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82화 (82/200)

< 저러면 무조건 리어 타이어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갑니다 >

“5턴 대형 헤어핀 진입로에 다가서는 스메들리의 포뮬러카들!”

선두 차량이 6위 경쟁자의 뒤에 붙은 상황.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중계진이 호들갑을 떠는데,

“다투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아요.”

“자, 강민수가 바깥쪽으로 방향을 바꾸죠!”

헤어핀 진입 직전 좌측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강민수.

“팀 메이트간 호흡이 척척 맞는 것 같습니다! 강민수가 내준 자릴 치고 나오는 서준하!”

강민수가 자릴 내준 건 피트의 지시가 아니었다. 서준하와 경합한다고 해서 득이 될 건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은 선두 자릴 두고 겨루는 쟁탈전이 아니었으니까.

“레이스에서 이렇게 양보하는 경우만 있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팀 메이트는 거의 라이벌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자릴 내주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아무튼 강민수의 선택으로 스메들리 팀이 안심하는군요!”

팀 레이서간 경쟁으로 동기를 얻고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팀의 입장에선 그런 경쟁이 부담스러울 때가 더 많다. 강민수의 양보로 서준하가 무리 없이 스피드를 살려내는데,

“서준하! 곧바로 페트로의 뒤를 쫓습니다!”

“강민수 덕분이라고 볼 수 있죠. 또 다시 서준하에게 추월 기회가 왔어요!”

“우리의 서준하! 오버테이크 쇼를 보여주려는 건가요?! 선두 자리에도 만족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서준하가 움직일수록 중계진은 더욱 기대감에 찰 수밖에 없었다. 빗길에서의 추월 시도는 평소보다 부담이 배로 드는 일. 하지만 서준하는 또 다시 백마커 뒤에 바짝 붙었다.

“서준하! 페트로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갑니다!”

혼자만 다른 엔진을 장착한 게 아니었다. 서준하가 직선 주로에서 앞차 뒤에 붙을 수 있는 건, 매코너에서 남다른 코너링에 성공했기 때문.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훼엥.

앞차와 부딪히기 전 절묘하게 방향을 바꿔 앞으로 튀어나오는 서준하. 다른 레이서들에겐 쉽지 않은 방향 전환이지만, 레인 마스터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와아아아아! 또 성공!”

평소보다 떨어진 빗속 주행의 평균 속도. 오늘 같은 환경에서 가장 많은 추월 시도를 한 선수답게 타이밍이 쉽게 눈에 보였다.

“서준하! 강민수에 이어 페트로까지 제치며, 5위에 랭크 아, 아니죠... 하하.”

“저도 순간 착각할 뻔했네요. 서준하 계속 1위에 랭크하며 4위 뒤를 달립니다!”

중계진도 헷갈리게 하는 레이스 순위. 백마커들을 틈을 비집고 다니는 선두 차의 모습은 중계진은 물론 갤러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이제 그 앞으로 또 다른 포뮬러카가 보이죠?”

“자, 오늘 레이스의 주인공 서준하! 이번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중계진 모두 은근히 또 한 번의 추월을 기대하는 가운데, 이번엔 서준하가 3위 마르셀의 뒤를 추격했다.

***

“감독님, 마르셀 뒤에 한 대가 따라붙었습니다!”

모터파크의 피트 월. 상황판을 보던 레이스 엔지니어가 니클라스 감독을 향해 소리쳤다.

“페트로는 랩타임이 뒤쳐졌잖아? 벌써 따라왔다고?!”

23, 24랩에서 좋은 기록을 내며 페트로를 앞질렀던 마르셀. 격차를 벌리며 안심했던 상황에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렸다.

“페, 페트로가 아니고... 서준하입니다!”

“서준하?!”

분명 선두 차량이었다. 2위를 달리는 자신의 팀 레이서 파비앙의 앞에서 사라졌던 서준하. 어느새 4위 뒤에 다가섰다.

“오늘 레이스에서 선두 자릴 노리겠다는 건 미친 짓이었구만...”

2위 파비앙의 주행이 안정적이었고, 니클라스는 내심 시리즈 첫 우승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마르셀한테 선두 차량 피하라고 전하게. 어차피 그 녀석은 우리 경쟁자가 아니야.”

