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98화 (98/200)

< 전방에 누가 있는 걸 굉장히 불편해 하는 선수거든요? >

“서준하! 피트 스탑에 들어갔습니다!”

옵션 타이어를 끼고 13바퀴를 버텨낸 선두 차량. 다른 참가자들과 타이어 관리 능력에서 평균 세바퀴 이상 차이를 냈다.

“1분 33초 213! 톰 베이크, 본인 베스트 랩타임입니다.”

가장 내구성이 좋은 하드 타이어를 장착하고 본선 레이스를 시작한 톰. 참가자 가운데 나홀로 피트 스탑을 최대로 늦추는 전략과 서준하의 공백으로 선두에 올라섰다.

“톰의 타이어 상태는?”

“타켓 플러스 3까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과감한 드라이빙이나 공격적인 추월 시도보다는 안정적으로 차량을 몰며 타이어 관리에 치중하는 톰 베이크. 감독 조쉬에 말에 콜린 팀의 엔지니어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톰이 조금만 버텨준다면, 제이크도 기회가 있을 텐데... 제이크한테 이번 랩 최대한 밀어붙이라고 전하게.”

사실 콜린 팀은 현재 선두 톰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뒤따라오는 경쟁자는 모두가 피트 스탑했기에 올라선 선두였고, 이후 톰이 피트 스탑하게 된다면, 순위는 급락할 게 분명했으니까. 모터레이싱은 팀 스포츠, 조쉬가 원하는 건 제이크의 선전이었다.

“5턴에서 페트로와 경합! 4턴에서 한 번 막혔지만, 계속 노리면 뚫릴 것 같습니다!”

선두 톰의 뒤로 멀찍이 떨어진 3위 페트로와 4위 제이크. 주행감이 피크에 달한 제이크가 연속으로 추월을 시도하며 순위를 앞당기는데 힘 쓰고 있었다.

“좋아, 서준하는?”

조쉬의 말에 스메들리 피트 상황을 체크하는 엔지니어들. 피트 스탑에 들어간 서준하가 나올 타이밍이 된 듯 보였는데,

“아니...!”

상황판을 체크한 콜린의 레이스 엔지니어의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뭐, 뭐야. 뭔데 그래.”

조쉬를 비롯한 팀원들의 눈이 그에게로 향하고,

“아니 이게... 11초 931... 무슨 12초를 넘...”

이번 대회 타이어 체인지 기록 가운데, 단연 최고 기록. 피트 박스에 정지한 순간부터 다시 포뮬러카가 출발하기까지. 어느 F3 팀들도 깨지 못 했던 12초라는 벽을 스메들리 팀이 넘어서고 말았다.

“서, 서준하! 이제 피트 레인을 달립니다! 이 속도라면 1턴에서 톰과 마주칠 것 같습니다!”

조쉬의 예상보다 훨씬 일찍 피트를 나서는 서준하. 피트 스탑에 들어가지 않은 톰과 마주칠 수 있다는 말에 감독도 할말을 잃었다. 피트 월의 엔지니어 모두 당황한 가운데 들어선 또 다른 소식.

“그래도 다행입니다! 제이크가 페트로를 제쳤습니다! 섹터2(턴5~턴11) 돌파 속도가 좋아요. 2위 강민수와 3초 차이입니다!”

“정말이야?!”

콜린의 피트 월에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제이크의 선전. 이어서 상황판을 유심히 살핀 조쉬가 톰의 차량을 바라봤다.

“충분히 해 볼만 해. 서준하가 새타이어로 치고 나갈 시간만 안 준다면, 오늘 레이스 혹시 몰라...!”

감독의 말과 함께 전환된 콜린의 분위기. 팀원들의 시선이 피트 레인 출구와 서킷이 만나는 1턴 북쪽 커브로 향했다.

***

“스메들리 팀 이번 시즌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피트 스탑을 보여주네요. 시즌 마지막 타이어 체인지에서 랩타임 정점을 찍습니다!”

“덕분에 서준하가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게 됐죠? 자, 이제 다시 선두 자릴 찾으러 서킷에 나가는데요!”

