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32화 (32/200)

< (10월 19일 수정) 이번엔 더 빨리 달려야 하니까 >

“우와, 진짜 기가 막히다.”

“이걸 언제 찍은 거야?”

공중에서 떨어진 아이의 몸에 손이 닿기 일보직전. 그 절묘한 순간이 포착된 사진에 스메들리 피트가 떠들썩해졌다.

“이제 얼굴 빨로 레이싱한다는 소리는 싹 사라지겠는 걸?”

지난 몇 년간 남다른 외모덕에 급물살을 탔던 서준하의 인기. 하지만 차가운 인상 때문에 생겼던 오해와 함께 악플도 많았었다.

“이런 사진 몇 장 더 나오면 준하 진짜 슈퍼스타 되겠다.”

“이건 진짜 스폰서들이 좋아하는 사진 아닙니까? 하하.”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F1 무대인만큼 스폰 기업들은 레이서의 이미지를 중시했다. 아무리 뛰어난 레이서라도 탈선을 일삼는다면 역효과가 나는 건 분명했으니까.

“이대로 대회 우승만하면 딱이겠다, 그지?”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서준하를 바라보는 한서윤. 반면 서준하는 별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레이스 시작 전, 지금은 무엇보다 레이스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리고,

“후우우우우우!”

피트에서 대기 중인 서준하 곁으로 촬영 팀이 다가섰다. 서킷 중개 화면에 서준하가 등장하자, 관중들이 박수와 함께 환호했다.

“하하.”

하루만에 부쩍 높아진 관심이 부담스러울법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서준하.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에 감사를 표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피트 안으로 들어온 그가 본격 레이스 출발 전 자신의 포뮬러를 점검했다.

“정비팀에서 아침부터 계속 점검 했어. 이상 없다, 준하야.”

포뮬러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그에게 헨리가 다가섰다.

“그리고 오늘은 예선보다 트랙이 더 뜨거울 거야. 좀 더 과감하게 몰아도 괜찮을 것 같아.”

노면이 뜨거워질수록 타이어의 그립감은 배가 된다. 예선이 벌어졌던 어제 오전보다 높아진 기온. 0.1초라도 빨리 달려야하는 레이서에겐 긍정적인 조건이었다.

“에어 압력은 예선 보다 살짝 빼둔 상태고, 프레임은 좀 부드러운 걸로 꼈어.”

차의 모든 상태를 보고하는 헨리. 대략적인 정보만을 전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서준하는 매번 이렇게 상세한 보고를 부탁했다.

“근데 준하야.”

“응?”

“나 한마디만 해도 되냐.”

“어, 좋지.”

“처음에는 나도 너한테 이런 식으로 보고하는 게 영...”

감독도 아닌 선수에게 매번 자잘한 보고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헨리. 서준하의 얼굴을 보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너처럼 엔지니어링 부분까지 파고드는 레이서는 없잖아. 원래 이런 건 감독한테나 하는 건데...”

“음, 그렇지. 근데 헨리, 난 레이서라면 기본적으로 차가 어떻게 세팅됐는지는 알고 서킷에 들어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솔직한 심정을 말해줘서 고마웠고, 그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됐다. 서준하는 어리고, 경험없는 풋내기 레이서였지만, 헨리는 팀의 엔지니어링 책임자였으니까.

“난 우리가 계속 이 방식을 고집했으면 좋겠는데, 그럼 내가 오늘 레이스에서 확신을 줄게. 그 이후에도 별다른 확신이 안 생긴다면 그땐 생략하기로 하자. 괜찮을까?”

아직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서준하.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그리고 잠시 대답하길 망설이던 헨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케이. 알겠어. 나머진 예선 때 탔던 설정 그대로야, 이제 출발해.”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서준하. 마지막 시트 확인을 위해 콕핏에 확인하던 그때,

“헨리.”

“응?”

“스테빌라이저를 더 빡빡하게 해줘.”

“스테빌라이저를? 왜?”

모든 점검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헨리를 불러 세운 서준하.

“이번엔 더 빨리 달려야 하니까.”

한마디 던지고는 미소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

“2013 포뮬러 르노, 본격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드로 다가서는 포뮬러들!”