“니클라스... 이렇게 쉽게 물러나면 안 됩니다. 갈 때 가더라도 조금이라도 녀석의 독주를 늦춰봐야죠. 파비앙한테도 선두 자리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빗속의 레이스. 선두가 갑작스럽게 미끄러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감독의 말을 듣던 부감독이 오더를 받아들이지 못 하는데,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네...”

마르셀과 거리를 좁혀오는 선두 차량을 유심히 살피는 니클라스 감독. 참가 선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코너링 클래스는 서준하라는 레이서의 위치가 어디인지 설명해주고 있었다.

“우리 목표는 지금 순위를 지키는 거야. 우선 선두 차를 먼저 보내!”

저런 실력자를 두고 1위를 하겠다는 건 욕심이다. 욕심을 버리면 편하다. 치욕스러울 게 없다. 니클라스에게도 다 생각이 있었으니까.

“우린 이렇게 보내주지만, 제프 베시는 다를지도 모르지.”

감독의 눈엔 마르셀 앞의 제프의 빨간 포뮬러카가 보였다. 라이벌이라면 분명 굴욕적으로 다가올 상황. 제프가 가만 있을리 없어 보였다.

“마르셀, 선두 차량을 곧바로 보내줄 것.”

-copy.

독단적으로 행동하길 꺼리는 마르셀 하페르. 팀의 지시에 곧바로 수긍하고는 청색기가 휘날리기도 전에 진로를 바꿨다.

훼에에엥.

[Smedley Formula British]

마치 기다렸단 듯이 그의 앞으로 등장한 선두 차량. 마르셀의 눈엔 레이스 시작보다 서준하의 차가 거대하고 날카로워보였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마지막 11턴을 빠져나와 기다란 직선 주로에 들어선 마르셀. 전방으로 제프의 곁으로 다가서는 선두 차량이 보였다.

“마르셀, 우리도 따라붙는다. 스메들리 차가 만들어주는 기회를 노려라.”

선두 차를 그냥 보내준 선물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예감과 함께 마르셀이 재빠르게 탈출 속도를 높였다.

***

-제프, 진로 변경! 앞선 코너 탈출 이후 곧바로 우측으로 나오길

보다 급진적인 코너링에 성공하며 6턴을 빠져나온 제프. 무전 내용을 들으며 7턴에 진입했다.

“왜 빠지라는 거야, 물 웅덩이?”

레이스 내내 내리는 비. 서킷 곧곧 물 웅덩이가 가득 찼다. 이전 바퀴에서 유독 7턴의 노면이 더욱 깊게 패인 걸 느꼈던 제프. 진로 변경을 지시하는 엔지니어에게 되물었다.

-그, 그것도 그렇고. 선두. 선두 차가 붙는다!

엔지니어의 말과 동시에 곧바로 윙미러를 흘겨본 제프.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파란 포뮬러가 6턴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서준하...!”

6턴을 나오는 코스 자체도 특이했지만, 무엇보다 빨랐다. 순간 엄청난 굴욕감에 휩싸인 제프. 기다란 직선 주로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선두 차량을 뒤에서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물러나자, 제프.

혼란스러웠다. 엔지니어의 무전에 반대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다. 7턴 코너링에 들어가는 제프. 스티어링을 더 꺾어 탈출 지점을 좀 더 우측으로 잡았다. 그리고,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쎼에에에엥.

방향을 바꿈과 동시에 옆으로 지나가는 스메들리 팀의 포뮬러카. 자신과 확연히 차이나는 탈출 속도가 제프의 눈을 사로잡았다.

“...”

차에 탄 레이서의 모습을 바라보는 제프. 이곳은 독일이었고, 어릴 적 아버지와 즐겨 찾던 서킷이었다. 게다가 연습 주행에서 게으름 한 번 피우지 않았고, 대회 마다 우승을 차지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

머뭇거릴 새도 없이 또 다른 경쟁자가 제프를 위협했다.

“이런 XX!”

제프가 진로를 변경하며 속도가 떨어진 사이 그의 뒤에 따라붙은 마르셀 하페르.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슬립스트림에 들어갔던 마르셀이 제프의 우측으로 튀어나오는데,

쎄에에에에엥.

순식간에 추월을 당한 제프. 이 모든 게 코리안 레이서 때문이었다.

“...!!!”

하지만 자신의 앞에 마르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멀리 백 스트레치를 달리는 파란 포뮬러카만 넋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

“코너에 들어가서 브레이크를 걸면 어떻게든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거의 모든 사고는 감속할 때 생긴다. 그 상황이 젖은 노면이라면, 확률은 배가 된다. 서준하의 브레이크 조작을 지적하는 해설자.

