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히든 클래스는 과연 =========================================================================
3.
윤석은 뭘 시작하면 열심히 하고 보는 축이었다.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에 있어서 그랬다. 덕분에 예체능 다방면에 두루 능통했으며 게임을 해도 언제나 네임드였다. 별 되도 않는 이상한 것으로 투정을 부려대는 정차장이 있는 회사에서도 4년이 넘도록 붙어있었다.
그는 다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총잡이를 선택했고, 이 유토피아엔 노하우따윈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감하며 캐릭터를 지우려고 했을 때에 히든클래스 '건 오퍼' 를 얻었다.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그 어디에도 '건 오퍼'란 없었다. 건 오퍼는 말 그대로 히든 클래스였고, 유토피아 자체 시스템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클래스인 것이 분명했다.
' 드디어 히든 클래스다!!! '
정차장때문에 온갖 욕설을 쏟아내며 과음을 한 뒤 어차피 망한 캐릭, 머리나 좋아지라 소리치며 인트에 모든 스탯을 투자했었다. 그러나 정작 윤석은 그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떻게 건 오퍼를 얻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건 건 오퍼라는 히든클래스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스킬을 한 번 살펴봤다.
[ 노멀탄 생성 ]
건 오퍼의 기본기술. 마나를 사용해 5.56mm일반 탄환을 만든다. 생성된 탄환은 배틀필드에 저장된다.
필요 M/P: 10
쿨타임 :2초
[ 배틀필드 소환 ]
배틀 필드를 펼친다.
필요 M/P: 20000.
소모 M/P: 10/S
쿨타임: 10분.
' 뭐야. 씨발. 이거 두개가 끝이야? '
정말 열심히 살폈다. 스탯창, 스킬창, 하다못해 옵션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생성된 스킬은 달랑 두 개. 더군다나 건 오퍼는 인트를 계속해서 높여야 한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 건 오퍼 ]
총알을 만들어 저장하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직업. 정신적 영역이 극도로 발달한 클래스이며,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한다.
[상태창]
레벨(Level) : 10
직업(Class) : 건 오퍼
칭호 ( 칭호 ) : 없음
힘(STR) : 19
민첩(DEX) : 19
지혜(INT) : 28
행운(Lucky) : 10
매력(ATC) : 10
H/P : 1900/1900
M/P : 2800/2800
스태미너 : 3800/3800
" 으아아아아아!!! 씨팔!!! "
뭐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싶다. 회사일은 언제나 짜증났다. 그렇다고 때려치자니 생계가 막막하고 그래서 스트레스나 풀자하고 시작한 게임은 되는 게 하나도 없고, 히든클래스를 얻고나니 이건 쓰레기보다 더한 쓰레기다. 그렇다고 삭제해버리자니 히든클래스가 아깝다.
히든클래스는 유토피아 시스템이, 정말 필요로 한다고 생각되는 능력을 가지게 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새로운 클래스다. 그런데 이게 완전히 복불복이라는 게 문제다. 쓰레기가 너무 많아 도저히 처치가 불가능 한 곳에는 쓰레기 마스터라는 직업이 생겨난다. 쓰레기 치우는 능력이 특화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속도로 청소를 하는 스킬이 생긴다.
또 병자가 엄청나게 많은 곳에는 화타같은 히든클래스가 생기게 되는데 이런건 꽤 도움이 됐다. 새로운 포션을 만든다거나해서 돈을 쓸어담듯 벌었던 한 남자가 언론에 소개되었던 적이 있다.
그 밖에도 황금똥을 낳는 히든 클래스 -항문에 극악한 고통을 느끼지만 돈을 번다 - 발냄새가 많이 나는 히든 클래스, 이가 깨끗한 히든클래스, 섹스에 특화된 스님 등 별의별 이상한 클래스가 많다.
어쨌든 히든클래스라는 것은 필요가 있어서 생겨나는 것이었고 그 나름대로 활용만 잘하면 게임 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이 일반 클래스보다 훨씬 쉽게 마련되곤 했다.
그거 하나 믿고 어떻게든 해보려는데, 이건 뭐 답이 없다. 일단 배틀필드는 마나가 부족해서 아예 펼칠 수 조차 없고 총알을 만들기는 만드는데 한 30개 만들고나면 마나가 없다. 처음 열시간 정도는 계속했었는데 도대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 총알이라도 팔아볼까... '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나 넓고 넓은 얼스에서 총잡이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고, 그 것보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만들어진 총알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는 거다. 그 때마다.
