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36화 (36/200)

< 이번에 꼭 만나야 해요 >

슈우우우욱.

펑.

“Wow!”

8대의 공군 비행기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곡예를 부리는 모습. 영암 서킷 갤러리들이 환호했다.

“코리아 그랑프리 2013! 결승 레이스 시작 전 축하공연이 있겠습니다!”

커다란 공연용 트럭이 서킷에 등장함과 동시에 모두에게 익숙한 음악이 나왔다.

“오, 나 저 사람 알아!”

트럭 위로 등장한 가수가 춤을 추며 갤러리에게 인사하자, 롭이 요란을 떨었다.

“오, 오오오 오빤 강북스타일!”

서킷을 찾은 수많은 외국인들도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코리안 팝을 잘 모르는 서준하도 이 노래만큼은 익숙했다.

“이제 선수들이 등장합니다. 박수로 맞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다란 오픈 트레이드 버스에 올라탄 F1 레이서들.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서킷을 한 바퀴 돌았다.

“전년도 코리아 그랑프리 우승자이자 폴포지션의 레드불 레이싱의 저스틴 페텔입니다! 다음은 두 번째 그리드 메르세데스의 로이스 해밀턴입니다...”

22명의 레이서가 올라탄 트레이드 버스. 다소 북적거렸지만, 선수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인사를 보냈다.

“저기 선수들 모두 엄청난 실력자들이지만, 특히나 지금 페텔이랑 해밀턴을 막을 레이서가 없어.”

“맞아, 페텔은 슈마허 이후 최고의 레이서잖아. 오늘 우승하면 거의 챔피언 확정일걸?”

저스틴 페텔. 2010년 23세의 나이로 최연소 월드 챔피언에 오른 뒤 이후 두 번이나 더 챔피언에 오른 남자. 롭과 한서윤의 말에 서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페텔이 우승하면 몇 년 연속 챔피언이 되는 거지?”

“아마 최연소 타이틀로 4연속 챔피언이 되는 걸 거야.”

한 해 20번 가까이 열리는 그랑프리. 가장 많은 포인트를 얻은 드라이버에게는 F1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트로피가 수여된다. 현재 페텔은 무려 4시즌 그것도 연속으로 챔피언에 도전하고 있었다.

“페텔...”

젊은 페텔을 보자, 기분이 묘했다. 전생에 서준하가 F1에 데뷔했을 때도 페텔은 압도적인 실력을 뽐냈다. 실제 그를 다시 보자, 레이스를 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솟았다.

“준하 선수는 언제쯤 F1에 갈 수 있을까? 빨리 이 서킷에서 달리는 걸 보고 싶어.”

“준하도 멀지 않았어, 페텔의 최연소 기록을 깨버릴 거야, 그렇지?”

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롭과 한서윤. 서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이렇게 VIP 스탠드에도 앉아보네. 여기 좋다 진짜.”

홍보대사 자격으로 주어진 메인 그랜드스탠드 좌석. 피트스탑부터 피니쉬라인 그리고 포디엄까지. 그랑프리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관람석에 세 사람이 앉았다.

“여기는 이런 느낌이구나.”

서준하에겐 F1 경기를 스탠드에 앉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피트에서 느낄 때와는 색다른 기분.

“헤이, 준하. 나중에 패독에 있게 해줄 거지? 난 여기보다 패독(paddock)이 더 궁금해.”

손을 뻗어 피트 뒤편 F1팀들의 휴식 공간인 패독을 가리키는 롭. F1팀 관계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VVIP 플랫폼으로, F1 팀원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이다.

“기다려. 멀지 않았어.”

우우우우우우웅,

이이이이이이잉.

서준하의 말과 함께 스탠드 지붕으로 반사된 엔진의 굉음이 강하게 울려 퍼졌다. 스타트라인을 빠져나가는 22대의 포뮬러들.

“2013 코리아 그랑프리 본선 레이스 시작합니다!!!”

***

스크린 앞에선 영국 스메들리 아카데미. F1 중계가 한창이었다.

-코리아 그랑프리 2013 피니쉬라인으로 포뮬러 한 대가 들어옵니다! 페텔! 페텔! 페텔!

