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레이스는 스메들리 트레인을 보여줄 때야 >
“와, 정말 한국에서 반응이 엄청 뜨거운가봐.”
하루종일 다양한 SNS에서 오르내리는 코리안 레이서들의 이름. 한서윤의 얼굴엔 좀처럼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모터레이싱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중계 방송을 많이 본대. 뭔지 몰라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으니까 관심이 쏠리네.”
4연속 폴포지션을 차지한 서준하. F3 최초 4연속 우승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 팬들의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민수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어. 지난번 다큐멘터리에서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 게 확실히 큰 호감을 산 것 같기도 하고.”
성적 부진과 대회 직전 부담감 그리고 레이서로서 자신의 배경들을 밝혔던 강민수. 4차전 예선에서 보다 좋은 활약을 보이며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번 4차전 레이스에서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달라는 말이 많아. 두 선수 그대로 골인했으면 진짜 소원이 없겠다.”
지난 과거 기록으로 볼 때 레드불링에서 3그리드 이내 레이스를 시작하면 우승 확률은 무려 83%였다. 일반적으로 추월이 어려운 서킷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한서윤은 물론 국내팬 대다수가 1, 2위 자리를 지켜내는 두 선수의 모습을 간절히 바랐다.
“스메들리 듀오가 프론트 로우(그리드의 앞 열)을 차지한 이상, 그 소원 꼭 이뤄질 거야.”
스메들리의 팀 캠프. 본선 레이스 전략 회의를 위해 레이서 팀이 모여들었다. 오피스로 들어온 롭이 웃으며 애길 꺼내는데,
“내가 기가 막힌 전략을 들고 왔지!”
자신감에 찬 얼굴로 레이서들과 한서윤을 바라보는 롭. 그의 말에 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경쟁 팀은 초반에 어떻게든 앞으로 나오려고 할 거야. 아마 대부분이 옵션 타이어를 끼고 나올 게 분명해. 스타트에서 SS나 S타이어 아니면 US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
1,2,3차전 서준하라는 폴시터를 겨뤄본 스메들리의 경쟁 팀들. 레이스가 중후반으로 갈수록 1위 자리를 뺏을 확률이 더욱 떨어진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거다.
“즉, 상대 편은 초반 타이어를 최대한 쓰면서 피트 스탑을 많이 가져가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어.”
4차전 레이스는 총 26바퀴로 다른 라운드보다 더 길다. 초반 승부를 보겠다는 건 최소 피트 스탑을 2번은 하겠다는 얘기. 게다가 예선에서 대부분이 미디움 타이어를 썼으니, 롭의 말대로 다들 옵션 타이어를 두 세트씩 보유했을 거다.
“자, 여기서 질문. 그러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 롭. 고갤 돌려 레이서들을 바라보는데,
“우리도 똑같이 옵션 끼고 나가야 하는 건가?”
“그래, 어차피 초반에 푸쉬가 강하다면, 우리도 맞대응하는 속도가 늦어져서는 안 되지. 준하랑 민수도 소프트 타이어 남았잖아.”
롭의 질문에 강민수와 엔지니어들이 소프트 타이어 쪽으로 의견을 모으며 롭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니, 우린 미디움 타이어로 시작한다. 원스탑 트레인(One Stop Train) 전략으로 갈거야.”
“원스탑은 피트 스탑을 한 번만 한다는 거고, 트레인? 이건 뭐지?”
롭의 말에 아리송한 강민수. 옆에선 그 뜻을 알아들은 서준하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 레이스는 스메들리 트레인을 보여줄 때야.”
초반 디펜스에 신경 써야하는 스메들리 팀. 롭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오늘 날씨 어제 예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온은 오히려 살짝 올라간 듯하고요.”
오스트리아 스티리아 산맥(Styrian Mountains)으로 쏟아지는 햇살. 오늘도 레이싱카의 콕핏은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오스트리아에 계시는 한국 교민들이 이곳 스피엘버그까지 찾아주셨다고 하는데요. 오늘 관중석에 유난히 코리아의 국기가 많이 휘날리는 모습이군요.”
