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F1 레이서-125화 (125/200)

< 어떻게 저런 생각을 다 한 건지 놀라울 뿐입니다 >

“2016 마지막 그랑프리. 첫 번째 프리 프렉티스가 시작됐습니다!”

하나둘 피트를 나서기 시작하는 참가자들. 서준하도 일찍이 페라리 피트를 나섰다.

“오늘 GP에서 이 선수를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이번 FP에는 서준하 선수가 페라리의 레이싱카를 타고 나오는군요.”

더 이상 B팀 소속 프리프렉티스 드라이버가 아니다. 페라리의 붉은 오버롤을 입은 서준하. 한국팬들은 물론 티포시들의 환호를 받으며 서킷에 등장했다.

“사실 서준하 선수도 이번 시즌에 데뷔하리라는 건 어느 누구도 상상 못 했을 겁니다. 새로운 환경이니만큼 오늘내일 FP가 중요하겠군요.”

“그렇죠, 페라리 차를 타고 쌓아둔 데이터도 선수 스스로 부족할 거고요. 무엇보다 이런 컨디션에서 서킷 적응을 최대한 빠르게 해내는 게 포인트겠습니다.”

매 GP 테스트 드라이버로 대기하며 시뮬레이터 훈련을 해왔지만, 가상은 가상일 뿐 실전이 아니다. 레이서가 얼마나 빠르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지가 중요해 보이는데,

“역시 팬들의 환호가 남다르군요. 메르세데스 듀오가 한 명씩 피트를 나섭니다!”

“사실 이번 GP는 두 선수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해왔거든요? 확실히 오늘 많은 갤러리의 이목이 쏠리는 모습입니다.”

메르세데스 팬들은 물론, 서킷을 찾은 갤러리 대부분의 시선이 현재 367포인트로 1위를 달리는 로즈버그와 12포인트 뒤진 해밀턴에게로 향했다. 뉴페이스의 데뷔전 그리고, 챔피언 경쟁전 타이틀이 걸린 그랑프리라 그런지, 레이스가 아닌 FP1 날에도 관중 숫자는 평소보다 많았다.

“흠... 제가 이번 시즌 서준하 선수의 FP1을 보면서 느낀 건, 이 선수의 드라이빙 스타일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사실입니다.”

롤링과 워밍업을 마치고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는 선수들을 지켜보던 해설자. 직선 주로 전까지 일곱 개의 턴을 돌파하는 서준하의 주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단 주법이 상당히 특이합니다. 프론트를 일단 집어넣은 다음 오버스티어를 이용해서 코너 초반에 방향을 크게 틀어버리거든요?”

“그럼 오버스티어를 일부러 만들어내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보통이라면 과속으로 여겨질 테크닉인데... 진입과 동시에 스로틀을 과감하게 당겨서 인위적으로 오버스티어를 만들어내는 걸로 보여요.”

통상적으로 이런 방법은 부자연스러운 스타일로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리어가 너무 많이 미끄러질 수도 있고, 모멘텀을 잃게 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는데,

“하지만 지금 저런 주법이 페라리 SF16-H에 잘 들어맞을지 모르겠네요. 아마 리어 밸런스가 낮은 차량이라면, 그런 주법으로 컨트롤하기 부담스러울 건데요. 아마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F1 경주차의 사소한 세팅값이야 즉흥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지만, 스티어링 민감도나 앞뒤 밸런스 등의 큰 틀은 제작 처음 출전 선수의 특성에 맞춰진다. 즉, 지금 서준하가 탄 차량은 컨트롤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중계진은 물론 페라리 팀에서도 오늘 서준하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나왔던 페르스타펜을 선두로 참가자들이 점점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는 야스 마리나입니다!”

***

“저 친군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네요.”

오전 FP1이 끝나고, 다시 시작된 FP2. 선수들이 하나둘 다시 피트를 나서며 서킷을 돌기 시작했다. 현재 챔피언십 2위 자릴 확정 지은 레드불 레이싱 팀. 팀 수장 호너 곁으로 경쟁 팀 분석관 피에르가 다가섰다.

