굴들을 잘라내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로 잘라내는 예리함에, 쉽게 썰려나가는 주변의 풀숲들.

밤은 금방 찾아올 것이다. 숲 밖으로 나간다면야 아직 멀쩡한 낮이겠지만 벌써 숲 안은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하나. 나는 같이 움직이던 녀석들과 함께 다시 그 검은 연기를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진짜로 밤이 찾아오기 전에 다행히도 그 모닥불 앞으로 찾아오는데 성공했다. 이미 이전에 다른 녀석들도 다 돌아와 있었고, 피워진 모닥불 앞에서 마리아가 주변을 슥 둘러봤다.

"뭐, 건진 사람 있냐."

그 말에 모두가 침묵한다. 골치 아프네. 이렇게 별 다른 힌트 한 조각 주지 않고 그냥 덩그라니, 섬에 나팔이 있다. 라고 해버리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있냐. 불친절한 새끼. 마리아가 주변을 슥 둘러보고 말했다.

"야, 첫날부터 척 하고 나와주면 그게 무슨 전설적인 나팔이겠냐.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이 길로틴 섬에 도착한 우리의 첫날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섬을 뒤지는 일은 반복되고 있었지만. 별 다른 성과는 없었다.

식사는 어렵지 않게 해결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허탕만 치는 상황이 반복되면 사람들의 진이 빠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고생을 해서 가까스로 찾아온 섬이다. 근데 와서 별 다른 성과가 없으면 사람들 기운이 소금물에 담궈진 배추 꼴이 되는게 당연하다.

그러니까 나팔 내놓으라고 씨발...

그 날 밤, 나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녀석들은 저 숲 속을 뒤지고 다니느라 어마어마하게 피곤했을 것이고, 마리아나 로제, 그리고 여기에서 수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던 녀석들도 마찬가지고 항상 몸에 피로를 달고 살았기에, 다들 나가 떨어져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새벽.

나는 바다를 향해서 소변을 누고 하품을 하면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 미쳤나 눈깔이."

여기는 저런게 보일 장소가 아닌데. 눈깔이 미쳤나. 오로라가 보이네. 나는 섬의 중심 부근에 솟아있는 봉우리에 걸려있는 오로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했다.

"선자아아아아아아앙!"

그 말에 마리아가 부시시 일어나서 눈을 비비면서 나를 바라봤다.

"뭐,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자고 있는데."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손을 들어올려 산을 가르켰다.

"저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눈을 부비적거리던 마리아가 산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몇 번 흔들고 자신의 뺨을 쫘악, 하고 강하게 쳤다.

"... 그러네. 근데 저게 뭐야?"

다른 선원들도 일어나서 오로라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오로라 모릅니까?"

그 말에 마리아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 그 바다여신의 스커트?"

그래, 그걸 보고 뭐라고 생각하던지 그건 관심 없고. 니들이 그걸 프릴이라고 부르던 정조대라고 부르던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라.

"저건 원래 극지방에서 나타나는 물건입니다."

근데 왜 여기에 나타나냐고.

"... 그래서, 저 산에 뭐가 있다?"

나는 확신한다. 저기에 뭐가 있고. 저런 표식이 나타난다는 걸 러셀은 알고 있었으니까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겠지.

"근데, 왜 우리가 저 바다에서 관측하고 있을 때에는 저 오로라가 나타나지 않은거지?"

그 말에 나는 머리를 긁다가 말했다.

"글쎄요, 그거까지 제가 알면 사람이 아니라 머메이드겠죠."

가끔 보면 이 사람들은 무슨 내가 만물박사인줄 알아. 이 사람들아 나는 직접 보기 전에는 유령선이 있는줄도 몰랐던 무식한 자식이야. 자꾸 나한테 물어보지 말라고.

마리아가 그걸 바라보고 있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찾아갈 수 있겠냐?"

그 말에 나는 나침반을 꺼내들고 말했다.

"어렵지도 않습니다."

40명의 인원들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저 봉우리를 향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 봉우리가, 가까워 보였겠지만.

절대로, 생각보다 더 멀었다. 이 빼곡한 숲 속에서 이동하는 건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걸렸다. 꼬박 3일을 이동한 끝애야 우리는 그 산의 정상에 다가가게 되었다. 그래, 차라리 정석적이네. 산 꼭대기에다가 뭘 묻어놓는건.

그리고, 거기에는 커다란 현무암 하나가 기둥처럼 퍽 하고 박혀있는 장소가 있었다.

딱 봐도 수상해 보이니까. 우리는 당연히 땅을 파기 시작했고. 파고 들어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무로 만든 함이 눈에 들어왔다.

"... 아하."

마리아가 그걸 보면서 씨익 웃으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었고. 다른 사람들도 씨익 웃었다. 이 함은 척 보기에도 여기에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닌데. 자연적으로 저렇게 잘 재단된 나무토막이 현무암 기둥 아래에 자연적으로 생겨날리가 없지.

함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열자. 거기에는 제법 큼지막한 무언가가 있었다. 절대 소라는 아니다. 러셀 이 새끼 이렇게 비싸보이는 물건을 그냥 소라처럼 그려놓다니.

하늘의 태양이 내리쬐는 빛을 받아서, 조금씩 움직일때마다 온갖 색깔로 부서지며 찬란한 빛을 흘리는 아름다운 그 자태는. 이미 이게 머메이드를 불러내는 나팔이 아니라고 해도 보기만 해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매력적인 예술품이었다.