서준하의 재등장과 함께 쏟아지는 함성과 플래시 세례. 방송사는 물론 유명 인사들의 관심이 다시 레이스에 집중했다. 그의 공백으로 가라앉았던 모토드롬 역시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이번 시즌 처음으로 선두 자리 맛을 보고 있는 톰 베이크! 15랩에서 슬슬 랩타임이 떨어지고 있는데요. 아직 콜린 팀은 타이어를 교체할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중계진의 말과 동시에 화면에 잡힌 콜린의 피트. 미캐닉 크루의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질 않았다. 중계진의 예상대로 차츰 코너링에서 빠져나오는 탈출 속도가 떨어지는데,

“서준하! 우리의 서준하 선수가 톰 베이크를 맹추격합니다!”

“전방에 누가 있는 걸 굉장히 불편해 하는 선수거든요? 톰이 피트 스탑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마지막 레이스에서 서준하의 추월 시도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선두를 추월할 필요는 딱히 없었지만, 느린 차 뒤에서 달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서준하의 앞으로 톰 베이크의 황금색 포뮬러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준하가 톰을 추격하는 사이, 강민수와 제이크도 속도를 높입니다.”

“좋습니다, 강민수! 이번 랩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며 페스티스트 랩을 달성합니다!”

타이어 교체 이후 자신감 넘치는 주행을 보여주는 강민수. 오늘 서준하와 강민수가 포디엄에 든다면 스메들리가 팀 챔피언십을 확정짓게 된다. 중계화면으로 그의 선전에 환호하는 스메들리 피트가 등장하고,

“다시 한 번 피트레인을 지나치는 톰 베이크! 타이어를 교체할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이렇게 되면 서준하도 기다릴 이유가 없죠! 이번 랩을 끝으로 콜린 팀이 자신들의 수를 보여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서준하도 알고 있었다. F3 레벨에서 하드 타이어로 장기간 달리며 랩타임을 유지할 수 있는 레이서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마지막 턴을 빠져나온 서준하가 톰의 뒤에 가까이 붙는데,

“서준하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듯 순식간에 톰을 향해 달려가는 서준하!”

기다란 홈스트레치를 달리는 스메들리의 포뮬러카. 기다렸던 순간이 다가오자, 모토드롬의 엄청난 함성이 서준하의 이름과 함께 쏟아져나왔다.

“서준하! 톰 베이크의 슬립스트림에 들어갑니다!”

“인코스를 파고들 것 같은데요오오오!!!”

쫓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단 한 번의 진로 변경 기회. 1턴의 정석적인 추월 라인으로 알려진 인코스를 향해 톰이 재빠르게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

인라인으로 파고들 듯한 모션은 페이크. 슬립 스트림이 절정에 달한 순간 서준하가 바깥쪽으로 튀어나갔다.

“아!!! 바깥쪽! 바깥쪽으로 나가요!”

뒤차의 움직임에 브레이킹 포인트를 놓친 톰. 진입 시점에서 감속 타이밍이 늦어지며 보다 더욱 세게 브레이킹하는데,

쎄에에에에엥.

자신의 바깥쪽으로 들려오는 거친 진동과 배기음. 순식간에 공기의 흐름이 뒤바뀌는 듯한 느낌과 함께 엄청난 스피드의 차가 자신을 스쳐지나갔다.

“성공! 톰이 자신의 앞으로 등장한 서준하를 넋놓고 바라봅니다!!”

서준하의 속도를 늦추려고 했던 콜린의 전략이 단 한 번의 추월 시도로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

-민수야, 준하가 선두로 올라갔다, 그 자리 지켜내면 돼!

서준하가 1위로 들어올 경우, 강민수가 3위에만 든다면 팀이 챔피언십을 차지하는 상황. 특히나 이번 시즌 두 차례뿐이 포디엄에 오르지 못한 강민수에게 오늘 레이스는 자신의 가능성을 드높이고, 팀의 우승을 돕는 절호의 기회였다.

“보인다!”

강민수의 앞으로 등장한 황금색 포뮬러카. 속도가 떨어진 톰 베이크였다. 그리고,

“...!”

그의 뒤편으로 거세진 또 다른 포뮬러카의 배기음. 윙미러에 제이크 러셀의 차량이 보였다.

“톰 베이크, 얘 아직 피트 스탑 안 했지?”

-지금 인 랩 같아. 그냥 들어갈 것 같지 않긴 한데...

어차피 피트 스탑 시기를 놓친 톰 베이크. 피트 레인 진입을 앞두고 자신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맬릭의 눈에 무전과 동시에 강민수의 머릿속으로도 몇 초 후의 상황이 그려졌다.

-8턴 직후 인코스 주의! 전방 차량과 더 가까워지고 있어!

