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84화 (84/200)

< 블라인드 코너, 클리핑 포인트가 잘 안 보일 겁니다 >

8개의 코너로 구성된 단순한 레이아웃이 특징인 레드불링. 이번 시즌 등장하는 서킷 가운데 한 바퀴를 도는 데 가장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서킷이다.

그러나 단순하고 짧다고 해서 공략이 쉬운 건 아니다. 63.5m의 엄청난 높낮이 차는 코너의 경사도와 더불어 블라인드 코너(Blind Corner)를 만든다.

블라인드 코너는 장애물에 가려 진입할 때 앞쪽 상황을 확인할 수 없는 코너로, F1 그랑프리에서도 많은 충돌 사고가 있었던 턴7의 린트(Rindt) 코너가 대표적이다.

“온통 이 친구 얘기로 떠들썩 하군요.”

레드불링에 위치한 프리마 레이싱의 팀 캠프.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던 조르조 감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1,2차전까지만 해도 관계자들 반응이 그럭저럭이었습니다만... 3차전 레이스가 역시 임팩트가 컸나 봅니다. 그후로 더욱 서준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빗속 레이스에서 참가자들과 비견할 수 없는 실력을 뽐낸 코리안 레이서. 1,2차전 우승이 운이 좋았기에 가능헀다는 여론을 단숨에 잠재워버렸다. 조르조와 마찬가지로 3차전 이후 부감독 역시 표정이 좋지 못 했는데,

“지금 문제는 팀 챔피언십인데... 스메들리의 또 다른 레이서도 포디엄 경험이 있고. 흠, 이번 4차전마저 서준하한테 뺏긴다면, 팀 챔피언십도 간당간당할지 모릅니다.”

3번의 레이스에서 꾸준히 2,3위 자리를 차지한 제프와 페트로. 덕분에 스메들리 팀과 팀 챔피언 자리를 두고 비슷한 점수를 획득했지만, 서준하의 독주를 막지 못 한다면 드라이버 챔피언십은 물론, 팀 챔피언십도 놓치게 되는 굴욕적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번 4차전만큼은 이전과는 다른 수를 써야겠지요.”

“다른 수라면...?”

조르조의 말에 부감독이 귀를 기울이는데,

똑똑.

노크와 함께 오피스로 등장한 두 사람. 마침 조르조가 잘 왔다며 기분 좋게 그들을 반겼다.

“마침 잘 왔군요. 안 그래도 이번 레이스 전략에 관해 얘길 나누려고 불렀어요.”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는 제프와 페트로. 서킷 위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여전히 가깝지 않은 사이였다.

“이번에도 레드불링 연습 주행 기록은 제프 선수가 좋더군요. 작년 참가자들과 비교했을 때도 훨씬 빠르고요.”

감독의 칭찬에도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제프. 공식 연습 주행에서 페트로보다 월등한 기록을 뽑아냈다.

“크흠, 이번 4차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크게 말 안해도 두 선수 모두 잘 알 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조르조. 찻잔을 내려놓으며 페트로를 향해 고갤 드는데,

“페트로, 이번 퀄리파잉에선 서준하를 전담 마크해주게.”

지금 페트로의 실력이라면, 초반 괜찮은 랩타임을 뽑아낼 수 있을터. 이후 서준하의 어택 시 압박을 가할 수만 있다면, 베스트 기록을 낮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팀 우승이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조르조가 본격적인 전략을 세우는데,

“특히, 턴7. 린트 코너를 적극적으로 푸시하세요.”

고개를 떨군 페트로 피터발디. 내키지 않는 오더였지만, 페라리 관계자들은 물론 자신의 아버지 역시 팀 워크의 중요성을 누누이 말해왔다.

“제프, 페트로. 우리 모두 지난 3차전에서의 굴욕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경쟁자들을 백마커로 만들어버린 빗속 레이스. 조르조가 두 선수를 향해 단호하게 말하는데,

“서준하, 이번엔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감독의 말과 동시에 프리마 팀 집무실로 불타오르는 의지와 함께 엄청난 긴장감이 맴돌았다.

