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91화 (91/200)

< 직선로는 빠른 차를 위한 것이지만, 커브길은 빠른 드라이버를 위한 것이다 >

모터스포츠를 하다 보면 목에 무리가 오기 마련이다. 특히나 승모근과 흉쇄유돌근으로 연신 횡방향의 중력가속도가 가해진다. 결국 근육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두뇌 혈류가 떨어짐에 따라 편두통이나 어지럼증을 겪게 된다.

사소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런 증상을 막기 위해 반드시 몸을 풀어줘야 한다. 서준하의 경험상 주행 전 워밍업을 빼먹으면 거짓말처럼 랩타임 1초가 늘었다.

“헛, 둘, 셋, 넷...”

목, 손목, 어깨, 무릎 등 모든 관절을 풀어주면 신체 반응 속도가 한층 높아진다. 차량 워밍업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레이서의 몸 역시 워밍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베테랑 레이서 서준하가 깨달은 진리였다.

“오늘도 얼굴색이 좋아 보이네?”

스메들리 팀 하우스 내부에 위치한 체력단련실.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마치고, 워밍업에 들어간 서준하. 머리도 눈도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 때쯤 한서윤이 다가왔다.

“준하 선수, 좋은 소식이 있어.”

인사를 나눌 때부터 피어올랐던 기쁜 표정.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가득한 얼굴인데,

“어젯밤에 트리덴트 팀 감독님한테 직접 연락이 왔어...!”

GP2 시리에서 활약 중인 이탈리아 트리덴트 팀. GP2에 참가하는 팀이라는 건 스폰서부터 팀 인력까지 규모가 크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그런 팀의 감독이 직접 선수 영입을 위해 나섰다는 건, 서준하를 간절히 원한다는 의미도 함께 있었다.

“이번 5차전 레이스 끝나고, 이탈리아 떠나기 전에 미팅을 한 번 갖자고 하시는데, 어때?”

트리덴트 모터스포츠. 전생의 GP2 시절 같이 경쟁 팀으로 겪어본 팀 가운데 한 곳이다.

영입 테스트를 승낙 받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여기는 판에, 이렇게 직접 영입 제안을 해주는 건 레이서에겐 더할나위 없이 기쁜 일. 서준하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갤 끄덕였다.

“아참 그리고 오늘 레이스에 캄포드랑 비르투오시 팀 관계자들도 많이 온대. 확실히 몬차에서 레이스를 하니까 이탈리아 팀들은 다 참석하는 것 같아.”

참관 팀이 많은 건 자국에서 대회가 열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쟁이 치열한 GP2 팀들에게 뉴 시즌 차량 준비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레이서 영입. 현재 F3 시리즈에서 가장 핫한 선수인 서준하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이번 대회 서준하의 활약이 계속 이어진다면, 트리덴트 팀뿐만 아니라 많은 GP2 팀들의 러브콜을 받게될 건 분명해 보였다.

“아무튼 준하 선수는 늘 하던대로 하면 돼요. 지금 정말 좋으니까.”

수백만 레이서 가운데 단 스무 명만이 F1 무대에 올라간다. F1 레이서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는 한서윤에겐 이런 제안들이 한없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한국인 최초의 F1 레이서, 진짜 우리 준하 선수가 될지도 모르겠어.”

매 레이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준하는 물 만난 물고기 같았고, 레이싱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며 여러 행운들을 거머쥐었다. 덕분에 서준하가 F1에 오르는 건 시간 문제처럼 느껴졌다.

***

두두두두두두둥.

레이스 출발 전 그리드에 대기 중인 선수들 곁으로 리포터가 인터뷰에 나섰다.

“엄, 네. 서준하 레이서는 정말 훌륭한 테크니션입니다. 디펜스 예측 능력도 뛰어나고, 앞에 두고 달리기엔 상당히 버거운 경쟁자인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몬차는 분명 추월 포인트가 존재하는 곳이고, 저 역시 이번 레이스를 위해 준비 많이했습니다.”

콕핏에 앉아 대기 중인 페트로 피터발디. 이번 대회 계속되는 서준하의 상승세를 꺾을 수 있냐는 질문에 자신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지금보다 더 험악했던 몬차에서 단 한번의 실수를 내지 않았던 아버지의 드라이빙을 재현해내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

“좋습니다, 페트로. 오늘 몬차를 찾은 부모님 앞에서 더욱 좋은 활약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리고...”

