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24화 (124/200)

< 언젠가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

[The World's Fastest Coaster!]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위치한 세계 최대 실내테마파크, 페라리 월드(Ferrari World). 그곳의 가장 인기 있는 어트랙션, 포뮬러 로사(Formula Rossa) 앞으로 수많은 취재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저기 있다!”

2016 마지막 레이스 아부다비 GP. 공식 일정이 있기 하루 전 화요일, 팀이 경주차 조립과 검차를 받는 동안 서준하는 페라리 월드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훼에에에에에에엥.

4초 안에 시속 240km까지 급발진하는 포뮬러 로사는 최대 4.8G의 중력 가속도를 경험할 수 있다. 놀이기구에 올라탄 서준하의 모습이 한국 취재 기자들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Scuderia Ferrari Driver]

[No. 50 : Seo Junha(Kor)]

페라리 월드 중앙부 거대 스크린으로 서준하의 프로필과 페라리 팀 유니폼을 입은 사진이 등장했다. 페라리 월드는 물론 야스 마리나 서킷 주변부를 시작해 세계 전역으로 그의 프로필이 홍보됐다.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새로운 드라이버 서준하 선수입니다!”

페라리 월드의 준비된 스테이지로 등장한 서준하. 그를 알아본 사람들과 팬들, 그리고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그의 등장에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멋있다, 서준하!”

다양한 국적의 기자들이 그를 향해 환호했지만, 그 가운데 단연 한국인들이 가장 많았다. 이곳이 페라리 월드인지, 코리아 월드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말 많은 국내팬들이 서준하의 이름을 외쳤다.

“이제 정말 F1 무대에 나오는구나...!”

“페라리 오버롤이 진짜 잘 어울려. 빨리 페라리 카에 올라탄 걸 보고 싶다!”

간단한 인터뷰와 팬 사인회를 진행하는 서준하. 본격적으로 GP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그 모습을 취재하는 포뮬러 기자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영국 포뮬러 입문에서부터 종종 그의 활약을 취재했던 기자들에겐 지금 이 상황은 마치 자신들의 꿈이 이뤄진 듯했다.

“서준하, 데뷔전 화이팅!”

“데뷔전 그랑프리 우승 갑시다!”

행사 중간중간 계속해서 열성적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한국팬들. 스테이지 위에 선 서준하의 눈에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팬과 기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처음 모터스포츠 비인기국인 한국에서 환생한 걸 저주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히나 한국의 팬들은 자국 선수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덕분에 이번 생 처음으로 한국에서 환생한 걸 감사하게 여기며 데뷔전 각오를 다졌다.

‘이 열기에 보답하고 싶어.’

무대 밑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한국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서준하. 팬들이 그토록 원했던 한국인 최초의 F1 드라이버의 질주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

“다음 시즌도 페라리를 후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

“또 생각이 바뀌셨어요?”

프랑스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위블로. 2016 현재 페라리의 주 스폰서로 F1을 포함한 스포츠 시장에 주로 후원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기업이다. 수백억이 들어가는 페라리 팀의 후원 결정을 두고 회장 과달루페가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도 부활은커녕 추락하고 말았네. 왠지 다음 시즌도 2위 자릴 내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구만.”

“흠... 이제 드라이버도 교체 시기도 왔고, 2017 차량 개발만큼은 획기적인 변화를 줬다고 들었는데요. 근데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회장의 표정을 살피던 사장 제르딘 셰어.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포츠팀 50위에 들었고, 순위 상관없이 팀의 존재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궁금한 표정으로 회장을 향해 묻는데,

“새로운 드라이버가 좀 걱정스러워... 그 선수를 시즌 마지막 GP에 내보내겠다는 건 다음 시즌 출전까지 고려한 선택 아니겠는가? 그러면 다음 시즌 성공 가능성이 너무 불투명하잖아... 허허, 지금 우리가 투자하는 광고비가 얼만데 이렇게 무리수를 던지다니... 아마 지금 이런 심정은 우리 회사뿐만이 아닐 거야.”

르클레르라는 준비된 인재를 두고 갑작스러운 신인을 내보내겠다는 페라리 팀. 다음 시즌 최종 스폰에 대한 결정에 대해 사장 역시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귀담아듣던 사장 역시 검토한 사항을 꺼내놓는데,

“페라리가 저런 선택을 내린 이유가 있습니다. 뭐 개인적으로 그 드라이버를 아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이전에 없던 유망주인 건 확실합니다. 성과에 있어선 정말 굉장하더군요. 이제까지 모든 대회에서 모든 폴포지션과 우승을 차지했으니까요.”

“근데 너무 어려. 나는 아직도 페라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다음 시즌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라이쾨넨 같은 스타가 있어 주면 크게 고민 안 했을지도 모르지만, 98년생 신인은 좀...”

지난 몇 년간 서준하가 제아무리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하더라도, F1 무대만을 주목했던 페라리 스폰서들에겐 그저 검증이 안 된 어린 선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오랜 기간 엄청난 팬덤과 함께 위블로의 시계 모델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라이쾨넨의 시즌 아웃은 회장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뭐 사실 조금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데뷔전을 치르는 것만으로도 유럽 포뮬러 팬들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시아 쪽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흠...”

“이 선수 언변도 괜찮고, 평소 이미지도 잘 쌓아 온 터라 GP에서 성과만 내준다면, 라이쾨넨만 한 스타 드라이버가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가 괜찮단 말이지?”

