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89화 (89/200)

< 리어 윙을 더 눕혀줘 >

두두두두두두둥.

4차전을 마치고 영국으로 복귀한 스메들리 팀. 차량 점검을 위해 레이서와 미캐닉들이 피트에 모였는데,

“어, 헨리. 우리 차 몇 킬로나 탔지?”

스메들리의 대회 출전 차량 곁으로 다가선 윌리엄. 아주 평온한 얼굴로 차량을 체크하는 미캐닉들을 바라봤다.

“두 대 모두 7천 킬로미터가 조금 넘습니다. 왜 그러시죠?”

10,000 km까지는 거뜬하게 주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메르세데스의 2L 엔진. 대회 중반이 넘은 지금 서준하와 강민수의 차량 상태를 윌리엄이 물었다.

“음... 이참에 둘다 새 엔진으로 교체하도록 하지.”

“네? 새 엔진으로요?!”

1억 5천만 원에 달하는 F3 경주차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엔진 가격. 한계치보다 아직 조금 여유있는 상황이었지만, 표정의 변화도 없이 엔진을 교체하자는 말에 미캐닉들이 할말을 잃었다.

“시리즈 막바지에 아슬아슬 불안에 떠는 것보다, 지금 미리 바꾸는 게 낫지 않겠어?”

“그, 그건 그렇죠. 근데 두 대 모두 바꾼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매 GP 최고의 부품을 선택하는 F1 시리즈조차 엔진만큼은 최대한 쓰고 교체한다. 물론 그 가격이 F3 차량의 그것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에 6천만 원이 넘는 엔진을 두 개 모두 바꾸자는 건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놀란 건 미캐닉뿐만이 아니었다. 곁에선 서준하 역시 윌리엄의 오더에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으응. 비용은 걱정 말게. 게다가 5차전이 몬차 아닌가. 내 스파 프랑코샹 때부터 엔진이 걱정됐네.”

이번 시즌 다른 팀보다 연습 주행량이 훨씬 많았던 스메들리 팀. 그만큼 차량에 부담이 더 컸을 게 분명해 보였다.

특히나 이번 결정은 서준하 때문이었다. 팀 챔피언을 견인하고 있는 역할은 물론, F3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역대급 레이서. 혹시 모를 조금의 위험 요소도 없애고 싶은 게 윌리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 F3 시리즈에 입성할 때의 후원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지원 받게 됐네.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줘. 하하.”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스메들리 팀. 스폰 기업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최고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하는 법. 미캐닉들 모두 윌리엄에게 감사의 표시와 함께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데,

“성과로 보답할게요, 윌리엄.”

차량 문제는 매 레이스 서준하도 걱정했던 부분이지만, 새 엔진이라면 적어도 남은 레이스 동안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다.

“나는 준하 자네만 믿네, 하하.”

연이은 성공 가도와 함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스메들리 피트. 감사 인사를 받은 윌리엄이 5차전 레이스를 질주하는 서준하를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5차전 퀄리파잉 당일, 프리마 팀 캠프에는 오전부터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와아아아아!!!”

피트로 들어선 제프와 페트로. 흰색 오버롤을 착용한 두 레이서를 발견한 이탈리아 팬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제프, 페트로. 이번 5라운드 만큼은 절대 밀려서는 안 되네.”

이탈리아 팀 프리마의 명예가 걸린 몬차 서킷 레이스. 지난 4년간 몬차에서만큼 단 한차례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을 정도로 프리마팀이 자신을 보이는 곳이다.

“팬들의 기대에 꼭 보답해주게.”

“이번에는 자신 있습니다.”

이탈리아 F3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마 레이싱. 페라리를 응원하는 티포시들이 이번 시즌 역시 빠지지 않고 이곳 몬차를 찾을 게 분명했다.

제프와 페트로 역시 선수 생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아직 두 선수 모두 우승을 차지하지 못 했고, 몬차는 페라리 아카데미의 본거지로 여겨지는 장소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어제 주행처럼만 기록이 나와준다면, 폴포지션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이네.”

