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88화 (88/200)

< 지금 서준하 선수가 새 역사를 쓰기 위해 달려갑니다 >

제이크의 눈앞으로 등장한 파란색 포뮬러카. 분명 자신은 뒤차의 움직임을 예측해가며 적절한 디펜스를 하고 있었는데,

“...!!!”

윙미러를 흘겨본 제이크. 여전히 파란색 포뮬러카가 자신의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그렇다면,

[Smedley Formula. Junha Seo]

좌측면에 보이는 레이서의 이름. 당혹감을 감출새도 없이 앞차는 빠르게 자신과 멀어졌다. 그리고,

“XX! 또!”

앞차에 한눈파는 사이 우측으로 등장한 강민수. 제이크의 귀로 또 다른 포뮬러카의 배기음이 거세졌다.

-옆에 막아, 제이크!

무전과 동시에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보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6턴의 인라인으로 스메들리 포뮬러카가 점점 앞으로 나왔다.

“어느 틈에...!”

교체 시기가 가까워진 타이어는 충분한 구동력을 내질 못했다. 반면 훨씬 매끄럽게 뻗어나가는 강민수의 차량. 눈앞에서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상대의 차량에 제이크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침착해라, 제이크!

불과 반 바퀴만에 벌어진 두 번의 추월. 타이어의 그립감 차이를 눈앞에서 실감하는 제이크였다. 엔지니어의 무전에도 씩씩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 하는데,

-박스! 박스! 박스! 곧바로 들어와, 이번 랩 스피드가 너무 떨어졌어!

당장이라도 스메들리 경주차들을 뒤쫓고 싶었지만, 속도가 나질 않았다. 피트 레인과 연결된 7턴을 앞두고 제이크가 전방을 바라봤다.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선두 차와 점점 더 멀어져가는 2위 차량. 제이크의 눈에서 분노의 눈물이 떨어질 때쯤,

쎄에에에엥.

또 다른 추월.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제프의 차량이 제이크를 앞질렀다.

“아아아아!!!”

결국 눈물과 함께 울분을 토해내는 제이크. 후반까지 잘 끌고 온 레이스였지만, 단숨에 4위까지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

“아, 제이크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네요. 피트 스탑 타이밍이 조금 아쉽군요. 이번 랩 속도가 너무 떨어졌어요.”

“제프 베시가 3위에 올라서면서 강민수를 추격합니다!”

“이제 남은 바퀴는 5랩. 피트 스탑을 마친 스메들리 팀이 선두와 2위를 달립니다!”

하위권을 시작으로 한 명씩 카메라에 잡힌 선수들. 곧이어 오르막에 오른 선두 차량의 모습이 등장했다.

“시작됐습니다! 다시 한 번 서준하의 독주가 시작됐어요!”

위협적인 뒤차도, 바꿔야 할 타이어도 없었다. 차량은 문제 없었고, 트래픽이 없는 이 상황은 스피드를 즐기는 서준하에겐 최고의 환경이었다.

“서준하의 앞으로 백마커! 신속하게 마샬들이 청색기를 움직입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서준하 때문에 이번 대회는 마샬들이 아주 바쁜 것 같습니다, 하하.”

순위권과 하위권의 실력 차이가 명확한 이번 대회. 레이스가 후반에 이를수록 그 격차는 더욱 분명해졌다.

“F3 유로피언 챔피언십. 지금 서준하 선수가 새 역사를 쓰기 위해 달려갑니다!”

3바퀴를 남기고, 스타트 라인을 통과한 서준하. 추월 이후 점점 랩타임이 오르며, 4회 연속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위해 더욱 스피드를 높였다.

“서준하가 지나가는 곳마다 파란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갤러리 모두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 같은데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랜드스탠드의 우측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한 번 보시죠!”

중계진의 말과 함께 등장한 스탠드.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태극기를 집어든 관중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를 흔들었다.

“오늘 4차전 레이스의 주인공은 바로 스메들리 포뮬러 팀의 레이서들입니다!”

