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83화 (83/200)

< 단순히 F1에 가기 위한 성과만이 전부가 아닌 거 같더라고 >

“원더풀! 원더풀! 아주 잘 봤습니다!”

3차전 레이스를 마치고, 독일의 어느 고급 한정식 집으로 자리를 옮긴 코리안 레이서들. 필립 황의 옆으로 낯선 일본인 남성이 연신 박수를 쳐댔다.

“이쪽은 카즈야마 노지리 씨, 일본에서 오신 분이야. 다들 인사드려요.”

강민수를 시작으로 한서윤과 악수를 나누기 시작하는 카즈야.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표정으로 서준하를 바라봤다.

“도코모 레이싱의 카즈야마 노지리입니다. 정말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서준하 선수!”

감격에 찬 목소리로 손을 맞잡는 카즈야. 덜덜 떨리는 손에서 그 진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과거 포뮬러 닛폰 리그였던 일본의 슈퍼 포뮬러(Super Formula) 알죠? 카즈야마 씨는 도코모 팀의 스카웃 책임자셔. 우리 선수들이 그렇게 보고 싶다고 하셔서 내가 모시고 왔어요.”

필립 황의 일본 사업에서 연이 닿은 도코모 팀 관계자. 오랜만에 선수들을 만나는 시간에 겸사겸사 카즈야마도 함께 자리했다.

[Super Formula(과거 포뮬러 닛폰)]

현재 서준하가 뛰는 F3보다 한 단계 높은 리그로 평가 받는 슈퍼 포뮬러. 오랜 기간 일본 드라이버들이 F1 진출을 위해 거치는 등용문으로, 이곳에서 커리어를 쌓고 F1으로 진출하는 유럽 드라이버도 있다. 랄츠 슈마허나 페드로 드 라 로사도 그들 중 하나.

“슈퍼 포뮬러의 도, 도코모 레이싱...?!”

슈퍼 포뮬러 시리즈 최강팀의 이름을 듣고 놀라는 강민수. 슈퍼 포뮬러는 일본 내 최고 클래스 포뮬러 대회. 그중에서도 도코모 팀은 도요타와 렉서스가 스폰서로 있는 최정상급 팀이다.

“도코모 팀이면 F1 레이서 나카지마 선수가 나왔던 일본 팀이잖아요. 근데 스카웃 책임자시라구요...? 대박!”

낯선 일본인의 소개에 놀란 건 강민수뿐만이 아닌 듯. 한서윤 역시 눈이 번뜩였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자, 카즈야마가 본격적으로 얘길 꺼냈다.

“매해 저희 팀은 세계 모든 포뮬러 유망주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죠. 그중에서도 이번 시리즈 두 선수의 활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시아 출신 선수들이라 더욱 관심이 높기도 했는데요...”

이어서 팀 소개를 이어가는 카즈야마. 간단히 소개만 하고 끝날 줄 알았던 그의 말이 길어졌다.

“...사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도코모 팀을 이끄시는 키요시 회장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섭니다...!”

속내를 터놓는 카즈야마.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하며 서준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준하 선수!”

의미심장한 그의 목소리. 처음과 달리 눈빛마저 강렬해졌는데,

“이번 시즌을 마치고, 저희 팀으로 와주십쇼! 입단 테스트없이 차량 및 참가 비용, 숙소, 생활비 등등 이 모든 것을 도코모 팀이 지원하겠습니다!”

1974년부터 많은 레이서들을 F1 무대로 올려보낸 키요시 오치와 회장. F3 유럽 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서준하라는 신성을 잡기 위해 모든 걸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에?! 모든 걸요?!”

간단히 인사만 나누며 가볍게 식사를 나눌 줄 알았다. 갑작스런 제안에 서준하는 물론 근처의 모든 이들이 당황하고 말았다.

‘흠, 슈퍼 포뮬러면 일본 무대잖아...’

슈퍼 포뮬러. F2급에 비등한 수준급 리그다. 하지만 모든 레이스의 무대가 일본에서 치러진다. 어쩌면 전생부터 유럽 서킷을 활보한 서준하에겐 다소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게다가 당장 오라는 제안이 아니었다. 혹시나 남은 F3 레이스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생각해봐도 괜찮다.