***

“현재 14시 5분. 습도는 50%정도에 기온은 25, 26도를 왔다갔다합니다. 노면 온도는 꽤 올라갈 것으로 보이죠?”

4차전 퀄리파잉 시작 전, 레드불링이 위치한 스필베르크(Spielberg)는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중계진이 기상과 서킷의 컨디션을 체크하는데,

“그렇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상태에선 노면의 온도는 40도 가까이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데요.”

7월 초 오스트리아의 어느 오후. 이제 슬슬 콕핏의 내부 온도가 부담스러워질 때였다.

“현재 컨디션이라면 타이어 온도도 금방 올라갈 거고요. 아마 워밍업도 한 바퀴에서 한 바퀴 반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4차전부터는 초반 어택을 시도하는 참가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 야외 스포츠 종목에 영향을 주는 날씨. 특히나 모터레이싱은 이에 민감하다. 차량의 세팅부터 레이스에 나서는 전략까지. 날씨에 따라 모든 게 맞춰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4R. Qualifying Race]

[PIT LANE OPEN]

[29분 : 59초]

중계진 모두 초반부터 좋은 기록이 나올 것으로 예측하는 가운데, 피트레인 출구가 개방됐다. 곧바로 출구 지점으로 향한 중계 카메라.

“퀄리파잉 시작합니다! 오픈과 동시에 뛰어나오는 루나 레이싱의 포뮬러카!”

이번 대회 단 한차례도 포디엄에 오르지 못한 우승 후보 팀 루나 레이싱. 차량의 검정색 바디 위로 플래시가 집중되자, 황금빛이 반사됐다.

“이번 4차전 컨퍼런스에서 참가 팀 레이서 모두 눈빛이 달라진 듯했는데요. 오늘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그렇죠. 아무래도 1,2,3차전을 스메들리와 프리마 팀이 장악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시리즈 중간 지점이라고 볼 수 있는 4차전, 오늘 좋은 결과를 낸다면 대회 분위기를 바꿔 볼 수도 있으니까요.”

우승 후보 레이서들이 재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도 모터레이싱은 변수가 많다. 특히나 예측 불가능한 차량 문제는 상승세를 탄 팀들의 흐름을 끊어줄지도 모른다.

루나 팀을 시작으로 속속들이 빠져나가는 선수들. 모두가 시리즈 챔피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덤벼드는 가운데,

“자, 그 다음으로 스메들리 팀의 서준하! 서준하가 등장합니다!”

“와하하! 3차전 이후로 팬이 더 많아진 듯한 서준하 선수입니다. 지금 여기저기 그의 이름을 환호하는 갤러리들이 많이 보여요!”

서준하도 놀랐다. 출발과 동시에 쏟아지는 환호성에 롭의 무전이 잘 들리지 않았을 정도.

“관심 집중 서준하! 그가 서킷에 오릅니다!”

사람들은 진짜를 원하고 진짜에 열광한다. 이번 시즌 서준하가 보여준 레이싱에 감동한 팬들. 다시 한 번 그 감격을 맛보기 위해 레드불링을 찾았다.

***

“페트로, 제이크, 제프 세 우승 후보 모두 차례로 어택에 들어갔습니다!”

퍼포먼스 엔지니어들과 함께 중계 화면을 바라보는 윌리엄 스메들리. 레이스 엔지니어 아론이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예상대로구만. 방금 말한 세 선수 랩타임이 떨어지면 또 알려주게, 아론.”

서킷 환경에 맞게 SS 타이어로 강수를 띄운 경쟁자들. 다행히 아직 눈에 띄게 놀라운 기록을 낸 참가자는 없었다. 서준하는 계획대로 서킷을 탐사 중. 윌리엄이 어택 타임을 예상하는데,

“민수 말로는 턴3에서 리어가 불안정해진답니다. 차량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잠시 템포를 늦추라고 할까요?”

서준하와 반대로 이번에는 초반 어택에 도전한 강민수. 아론의 보고에 곁에 있던 퍼포먼스 엔지니어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봤다.

“준하도 지난번 연습 주행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어. 3턴은 가끔 뒷바람이 거세게 불 때가 있는 것 같아.”