공식 연습 주행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뽑아낸 제프 슈마허. 독일전 만큼이나 자신 있는 페라리의 홈그라운드였다. 프리마 팀은 물론 레이서 모두 엄청난 각성한 듯 보이는데,

“폴포지션... 반드시 만들어 내겠습니다, 조르조.”

비장한 표정으로 조르조 감독을 바라보던 제프. 프리마 팀의 바로 옆 피트로 스메들리 레이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Smedley Formula British]

한편, 밝은 분위기의 스메들리 피트. 차량 세팅을 마친 미캐닉들과 레이서들간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준하야, 연습 주행 때랑 세팅 값은 변경된 게 없어. 드래그를 낮추는데 치중했다.”

서킷마다 차량의 세팅은 달라진다. 몬차는 차량의 접지력을 늘리는 다운포스보단 드래그(공기저항력)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서킷. 때문에 가능한 투입되는 에어로파츠는 최대한 간단하게 세팅돼야 한다.

“연료량도 네가 요청한대로 채웠고. 흠,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건 음료수의 양이야.”

극한으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음료수조차 싣는 것이 부담되는 상황. 헨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묻는데,

“음료는 괜찮아.”

이번 라운드에서 예상되는 콕핏 내부의 온도는 50~60도. 잠깐이라도 콕핏에 오를 경우 드라이버가 탈수 증상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 음료 없이 달리겠다는 서준하.

“퀄리파잉은 최대한 버텨볼게. 조금이라도 가벼워야 하니까.”

“...그래.”

예선은 본선 레이스와 같은 장기 레이스가 아니다. 단발성 주행이기 때문에 무리가 오면 쉬면 된다. 오늘 예선에서 자신의 전략을 성공하기 위해선 최대한 무게를 줄여야 했다.

“그리고, 헨리.”

점검 사항을 살피던 서준하. 자신의 차량의 후면 쪽으로 다가서는데,

“리어 윙을 더 눕혀줘.”

각도가 높을수록 다운포스를 만들어내는 리어 윙. 하지만 서준하는 리어윙이 거의 지면과 평행을 이룰 정도로 눕히며 최대로 저항력을 낮추길 원했다.

“더 눕혀? 그러면 밸런스가 깨질 수도 있는데.”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헨리. 이론상으론 서준하의 말대로 세팅한다면, 차량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지만, 다운포스가 줄어든 만큼 차량 컨트롤은 어려워진다.

“이미 프론트 윙 쪽 플랩 수도 많이 빼놨고... 지금도 충분히 빠른데, 괜찮겠어?”

걱정할 거 없다. 이런 설정은 서준하가 F1 경주차를 세팅할 때도 즐겨 사용했던 방법. 이번에도 역시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려면 스피드를 내야한다. 게다가,

‘몬차에선 이 세팅 법 말고 다른 건 써본 적 없으니까.’

이번엔 숨 고를 틈 없이 달릴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더 빠른 차가 필요했다. 5차전 몬차 퀄리파잉, 서준하가 가장 가볍고 심플한 세팅을 선택했다.

***

[5R. Qualifying]

[29분 : 59초]

“5차전 퀄리파잉 시작합니다!”

피트레인 오픈과 동시에 튀어나가는 포뮬러카들. SS 타이어를 장착한 프리마의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와하하, 프리마 팀을 응원하는 티포시의 함성이 어마어마하군요.”

제프와 페트로의 등장에 붉은 깃발이 서킷을 뒤덮고,

“아무래도, 오늘 예선은 초반에 많은 기록이 쏟아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무엇보다 날씨의 영향이 가장 컸다. 뒤늦게 출발하더라도 레이서는 엔진을 켜둔 채 콕핏에 앉아 대기해야 한다. 정지 상태라도 내부 온도는 계속 올라 레이서는 힘겹다. 빨리 랩타임을 세우고 쉬고 싶은 선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잠시 후, 또 다른 포뮬러카들이 서킷을 나서고,

“9,10번째 주자로 스메들리 포뮬러 팀의 강민수와 서준하가 등장합니다!”