‘슬슬 시작되는 건가?’

경험 상 이런 제안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다. 아직 F3 시리즈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서준하의 행보는 시즌을 보내며 여유롭게 다음 무대를 골라도 될 수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왕이면, 한 방에 가는게 낫지. F2나 슈퍼 포뮬러를 또 하는 건...’

올해 남은 시즌을 잘 소화한다면, 마카오에 갈 수 있다. 거긴 카즈야마 같은 아저씨들이 천지다. 그것도 F1 팀에서 나온 사람들로 말이다.

“제안 감사합니다, 카즈야마 씨. 한창 시즌이 진행 중인터라 F3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차후에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겠습니까?”

3차전 우승과 더불어 상위 팀 관계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한 서준하. 시즌 우승과 더불어 최고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부와아아아아아앙.

퓌이이이이이이잉.

쓰에에에엥.

스티리아 산맥(Styrian Mountains)에 위치한 레드불링(Red Bull Ring) 서킷.

“실제로 보니까 속도가 엄청나네!”

스탠드에 앉아 F1 카의 연습 주행을 지켜보는 팀원들. 홈스트레치에서 최고속에 오른 F1 카를 보고 강민수가 말을 꺼냈다.

“아니, 민수 선수. 처음 영국에서 나올 때랑 완전 다르네. 그땐 자신감이 넘쳤잖아. 근데 지금은 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여...”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1,2,3차전 모두 저조한 성적. 게다가 팀 메이트와 비교할수록 자신의 위치는 한없이 낮아보였다.

“이번에 느꼈어요. F1 레이서가 되고 싶은 것과 되는 건 천지 차이라는 걸... 하, 서킷 난이도도 어마어마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경쟁자들도 실력이 엄청나네요... 지금 또 눈앞에서 F1카를 보니까 진짜 내가 저런 걸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한서윤의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강민수. TV 속 꿈 꿔왔던 F1 레이서를 향한 여정. 그 험난한 길 앞에 큰 부담을 느낀 듯한데,

“제가 지금 이십대 중반인데, 정말 운 좋게 F1에 가게 된다면, 아마 서른이 넘겠죠? 아, 이거 갑자기 앞길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참...”

F1 레이서가 되겠다는 건 막연한 꿈일지도 모른다. 시즌 초반부터 남 모르게 힘들어 했던 강민수. 결국 한서윤 앞에서 속사정을 털어놨다.

“과거의 기록이야 아무렴 어때. 민수 선수가 관심 가져야 할 건 현재뿐인 거지, 안 그래요?”

재능만으로는 영광을 거머쥘 수 없는 게 모터 레이싱의 현실. 사실 이제 막 도전 길에 오른 선수들의 이런 반응은 자연스러웠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민수 선수가 지금 이런 기회를 잡은 것도 엄청 대단한 거니까.”

아직 레이스가 많이 남은 그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던 한서윤. 이럴 때일수록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며 조언했다.

“하... 제가 스메들리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건 준하에요, 준하... 어떻게 매번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건지.”

서준하 역시 이번 시즌이 데뷔전이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봐왔던 그 어느 레이서들보다 나이 어린 루키였다.

“맞아요. 준하 선수가 젊은 선수답지 않게 강한 편이지. 근데 준하는 그냥 예외라고 생각해요. 쟤는 진짜 특이한 애니까.”

“특이하다면...?”

저 멀리 그랜드 스탠드 주위로 롭과 함께 선 서준하가 보였다. 서킷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즐거워 하는 두 사람. 그 모습에 한서윤이 자신의 과거 얘길 꺼냈다.

“내가 준하 선수랑 영국에 와서 처음 포뮬러 대회에 나가기 전이었어요. 대회 당일에 긴장했을까봐 말 좀 붙이려고 대기실로 찾아간 적이 있었지. 근데 내 예상하고 다르게, 준하 얼굴이 싱글벙글인 거야. 그래서 내가 ‘준하 선수 안 떨려요?’하고 물었지. 그랬더니 했던 말이 뭔 줄 알아요?”