포메이션 랩을 돌고, 예선 순위에 맞게 그리드에 안착한 선수들.

“16대의 포뮬러카가 스타트 라인에 섰습니다.”

“강력한 우승 후보 쥴리앙이 두 번째 그리드에 위치하고요.”

“그리고 이번 대회 다크호스죠. 스메들리의 서준하가 폴포지션에 위치합니다!”

스타트 라인의 풀샷을 잡던 카메라가 재빠르게 첫번째 그리드를 크로즈업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등장한 한국의 새로운 유망주죠. 이번 대회가 낳은 스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경기장 화면에 서준하의 포뮬러가 잡히고, 관중들이 함성을 쏟아냈다. 태극 마크가 붙은 헬멧이 빛을 받아 번쩍였다.

띠.

띠.

띠.

“신호 꺼졌습니다! 출발합니다! 굉장한 엔진음과 함께 치고 나가는 포뮬러들! 캐드웰 파크가 뜨거워졌습니다!”

레이싱은 마약과 같다. 그것이 너무 강렬한 탓에 한번 경험하게 되면 계속해서 원하게 된다. 특히나 서준하와 같은 속도광들에겐 더.

“스메들리의 서준하! 선두에서 포뮬러들을 이끕니다! 오늘 레이스,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폴투피니시(Pole to finish)가 가능해 보이는데요!”

폴포지션 선수가 순위 변동 없이 그대로 피니쉬라인에 골인하게 되는 폴투 피니쉬. 무난한 서킷으로 평가되는 캐드웰 파크에서 서준하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역시 1코너입니다. 경기를 포기해야 하는 선수들이 몇몇 보이는데요.”

출발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조금 더 앞서서 출발한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엔트리급 포뮬러 대회인 만큼 어린 레이서들이 다수. 처음부터 조바심을 낸 포뮬러들이 1코너에서 부딪혔다.

쿵.

쿵.

“하위권에서 크러쉬가 일어난 가운데! 유유히 캐드웰 파크를 달리는 선두권 선수들!”

앞서 달리는 차량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과도 같다. 특히나 이런 주니어급 대회에선 크러쉬가 꼭 발생하기 때문에 되도록 가장 앞에서 달려야 한다.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지금 캐드웰 파크의 관심은 오직 선두 세 대에 쏠려있습니다! 달릴수록 점점 격차를 벌리는 선두권 레이서들!”

서준하를 기준으로 르노 아카데미의 쥴리앙과 포르텍 모터스의 잭슨이 따라붙었다.

“지금 서준하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건 단 두 선수뿐이군요! 레코드라인을 따라 아름답게 달리는 세 대의 포뮬러카!”

새로 태어난 삶. 자고 일어나면 매일 똑같은 목표뿐이었다. F1 챔피언이 되는 일. 서준하에겐 그것 말고는 그 어느 것도 의미가 없었다.

부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큰 무리 없이 부드럽게 3바퀴를 주행한 서준하. 현재 노면 컨디션에 맞는 서킷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직진, 전속력으로 1코너로 달리고.’

퍼팩트한 드라이빙으로 다음 코너와 마주한 서준하. 스티어링 휠로 자신이 원하는 리듬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2번 코너 50미터, 기어 낮추고, 저속 코너니까 가속 밟아주고.’

예선 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

‘앞에 울퉁불퉁한 노면 나올 거고, 그때 살짝 브레이크.’

그리고 분명한 시야를 통한 명확한 판단력까지.

‘왼쪽으로 긴 코너, 7번 코너에서 커브 올라가고, 다시 가속.’

3단, 4단, 5단.

‘그리고 지금부턴 전속력이다!’

6단!

전속력으로 백 스트레치를 빠져나가자 중계진의 함성이 쏟아졌다.

“Wooooooooow!”

“서준하! 슈퍼 클린랩을 돌며 스타트라인을 지나갑니다!!!”

환생 이후 더 강해졌다. 다시 카트에 탔고, 다시 포뮬러를 공부했다. 지금 캐드웰 파크에선 어느 누구도 서준하를 막을 수 없었다.