서킷의 특이점은 이미 헨리와 서준하가 파악해둔 상태. 아론에게 설명을 이어가는 헨리를 보고 윌리엄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준하한테도 유의하라고 전해줘. 그리고 스메들리 레이서 둘 다 레이싱 카의 트랙션을 잘 유지하는데 집중하라고 전달하게. 차가 많이 흔들리는구만.”

기다란 직선 구간이 3개나 있는 레드불링. 코너 탈출 시 무엇보다 레이싱 카의 트랙션(구동력)을 잘 유지하고, 직선 구간에서 높은 스피드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윌리엄이 다시 한번 레이서들에게 중요 사항을 집어주는데,

“캡틴, 초반 어택 주자들 이번 랩에서 전부 랩타임이 떨어졌습니다!”

서준하의 어택 타이밍을 잡던 윌리엄. 전광판의 기록을 살피며 서킷의 대략적인 상황을 체크했다.

“슬슬 때가 왔구만. 현재 트래픽은?”

레이스 엔지니어가 서킷의 모든 상황을 알 수는 없다. 팀 피트에서도 사고 구간이나 경쟁자들의 상황을 파악해 레이서에게 전해줘야한다.

“리타이어 차량 없음. 사고 구간 클리어. 초반 주자들 대부분 쿨링 중입니다!”

“오케이, 지금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구만. 서준하 출발 시키게.”

어택 지시가 내려짐과 동시에 스피드를 올리는 서준하. 팀원 간 척척 호흡이 맞아 떨어지는데,

“어! 페트로 피터발디. 프리마 차량 한 대가 따라붙습니다!”

스타트 라인에서 서행 중이던 페트로가 서준하의 뒤를 추격했다.

“허허, 준하 말이 딱 맞는 구만. 때가 왔어.”

당황한 아론의 표정과 달리 그 모습을 보던 윌리엄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

“스타트 라인부터 2턴 탈출까지 브레이킹 포인트 말고는 전부 속도가 빨랐어요!”

초반 기세가 죽자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중반 어택러들. 그중에서도 모두의 관심은 서준하에게 향했다.

“자, 그리고 다시 한 번 어택을 시도하는 페트로 선수! 프리마의 빨간 차도 어택에 들어갑니다!”

“재어택 타이밍이 조금 빠른 듯한 페트로인데요. 아무튼 계속 보시죠!”

서준하를 뒤따르는 페트로 피터발디. 해설진 한 명이 그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달라요, 확실히 서준하는 코너에서 빠져나오는 스피드가 다릅니다. 어택 시작하자마자 랩타임이 기대되는데요!”

해당 구간 정확한 속도는 알 수 없었지만, 육안으로만 봐도 빠른 서준하. 시작부터 관심을 끌어모았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잉.

6턴을 빠져나온 서준하. 윙미러로 빨간색 포뮬러카를 확인했다. 페트로가 기를 쓰고 자신을 쫓아오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벌써 쿨링이 끝났을리 없지.’

예상대로다. F3와 같이 장기간 치러지는 시리즈에서 자신에게 집중되는 전략. 중반에는 꼭 이런 전략이 서준하를 향했다.

“7턴으로 접어드는 서준하! 그 뒤로 페트로가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습니다!”

이번 생의 유로컵에서 그랬고, 전생의 여러 하위 리그에서도 경험했다. 처음엔 많이 당했지만 이젠 그 대응법을 안다.

“자, 아까도 사고가 있었던 린트 코너인데요!”

“그렇죠, 블라인드 코너! 클리핑 포인트가 잘 안 보일 겁니다. 조심해야죠!”

그건 바로 뒤차의 압박에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 페이스를 유지하며 온전히 자신만의 주행을 이어가는 것이 포인트다. 서준하가 속도를 줄일 것으로 예상하는데,

“오, 오! 서준하! 너무 빠르게 들어가는데요오오오오?!”

하지만 예상과 다른 서준하의 진입 속도에 중계진 모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봐.’

서준하가 린트 코너의 가장자리 연석을 바라보며 과감한 코너링에 들어갔다.

< 블라인드 코너, 클리핑 포인트가 잘 안 보일 겁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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