“저러면 무조건 리어 타이어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갑니다. 그런데요... 서준하 선수는 코너에 진입한 다음 문제 없이 곧바로 방향을 바로 잡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빗길에서 고속으로 코너에 진입하는 건 성공 확률도 낮고,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선두 레이서는 그걸 연속해서 성공하고 있었다.

“브레이크 조작 능력도 엄청나지만, 제가 볼 땐 이미 코너 입구에서부터 미리 반대 조작을 할 준비를 마치고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반대 조작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미리 차의 방향을 살짝 바꿔 놓는 겁니다. 근데 그런 테크닉은 다가올 코너들의 각도, 거리, CP 등을 미리 계산해놓고 있다는 건데...”

서킷 위로 쏟아지는 비를 보며 말을 잇지 못하는 해설자.

“아, 말이 안 됩니다... 지금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는데, 선수들 시야는 오죽하겠습니까? 근데 이런 상황에서 저런 테크닉을 쓴다는 겁니다...!!!”

신속하게 조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코스에서 언제나 사전대비를 하는 서준하.

“다른 선수들은 엄두도 못 내는 테크닉을 서준하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 서준하의 날인 듯합니다...!”

웨트 컨디션에서 극강의 드라이빙을 선보이는데,

“서준하가 빠른 이유가 있었군요. 자, 그리고...”

중계 화면에 잡힌 선두 차량의 잠시 멈칫하는 캐스터.

“와하하하!!! 이제 서준하의 앞으로 파비앙의 포뮬러가 보입니다!”

3차전 파이널 랩. 한 바퀴 뒤진 2위 선수 뒤로 나타난 서준하의 포뮬러카. 레이스의 승부보다 서준하의 드라이빙 테크닉을 감상 중인 중계진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을 수 없습니다! 오늘 독일 선수들이 엄청난 자신감을 보였던 뉘르부르크링이었는데요!”

세 개의 코너를 지나오며 점점 줄어드는 2위 차와의 거리.

“서준하가 파비앙의 슬립스트림에 들어갑니다!”

헤어핀 탈출과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빠른 속도로 앞차와 가까워지는 서준하.

“파비앙! 잠시 주춤하지만, 그냥 보내주지 않겠다는 건가요?!”

자신만큼은 이대로 피니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5턴의 인라인으로 진로를 바꾸는 파비앙. 하지만,

쎄엥.

“...!!!”

처음부터 안쪽 코스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앞차의 좌측으로 튀어나온 서준하.

“진입 스피드가 달라요! 아웃 라인 오버 테이크!!!”

“서준하! 파비앙의 바깥쪽으로 치고나옵니다!”

서준하에겐 보다 유리한 아웃 코스. 강력한 횡G를 받으며 코너링을 시작하는데,

“넘었어요! 넘었어요!! 넘었어요!!!”

이어지는 6턴. 좌측으로 꺾이는 코스 진입에서 서준하가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서준하! 참가자 전원을 백마커로 만듭니다!!!”

환호와 함께 쏟아지는 박수. 중계진은 물론 참가 팀 곳곳에서도 박수가 나왔다.

“서준하! 쏟아지는 빗속에서 진짜 레이서가 누군지 증명합니다!”

파비앙을 제치고 마지막 턴에 다다른 서준하. 체커기가 눈앞에 보였다.

“서준하! 3연속 우승을 차지합니다!”

띠링.

“와아아아아아아!!!”

스타트라인으로 휘날리는 태극기. 스메들리 팀 전원이 비를 맞으며 서준하를 반겼다.

“와...! 오늘 레이스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레귤러 레이서들, 아니 베테랑 레이서들 그 이상입니다!”

F1의 내로라하는 레이서들의 빗속 주행보다 더 인상깊었던 경기. 뉘르부르크링에 진짜 레인마스터가 나타났다.

“오늘 이후로 서준하의 숙소 앞으로 스폰서들이 줄을 설 것 같은데요!”

위닝랩을 도는 서준하.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서킷을 찾아준 팬들에게도 손을 흔들어 보였다.

“후... 후...”

위닝 랩을 돌고 검차대로 복귀한 서준하. 환호하는 팀원들 사이로 필립 황을 발견하는데,

“대표님?”

그리고 그 옆으로 자신에게 엄청난 환호와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 저러면 무조건 리어 타이어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갑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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