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31화 (31/200)

< 너희 이번 대회 저 팀 프로젝트명이 뭔 줄 아냐? >

대회 예선전 타임 트라이얼이 시작됐다. 스메들리 팀 피트를 빠져나오는 포뮬러 한 대.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엔트리급 리그에선 예선 출발부터 변수가 생긴다. 가령 출발 시 엔진이 꺼진다거나, 바퀴가 헛도는 휠스핀 등등. 하지만, -출발이 좋은데?

시작부터 겁먹고 팀원들 속 태우는 젖먹이 레이서와는 달랐다. 롭의 출발 신호와 함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동작들. 페달과 기어 조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젠 몸이 알아서 움직이네.’

매끄럽게 홈스트레치를 빠져나가는 스메들리 포뮬러. 서준하의 눈앞에 1코너가 보였다.

-준하, 쫄지 말고 막 밟아! 어차피 우리 차도 아니야

레이서가 가장 긴장하는 곳은 바로 첫 바퀴의 1코너. 장난기 가득한 롭이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시작과 동시에 농담을 던졌다.

부우우우우우웅.

끼이이이이이익.

전생과 하나 다를 것 없는 롭의 큐(que)사인에 서준하가 피식 웃으며 코너 진입 전까지 풀스로틀을 밟았다.

-하하하, 야! 그렇다고 진짜 막 밟으면 어떻게 해. 부서지면 다 물어줘야 한다고!

부우우우우웅.

끼익.

휑.

클러치부터 기어박스 등, 코너링 한번에도 조작할 게 많은 포뮬러는 카트보다 재밌다. 떨기는커녕 드라이빙을 즐기기 시작하는 서준하. 캐드웰 파크의 3번 시케인에서 과감한 풀브레이킹을 성공했다.

-나이스 브레이킹!

피트 월(pit wall) 화면에 잡힌 서준하의 깔끔한 드라이빙. 롭의 입에선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보면 볼수록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드라이빙 스타일에 가까워 소름이 돋기까지.

-완전 신났는데?

매 코너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아웃-인-아웃라인. 스피드를 최대한 떨어뜨리지 않고, 커브를 빠져나오는 서준하가 무서운 속도로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다.

-야쓰!!! 1분 15초!!!

워밍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어택에 들어간 2랩에서 예선 최고 기록을 뽑아낸 서준하. 데이터 로그를 확인한 롭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야, 준하. 언제 연습한 거야! 뭐야 너 왜 이렇게 잘해?

“차가 말을 잘 듣는데?”

-엥? 우리만 다른 차를 탄 건가?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새로 바뀐 환경에도 군더더기 없는 드라이빙을 보여주는 서준하. 어택 초반부터 스메들리 팀 메가폰에 불이 났다.

-그렇다면

기세가 올랐을 때 내달려야 하는 법.

-더, 더, 더!

경주마를 채찍질하듯 푸쉬하는 롭. 완벽한 레이싱을 구사하는 서준하를 보고 타임 트라이얼 초반부터 거센 어택을 지시했다.

슈우우우웅.

메인 그랜드 스텐드 멀리서 들려오는 남다른 배기음. 눈 깜짝할 사이 ‘슈웅’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천둥소리를 내며 포뮬러 카 한 대가 스타트라인을 지나갔다.

띠링.

주행 데이터 로거를 확인한 롭. 눈이 번뜩임과 동시에 온몸이 떨려왔다.

-오 마이 갓!!!

***

다양한 팀이 참가한 만큼 긴 예선 타임 트라이얼. 르노 아카데미에서 오전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스타트 연습도 안 하고 여길 왜 나온 걸까?”

“대회가 우습나 보지.”

“아냐, 엄마 아빠가 돈이 많은 거야.”

딱히 강팀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상황. 출발도 제대로 못하는 선수들이 연속 등장하자, 르노 아카데미 팀원들이 연신 하품을 해댔다.

띠링.

새로운 레이서의 등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SMEDlEY F. TEAM: SEO]

캐드웰 파크에 새롭게 등장한 레이서. 태극 마크가 붙은 헬멧을 쓴 채 포뮬러에 올라탔다.

“S. E. O? 세오? 중국놈인가?”

서준하의 ‘서’를 ‘세오’로 읽는 선수들. 낯선 레이서의 이름을 보곤 유럽에서 마주하기 쉬운 중국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호, 세오. 팬도 있어.”

“근데 왜 저렇게들 소리 지르고들 그래. 특히 여자들이 난리가 났는데?”