***

-왜 앞으로 치고 나오지 않는 거지?

모두의 관심이 선두 스메들리 포뮬러에 쏟아진 가운데, 캐드웰 파크에서 가장 애타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르노 아카데미의 베누아 감독이었다.

-왜 그러는 거야, 쥴리앙!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한 턴에서도 실수가 안 나와요.”

선두의 실수를 기다리며 빈 공간을 노리는 쥴리앙. 좀처럼 틈이 나지 않자, 르노의 피트에선 열불이 터졌다.

“저 녀석 주법이 특이합니다. 코너링을 할 때 조금도 틈이 안 보입니다.”

선두 레이서는 경주차를 돌리는 일에 어딘가 남다른 감이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틈을 보이는 듯 싶다가도 민첩하게 방향 전환에 성공하며 뒤차가 들어갈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휑.

띠링.

르노 피트 월에 표기된 쥴리앙의 9번째 랩타임. 스타트라인을 통과하는 쥴리앙의 차를 보고 베누아가 다시 상황판을 살폈다.

-좋아, 계속 빨라지고 있어

7바퀴부터 랩타임이 현저하게 빨라지고 있는 쥴리앙의 포뮬러카. 베누아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무전을 날렸다.

-쥴리앙, 지금 아주 잘하고 있다. 계속 그렇게 따라붙어

“copy.”

레이스의 절반이 지난 상황. 주니어 선수들에게 데뷔 무대에선 완주하는 일도 힘겨운 일이다.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압박해. 아직 레이스 많이 남았어. 선두의 페이스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스메들리의 낯선 동양인 레이서 역시 어린 선수의 데뷔 무대였고, 남은 절반의 레이스 동안 부담을 줘 자멸시키려는 것이 르노 팀의 전략이었다.

“조금 전보다 페이스가 떨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감독의 말을 들어서 일까. 피트 월의 지시를 받고 부터는 견고해 보였던 선두 차의 디펜스가 다소 허술하게 느껴졌다.

“곧 기회가 올 것 같습니다.”

폴 포지션을 빼앗기며 레이스 초반 크게 당황했던 쥴리앙. 이번 대회가 처음인 대다수의 참가자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희망에 부풀었다. 그런데, 톡.

토톡.

조금씩 어두워진 하늘. 캐드웰 파크 위로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비, 비...?”

하나둘 떨어지는 빗방울. 쥴리앙의 시야로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다음 바퀴에 피트로 복귀해. 곧바로 타이어 체인지에 들어간다!

조금이었지만, 하늘은 어딘가 심상치 않았다. 재빠르게 우천용 타이어 교체를 지시하는 베누아. 웨트 컨디션에선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잘 됐어. 이제 진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이 데뷔전을 치루는 이번 대회 참가자들. 포뮬러카 레이스 경험은 물론 비가 오는 상황에서 주행해본 경험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네, 다음 바퀴에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밸런스형 드라이버답게 웨트 컨디션만큼은 자신 있었던 쥴리앙. 그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서 선수들 피트로 복귀하기 시작합니다. 벌써 스타트라인 부근은 노면이 거의 다 젖었거든요?”

“그렇습니다. 타이어 체인지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레이스 순위가 결정될 수도 있겠네요.”

피트로 복귀하기 시작하는 포뮬러카들. 갑작스런 비 소식에 당황한 참가 팀들이 피트 스탑에 들어갔다.

부우우우웅.

위이이잉.

마지막 코너에서 벗어나며, 홈스트레이트에 접어든 쥴리앙. 저 멀리 피트 레인 근처로 들어가는 백마커들이 보였다.

-이제 들어와, 쥴리앙!

너도나도 복귀를 서두르는 상황. 앞선 선두 차도 피트 레인으로 들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방향을 바꿔 피트 레인으로 올라서던 그때,

“...!”

그의 앞으로 다시 스타트라인으로 들어서는 선두 차가 보였다.

“뭐? 계속 달린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캐드웰 파크. 스메들리 팀 포뮬러가 홈스트레치를 빠져나갔다.

< (10월 19일 수정) 이번엔 더 빨리 달려야 하니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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