중계 화면에 잡힌 한국인 관람객들. 카메라에 잡힌 사람들이 손으로 하트 모양을 표시하며 한국인 레이서들을 응원했다.
“서준하 선수의 팬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국민들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많은 포뮬러 팬분들이 이번 대회 최초로 4연속 우승 달성이라는 놀라운 기록이 탄생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갤러리 이곳저곳을 비추던 카메라. 곧이어 포메이션랩을 달리는 선수들에게로 화면이 넘어갔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오늘 우승 후보 대부분이 소프트 타이어를 끼고 나왔습니다.”
“맞습니다. 지금 3,4위에 랭크한 제프와 제이크 선수는 각각 SS와 US 타이어입니다.”
“지난 경기를 되돌아봤을 때 초반에 서준하를 잡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을 거예요. 오늘 스타트부터 엄청난 접전이 예상되는군요.”
하나둘 그리드에 정지한 레이싱카들. 최전방에는 스메들리 팀의 파란색 포뮬러카 두 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 강민수와 서준하가 좋은 결과를 내준다면, 스메들리 팀이 팀 챔피언 십에서 선두로 올라갈 것 같습니다. 스메들리 팀에겐 굉장히 중요한 날이군요.”
“반대로 프리마와 콜린은 이번 레이스 어떻게든 잡아내야 합니다. 아직 단 한번도 우승 레이서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렇습니다. 팀의 입장으로선 굉장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시즌은 오랫동안 중계했던 저희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고, 아마 다른 참가 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프리마 팀과 팀 챔피언십을 타투는 스메들리. 예선 1,2위를 차지하면서 경쟁 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곧이어 스타트 신호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2015 F3 유로피언 챔피언십, 4차전 레이스 시작합니다!”
시작과 동시에 스모크를 일으키며 튀어나가는 포뮬러카들. 굉음과 함께 갤러리의 환호가 스타트라인을 가득 메웠다.
“깔끔한 스타트! 선수들 순위 변동없이 1턴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드 상에서 서준하의 우측에 있던 강민수. 시작과 동시에 좌측으로 진로를 변경하며 앞으로 나왔다.
“방향을 바꿔 제프의 앞을 막는 강민수! 부딪힐 듯 말 듯! 제프가 주춤합니다!”
“자, 그리고 제이크가 치고 나오죠!”
3위 제프의 속력이 떨어지자. 기회를 포착한 제이크. 곧바로 1턴의 우측 인코스로 치고 나오는데,
“아! 서준하! 이번에는 서준하가 우측 공간을 막습니다!”
1턴 코너링을 시작하는 서준하. 강민수가 이동하며 생긴 공간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주춤한 제이크가 뒤따라오던 제프와 나란히 서는 상황이 발생했다.
“프론트 로우의 코리안 듀오. 방어 라인이 아주 견고합니다!”
“두 선수 모두 예측 능력이 아주 좋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보여줬어요.”
뒤차의 거센 공격에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두 선수. 스메들리 팀의 척척 떨어지는 호흡과 철벽방어에 중계진이 환호했다.
“스메들리를 뚫어야할 판에 오히려 불은 뒤에서 나는군요!”
“속도가 떨어진 제이크! 이번엔 제프와 배틀을 벌입니다!”
오르막을 오르는 선수들. 다음 코너에서 유리한 자리를 점하기 위해 3,4위의 배틀이 시작됐다.
“아, 이렇게 되면 스메들리 팀은 더 멀리 도망가게 되죠!”
계속되는 제프와 제이크의 배틀. 덕분에 스메들리 듀오와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
“제프, 저 자식 또 붙었어!”
시작 이후 네 바퀴나 돈 제이크의 차량. 선두를 노려보는 추월 시도는커녕 아직 4위 제프조차 따돌리지 못했다.
“선두와 벌써 6초 차이야. 지금 어떻게든 격차를 좁혀놔야 하는데...”
굳은 표정의 콜린 팀 레이스 엔지니어들. 선두가 점점 멀어지자 제이크와 톰에게 과감한 레이싱을 주문했다.
“이제 슬슬 타이어 피크 타임이 다가오고 있어. 이번 랩에서 반드시에 제쳐야 한다고!”