“확실히 어린 레이서라는 게 느껴져요.”

“서준하 말인가? 음, 자세히 말해보게.”

FP2를 달리고 있는 페라리 뉴페이스의 차량을 가리키는 피에르. 꼼꼼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요구하는 호너 감독 앞에 자신 있는 모습인데,

“데뷔전이라 그런지 페이스가 뒤죽박죽이에요. 게다가 아까 FP1 종료 30분 전에는 드라이빙 스타일이 바뀌더군요. 경험이 없으니까, 아직 뭐가 중요한지 잘 모르는 듯하네요.”

“원래 F1은 첫 무대가 가장 혼란스럽잖아. 이미 순위권에서 밀렸고... 연습 삼아 한 번 내보낸다. 뭐, 이거겠지.”

강적 페라리를 꺾으며 이미 레드불 팀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는 상태. 피에르의 말에 호너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차라리 평소 스타일대로 최대한 랩타임을 끌어올리는 게 최선일 텐데. 왜 자꾸 흉내 내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번 FP2는 아예 인위적으로 언더스티어를 만들어내고 있더군요.”

“인위적으로? 그럼 주법을 바꾸고 있단 말이군.”

“네네, 지금 8턴 보시면, 프론트 타이어를 일시적으로 스톨 상태로 만들어놓고 언더스티어를 만들어내요. 대개 코너 전반을 그런 상태로 주행하는데, 그러니까 확실히 랩타임은 좋지 않죠.”

“흠...”

잠시 동안 서준하의 주법을 관찰하는 호너. FP2의 그의 드라이빙은 코너 진입시 일반적인 턴인 포인트보다 좀 더 빠르게 스티어링을 강하게 조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분명 FP1과 달라진 스타일이었고, 마치 다른 선수가 운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누군가의 주법을 흉내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는 점에선 흥미롭구만. 하지만 그걸 레이스에 적용해서 랩타임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듯하군.”

“그렇죠. 자기 스타일로 쭉 유지해서 좋은 랩타임을 끌어내는 게 더 나을 텐데.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시도하는 걸 보니, 자기 주행 스타일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걸지도 모르겠네요.”

포뮬러 레이서부터 지난 10년간 F1 팀의 감독을 맡아온 호너. 서준하라는 어린 레이서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순 없었지만, 분명한 건 지금 그는 랩타임을 끌어올리는 데 있어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주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킷 적응과 일관된 주행 스타일로 FP 데이터를 쌓는 것이 예선과 본선 레이스를 위한 최선의 준비이기에 그의 주행은 어딘가 미숙해 보였다.

“18랩을 끝으로 페르스타펜, 리카르도 각각 4, 5위에 올랐습니다. 확실히 이번 GP도 우리 팀 랩타임이 좋습니다, 호너.”

“그래, 페텔과도 별 차이가 없구만. 근데 지금 코리안은 어떤가?”

호너의 말에 피에르가 경쟁 팀의 타임 로그를 살피는데,

“흠... 이건 뭐...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다가 17랩에서 완전히 기록이 떨어졌는데요. 잠시만...”

FP1의 종료 직전 30분 전과 동일한 패턴. 모니터에 서준하의 개인 주행 영상을 띄운 피에르가 분석에 들어갔다. 특히나 비교를 위해 17랩 전후 뉴페이스의 주행에 주목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건지...”

“흠...”

피에르의 말에 모니터 근처로 다가선 호너 감독. 다시 한번 유심히 비교 영상을 살피는데,

“또 달라졌습니다. 이번엔 FP1과도 다르네요, 참.”

“...주법을 또 바꿔? 그게 가능한 거야?”

자신의 본래 드라이빙 스타일이 아닌, 또 다른 주법으로 FP2를 마무리하고 있는 서준하. 당최 의도를 알 수 없는 뉴페이스의 행보에 레드불 팀이 혼란에 빠졌다.

***

“FP2 종료까지 20분가량 남았습니다. 선수들이 스피드를 내서 달린다면, 앞으로 10바퀴 이상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직전 랩부터 1위부터 5위까지는 아직 큰 변화가 없고요.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면, 17랩 랩타임이 확 떨어졌다가, 다시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는 서준하인데요.”