[ 저장된 노멀탄 120발 ]
[ 저장된 노멀탄 121발 ]
등의 알림음만 나오지 그 120발이 어디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배틀필드인지 나발인지는 마나가 부족해서 펼칠 수도 없다. 희망이라도 보이면 어떻게든 레벨을 올려서 배틀필드를 펼쳐보겠는데, 어이 없게도 배틀필드를 펼치는데 필요한 마나가 무려 2만이다. 인트1당 마나 10에 해당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마나 2만을 만드려면 레벨이 1000은 되야 한다는 소리다. 이건 아예 쓰지 말라는 말이나 진배 없었다.
딱하나 위안이 되는게 있기는 했다. 스킬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경험치가 올랐다. 힐을 반복해서 사용하면 경험치가 쌓이는 사제나 의원처럼, 건오퍼라는 것 역시 총알을 만들면 경험치가 높아지는 일종의 보조클래스인 듯 싶었다. (직접 전투클래스의 경우, 스킬 사용으로는 레벨이 오르지 않는 클래스가 더 많다.)
그래봤자 이런 건 위안 축에도 못 낀다. 지금은 마나물약을 살 돈도 없다. 마나물약이 있어야 총알이라도 잔뜩 만들겠는데 그 것도 아니다.
' 씨발... 내가 서러워서... '
로그아웃했다.
인생이 꼬여만가는 것 같다. 로그아웃을 하고 나오니 요즘 자꾸만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동생년이 헐렁한 츄리닝 바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 오빠. 요즘 표정이 왜 그렇게 구려? "
" 사회의 쓴 맛을 보는 중이라. "
" 그니까 거기 때려치고 딴 데 알아보라니까? "
" 시끄러워. 자꾸 쫑알대지마라. 피곤하니까. "
" 아 뭐 맨날 피곤 하대? 여자 생겼어? 하긴 여자 생겼으면 맨날 집구석에 이러고 있겠냐? "
" 아오 저리 가라 진짜. 귀찮게 하지 말고. "
김수희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뭐 맨날 귀찮대, 라고 투덜대면서 무언가를 윤석 책상위에 탁 올려놨다.
" 피곤해 보인다고 엄마가 갖다 주래. "
박카스 한 병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은 수희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 귀찮게 하고 있어 저게 진짜... 아오... "
머리를 벅벅 긁으며 츄리닝도 귀찮은 듯 바닥에 휙 벗어버리고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는데 또다시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
" 야. 귀찮게 하지... 어라? 엄마? "
" 요즘 피곤해 보이는데... 이거라도 좀... 응? 먼저 샀네? "
" 이거 엄마가 갖다 주라며? "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윤석은 아까 수희가 갖다주었던 박카스를 들어 올렸다.
" 응? 내가? 아냐. "
" 수희가 그러던데. "
" 아아. 그랬니?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네 수희는. 좋겠다 아들. 좋은 동생 둬서. "
" 좋은 동생은 개뿔... "
다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 수희더러 학교갈 때 깨우라그래. 걔 내일 1교시 있으니까 나보다 일찍 일어날거야. "
윤석의 엄마인 윤정미가 빙그레 웃었다.
" 뭐야? 왜 웃어? "
" 동생한테 관심 없는 척 하면서 내일 1교시인 건 어떻게 알아? "
윤석이 툴툴거렸다.
" 아 그냥 나 출근하는데 깨워 주는 날이니까 기억하고 있을 뿐야. "
* * *
일어나라고. 아오 진짜 답답해서 그냥 버려 버린다? 그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고.
한참 후에야 눈을 번쩍 뜬 윤석이 황급히 정장을 아무렇게나 끼워입고서 달려나가다가 외쳤다.
" 야! 내가 깨우라고 했냐 안했냐! "
" 오빠가 안 일어났잖아 멍청아! "
" 그래도 깨워야지! "
현관 앞에서 잠시 티격태격 할 때에, 주방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윤석아! 토스트라도 해줄테니까 가져가! 라는 말이 들려왔다.
" 괜찮아! 그냥 갈게! "
늦잠은 늦잠이고 일단 출근은 출근이다. 그리고 출근을 다른 말로 하면 전쟁이다.
" 오빠! 나 차 태워줘야지! "
" 시끄러워! 늦었어. 나 먼저 간다. "
아직 할부가 끝나지도 않은 모닝에 시동을 걸고서 황급히 출발할 찰나, 수희가 조수석에 탔다.
" 그럼 가는 길이니까 나 지하철역까지만 데려다줘. "
" 알았으니까 안전띠나 매. "
" 맨날 안전띠 매래. 10분밖에 안 걸리는데. "
* * *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그런데 오늘은.
"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이주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라는 말이 들려왔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4년간 막내로 지낸 김윤석은 그 자리에서 굳었다. 씨팔...내 4년 막내 생활도 오늘로 끝인거냐.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너. 마구마구 부려먹어 주겠다. 나도 이젠 막내 탈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