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셀 전개 타이밍이 엄청 빨라 보입니다 >
“민수가 많이 늘었네. 중반까지 교체 없이 버틸줄은 예상 못 했는데 말이야.”
4차전 레이스 중반 13랩. 타이어 교체없이 내리 달렸던 스메들리 듀오. 이제 슬슬 새 타이어가 필요해 보였다.
“다음 랩에서 민수를 복귀시켜야 할 것 같아. 타이밍이 된 거 같구만.”
윌리엄의 말에 고갤 끄덕이던 아론. 상황판을 살피며 경쟁자들의 타이어 상태를 예측해 보는데,
“흠... 프리마랑 콜린 쪽에선 투 스탑 전략을 쓸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두 번째 교체 타이어의 피크 타임이 올 것 같아요. 하필 우리 팀 피트 스탑 타임이랑 겹치네요.”
새로운 옵션 타이어를 장착한 제이크와 제프. 피트 스탑 후 중위권부터 치고 올라온 두 선수가 곧바로 3,4위에 랭크하며 스메들리를 위협했다. 게다가 새로 교체한 옵션 타이어가 슬슬 피크 타임에 오를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벌려놓은 격차면 피트 스탑하고 나와서도 다시 선두 자릴 차지할 수도 있어. 그리고 어차피 피트 스탑으로 선두 자릴 뺏기더라도 제이크와 제프는 또 한번 피트 스탑에 들어가야하잖아?”
설사 선두 자릴 뺏기더라도 옵션 타이어를 장착한 경쟁자들이 열세 바퀴를 온전하게 달리는 건 불가능. 피트 스탑을 한 번 더 가져가게 되면 다시 스메들리가 선두에 오를 것이다. 만약 그들이 디펜스에 치중하더라도, 새 타이어를 장착한 스메들리가 레이스에 훨씬 유리하므로 과감하게 추월을 노리면 됐다.
“그리고 우리한텐 저 친구가 있지 않나?”
F3 레벨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타이어 관리 능력. 팀 메이트와 똑같은 미디움 타이어를 장착했지만, 서준하는 앞으로 서너 바퀴는 더 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하, 그렇죠. 예상대로 제이크와 제프의 랩타임이 빨라졌습니다, 윌리엄.”
어느덧 강민수의 뒤로 나타난 황금색 포뮬러카. 앞차의 피트 스탑 타이밍 냄새를 맡은 듯 했다.
“아론, 곧바로 민수를 불러들여. 미캐닉들은 소프트 타이어를 준비시키게.”
강민수와 서준하의 피트 스탑. 스메들리에겐 이번 레이스 마지막 고비이자, 경쟁 팀들에겐 역전의 기회. 스메들리 피트가 긴장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박스, 박스, 박스.
윌리엄의 지시를 전달 받은 스메들리의 피트 월. 레이스 엔지니어 맬릭이 강민수에게 복귀 지시를 내렸다.
“copy. 뒤차랑 격차가 갑자기 좁아졌어. 다시 돌아오면 2위 자리에 랭크할 수 있으려나.”
피트 스탑을 앞둔 레이서는 항상 불안으로 가득하다. 순위 복귀부터 피트 스탑에서 생기게 될 변수까지. 복잡한 생각이 강민수의 머릴 덮쳤다.
-생각보다 뒤차들 랩타임이 빨라지긴 했지만, 우리도 옵션 끼고 피크 타임되면, 쟤네 주행감은 바닥이 돼있을 거야. 지금 충분히 잘 타줬어, 괜찮아
레이서를 안심시키려는 의도보다는 실제 레이스 상황이 그랬다. 맬릭이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주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팀 메이트 하난 기가 막힌 친구를 뒀잖아?
무전을 들으며 피트 박스에 멈춘 강민수. 전방 시야로 14랩을 달리는 또 다른 스메들리 차량이 보였다. 자신과 똑같은 타이어를 장착했음에도 주행 밸런스는 전혀 깨지지 않아 보였는데,
“그렇지, 저 차는 타이어에 한계가 없어 보여.”
미캐닉의 출발 사인을 받은 강민수. 엄지를 치켜 세우며 다시 피트를 빠져나갔다.
***
“2위 차량 피트 인 했습니다. 선두 차량 레이스 유지 중. 서준하는 2위 차량 복귀 후 곧바로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지금이 기회야. 레이서들 최대한 랩타임 끓어 올리라고 전해.”