회장이 라이쾨넨을 신뢰했던 건 평소 그의 진중한 모습 덕분이다. 고급스러운 외모와 함께 매사 신중한 태도는 위블로가 원하는 모델에 가장 근접했다. 게다가 실력이 제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악동이나 문제아 같은 이미지를 가진 선수들은 애초부터 스폰서들의 관심 밖이었다.

“페라리 팀이 그리 무모하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 선수는...”

페라리 팀 커머셜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을 되짚어보는 제르딘 사장.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를 꺼내놓는데,

“사실 페라리 팀 내부에선 라이쾨넨이 아웃되기 전에 서준하를 쓰자는 코치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준비 기간 동안 연습 레코드들이 라이쾨넨 그 이상이었다고 했으니까요.”

“라이쾨넨 그 이상?”

소문이 아닌 기록과 분명한 자료를 통해 파악한 사실들. 사장의 말에 고민에 빠졌던 과달루페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곧은 가지인지, 굽은 가지인지 어디 한번 보자고.”

하루 앞으로 다가온 아부다비 GP. 페라리 거대 스폰서들이 점점 서준하의 데뷔전으로 향했다.

***

“와!”

“오!!”

야스 마리나 서킷(Yas Marina Circuit)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서킷으로 통하며, 한 시즌의 마무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런 특성에 따라 VVIP 공간으로 여겨지는 패덕클럽(Paddock Club) 역시 현대적이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스태프를 따라 패덕으로 들어온 한국인 부자(父子) 입구 주변 늘어선 요트와 호화스러운 건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희 야스 마리나 패덕은 전시장, 레스토랑, 관람실과 같은 갤러리를 위한 공간과 팀 하우스, 피트, 게러지, 컨트롤 센터 등등 팀과 주최 측을 위한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자, 먼저 이거 받으시고요.”

스쿠데리아 페라리 팀의 마크 위로 ‘VVIP’라고 새겨진 카드를 전달받은 두 사람. 출입증치고는 너무나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다시 한번 시선을 빼앗겼다.

“우리가 패덕클럽을 다 들어와 보는구나...!”

“여기 레스토랑 가면 먹는 거 다 공짜래요!”

“하하, 그래? 아빤 삼 일 동안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아..!”

하루 입장료만 400만 원이 넘어가는 패덕 클럽. 페라리 팀 메인 드라이버의 초대를 받은 장철과 장윤호는 지금 황홀경을 경험하고 있는 듯했다. 특히나 수십 년 동안 모터스포츠 광팬을 자처했던 장철에겐 더없는 인생 최고의 순간. 가이드를 따라 이곳저곳 탐방하던 두 사람이 FP1 시작 전,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에 멈춰섰다.

“이, 이게 그...!”

“새, 생각보다 엄청 큰데요?!”

시즌 마무리 GP가 열리는 서킷인 만큼 야스 마리나 서엔 F1에서 상징적인 물건이 전시돼있다. 그건 바로,

[FIA FORMULA ONE WORLD DRIVERS' CHAMPION]

유리관 안쪽에서 영롱하게 빛을 내는 커다란 성배 모양의 트로피. 음각으로 새겨진 역대 모든 챔피언들의 사인과 월계수 무늬의 금띠는 보는 이의 시선을 장시간 머물게 만들었다.

“와... 한 번 꺼내서 만져 보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정말...”

“언젠가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월드 챔피언 트로피를 보고는 상상에 빠진 장철. 서준하라면 아들 윤호의 소원을 이뤄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팀 게러지를 보러 가보실까요?”

서준하에 대한 감사와 기대감에 휩싸인 두 사람이 가이드와 함께 실제 선수들과 팀원들이 있는 공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와..!”

“엄청나다...!”

“곧 있으면 FP1 시작 전이라 게러지가 많이 분주합니다.”

중계방송에서 보던 팀 감독들부터 F1의 유명인사들까지. 팀 게러지가 보이는 관람실에 들어오자 GP 시작 전의 굉장한 열기가 느껴졌다. 극도의 긴장감과 치열함이 묻어나는 그 에너지에 두 사람은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있다...!!!”

잠시 후, 감탄을 마치고, 창밖에 고갤 처박은 두 사람. 누군가를 찾는 듯한데,

“서준하!!!”

페라리 팀의 피트로 시선을 고정한 두 사람. 이제 경주차에 올라타려는 듯한 레이서 한 명이 보였다. 경주차에 적힌 넘버링은 50. 장 부자가 찾던 서준하였다.

“대, 대단해, 준하!”

“...”

“아빠 울어요?”

“모르겠어, 그냥 막 눈물이 나네...”

이전에도 서준하가 F1 연습 주행에 나온 걸 봤지만, 그건 현실과는 거리가 먼 TV 화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렬하고 압도적인 페라리의 포뮬러카 위에 서준하가 타고 있었다. 자랑스러움과 커다란 기쁨으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출발한다!”

“...!!!”

본격적인 FP1 시작 신호가 떨어지고, 게러지를 나서기 시작하는 선수들. 곧이어 서준하가 서킷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 준하 파이팅!!!”

서준하의 출발과 동시에 감격에 벅찼던 장철이 큰 목소리로 응원하자, VVIP 관람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퀄리파잉이나 레이스도 아닌 연습 주행이라 응원을 보내는 건 장철뿐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멀어지는 서준하를 향해 더 크게 외쳤다.

< 언젠가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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