“크러쉬나 차량 문제가 있었던 걸로 보이진 않았습니다만. 지금 속도는 괜찮군요. 이번 서준하의 21랩 랩타임은 페라리 팀도 기대해 볼 만할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승부가 판가름 난 시즌 마지막 GP인 만큼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무리 없이 FP2를 마쳐가고 있었다. 반면, FP1과 더불어 변화를 보이는 서준하의 랩타임에 중계진이 다시 한번 그에게 주목했다.

“빠르네요. 서준하 21랩 5위 리카르도와 0.01초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좋아요.”

“엥?”

서준하의 선전에 다시 개인 주행 화면을 유심히 살피는 해설자. 무언가 발견한 듯 놀란 표정인데,

“허허, 서준하 드라이빙 스타일이 또 바뀐 것 같습니다. FP2 시작에는 스티어링 조작이 파워풀했다면, 지금은 굉장히 섬세해요. 전처럼 일부러 언더스티어도 내고 있지 않고요. 또 달라졌군요...?”

이전 드라이빙이 언더스티어 성향이 강한 주법이었다면, 지금은 그와 정반대 주법. 좀 전까지 스티어링을 조작해 레이싱카를 휘어잡았다면, 지금은 코너에 들어간 경주차 스스로 흐르게 놔두는 경향이 강해 보였다.

“서준하! 다시 한번 빠른 속도로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면서, 이번에는 리카르도를 제치고 4위에 랭크합니다!”

“하하, 서준하가 드디어 페이스를 잡은 것 같습니다. 왠지 이거다 하는 느낌을 받은 것 같군요!”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중계진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엔 뭘 하나 했더니만...”

“어떻게 저런 생각을 다 한 건지 놀라울 뿐입니다...”

서준하의 새로운 시도에 놀라는 아리바베네 감독과 안토니오치. FP2 종반 계속해서 랩타임이 빨라지자, 페라리 피트 월의 분위기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주법이 다양한 레이서도 드물거니와, 애초에 많은 선수들이 저런 시도를 할 생각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저렇게 주법을 바꿔서 탈 수 있는 건지... 허허.”

서준하가 주법을 바꿨던 건 현재 페라리 경주차의 성향 때문이다. SF16-H 경주차는 라이쾨넨의 드라이빙 스타일에 맞춰 제작됐기에, 레이서 역시 그에 맞춰야 만이 최고 기록을 뽑을 수 있다.

애초에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에 모두가 기대하지 않았던 그의 데뷔전. 오늘 GP는 서준하라는 레이서를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찾았다...!’

지금 서준하가 탄 경주차는 프론트 그립이 매우 높은 타입. 덕분에 코너링 과정에서 리어의 슬라이드가 자주 일어나기에 본래 자신의 주법으로 타기엔 적합하지 않은 경주차다. 프론트 그립에 투자를 많이 한 걸 보니 스티어링을 민감하게 조작하며 계산적인 드라이빙을 했을 게 분명하다.

‘라이쾨넨이 스티어링에 민감한 이유는 이거 때문이겠지.’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앙.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준하, 갑자기 또 드라이빙이 달라진 거 같다...?

레이싱에 대한 편견이 없는 듯한 느낌, 레이서로서 자신의 테크닉에 경계를 두지 않는 느낌. 전담 레이스 엔지니어 데이브에게도 서준하는 자신이 흔히 아는 드라이버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며.’

FP2 종료까지 몇 분 남지 않았지만, 서준하는 오늘 연습 주행 가운데 가장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스피드를 뽑아낼 수 있게 됐으니까.

‘적응은 끝났어. 이젠 스피드를 내는 일만 남았다!’

라이쾨넨이라면 어떻게 탔을지를 상상하며 주행하는 서준하. 7턴 헤어핀을 빠져나오며 재가속 타이밍을 빠르게 가져갔다.

< 어떻게 저런 생각을 다 한 건지 놀라울 뿐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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