“페텔 퍼스트. 와 진짜 잘 탄다. 코너링에서 속도가 안 죽어.”

“준하가 저렇게 타잖아. 저번에 못 봤나?”

“준하요? 에이 캡틴, 그래도 페텔은 F1 드라이번데, 레벨이 조금 다르죠...”

“아니네, 준하도 코너링이 저렇게 특이해...”

강사 대니에게 페텔과 서준하의 공통점을 설명하는 윌리엄. 자신의 말을 들어보라며 열을 올렸다.

-체커 깃발이 휘날립니다. 피니쉬라인으로 들어오는 포뮬러들!

페텔을 시작으로 형형색색의 포뮬러들이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다. 근처에서 깃발을 휘날리는 체커맨. 중계화면에 그의 모습이 담겼다.

“포뮬러들이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는데 그걸 보여줘야지. 왜 깃발 흔드는 걸 잡고 그러는 거야. 아직 다 안 들어왔다고.”

“한국에서 인기 있는 가수인가 보지. 저기 봐, 밑에 사람들 모인 거.”

관제탑에 올라 깃발을 흔드는 체커맨. 그 밑으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서 있었다.

-하하,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유난히 인기가 좋은 체커맨입니다.

영국 방송 해설자도 멋쩍은 웃음과 함께 코멘트를 날렸다.

“응? 근데 가수가 아닌 거 같네?”

마지막 주자가 피니시라인을 통과하자,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체커맨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레이서와 비슷한 옷차림을 흥미롭게 보는 아카데미 직원들.

-이번 대회 홍보대사죠. 코리아의 F1 유망주 레이서 서준하. 이제 관제탑을 내려갑니다. 그를 기다리는 팬들이 많네요.

“서준하?!”

“오, 진짜 준하네!”

해설진의 설명에 모두 깜짝 놀란 강사들.

“와, 지금 방송 노출 엄청 됐겠는데요?”

전세계 6억 명이 시청하는 F1 그랑프리. 이번 대회 손을 들어 인사하는 체커맨의 모습이 잠시 동안 화면에 담겼다.

“어?! 저거!”

지상으로 내려온 체커맨이 화면에 클로즈업 됐고, 그 모습이 더 자세히 보였다. 그 가운데 서준하가 입은 복장이 직원들의 눈에 띄었다.

“준하만 대박 난 게 아닌데?!”

화면 앞으로 달려간 대니. 아카데미 강사들에게 서준하가 입은 보라색 오버롤(레이싱슈트)을 가리켰다.

[SMEDLEY FORMULA TEAM. SEO]

서준하의 가슴 중앙 대문짝만하게 적힌 팀의 이름. 스메들리 포뮬러 팀이 전세계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팀 유니폼이잖아!”

***

행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서준하와 한서윤. 식사 도중 유건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방긋 웃는 한서윤.

“네, 실장님.”

-서윤 씨,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이요?”

-서준하 선수한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더 생긴 것 같아. 우리 쪽으로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

“정말요?”

-아직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은데. 대표님 주변 지인들께서 준하 선수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나 봐요. 원래 반응이 좀 약했는데, 오늘 카메라에 잡힌 게 결정적이었나? 뭘 좀 아는 사람들은 컨소시엄을 만들자는 얘기까지 하더라고.

스포츠 팀이나 선수를 후원하는 스폰서.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도 스폰서가 될 수 있다. 컨소시엄을 만들겠다는 건 서준하를 후원하는 개인 투자자가 많아졌다는 얘기. 한서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참,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거 확정됐네

“정말요, 실장님?”

-으응, 근데...

후원사가 늘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놀란 얼굴로 서준하를 바라보는 한서윤. 소식을 전하던 유건석이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그 캠프 일정이 내일 모레로 당겨졌어. 아마 한국에선 내일 바로 떠나야 스케쥴이 맞을 거야.

“내일 바로요?”

-그러네

“일정이 너무 빠듯하긴 한데...”

-그렇지? 내가 봐도 너무 서두르는 것 같긴 해. 준하 선수 힘들면 그냥 한국에 있어도 돼요.

“음, 잠시만요, 일단 제가 다시 전화 드릴게요.”

통화 끝내고, 서준하를 바라보는 한서윤.