페트로를 끝으로 파비앙에게 넘어간 카메라.

“이번 레이스 서준하의 리어윙을 놓치지 않는 것이 저희 팀 목표입니다.”

“리어윙을 놓치지 않는다라... 무슨 뜻인가요, 파비앙?”

“추월은 생각에도 없습니다. 서준하 선수만 따라간다면, 랩타임이 빨라질 거고, 그건 곧 순위권에 안정적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의미하니까요. 하하. 잘 부탁합니다, 서준하 선수.”

몇 번의 레이스를 경험한 뒤 서준하를 대하는 태도과 다소 달라진 듯한 경쟁자들. 파비앙이 눈웃음과 함께 진담 같은 농담을 던졌다.

“하하, 이번 F3 시리즈 레이서들 사이에서도 서준하를 인정하는 분위기군요.”

“그렇습니다. 드라이버즈상(레이서들의 투표로 뽑은 레이서 프라이즈)까지 서준하가 받아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경쟁 선수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레이서였다. 실제 그의 주행을 체험하고는 말문이 막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상승세 속에서도 겸손이 흘러 넘쳤고, 매사 신사적으로 레이싱하는 모범적인 선수였다.

“출발 전 평온한 모습의 서준하인데요. 어제 서준하의 온보드 카메라(Onboard Camera) 영상이 엄청난 화제가 됐다고요?”

“맞습니다. FIA가 웬만해서는 예선 당일에 영상을 안 올리거든요. 주최측도 혼자 보긴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예선 직후 포뮬러 커뮤니티를 달궜던 서준하의 개인 주행 영상. F3 경주차라고는 믿을 수 없는 스피드가 작은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번 F3 유로피언 챔피언십. 정말 서준하를 위한 무대가 된듯한 느낌인데요.”

다시 그리드로 향한 중계 카메라. 대기 중인 선수들 주변의 미캐닉 크루와 엔지니어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시작할 것 같은데요. 그리드가 조용해졌습니다.”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더 뜨거운 것 같습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군요.”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멈춰선 포뮬러카들이 아른아른 흔들려 보이는데,

“오늘 총 22바퀴. 40분이 넘는 시간동안 레이스는 물론, 미친 듯한 열기와도 싸워야 합니다, 선수들...”

한 여름 고속 서킷 몬차에서의 레이스. 이는 곧 레이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불 들어오기 시작하죠.”

“자, 이제 볼까요?”

스타트 라인 상단 5개의 신호등에 하나둘 빨간 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띠.

띠.

우우우우우우웅.

띠.

“신호 꺼졌습니다!!! 선두의 서준하! 그뒤로 제프, 제이크, 페트로, 강민수, 파비앙...”

열기 속에서 장시간 대기하며 이미 온몸이 젖어버린 레이서들. 쓰러질 때까지 달리겠는 각오로 힘차게 스타트했다.

***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이이이이이이잉.

파라볼리카 앞으로 6단 최고속으로 진입하는 서준하.

위이잉.

이잉.

이잉.

5단, 4단, 3단.

코너 초입부터 최저속지점까지 순식간에 기어를 다운하며 코너링에 들어갔다.

[135km/h]

.

.

우우우우우우우웅.

[157km/h]

.

.

파라볼리카의 에이팩스에서부터 다시 시작된 가속. 약 2.5G 이상의 횡방향 중력가속도를 견뎌내는 서준하. 콕핏에 몸이 파묻혀버리는 듯한 압박을 견뎌내며 온 신경을 가속하는데 치중했다.

4단, 5단...

파라볼리카를 빠져나가며 끊임없이 올라가는 속도계. 연석 끝으로 밀려날 듯 말 듯 다시 스타트라인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6단!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누군가는 F1도 아니고 무슨 F3 차량의 횡G가 엄청나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저 TV로 중계 방송만 봤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2.5G라는 건 어마어마한 힘. 70kg의 남성이 운전한다는 가정하에 이 남성은 코너링 과정에서 175kg의 힘을 받는다. 헬스장에서 그만한 무게를 들고 운동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수치가 어떤 것인지 대략 감이 온다.