한국 교민들의 응원 모습을 비추던 카메라. 다시 한 번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 서준하의 차량을 포착했다.

서킷의 변수는 없었다. 비도 오지 않았고, 차량의 문제가 생길 만한 위험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서준하는 4차전 레이스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서준하는 더욱 타이트하게 경주차를 몰았다. 발동작을 섬세하게 가져갔고, 브레이킹은 간결하게, 핸들링은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그 결과는,

“와, 파이널 랩 직전까지 이렇게 빠른 선수가 있습니까?! 서준하! 지금 강민수와 10초 이상 차이가 나요!!!”

많은 사람이 서준하가 1위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서준하는 시시하지 않고 더욱 즐겁게 끝내고 싶었다. 그 방법은 바로 스피드를 살려내는 일. 서준하가 내리막에서 풀악셀을 밟았다.

“파이널 랩! 서준하! F3 최초 4연속 우승을 눈앞에 두고, 이제 마지막 질주를 시작합니다!”

레이스가 진짜 끝을 보일수록 콕핏의 열기는 굉장해졌다. 하지만 빠르게 달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날을 위해 체력 훈련을 했고, 수천 번 목표를 되새겼다.

지금 정신은 최고의 상태였고, 시야가 또렸해졌다. 신체적으로 에너지는 넘쳤으며, 손과 발은 자연스러운 리듬감으로 가득했다.

“체커기가 휘날리는데요...!”

린트 코너에 들어온 서준하. 레이트 CP를 찍으며 이어지는 우코너에서 빠르게 악셀을 가져갔다.

부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잉.

띠링

“피니시!!! 서준하가 레드불링에서 새 역사를 씁니다아아아아아!!!”

4차전 파이널 랩. 마지막 참가자가 피니시하는 순간까지 서준하를 부르는 팬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

“오스트리아 스피엘버그에 나가있는 이수진 특파원을 연결해 보도록하겠습니다. 이수진 기자.”

“네, 이곳 4차전 레이스가 있었던 레드불링은 레이스가 끝난 지금 아직 열기가 채 식지 않았는데요...”

국내 지상파 방송사 MBD 뉴스데스크. 4차전 레이스가 끝난 후 현장의 모습이 생방송으로 전달됐다.

이어서 경기를 관람한 한 갤러리와의 간단한 인터뷰가 등장했는데,

[율리안 레노(59) 현지 관람객]

“3차전 뉘르부르크링에서 서준하라는 선수를 처음 봤고, 그의 드라이빙에 매료돼 이곳 오스트리아까지 찾아오게 됐습니다. 이번 대회 독일출신의 훌륭한 참가들도 많았지만, 저는 서준하 선수를 응원했습니다. 레이싱을 즐길 줄 아는 선수처럼 보이고,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레이서 같습니다. 앞으로도 응원할 겁니다.”

영국만큼이나 많은 모터레이싱 팬들을 보유한 독일. 독일인조차 서준하의 레이스를 보러 왔을정도로 그의 드라이빙은 많은 포뮬러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정말 엄청난 반응이군요. 다음으로 서준하 선수의 인터뷰 장면 보도록하겠습니다...”

코리안 레이서들의 활약에 현지 반응은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모았다. 2차전 이후로 국내 F3 중계 방송 시청률은 갈수록 높아졌고, 서준하의 성공을 조명하는 뉴스는 더욱 늘어났다.

이에 서준하가 활약했던 팀 코치진의 모습도 전파를 탔는데,

[성철현(64) 케노 카트팀 총감독]

“음, 네. 준하는 처음 이곳에서 카트를 탈 때부터 주목받는 인재였습니다. 카트를 처음 탄 아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침착했고, 능숙했습니다...”

다소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성 감독. 서준하에 대한 첫인상과 주행 능력을 극찬했다. 이어서 등장한 서준하의 또 다른 코치진.