“코리안 레이서들에게 엄청난 환호가 나오는군요!”

여기저기 휘날리는 태극기. 메인그랜드스탠드 좌석의 절반 가까이 들어찬 한국 팬들. 자국 선수의 등장에 환호가 쏟아져나오는데,

“스메들리 팀 선수들 타이어 보시죠. 보라색. 두 선수 모두 보라색입니다!”

출발 직전 참가자들의 타이어를 주시하던 해설진. US 타이어를 장착한 스메들리 차량의 모습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시작부터 뭔가 또 터질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두 바퀴 워밍업을 마친 프리마 팀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참가 팀 모두 무더위에서 치러지는 예선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어택을 시작하는데,

“제프 베시! 시원시원하게 달립니다! 그란데 코너(Curva Grande)와 레스모 코너(Curva di Lesmo)를 풀스로틀로 통과합니다!”

가장 먼저 어택을 시작한 제프 베시. 다소 각도가 있는 코너에서조차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페트로도 좋죠! 1번 레티필로 시케인 이후 재가속 타이밍이 아주 빠릅니다!”

간격을 두고 어택에 들어간 제프와 페트로. 부담스러운 코너에서도 유연한 모습을 보이며 스피드를 살려냈다.

“자, 그리고 페트로를 뒤따르는 서준하! 워밍업을 마친 서준하도 어택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마지막 턴에서 속도를 끌어오리기 시작한 서준하. 워밍업 속도와는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스타트라인을 통과했다.

“자, 최고속으로 직선주로를 빠져나온 제프! 그대로 아스카리 시케인으로 들어가는데요!”

몬차의 시케인은 모두 고난도 브레이킹 테크닉을 요구한다. 시케인 이전 구간이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직선 주로. 자칫 진입에서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큰 사고가 난다.

“빨라요! 빨라요! 아스카리 통과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제프!”

“그렇죠! 파라볼리카만 제대로 공략한다면, 초반 기록 기대할 만하겠는데요?!”

중계진은 물론 갤러리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첫 번째 어택 주자. 엄청난 진입 속도로 마지막 코너 파라볼리카(Curva Parabolica)에 들어가는데,

“진입 속도가 너무 빠른데요오오!!!”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걸까. 제프의 질주가 불안해 보이는데,

끼이이이익.

휘리리릭.

진입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연석 바깥의 런오프 향하는 제프.

“아아아아!!! 제프! 너무 무리했어요!”

“파라볼리카를 우습게 봐선 안 되죠!!!”

방향 전환시 오버스티어가 발생하며 결국 바깥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아 이렇게 되면 뒤따르던 페트로! 페트로는 어떻게 될지...! ”

“페트로도 어택에 들어갔었는데요오!!”

멈춰선 제프의 차량에서 아스카리에 진입한 페트로에게로 넘어간 화면.

“아! 속도를 줄입니다. 어쩔 수 없어요. 앞에서 미끄러졌거든요?!”

앞차의 스핀 소식을 듣고 급격히 속도를 낮춘 페트로. 곧이어 서킷 위로 다시 올라온 제프의 뒤에 붙으며 코너를 빠져나가는데,

“...!!!”

프리마 팀의 혼선에 중계진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중계 화면으로 또 다른 주자의 질주가 등장했다.

“서준하! 풀스로틀로 달려옵니다!”

파라볼리카 전 아스카리 시케인에 진입하는 서준하. 시케인 앞에서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자, 브레이크 디스크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앞에 제프와 페트로가 있거든요!!!”

아스카리를 빠져나온 서준하. 파라볼리카의 바깥쪽 연석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이 선수 겁도 없나요오오오!!!”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진입하는 선수의 등장에 몬차가 엄청난 긴장감에 휩싸였다.

< 리어 윙을 더 눕혀줘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