스메들리의 피트 스탑 그리고 피크에 달한 주행감. 서준하의 뒤를 쫓는 제이크에겐 마지막 기회였다.
“선두 14랩 스타트. 제이크와 5초 차이. 이번 랩에서 격차가 더 줄 것으로 보입니다!”
“뭐? 서준하 이번에 안 들어간 거야?”
“이번이 마지막일 것으로 보입니다. 타이어 한 세트로 14랩 이상은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랩에서 서준하와 격차를 최대한 줄인 뒤 디펜스로 자릴 지키려는 것이 콜린의 전략. 선두 차량의 행보에 조르조와 엔지니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데,
“서, 선두 차. 15랩 스타트! 이 자식 피트 레인을 또 지나쳤습니다...!”
“또?!”
엔지니어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조르조. 곧바로 참가자들의 타임 로그를 살피는데,
“격차! 그럼 이번 랩에서 격차가 얼마나 준 거야?!”
예상과 다른 선두 차량의 행보에 당황한 조르조. 경쟁 팀 분석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의 곁으로 다가섰다.
“...5초 231. 이전 랩과 격차는 비슷합니다. 아마, 다, 다음 랩에서...”
타이어의 한계치를 상상 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서준하. 엔지니어의 말을 믿지 못하는 감독이 제이크의 랩타임을 살폈지만, 제이크 역시 좋은 기록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제프 베시! 제이크 뒤에 붙었습니다!”
또 다시 배틀을 걸어오는 제이크의 뒤차. 선두 차를 제치는데 써야할 집중력과 타이어를 다시 한번 제프에게 쏟고 말았다.
“앞으로 최대 4바퀴 정도밖에 여유가 없어. 하, 지금 제프랑 뒤섞일 때가 아닌데.”
“그나저나 서준하 저거 진짜 괴물이야... 타이어 하나로 15바퀴가 말이 되는 거야?”
머릴 감싸쥐며 두 눈을 감싸쥔 조르조 감독. 그의 뒤로 현재 상황에 불안해 하는 엔지니어들의 한숨이 들렸다. 그런데,
“강민수! 강민수가 나타났습니다! 제이크, 제프, 강민수! 1턴 이후 오르막을 줄지어 달립니다!”
레이스는 예측대로 흐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스메들리의 또 다른 레이서가 등장해 제이크의 뒤를 따랐다. 다음 코너 진입에서 유리한 위치를 잡기 위한 자리 싸움이 벌어지는데,
“스메들리 팀, 피트 박스를 준비합니다! 서준하 아마 이번이 인 랩인 듯 합니다!”
타이어를 든 미캐닉들과 함께 분주한 스메들리 피트. 선두 차량이 곧 피트에 들어갈 것 같았다.
“마지막이다... 제이크! 반드시 뚫고 나가!”
15랩에서 현저히 속도가 줄어든 선두 차량. 어마어마한 장기간 주행이 드디어 끝을 보였다.
***
“와, 이제 들어가는군요. 서준하! 15랩을 끝으로 피트 스탑에 들어갑니다!”
“아마 이것도 F3 선수가 세운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레드불링 가득 서준하를 향한 박수가 쏟아집니다!”
브레이킹을 강하게 하며 7턴에서 급격히 속도를 줄인 서준하. 그대로 피트 레인 입구로 들어갔다.
“자, 이렇게 되면 서준하가 빠진 사이 제이크와 제프가 1,2위 그리고 3위에 강민수가 랭크합니다.”
“그렇습니다. 프리마와 콜린은 지금 최대한 스피드를 높여야 하는데요. 또 다시 옵션 타이어가 한계를 드러낼 시점이 다가오거든요?”
새로운 선두가 탄생하자, 더욱 활발해진 갤러리들의 응원. 늘어졌던 황금색과 빨간색 깃발이 다시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민수! 3턴을 빠져나오는 속도가 좋습니다! 앞에 제프가 보이는데요...!”
4턴 진입에서 한 박자 빠른 스티어링 전개로 제프의 안쪽을 파고드는 강민수.
“워어어어!!! 강민수가 앞으로 나갑니다!”
피트 스탑으로 한 템포 호흡을 가다듬은 강민수. 새 타이어의 적응을 마친 그가 깔끔한 오버테이크에 성공했다.
“서준하가 빠진 사이 스메들리 팬들에게 불을 지피는 강민수! 놀라운 기세로 이번엔 제이크의 뒤를 노립니다!”