[주현우(33) J5 포뮬러 부감독]

“많은 분들이 한국에서 태어나 F1 드라이버를 꿈꾸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서준하 선수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카트 시절부터 서준하 선수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향해 계속 도전해왔습니다. 조만간 한국인 최초의 F1 드라이버가 탄생하는 일이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2014년을 끝으로 막을 내린 포뮬러원 코리아 GP. 서준하의 활약에 힘입어 국내 포뮬러 레이스가 다시 부활하는 등 한국 모터스포츠에 새로운 열풍이 불고 있었다.

“지금 서준하 선수 때문에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편이 전부 만석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현재 밀라노로 향하는 여객기 대다수의 예약이 마감된 상태입니다. 성수기와 더불에 F3 유로피언 챔피언십 5차전이 열리는...”

최초라는 타이틀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다. 4차전을 끝으로 서준하의 스피드를 맛본 국내팬들. 직접 그 스피드를 느끼기 위해 서킷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

똑똑.

“국장님, 폴라입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어, 들어와요.”

철컥.

FIA F3 유럽 지역 운영국장, 알베르. 인자한 얼굴로 5차전 준비에 나선 자신의 비서를 맞이했다.

“이탈리아 역시 이상고온 현상이 있다는 예측이 많네요, 국장님.”

2015년 지구촌 곳곳으로 이상고온, 집중호우, 가뭄 등 이상기후 현상이 잦았다. 서유럽에 닥친 갑작스런 고온 현상으로 8월 5차전이 열릴 이탈리아 역시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관제 본부에선 일정을 8월 말로 미루자는 의견들이 많아요. 아무래도 월초보다는 더위가 좀 수그러들거고...”

하필 5라운드 장소가 한여름의 이탈리아. 낮 최고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곳에서 참가 레이서 모두에게 힘겨운 레이스를 치룰 것으로 예상됐다.

“흠...”

알베르 역시 염두해두고 있던 사항. 생각에 잠겼던 그가 다시 폴라를 바라보는데,

“좋네, 조금 뒤로 미루면 괜찮을 수도 있지. 일정 변경은 각 팀 의견들을 취합해서 다시 한 번 회의하도록 하자고.”

국장의 말에 고갤 끄덕이던 폴라. 잠시 후, 걱정이 섞인 얼굴로 다시 얘길 꺼내는데,

“근데요, 국장님. 만약 그때도 기온이 30도가 넘어간다면, 콕핏 내부 온도는 50~60도까지 올라갈 것 갈 텐데... 그러면 중도 포기하는 선수가 많이 생길테고. 결과적으로 대회 텐션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여름철 레이서의 탈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그 상태로 고속 서킷을 질주하다간 G 포스와 열기로 한순간 의식이 날아갈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지. 근데 뭐 그건 모든 모터레이싱 카테고리에서 겪는 문제니까. 그런 환경도 F3 시리즈의 일부 아니겠어?”

참가 선수들 모두 F1 레이서를 꿈꾸는 유망주들. 한 시즌 20번 이상의 GP를 치루는 F1 레이서들이 되기 위해선 이런 환경에서도 무리 없이 주행해야 한다.

“그리고 레이스 텐션이 떨어지는 건 걱정할 거 없네, 폴라.”

안정적으로 대회를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F3의 재미를 살려내는 것 역시 주최측 FIA의 역할. 걱정스런 표정의 폴라와 달리 알베르 국장은 다소 여유로운 얼굴인데,

“지금 서준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네. 걱정할 거 없어.”

“그렇긴 하죠...”

그래도 걱정 가득한 표정의 폴라. 그 모습에 국장이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무언가를 검색하는데,

“폴라, 자네 이 영상 못 봤나?”

지난 시즌 서준하의 활약상을 미리 살펴봤던 알베르 국장. 영상에는 포뮬러카 한 대가 질주하고 있었는데,

“...?!”

2014 르노 유로컵에서 몬차(Monza)의 트랙 레코드를 달성한 서준하. 엔트리급 차량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스피드에 그녀가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이, 이게 주니어 포뮬러카라고요?!”

< 지금 서준하 선수가 새 역사를 쓰기 위해 달려갑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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