5랩을 시작하는 제이크. US 타이어의 피크 타임이 가까워지고,
“...!!!”
조금씩 제프와 거리가 멀어지는 황금색 포뮬러카.
“제이크가 빨라! 격차가 벌어진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제이크의 주행감각은 최상이었고, 제프를 따돌리며 기세가 올랐다. 전방으로 보이는 스메들리 포뮬러카. 제이크가 연속해서 과감한 코너링에 성공했다.
-됐어! 빨라진다! 이대로 간다, 제이크!
강민수보다 조금 더 앞서 7턴에 들어간 선두 차량. 2위 차량의 인코스를 노려본 제이크가 진입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여기서 반드시 제친다...!!!”
강민수의 리어 쪽으로 바짝 붙은 제이크. 이어지는 코너의 인라인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앞차를 바깥으로 밀어내기로 마음 먹었다.
부우우우우웅.
위이이잉.
강민수의 예상보다 빠르게 한 템포 일찍 7턴에 진입한 제이크. 그대로 안쪽으로 파고드는데,
-됐어! 그대로 들어가 제이크!
급회전 린트 코너. 제이크의 눈에 빈공간이 보였다. 그런데,
“...!!!”
그의 앞으로 나타난 또 다른 파란색 포뮬러카. 7턴을 완전히 빠져나갔을 것으로 예상했던 서준하가 제이크의 진로를 막아섰다.
“XX! 이 새끼들 뭐야!”
앞차를 보고 곧바로 브레이킹을 밟은 제이크. 잠시 주춤하며 속도가 주는 사이 강민수가 앞으로 치고나왔다.
***
“아! 제이크, 또 한 번 가로막혔습니다!”
“오늘 스메들리 듀오의 호흡이 아주 좋습니다! 뒤차들이 맥을 못추는데요?”
연이은 뒤차들의 추월 시도. 그때마다 강민수에게 한 번, 그리고 서준하에게 한 번씩 진로가 막힌 차량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 했다.
“큰일이군요. 많은 선수들이 초반 옵션 타이어 효과를 하나도 보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제 프리마와 콜린 팀은 타이어 교체 타이밍이 입박했거든요?”
중계진의 말과 동시에 피트 레인으로 들어가는 제이크. 뒤따라오던 제프도 곧바로 타이어 교체에 들어갔다.
“자! 이렇게 되면 3위에 페트로. 4위에는 파비앙이 랭크합니다.”
“스메들리 듀오는 아직 여유가 있어요. 미디움 타이어를 끼고 나왔지 않겠습니까?”
스메들리 팀의 전략이 먹혀드는 상황. 제프와 제이크가 빠지자 한층 여유있는 드라이빙으로 격차를 벌리기 시작하는데,
“다시 제이크! 제프가 복귀합니다. 각각 7,8위에 랭크하는데요. 다시 또 올라가야죠!”
피트레인 출구를 포착한 중계 카메라. 주변에 다른 참가자들이 많이 보이는데,
“우승 후보들이 다시 치고 나옵니다! 조금 타이어를 무리하게 쓰는 걸로 보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시간이 없죠?”
타이어 선택으로 이미 초반에 차지했어야 할 선두 자리. 제프와 제이크가 다시 바빠졌다. 곧이어 레드불링 서킷의 전체 샷이 화면에 등장하고,
“보시죠! 스메들리 차량을 뒤로 포뮬러들이 줄줄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아, 이건 뭐 마치 하나의 거대한 트레인 같은데요?!”
기다란 오르막에 줄지어 달리는 참가자들. 피트 스탑에 복귀한 차량들까지 등장하자, 좁아터진 트랙으로 자리싸움이 더욱 치열해졌다.
“오늘 레드불링의 트레인을 만들어낸 코리안 듀오! 어느 선수도 앞으로 나가지 못 하게 라인을 걸어 잠궜습니다!!!”
곧이어 등장한 트레인의 헤드. 견고해 보이는 파란색 포뮬러카 두 대가 클로즈업됐다.
< 이번 레이스는 스메들리 트레인을 보여줄 때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