스메들리 팀 레이서가 등장하자 카메라에 잡힌 관중석. 몇몇 관중들이 요란을 떠는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다시 넘어간 화면. 출발 신호와 함께 스메들리 팀 포뮬러가 스타트하는 장면이 중계됐다.

“이야 그래도 얘는 시동은 안 꺼먹네.”

“맞아, 밥값은 하겠다.”

1코너를 향해 달려가는 포뮬러. 실수투성이 선수들과 달리 출발에 성공하자 르노 선수들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클로즈업된 스메들리 팀 마크.

“스메들리? 요새 대형 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 텐데, 왜 저런 팀 소속으로 나오는 거지?”

“중국 애들이 돈 잘 쓰잖아. 저 팀 애들도 돈이 많은가 봐.”

“냅둬, 포뮬러가 취미인가 보지.”

대형 자동차 메이커들이 유소년 시장에 뛰어들자, 중소형 포뮬러 팀들이 대회에서 경쟁력을 잃는 추세였다. 영국의 소형 아카데미 소속으로 등장한 SEO를 두고 말이 많은 선수들.

“근데 스메들리라는 팀이 있었냐?”

과거 메인 레이서 롭을 두고 포뮬러 리그를 활약했던 스메들리 팀. 이제는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옛날에 엔트리급 한 번 우승했던 그런 팀 있어. 지금은 한물갔고.”

“아, 그래요?”

“오, 쟤가 이번에 걔구나.”

핫바를 물고 나타난 르노 아카데미의 크리스 코치. SEO 선수와 스메들리 팀을 잘 아는 눈치였다.

“왜요?”

“팀 대표가 윌리엄이라는 할배인데, 이번 대회에 엄청 투자했다고 소문이 났더라고. 근데 그게 다 SEO, 쟤 때문이래.”

“저 세오인가, 뭔가가 잘 탄데요?”

“그런가 봐. 한번 볼까?”

코치의 말에 다시금 화면에 집중하는 르노 선수들. 서준하의 포뮬러가 어택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다.

“근데 얘들아. 너희 이번 대회 저 팀 프로젝트명이 뭔 줄 아냐?”

“뭔데요?”

“아, 그 뭐라더라... 그 반지의 제왕, 그건데.”

“더 리턴 오브...”

“그래 맞아, 그거, 그거.”

“왕의 귀환!”

“왕의 귀환? 그게 뭐야, 하하.”

“엄청 유치하네. 무슨 귀환이야, 크크큭.”

이번 대회 다시 한번 리그 재패를 노리는 스메들리 팀. 대회 선발부터 팀원 구성까지. 신경을 많이 쓴 만큼, 팀 프로젝트까지 발표하며 여기저기 자신감을 드러냈었다.

띵 동 댕 동.

경기장 소식을 공개적으로 알리는데 쓰이며, 특별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방송 효과음. 갑작스런 효과음에 르노 선수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FASTEST LAP TIME]

[SMEDlEY F. TEAM: SEO]

“세오?”

“뭐? 대회 최고 기록?!”

2013 브리티시 포뮬러 르노 2.0 예선. 중계화면에선 서준하의 포뮬러가 10바퀴 째 컨트롤 라인을 통과하고 있었다.

***

대회 페스티스트 랩을 기록하며 화려한 포뮬러 신고식을 치룬 서준하. 서킷을 찾은 갤러리의 관심이 그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진짜 잘했어. 페스티스트 랩이래, 준하야. 우리 이번에 우승하는 거 아니야?”

예선을 마치고 피트로 돌아온 서준하. 스메들리 팀원 모두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아직 예선이 끝난 건 아니지만, 대회 최고 기록이니까, 이대로 가면 폴포지션은 거의 확정이야.”

평범하고 변수가 적은 캐드웰 파크. 폴포지션에서 실수하지 않는다면, 폴투원(pole to one, 예선1위 선수가 본선 1위로 우승하는 경우)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서킷이다. 데뷔전 우승 가능성이 높아지자, 팀원들이 흥분했다.

“준하 선수, 이럴 때 일수록 들뜨지 말고, 평정을 유지해야 하는 거 알지? 지금 바로 숙소로 돌아가서 좀 쉬자.”

모두가 들뜬 상황에 한서윤이 서준하를 데리고 숙소로 향했다. 피트를 빠져나와 경기장 출구로 나가는 두 사람.

“근데 왜 그렇게 웃으세요?”