강민수의 시야에서도 보였다. 7턴 이후 급격히 가까워진 톰의 차량.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민수야, 바깥쪽!!!

좌측으로 꺾이는 8턴. 그 진입과 동시에 강민수의 바깥으로 제이크가 튀어나왔다.

“이걸 줄 순 없지!!!”

제이크의 움직임과 동시에 좀 더 크게 선회하는 강민수. 코너 탈출 직후 인코스에 대기 중일 톰의 라인과 바깥쪽으로 들어오려는 제이크의 라인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로 코너링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콜린 팀! 스메들리 팀을 절대 쉽게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아아아!!!”

코너 탈출과 동시에 강민수의 양옆으로 콜린의 포뮬러카들이 달라붙었다. 이어지는 완만한 9,10턴 이후 세 대의 포뮬러카가 직선 주로를 나란히 달리고,

“쓰리 와이드(Three Wide)!!!”

“강민수! 여기서 밀리면 안 돼요! 뒤에 페트로와 제프가 따라 붙거든요?!”

제이크에게 자릴 내주고 3위를 지킨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현실은 냉혹한 레이스였고, 경쟁자들은 피니쉬라인을 밟기 직전까지 강민수의 3위 자릴 위협할 테니까. 어떻게든 콜린 팀의 반격을 막아내는 게 중요한 상황.

“자! 자! 자! 누가 먼저 과감하게 들어가느냐!”

다닥다닥 붙어버린 세 대의 포뮬러카. 우측으로 급격하게 꺾인 11턴을 앞두고, 진입 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배틀이 벌어지는데,

“어! 어! 톰이 쳐져요오오오!!!”

강민수는 봤다. 그의 왼편으로 생겨난 공간을. 그리고,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위이이이이이이이잉.

“강민수우우우우!!!”

공간이 생김과 동시에 좌측으로 이동하는 강민수. 파워 싸움에서 밀린 톰의 치명적인 빈틈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11턴 진입!!!”

강민수는 바깥쪽, 제이크는 안쪽. 트랙 폭이 순간적으로 좁아지는 바람에 두 선수의 차량은 더욱 가까워지는데,

“또!!!”

이미 코너 진입에서 제이크보다 유리했던 강민수가 조금 먼저 코너를 돌았다. 그리고,

쿠쿵.

퉁.

끼이이이이이익.

강민수의 리어와 제이크의 프론트 타이어가 부딪히고 말았다. 순간 두 선수 모두 밸런스를 잃고 흔들리는데,

“아!!!”

충격과 함께 차량의 흔들림을 감지한 강민수. 액셀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며 재빠르게 카운터 스티어를 조작했다.

파바바바바박.

쿠구구구궁.

충돌과 동시에 중심이 무너진 제이크가 코너 탈출에서 스핀하고,

“...!!!”

“...!!!”

“...!!!”

뒤따라오던 톰이 밀려난 제이크와 가까워졌다. 좁은 트랙과 더불어 예상치 못한 스핀에 속도조차 줄이지 못하는데,

“아!!! 크러쉬! 크러쉬가 발생합니다아아아아!”

프론트 쪽을 빗겨 맞은 두 대의 황금색 포뮬러카. 부서진 차량 파편들이 순식간에 노면 위에 분산됐다.

“콜린 팀 망했습니다...!!”

“강민수는 괜찮아요! 제이크와 타이어끼리 부딪혔지만, 잘 달리고 있습니다!”

잠시 주춤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뻗어나가는 강민수의 차량. 리플레이를 지켜보던 중계진 모두 정당한 배틀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 이렇게 되면 강민수가 2위를 달리는군요!!”

멈춰선 콜린의 차량 앞으로 스메들리 포뮬러카가 재빠르게 코스를 빠져나갔다.

“선두에 서준하! 2위에 강민수! 스메들리 팀이 마지막 레이스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이 합니다!!!”

중계 스크린에 등장한 코리안 레이서들. 호켄하임링의 대형 태극기가 커다란 물결 속에서 휘날리며, 스메들리 팀이 챔피언 자릴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서준하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데요!!”

강민수의 상황을 전달 받은 서준하.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며 백마커 추월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리는 질주를 시작했다.

“호켄하임링에 서준하의 이름이 더욱 크게 울려퍼집니다!!!”

< 전방에 누가 있는 걸 굉장히 불편해 하는 선수거든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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