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13화 (113/200)

< 전생에도 이런 건 없었는데? >

[Ferrari Driver Fitness Center]

드라이버 피트니스 센터로 들어온 서준하. 아침 일찍 팀 레이서들과 전담 코치가 짝을 이뤄 훈련에 들어간 모습이 보였다.

‘후... 여길 다시 오는구나.’

본관으로 들어오자 트레드밀, 에어바이크, 로잉머신 등의 카디오 운동 기구가 서준하의 눈에 들어왔다. 뒤쪽으론 자신이 즐겨 쓰던 HS사의 최고급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부터 페라리에서 특별 제작한 특수 운동 장비들이 그를 맞이 했다.

‘이제부터 진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마라넬로에 머물 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을 찾았고, 많게는 하루 두 번 이곳에서 운동했다. 전생 F1에서 서준하의 성과는 모두 이곳에서 흘린 땀과 노력으로 탄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파워 랙(Power Reck) 앞에 다가서자, 맞은편 커다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췄다.

‘그나저나 안 보이네. 작년부터 여기서 일했을 텐데.’

트레이닝 중인 코치들의 얼굴을 살펴보는 서준하. 자신이 찾던 인물이 보이질 않자, 조금은 실망한 표정으로 트레드밀에 올랐다. 그런데,

“헤이, 준하 여기요!”

슬림하고 탄탄한 바디를 갖춘 남자가 스웨덴 사람 특유의 독특한 발음으로 서준하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몸이 향하고,

“전담 트레이닝을 맡게된 에릭 얀슨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하하.”

전생 서준하의 전담 트레이너 에릭. 그를 만나 너무나 반갑고 기쁜 감정이 밀려왔지만, 처음부터 격하게 다가설 순 없다. 치솟는 감정을 절제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앞으로 스케쥴 맞춰서 저랑 운동하면 돼요. 웨이트랑 반사 신경 트레이닝은 제가 보조로 들어갈 거고, 카디오 훈련은 준하 혼자 원하는 시간에 하면 됩니다. 자, 그러면 이쪽으로 갈까요?”

전담 트레이너로 에릭을 둔 건 행운이었다. 그는 최대한 선수 컨디션에 맞춰 천천히 훈련하는 트레이너였고, 무리하고 혹독한 프로그램을 선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북유럽 사람 특유의 여유와 차분함이 그의 강점. 어느 상황에서나 상대방을 편하게 하는 재주는 거의 매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선수와의 관계를 더욱 편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40kg로 드는 거야? 이틀 연속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승모근 단련 전용 기구 앞으로 장소를 옮긴 두 사람. 동료 트레이너와 훈련 중인 르클레르를 발견한 에릭이 먼저 말을 붙였다.

“빨리 50kg 돌파해야지.”

“50kg? 하하, 그러다 목 부서져, 르클레르.”

연이은 강도 높은 훈련에 들어간 르클레르. 동료 트레이너와 인사를 나눈 서준하가 르클레르에게도 눈인사를 보냈지만, 운동에 집중하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르클레르가 원래 좀 까칠해. 신경 쓰지마요.”

아직 어리고, 테스트 드라이버라는 불안한 위치에 있는 상황이기에 나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 이건 전생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어느 팀에서나 서준하와 경쟁자 위치에 놓인 선수들은 매번 경계심이 가득했다.

“F3까지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F1 레벨에선 훈련 강도가 좀 높을 거예요.”

F1 드라이버는 체중의 4∼5배에 가까운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단단한 목과 코어근육으로 중심을 잡고, 핸들을 조작할 근력이 필수다. 50℃를 넘는 콕핏 안에서 2시간을 버텨내는 집중력이 필요하고, 평균보다 2.5배 높은 심박수를 견뎌내기 위해선 엄청난 지구력을 길러내야 한다.

“자, 전반적으로 운동 프로그램과 기구 설명은 다 해줬고. 그럼 오늘은 간단하게 특수 기구만 사용법만 배우고 끝낼게요.”

요상하게 생긴 케이블 머신 앞으로 서준하를 데려가는 에릭.

“이건 마누엘 슈마허가 직접 고안한 목근육 트레이닝 특수 기구죠. 한 번 앉아봐요. 자, 자세를 비틀어서 다리 먼저 집어넣고...”