“아 몰라, 흐허허헝.”

“아니, 아까는 뭐 들뜨면 안 된다면서...”

싱긍벙글 웃는 한서윤. 자신이 매니징하는 선수가 데뷔전 최고기록을 따낸 상황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준하 선수, 이러다 이거 진짜 F1 슈퍼스타가 나오...”

한서윤이 기특하게 서준하를 바라보던 그때,

“으아아!”

소리를 지르며 서준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무언가. 반사적으로 위를 확인한 서준하가 자신도 모르게 떨어지는 것에 손을 가져다댔다.

찰칵.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기자의 카메라 셔터가 눌렸고,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까, 깜짝이야.”

서준하의 품에 안긴 작은 아이. 깜짝 놀란 서준하가 아이의 눈을 쳐다봤다.

“너, 너 괜찮아?”

고개를 들어 아이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니, 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함께 경악한 표정의 여자.

“괜찮아?!”

“땅에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관람석 펜스에서 떨어진 아이가 땅에 떨어지기 전 가까스로 품에 안은 상황. 의식과 별개로 작용한 반사 신경과 레이서의 순발력이 아이를 살리는 순간이었다.

찰칵.

찰칵.

인파 속 기자로 보이는 남자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

“저기, 혹시 대회 선수신가요?”

레이싱슈트를 입은 서준하를 알아보고 더 흥분한 기자.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아이의 엄마와 서준하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미지 사용에 동의를 구했다.

“...오늘 뭐 거의 슈퍼맨인데?”

하얗게 질린 한서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는지,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준하 선수, 오늘 나 여러 번 놀래키네. 진짜 별일을 다 겪어.”

서준하도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 경기장 문을 빠져나오며, 다시 한번 아이가 떨어졌던 스텐드 근처를 뒤돌아봤다.

‘환생까지 한 마당에, 이런 건 놀랍지도 않다...’

***

“오늘 예선 보셨어요?”

“응, 그럼.”

“쥴리앙보다 빠른 녀석이 나왔어요...”

굳은 얼굴의 르노 아카데미의 베누아 감독. ‘띠링’하고 울린 휴대폰 알림음에도 반응하지 않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어, 저기 괜찮네.”

한편, 이번 대회 운영위원장 레벵. 창밖에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 위원장님 지금 그게 아니잖아요. 제 얘기에 집중해주세요.”

“아, 왜.”

“진짜 몰라서 그러세요?”

“아, 알지.”

이름 모를 한국인 선수가 이번 대회 모든 관심을 독차지해버린 상황. 르노의 베누아 감독이 다급해졌다.

“여기 원래 우리 애들이 나올 클라스가 아니잖아요. 대회 활성화한다고 본사에서 지시받고 출전한 건데. 이번에 제대로 창피 당하게 생겼다고요.”

알프스컵, 아시안컵 심지어는 유로컵 경험까지 있는 르노 아카데미 선수들. 그들에게 브리티시 컵은 수준 떨어지는 리그였고, 압도해야 할 대회였다. 하지만,

“베누아. 나라고 대회 페스티스트랩이 나올 줄 알았겠어?”

“스메들리... 하, 진짜 뭐 이런 듣보잡한테.”

산술적인 팀 지원비만 해도 수십 배 차이. 모두가 르노 아카데미의 우승을 예측한 상황에 위원장도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캐드웰 파크는 진짜 폴포지션이 중요한 서킷인데...”

“아,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

이대로 간다면 듣보잡 팀에게 우승을 내줄지도 모르는 상황에 베누아 감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위원장을 바라봤다. 한숨을 내쉬고는 무언가 말하려던 그때, 띠링.

띠링.

띠링.

“아나 이씨, 뭐야 자꾸!”

2013년부터 폭발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SNS 트위토. 베누아의 폰으로 포뮬러 관계자들의 트윗이 날라왔다. 휴대폰을 꺼내든 베누아.

“이건 또 뭐야?!”

익숙한 배경으로 아이를 품에 안은 레이서의 사진이 줄지어 나타났다.

[대회 최고 기록 달성 직후, 생명을 구한 레이서...]

[포뮬러 B, 오늘의 화제 트윗: 뛰어난 실력은 물론, 우발적 사고를 막은 레이서...]

[포뮬러 레이서 역대급 반사 신경, 훈훈한 스토리...]

“얘, 오늘 무슨 날이야?!”

< 너희 이번 대회 저 팀 프로젝트명이 뭔 줄 아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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