중계진의 말과 함께 갤러리의 파란색 물결이 카메라에 잡혔다.
“강민수와 제이크! 6턴을 빠져나오며 경합! 5턴을 빠져나온 강민수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그렇죠. 무엇보다 지금 강민수의 악셀 전개 타이밍이 엄청 빨라 보입니다. 지금 제이크와 격차를 줄이는 건 빨라진 탈출 속도 덕분이거든요?!”
연신 앞차에 압박을 가하는 강민수. 제이크가 가까스로 디펜스에 성공했다. 하지만 제이크의 본래 목적은 디펜스가 아니었는데,
“자! 이러면 또 서준하가 나오거든요? 스메들리 듀오! 오늘 레이스 두 선수가 치고 빠지는 타이밍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코리안 레이서들의 레이싱. 두 선수의 호흡이 절정에 달했다.
“서준하! 서준하가 피트레인 출구에 다가섰습니다!”
레이스 중후반. SS 타이어를 장착한 서준하가 서킷에 들어섰다.
***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잉.
현재 순위는 제이크, 강민수, 제프. 서준하의 눈앞에는 제프의 차량이 보였다.
-제이크와 제프 모두 다음 두세 바퀴를 끝으로 타이어 교체에 들어갈 것 같아
컨트롤 라인과 롭의 판단으론 1,3위 모두 한 번 더 피트 스탑을 해야 하는 상황. 페이스만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달려도 경쟁자들은 곧 사라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4단, 5단... 6단!
서준하는 좀 더 빠르게 달리고 싶었다. 재빠르게 시프트 업하며 오르막 주로에서 속도를 끌어올리는데,
‘비켜라, 제프.’
실제 앞차들의 상황은 피트의 판단과 달랐다. 이제 곧 랩타임으로 그게 증명될 테지만, 서준하의 눈에 제프는 이미 타이어의 한계가 온 듯했다.
-2턴 바깥쪽이 미끄러워. 프론트에 하중을 빼고 가볍게 돌아!
쒜에에에에엥.
추월을 예상한 제프가 재빠르게 진로를 막았다. 하지만 이미 코너 안쪽 깊숙이 들어선 서준하의 프론트 노즈.
부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잉.
제프가 더 안쪽으로 들어온다면, 충돌이 일어난다. 이는 곧 명백한 페널티 대상. 대응이 늦은 빨간색 포뮬러카가 바깥쪽으로 밀려나고,
‘넌 안된다니까?’
앞차의 한계는 곧 뒤차의 완벽한 찬스. 하중을 빼고 재빠르게 가속하자, 경주차가 속도감 넘치게 쭉쭉 뻗어나갔다.
“와우! 서준하! 깔끔한 인라인 오버테이크! 단 한 번의 시도로 제프를 밀쳐냅니다!”
2턴을 나오자, 전방 스트레치를 달리는 제이크와 강민수가 보였다. 속도광 서준하에겐 또 다른 장애물들. 재빠르게 강민수의 뒤를 추격하는데,
“강민수! 작정했습니다! 제이크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려는 듯한데요!”
계속되는 압박 끝에 추월 포인트를 잡은 강민수. 레드불링 모두의 시선이 3턴으로 향했다.
“진입 속도를 안 줄여요! 이러다 부딪히겠어요! 브레이킹해야죠, 강민수!”
곧이어 강민수가 제이크의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고, 모두가 숨죽이며 순식간에 튀어나올 강민수를 예측하는데,
“어!!!”
강민수의 뒤에 붙은 또 다른 포뮬러카. 서준하 역시 진입 속도를 높이지 않고 강민수 뒤에 붙었다.
“더블 슬립스트림?!?!”
“이, 이거 너무 위험한데요오오오!!!”
강민수의 슬립스트림에 들어간 서준하. 세 대의 포뮬러카가 마치 하나처럼 붙어버렸는데,
‘진입 속도만 살려내서 안쪽으로...!’
반박자 빠른 진입 템포. 강민수의 방향 전환 타이밍을 뺏은 서준하가 제이크의 안쪽으로 튀어나왔다.
“서준하! 차량 두 대를 한 번에 제치며 다시 선두에 올라섰습니다!!!”
두 대를 동시에 추월하는 놀라운 광경에 쏟아지는 갤러리들의 환호. 중계진이 서준하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와하하하! 이 선수 정말 기다릴 생각 따윈 없어 보입니다!”
< 악셀 전개 타이밍이 엄청 빨라 보입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