서준하를 한 번 바라본 한서윤. 강민수가 궁금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자기는 레이싱이 즐거워서 참을 수가 없대. 빨리 레이스에 나가서 자기가 얼마나 빠른지, 오늘은 뭘 보여줄 수 있을지, 그게 궁금해 죽겠다는 거야...”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리는 강민수.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한편으론 서준하답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대회도 그랬어. 내가 볼 땐 준하 선수는 애초에 이 길을 걷는 태도가 다른 거 같아. 단순히 F1에 가기 위한 성과만이 전부가 아닌 거 같더라고.”

“전부가 아니라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서는 서준하. 강민수가 그를 보며 머릴 긁적이는데,

“준하는 지금 이 과정 자체를, 레이스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즐기는 자를 따라올 수 없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적어도 서준하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즐긴다라...”

한서윤의 말을 곱씹어 보며, 고갤 든 강민수. 그의 앞으로 밝게 웃는 서준하가 보였다.

***

“폴포지션에 로이스 해밀턴, 그 옆으로 팀 메이트 닉 로즈버그. 3위 페라리의 저스틴 페텔...”

2015 F1 오스트리아 GP가 열리는 6월 말. 연습 주행에 F1 본선 레이스 관람에 나섰다.

“...토로 로쏘의 차가 포인트권에서 스타트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군요. 이번 대회 초신성 7위 토로 로쏘의 막누스 페르스타펜!”

캐스터의 소개와 함께 레드불링 서킷에 울려퍼지는 F1 신인 레이서 막누스의 이름. 그리고 잠시 후,

“신호 꺼졌습니다!!!”

스메들리 레이서 팀이 자리한 스타트 라인 부근 퍼스트 스텐드. 출발과 동시에 포뮬러카들이 쏟아내는 굉음이 지붕을 강타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와, 진짜 빠르다!”

F3 차량보다 한 바퀴에 20초 가까이 빠른 F1 차. 엄청난 스피드로 순식간에 스메들리 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 저기!”

“간다! 토로 로쏘가 올라간다!”

모터스포츠의 서킷은 거대하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쌍안경을 이용해 그랑프리를 관람하지만, 이곳 레드불링에서는 육안으로도 서킷 곳곳이 보였다.

“우와아아아아아!”

“막누스 페르스타펜! 보타스의 안쪽을 파고듭니다! 놀라운 담력입니다!”

막누스 페르스타펜. 2015년 올해 17세의 나이로 F1에 데뷔한 어린 레이서. 게다가 1년 후 포뮬러 원 최연소 그랑프리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따내며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줄 실력자.

“막누스 선수 확실히 공격적이야. 진짜 준하랑 비슷한 스타일 같은데?”

“막누스가 순식간에 5위에 올라갔어. 오늘 무슨 기록 세우는 거 아니야?!”

시작부터 경쟁자들의 틈을 과감하게 돌파하는 막누스. 초반 공격적인 주행으로 갤러리의 관심을 사로잡는데,

‘막누스 페르스타펜...’

서준하가 곧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강한 상대. 오스트리아 데뷔 GP를 치루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자, 전생의 기억과 함께 서준하의 승부욕이 끌어올랐다.

“막누스! 마싸와 페텔이 피트 스탑에 들어간 사이, 이번 시즌 처음으로 순위권에 올라섭니다!!!”

데뷔 시즌 오스트리아 GP에서 돌풍을 일으킨 막누스 페르스타펜. 레드불 링이 더욱 뜨거워지는데,

“준하 선수도 막누스처럼 여기서 기록을 만들 거지? 4연속 우승말이야.”

서준하가 F1 레이스를 관람 중인 레드불링. F3 역사상 최초로 4연속 우승 도전을 앞둔 서준하의 4차전 무대였다.

‘4연속? 이번 생은 F3 전승 우승 챔피언이야.’

F3 탄생 50년 이후 그 누구도 이뤄내지 못 했던 전승 우승. 서준하가 레드불링을 바라보며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막누스 페르스타펜, 너도 곧 보게 될 거다.’

다시 한 번 스메들리 팀 앞을 지나가는 막누스의 F1카. 서준하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 단순히 F1에 가기 위한 성과만이 전부가 아닌 거 같더라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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