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14화 (114/200)

< 아직 결정을 못 내리신 건가요, 감독님? >

8단, 354km/h...!

최고속으로 페라리의 테스트 트랙 피오라노(Fiorano Circuit)의 백스트레치를 돌파하는 서준하. 터질듯한 배기음이 서킷 전체에 울려퍼졌다.

‘왜 오더가 없는 거지?’

코스 진입 전 차량의 상태를 설명하며 포인트를 알려줬던 안토니오치. 어느 순간을 끝으로 더 이상 오더가 내려오지 않았다. 라디오 상태를 체크하는 서준하. 관제 센터와 통신 연결엔 문제가 없었다.

‘그냥 지켜보겠다는 건가? 그럼 남은 두 바퀴는 더 타이트하게 간다.’

10도 아래로 떨어진 기온 탓에 여지껏 타이어의 온도는 충분히 오르지 않았었지만, 이제 조금씩 그립감이 괜찮아지는 걸 느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F1 카의 첫 실전 주행. 마지막 두 바퀴는 마음껏 달려보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이 첫 주행이라고?”

사실 안토니오치가 말이 없는 건 마르치오네 회장 때문이었다. 안토니오치는 그간 서준하에 대한 평가를 회장에게 들려줬고, 오늘 주행에 대한 소감 역시 꺼내놓는 중이었다.

부와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서준하가 다시 홈 라인으로 들어오는 걸 발견한 안토니오치. 재빠르게 메가폰을 잡고 무전을 날렸다.

“마지막 두 바퀴! 전력을 다해보게 준하 군...!”

이때다 싶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서준하의 주행에 회장의 관심이 어느 정도 향한 듯 보이자, 안토니오치가 예정에도 없던 플라잉 랩 오더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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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치의 목소리는 어딘가 강렬했다. 며칠 안 봤지만, 그는 어딘가 차분한 사람이었다.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오더를 내리니 어리둥절했지만, 플라잉랩은 서준하도 기다렸던 오더. 이제 완전히 자신감을 얻으며 좀처럼 악셀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차가 뻗어나가는 게 시원 시원하구만.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허허.”

페라리에 서준하를 데려오는데 가장 큰 입김을 불어넣은 건 마르치오네 회장이었지만, 그의 출신과 경험 적은 나이라는 요소는 여전한 불안 요소였다. 하지만 오늘 결국 그 불안은 자신의 직관이 맞았다는 쾌감으로 뒤바뀌며, 마르치오네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스타트 라인 통과! 58초 139! 다시 파이널 랩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 서준하의 기록에 페라리 피트 월은 어수선해졌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 하는 반응이 대다수. 그 이유는 바로,

“...! 58초?! 조금만 더 나오면, 라이쾨넨이 탔던 기록이랑 비슷...?!”

현재 서준하의 경주차는 2015시즌 엔진을 장착한 차량이다. 놀라운 건 지금 기록이 작년 테스트 주행에서 메인 레이서들의 그것과 비슷한 랩타임이라는 것. 상황을 체크하던 엔지니어가 말을 잇지 못하는데,

“뭐? 비슷해?”

“아마 라이쾨넨은 57초대 기록이었을 겁니다. 심지어 여길 수십 번 돌고 만든 기록으로 기억합니다. 근데 지금 준하는...”

부와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다시 한 번 천둥 같은 배기음이 피트 월로 들이닥치자, 회장은 이어지는 안토니오의 말을 듣지 못 했다. 그리고,

띠링.

“...!!!”

“...!!!”

모니터에 표시된 서준하의 랩타임을 보고 말문이 막혀버린 상황판 엔지니어.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나왔다.

“57초 819!!! 레이스 오버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의 안토니오치. 첫 주행에서 메인 레이서와 비등한 기록을 낸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첫 주행이라며?!”

마르치오네 회장 역시 두 눈만을 껌뻑이며 피트로 돌아오는 서준하를 바라봤다.