서준하가 수천 번 당겼던 슈퍼 낵(Super Neck) 케이블 머신. 능숙하게 자세를 만든 서준하가 머신에 앉았다.

“보통 처음에는 강도 ‘4’에 맞춰 놓고 당기는데, 한 번 당겨 볼래요?”

머리와 목에 연결된 케이블을 반대쪽으로 잡아 당기는 서준하. 설정된 강도가 가벼운지 케이블이 너무 쉽게 딸려왔다.

“오, 오. 가볍네. 자, 그럼 ‘5’로 한번 해 볼게요.”

무작정 당기는 게 아닌 승모근을 적절히 사용하며 당기는 게 포인트. 서준하가 상체의 반동 없이 정확한 자세로 당기는 케이블을 당겼다. 표정의 변화 없이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에 에릭이 신기한 표정으로 조금씩 강도를 높였다.

“자, 잘하네요...? ‘8’은 아무나 못 당기는데...”

환생 후 레이스만 잘했던 게 아니다. 트레이닝 역시 전생 경험을 통해 아는 정확한 포인트에 맞춰 훈련했다. 보디빌더가 원하는 타겟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서준하 역시 레이스에 필요한 근육들을 지난 7년간 발달시켜왔다.

“부모님도 그렇고, 원래 집안이 목이 좀 강해요. 헛!”

앞으로 이곳에서의 훈련이 더해진다면, 목으로 호두를 깨는 일은 어느 유명 선수만의 장기가 아니게 될 거다.

***

“이번 시즌 메르세데스를 잡지 못 한다면, 다음 번에 그 기세를 꺾는 건 더 힘들지도 모르네.”

2014 시즌 우승 이후 2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한 메르세데스 AMG. F1 바닥은 상승세라는 게 무서운 곳이라 한번 주도권을 잡은 팀이 계속 우승하곤 했다. 이번 시즌 페라리가 반드시 부활해 201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경쟁 팀의 기세를 꺾어야만 했다.

“2016 페라리는 반드시 부활에 성공해야 하네.”

마라넬로 내 위치한 F1 팀의 대회의실. 아리바베네 감독이 비장한 표정으로 페텔과 라이쾨넨을 바라봤다.

2014년 두 선수 각각 5위, 12위를 차지하며 부진했지만, 2015 시즌 3,4위로 성적을 끌어올렸다. 게다가 이번 시즌 엔진과 차량 개발에 획기적인 변화를 준터라 팀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의 말에 각 부서 책임자들도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데,

“그러기 위해선, 2월 공식 테스팅 주행부터 확실히 기세를 잡아야 해. 알리슨, 이번 달 주행에서 머신에 문제 생긴 적 없겠죠?”

“네, 문제 없습니다. 감독님. 가상 주행에서도 엔진 출력이 저하되는 문제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테스팅 당일까지 완벽히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2월에는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서킷에서 참가 팀 모두가 FIA 주관하에 공식적인 테스팅 주행을 펼친다. 100바퀴가 넘는 주행을 실시하는 테스팅 주행은 사실상 뉴시즌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이날 퍼포먼스에 따라 대략적인 순위 예측까지 가능할 정도다. 기술 개발 감독 제임스 알리슨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오케이, 좋습니다. 자, 그러면...”

똑똑.

훈련 도중 감독의 부름을 받은 서준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팀의 신입 레이서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그를 반기던 아리바베네가 다시 말을 꺼내는데,

“아, 마침 잘 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다음주 신차 발표식 얘길 좀 해보죠.”

각 팀 책임자와 메인 레이서들, 그리고 페라리의 고위 간부들이 참석하는 신차 발표식. 일정을 설명하던 아리바베네가 테스트 드라이버들을 앞으로 불렀다.

“이번 시즌부턴 테스트 드라이버들도 발표식에 참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갈리에라가 맡아 준비를 도와주세요.”

감독의 말에 놀라는 몇몇 팀원들. 반시즌을 넘게 소화한 르클레르는 그렇다고 쳐도, 서준하는 들어온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신입이었다. 특히나 신차와 함께 발표식의 주인공인 메인 레이서 두 사람에겐 그닥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이번 시즌부터 바꼈다고? 전생에도 이런 건 없었는데?’