“대박! 대박!”

“뭔데요?”

호들갑을 떠는 한서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서준하.

“마누엘 슈마허! F1 황제가 이번에 스위스에 온대!”

“슈미? 아, 아니 마누엘 슈마허요?!”

오랜만에 듣는 F1 황제의 이름의 깜짝 놀란 서준하.

“슈미? 그게 뭐지?”

슈마허의 애칭, 슈미. 슈마허란 이름에 서준하도 모르게 말이 헛나갔다. 서준하가 난색을 표하던 그때,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고 롭이 룸으로 들어왔다. 한서윤의 신난 얼굴을 보고 어리둥절한 롭.

“뭐야, 뭐야? 왜 이렇게 신났어?”

“내일 준하가 마누엘 슈마허랑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오, 슈마허 형님?”

“뭐야, 넌 또 형님이야? 개인적으로 친분이 좀 있는 거야?”

슈마허란 이름을 듣고 깜짝 놀라는 롭 스메들리. 서준하와 비슷하게 친숙한 반응을 보이자, 한서윤이 궁금하다며 물었다.

“응? 아니, 한 번도 본 적 없어.”

“뭐야... 장난하냐?”

“그분은 그냥 형님이야. 포뮬러 타는 레이서한테는 가장 큰 형님이지, 뭐.”

“참... 둘다 엄청 친한 척은. 아무튼! 슈마허 진짜 대박!”

사실 서준하는 친분이 좀 있었다. 전생의 아카데미 시절, 당시 페라리 F1팀이었던 그와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유소년 캠프에서 만나 나중에는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로 발전했다. 마치 프랑스 축구선수 앙리와 음바페의 사이처럼.

“근데 슈마허를 어떻게 만나요?”

“응, 이번에 PH인베스트먼트 마케팅 담당자가 슈마허랑 연이 닿는 사람을 만났대. 근데 그 미팅 자리에서 슈마허가 유소년 레이서들 만나서 강연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거야. 그래서 대표님이 직접 준하 선수도 연결해달라고 부탁하셨는데, 그게 지금 급하게 결정됐나봐.”

2012년 메르세데스 팀을 마지막으로 F1을 은퇴한 마누엘 슈마허. 서준하의 기억으론 현재 슈마허는 독일에서 휴식을 취하며 은퇴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F1 무대가 꿈인 준하 선수가 직접 얼굴 한 번 보는 것만으로 많은 영감을 줄 거야. 대박이다, 정말!”

기대에 가득 찬 눈빛. 한서윤에겐 혼자서 많은 포뮬러 원의 기록들을 세운 레전드와 자신이 매니징하는 선수가 만나는 건 상상만 해도 기쁜 일이었다.

“음, 근데... 다 좋은데. 일정이...”

“왜요?”

“거기 가려면 내일 당장 떠나야해.”

“내일요?”

브리티시컵을 끝내고 곧바로 홍보대사 역할을 맡은 서준하. 오늘을 끝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려던 참이었다.

“What? 내일 바로? 아니 우리 코리아에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들고 있던 한국 관광 책자를 흔들어 대는 롭. 곧바로 돌아가야한다는 소식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

“흠, 실장님도 힘들면 안 가도 괜찮다고 하시긴 했는데...”

한국에서 이런저런 바쁜 일정을 소화했던 서준하. 분명 좋은 기회였지만, 컨디션과 더불어 시간이 너무 빠듯해 보였다.

“뭐 나중에 또 기회가 올 수도 있는 거잖아?”

걱정스런 얼굴로 묻는 말에 고개를 흔들던 서준하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내일 바로 출발하죠.”

마누엘 슈마허는 서준하의 우상이자, 그가 넘어야 할 엄청난 기록들을 세운 남자. 그를 다시 만나는 건 새로운 삶을 사는 서준하에겐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래? 근데 나중에 만날 수도 있는 거고, 너무 급하게 움직이면...”

나중에는 장담할 수 없다. 무엇보다 2013년 겨울을 맞이한 슈마허에게 꼭 해줄 말이 있었으니까.

“아니요, 이번에 꼭 만나야 해요.”

< 이번에 꼭 만나야 해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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