모두의 생각과 달리 서준하에게 이 테스트 트랙은 낯선 곳이 아니었다. 전생의 3년 간 페라리에 머물며 이곳을 돌았다. 서준하에겐 마라넬로보다 익숙한 테스트 트랙은 없었다.

“이번 시즌 우리가 잭팟을 터뜨린 것 같구만...!”

피트로 복귀하는 서준하를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마르치오네 회장. 돌아온 서준하의 F1 카의 엔진음이 피트 월에 울려퍼졌다.

***

“2016 페라리의 새로운 경주차! SF16-H을 소개합니다...!!!”

2016 페라리의 F1 신차 런칭쇼. 현란한 조명과 함께 준비된 스테이지 바닥에서 다양한 리버리(차량넘버 및 스폰서 마크로 이루어진 디자인 킷)로 도배된 SF16-H이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보! 브라보!!”

엄청난 플래시 세례와 함께 터져나오는 함성. 현장에 모인 언론 취재진과 관계자들의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무대 앞 열 좌우 페라리 팀의 수석 코치진들과 고위 간부들이 포진했고, 그 옆으로 르클레르와 서준하 역시 힘찬 박수를 보냈다.

“이번 시즌을 위해 피땀 흘린 자랑스러운 페라리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무대 중앙으로 등장한 마르치오네 회장. 그의 말과 동시에 무대 화면으로 미소 짓는 팀원들의 얼굴이 한 명씩 등장했고, 대열의 마지막 줄에 자리한 서준하의 얼굴도 전세계 라이브 방송을 탔다.

“이번 시즌에도 함께할 페텔과 라이쾨넨에게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신차에 대한 자신감을 밝히며 레이서들을 격려하는 마르치오네 회장. 무대 위 신차 옆에 나란히 선 메인 레이서들의 모습이 서준하의 눈에 들어왔다.

‘다음 발표식엔 저 위에 오르겠어.’

사실 서준하는 지금 이 순간이 그닥 아쉽지 않았다. 데뷔 전 전세계 언론과 FOM(포뮬러원 매니지먼트, F1의 주관사)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으니까.

게다가 오늘은 페라리 팀이기에 가능한 행사다 모든 F1 팀이 이런 행사를 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즐기며 감사하는 태도가 오히려 당연했다.

“이번 시즌 우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겁니다. 2016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부활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비장한 표정의 마르치오네 회장. 뉴 시즌 정상을 되찾겠다는 말을 남기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런칭쇼 종료와 더불어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페라리 팀 스태프들. 그들 곁으로 수많은 취재진들이 인터뷰 요청을 위해 달려왔다.

“이번 시즌 역시 메르세데스의 파워 트레인이 무섭습니다. 페라리 061(2016 페라리 엔진의 이름)의 가장 큰 변화에 대해서 간단히 한 말씀해주시죠...!”

신차 런칭쇼이니 만큼 차량 개발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페라리의 CTO 마티아 비노토를 비롯한 기술 개발자들이 계속되는 질문에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는 뉴페이스에게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코치진들 옆에선 서준하를 발견한 독일인 기자.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한 얼굴로 빠르게 질문을 던지는데,

“이번 시즌 페라리 엔진의 인테이크 퍼넬(Intake Funnel, 트럼펫)의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정확히 어떤 변화를 말하는 건가요?”

엔진에 대한 갑작스러운 질문으로 곁에선 R&D 담당자가 나섰지만, 서준하가 웃으며 앞으로 한걸음 앞으로 나왔다.

“기존의 유압 시스템을 이용해 길이를 조절하는 고정형 트럼펫을 사용했다면, 이번 시즌부터는 좀 더 개선된 방식의 가변형 지오메트리 트럼펫으로 대체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 변화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나요?”

예상했던 것과 달리 머뭇거림 없는 답변에 기자가 좀 더 자세한 질문을 요청하는데,

“엔진 부품의 변화는 모두 출력과 직결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고회전에서 더 높은 출력을 얻을 수 있죠.”

“정확히 어떻게 높은 출력을 얻을 수 있는 건가요?”