감독에 말에 놀란 건 서준하도 마찬가지였다. 신입 드라이버가 언론 앞에 서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어찌보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 서준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스티어링과 가속 페달 작동은 F3과 똑같지만, 브레이크는 우리 엔지니어들이 미리 세팅한 값에 따라 움직일 거네

2014년 F1에 도입된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방식(By-Wire). 바이 와이어는 기존에 물리적 장치가 하던 조작을 전자 제어 기기로 대체하는 기술이다.

브레이크 페달과 브레이크 칼리퍼 액츄에이터 사이의 물리적 유압 라인을 끊고, 이를 전자적 유닛이 대신한다. 안토니오치가 차분히 요점을 설명해나가는데,

-이 방식으로 컨트롤 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BBW 버튼을 눌러 OFF시키게. 하지만 지금은 바이 와이어에 익숙해져야 하니 최대한 OFF 없이 타보게나

오늘은 첫 실전 연습 주행이 있는 날. 주행 장비를 갖추고 대기 중인 서준하의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새로 도입된 전자 제어 방식 설명을 들은 서준하가 콕핏에 올랐다.

-그것 말고는 가상 주행 때와 같은 환경이네. 잘하겠지만, 무엇보다 침착하고 안전하게 타길 바라네

시뮬레이터 주행은 가상 공간에서 벌어진다. 제아무리 빠르게 달려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운전자의 신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순식간에 200, 300km/h에 도달하며 한순간에 아찔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실제 주행. 서킷을 혼자도는 상황이라도, 경험 많은 디렉터 역시 긴장될 수밖에 없다.

“Copy that.”

이이잉.

부와아아앙.

“Wow..!”

스태프의 수신호에 따라 테스트 트랙의 입구로 들어서는 서준하. 경주차가 움직임과 동시에 온몸으로 미친 듯 짜릿한 전율이 밀려왔다.

-인스톨레이션 랩 시작 5초 전. 진입과 동시에 급격한 시프트업은 자제할 것

본격적인 인스톨레이션 랩(기본적인 레이스 카의 기능을 점검하기 위한 테스트 랩)을 시작하는 서준하. 메가폰을 잡은 안토니오치 옆 피트 월 엔지니어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부와아아아앙.

위이잉.

부와아아아아앙.

코스 진입과 동시에 서서히 속도를 높이는 서준하. 길이 2.99km의 간소한 테스트 서킷, 피오라노(Fiorano Circuit)로 V8 터보 엔진의 배기음이 울려퍼졌다.

-첫 코너다, 하던대로 침착하게!

F3에선 경험해 본 적 없는 전자제어식 브레이킹 시스템. 1코너에 들어가는 그에게로 팀 스태프의 시선이 향하고,

끼이이익.

부와아아아아아앙.

-좋았어! 너무 날카롭게 돌 필요 없어. 지금은 브레이크 방식에 적응하는데 치중하게

“Copy.”

달라진 환경에도 안정적인 주행을 보여주는 서준하. 이어지는 연속 코너에서도 무리 없이 코스를 빠져나가자, 팀원들의 표정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 느낌이야...!’

F3 보다 시야는 높았고, 차 폭도 훨씬 넓었다. 코너링 시 하중 이동에서도 F3와 전혀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한두 바퀴에서 감을 잡자,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이는 서준하.

6단, 287km/h...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7단, 312km/h...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밖에도 많은 게 달라졌지만, 주행감은 오히려 더 좋았다. 지난 7년간 탔던 경주차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예민한 차지만, 서준하에겐 가장 익숙하고 편한 레이싱카였다.

-아니...! 벌써?!

어느 정도 적응하면 스피드를 내라고 주문했지만, 이렇게 빨리 감을 잡을 줄은 몰랐다. 안토니오치는 물론 차량의 상태를 체킹하던 엔지니어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안토니오치, 잘하고 있는가?”

때마침 피트 월에 나타난 한 사람.

“왜, 뭔데 그렇게 놀라?”

놀란 표정의 엔지니어들 앞으로 마르치오네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 전생에도 이런 건 없었는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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