천천히 그걸 양손으로 받쳐든 마리아가 눈을 빛냈다.

"그래, 이게 그 머메이드를 부르는 나팔이다 이거지."

근데 여기에서 나가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다시 머리가 아파지는 걸 느꼈다. 진짜 개 싫네. 그때 마리아가 나의 중얼거림을 듣고 웃었다.

"생각해 봤는데. 부탁 하나를 들어준다고 했잖아. 그냥 여기에서 거기로 옮겨달라고 하면 되는거 아니냐?"

... 그게 그렇게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인가? 마리아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 생각해봐. 여기에서 그 무풍지대에 숨겨져 있는 러셀의 함으로 보내달라고 하는 거나 거기까지 직접 배 끌고 가서 보내달라고 하는 거나. 차이가 있냐?"

... 글쎄. 그 머메이드들이 선량한 친구들이라면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말이지. 실제로 전설에는 꽤나 선량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지는 만나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이 나팔이 소라가 아니듯이. 전해지는 내용과 실제의 물건이 차이가 있으면 어쩌려고?

나의 이야기에 마리아가 눈쌀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 일리는 있어."

일단 우리는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전에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 있어서 차라리 내려가는 건 더 쉬웠다. 이틀째 저녁에 우리는 우리가 내렸던 그 바닷가에 도착했다. 필요한 건 얻었다.

"다시 항해를 해야하나."

얻은 건 좋은데 말이야. 다시 나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 짝이 없다.

돛단배를 타고 다시 우리의 배로 돌아간 나는 다시 마스트에 올라가서 눈 앞에 펼쳐진 고통의 길을 보면서 한숨을 깊게 쉬었다. 인간적으로,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들어와서 그 나팔도 얻었는데. 그러고 나면 무슨 마법적인 힘이나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해서 소용돌이 정도는 없어지게 해 줄 수 있는거 아니냐!

"인생은 씨발 고통의 연속이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시 마스트를 내려가서 조타륜을 잡고 말했다.

"아가들아. 또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선원들과 선장을 바라봤고. 모두가 하나같이 내가 짓고 있는 표정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진짜, 존나 하기 싫다. 씨바....

"... 돛 펼쳐 새끼들아. 뭐하냐. 그리고 존나 하기 싫은건 내가 제일 하기 싫어! 그래도 정신 바짝 차려라! 한 번 뚫었다고 다음번에도 뚫려주리라는 보장은 없어!"

여자랑 똑같다. 이래서 바다 보면서 여자라고 하는 모양이다. 한 번 했다고 다음번에도 해주겠지, 하고 생각하다가는 그대로 싸대기를 맞는다.

후우, 하고 나는 숨을 몰아쉬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함포 미리 열어놓고 장전하고 가자! 그거 쓸만하더라!"

약간의 실수들은 어떻게든 그 포를 통해 생기는 반동으로 조정할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람을 받아서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싫은 표정을 짓고 있던 녀석들도, 막상 눈 앞에서 빙빙 돌고 있는 저 끔찍한 악마의 아가리들을 보니 절로 긴장을 한 모양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저물 때 즈음이 되자. 우리는 또다시 허탈한 표정과 세상을 다 산 늙은이 같은 표정을 하고 널부러져서 하악하악 숨만 쉬고 있었다.

도합 3번 암초에 긁히고, 10번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들어오는 거랑 나가는 건 또 틀려서. 생각보다 더 많이 위험했다. 아마 그 함포 반동을 제때 쓰지 못했으면 나오다가 침몰했겠지.

그래도 살아서 일단 다시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

"이... 개새끼가아아아아!"

그리고 우리는, 나와 선장과 선원들은 봐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벗어나자마자! 우리를 비웃듯이! 점차 사라지는 소용돌이와, 약해지는 해류들! 이제, 저 섬은 그냥 암초가 좀 많고, 해류가 약간 거친 정도의, 오랫동안 탐험을 해 왔던 배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섬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랑 장난하는건가. 머리 끝까지 화가난 선원들이 섬을 향해서 차마 못할 욕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거기에는 잔뜩 빡쳐서 머리에 십자로를 빡 하고 뚫어놓은 우리의 선장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분노가 토해지고나서, 시간이 지나 밤이 되었다.

마리아가, 밤에 밖으로 나와서 선원들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번득이는 순수한 욕구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젠장 못 참겠다, 불어보자!"

마리아의 말에 선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애지간히 머메이드 한 번 보고 싶었나보지. 참나. 하반신이 물고기라서 섹스도 못하는 것들을 뭐 그렇게 보고 싶어하냐.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 일단 좋은게 좋은거라고 머메이드 부르는데 얼굴이 울상인 것 보다야 훨씬 낫겠지.

마리아가, 천천히 그 나팔의 주둥이에 자신의 입을 가져가서 그대로 불기 시작했다.

음표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렇지만 아름답고 고운 울림이 그 나팔에서 뻗어나온다. 한 사람의 호흡으로 낸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소리.

나팔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리아가 입을 때고 난 뒤에도 한 동안 바다에 넓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에 주변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배 위에서 몸을 움찔했다. 배 아래의 흐름이 이상하다. 파도? 해류...?

그게 아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누군가 바다를 보고 중얼거렸다.

"머... 머메이드다..."

============================ 작품 후기 ============================

머메이드다...

좋은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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