“음...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양의 혼합기체를 ‘정확한’ 실린더 내에 분사하는 것. 그로 인해 일정한 출력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이번 변화에서 기대하는 목표입니다. ‘정확히’ 이해하셨나요?”

사실 서준하가 원했던 종류의 질문이었다. 오늘 행사에 참여하게 된 소감이나 입단과 관련한 뻔한 질문이 아닌, 팀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나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

“네, 감사합니다. 정확한 설명이군요...”

인터뷰를 마치고 물러서는 서준하. 그의 주변으로 그를 바라보는 수석 코치진들의 시선이 느껴졌는데,

“깔끔한 답변이었습니다, 준하 군. 엔진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 보군요.”

“네, 엔지니어링 파트도 관심이 많습니다. 어서 빨리 페라리 062 엔진도 보고 싶습니다.”

훌륭한 드라이빙 테크니션은 자신이 운전하는 차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아는 또 다른 엔지니어나 마찬가지. 최정상 드라이버가 되려면 자신이 타는 차의 핵심 부품 개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명확히 알아야한다.

“좋습니다. 페라리 062 개발에도 힘써주기 바랍니다.”

평소 서준하와는 별다른 말을 섞지 않던 엔진 책임자 마티아 비노토. 처음 보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브라얀, FIA 명단 제출이 언제까지지?”

마라넬로에 위치한 아리바베네 감독의 집무실. 아리바베네가 곁에선 비서에게 이번 시즌 프리 프렉티스(Free Practice drivers) 출전 드라이버 명단의 제출 기한을 물었다.

“2월 말일까지입니다. 아직 결정을 못 내리신 건가요, 감독님?”

F1은 세계 곳곳을 돌며 시즌 총 21번의 GP를 치른다. GP 하나 당 총 3일간의 일정을 소화하는데, 금요일엔 연습 주행, 토요일엔 퀄리파잉1·2·3 그리고, 일요일엔 레이스를 치러 우승자를 가린다.

이때 목요일 연습주행의 경우 종종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출전하기도 하는데, 르클레르와 서준하를 두고 감독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르클레르 선수로 결정된 사항 아니었나요?”

“맞아, 얼마 전까진 그랬지.”

르클레르가 불안하거나 기량이 떨어져서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서준하의 적응이 굉장히 빨랐다. 지금 당장 GP에 내보내고 싶을 정도. 이번 달 내내 전략 팀은 물론 엔지니어링 팀으로부터 서준하에 대한 칭찬을 들었던 터라,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변을 만들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단 말이지...”

서준하를 명단에 올린다는 건 이제 막 F1에 들어온 신입을 그랑프리에 데뷔시키겠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페라리 팀은 물론, 다른 참가 팀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이는 또 한 번의 이변이었다.

“르클레르와 준하를 이리로 불러주겠나.”

한참 생각에 잠겼던 아리바베네가 비서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철컥.

“어, 늦은 시간에 미안하네. 잠깐 얘기 좀 하지.”

감독의 호출과 동시에 숙소에 들어갔던 두 선수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밤이 늦은 시간이라 두 선수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 이런저런 얘길 꺼내던 감독이 두 선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이번 시즌 프리 프렉티스 대기 선수 말이네. 그거...”

프리 프렉티스라는 말에 눈이 번뜩이는 두 선수. 뜸을 들이는 감독의 모습에 무언가 직감한 르클레르의 얼굴이 붉어지고,

“레이스를 통해 정하도록 하지.”

그의 말에 르클레르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먼저 입단한 그가 당연스럽게 차지할 줄 알았던 자리였으니까.

“프리 프렉티스 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메인 레이서의 대리 주행도 승자가 나가는 걸로 하겠네.”

반면,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갤 끄덕이는 서준하. 일찍 찾아온 기회 앞에도 차분한 모습인데,

‘르클레르란 이름은 듣도 보도 못 했지.’

전생 F1 무대에서 쉴르 르클레르의 네임 테그는 보지 못했다. 르클레르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해 보였다.

< 아직 결정을 못 내리신 건가요, 감독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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