“5턴의 빠져나온 서준하! 이제 직선 주로에 올라서면서 6, 7턴을 맞이합니다!”

몬차 공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두 개의 오른쪽 코너. 레이서의 코너링 숙련도가 스피드의 관건인데,

“6턴에 진입하며 빠르게 돌기 시작하는 서준하!”

“확실히 이 선수는 코너링이 좋습니다!”

코너링이 좋다는 건 차가 코너를 잘 돌아나갔다는 걸 의미한다. 코너링은 단순히 핸들을 꺾는 게 아니다. 스티어링휠 조작과 하중 이동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를 나타낸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위이잉.

이잉.

우우우우우웅.

6턴을 돌아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서준하는 감속, 핸들링 그리고 재가속했다. 그와 동시에 노면의 경사, 차량의 좌우 이동, 타이어 그립감의 변화에도 재빠르게 대응하는데,

“7바퀴째 주행 중인 서준하! 7턴을 빠져나오며 추격자들과 격차를 더 벌립니다!”

스타트 직후 몇 번의 추월 시도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의 추월도 허용하지 않는 서준하. 11개의 턴이 존재하는 몬차 서킷. 7바퀴 총 77개의 턴에서 0.1초씩 뒤차보다 빠르게 달리자, 이제 윙미러에서는 뒤차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서준하! 속도가 줄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나마 선두 차량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건 지금 저 깃발뿐이에요.”

선두 차량 앞으로 보이는 황색기. 11턴 런오프 주변으로 두 대의 포뮬러카가 멈춰섰다.

사고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 것도 페널티 대상. 깃발을 확인한 서준하가 재빠르게 브레이킹에 들어가고,

“자, 황색기 덕분에 2,3위 제프와 제이크 선수가 조금 숨통이 트였겠는데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서너 바퀴 후에 피트 스탑 시기가 오거든요? 그때까지 두 선수는 서준하를 최대한 따라가줘야 후반에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어요!”

사고 구간을 빠져나오며 다시 직선주로에 들어간 서준하. 잠시 후, 경쟁 차량들이 뒤따르는데,

“제프와 제이크가 확실히 이득을 봤어요! 격차가 조금 좁혀진 게 눈에 보입니다!”

1턴 시케인에 들어가기 전, 윙미러를 흘겨본 서준하. 프리마와 콜린 팀의 차량이 눈에 들어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시케인을 빠져나가는 서준하! 이번에도 역시 탈출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레이스의 상황은 급변한다. 8바퀴 동안 벌려놨던 격차가 한순간에 줄어드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은 고요해야 한다.

“뒤에 오는 차량 보시죠. 눈에 띄게 탈출 속도가 느리죠? 이게 바로 실력 차이입니다.”

연이은 코너에 들어간 선두 차량. 하중이 실리고 차가 돌며 비로서 가속을 할 수 있는 시점까지 억겁처럼 느껴지는 시간동안 서준하는 차분히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개의 코너를 빠져나온 서준하! 또 격차가 벌어집니다!”

한 턴,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벌어지는 격차. 주행이 계속 될수록 서준하는 앞서갔다.

“직선 주로에선 참가 선수 다 빠릅니다. 하지만 코너링 만큼은 서준하와 똑같은 스피드로  달리는 선수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이런 말이 떠오르는군요...!”

서준하의 코너링을 유심히 살피던 해설자가 감탄을 내뱉는데,

“직선로는 빠른 차를 위한 것이지만, 커브길은 빠른 드라이버를 위한 것이다...!”

쭉 뻗은 도로에선 차만 좋다면 누구나 빨리 달릴 수 있겠지만, 굽이진 길에선 결국 '어떤 차를 타냐'가 아닌 '누가 운전을 하느냐'에 따라 스피드가 결정된다.

“9랩을 시작하는 서준하. 몬차의 고속 커브가 오직 그에게만 스피드를 허용합니다!”

황색기 이후 더 빨라진 서준하. 9랩 페스티스트랩을 만들며 또 다시 질주했다.

< 직선로는 빠른 차를 위한 것이지만, 커브길은 빠른 드라이버를 위한 것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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